마당
손진숙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마당이라 부를 만한 공간이 없다. 동棟과 동 사이에 공간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마당이 아니다. 자연히 고향집을 떠올리게 된다. 안채와 사랑채, 헛간을 거느리고 있어 아담하다. 엄마의 치마폭처럼 아늑하고 푸근한 정경이다. 그 안온한 마당으로 달려가 어린애마냥 뜀박질이라도 하고 싶다.
시골 마당의 쓰임새는 다양했다. 중앙을 가로질러 빨랫줄이 쳐 있었다. 마당은 빨랫줄에 널린 옷가지가 걷힐 때까지 조금씩 형체를 바꿔가며 그림을 그리는 도화지였다. 그 그림은 가족의 수와 취향에 따라 달라졌다.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날이 드물었다. 사람살이의 자취가 고스란히 담기는 화폭이었다.
마당은 그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한가슴에 안고 있었다. 가슴을 한껏 펴 궂은 일, 좋은 일을 가리지 않고 품었다. 대개는 담담하게, 더러는 들떠서 두루 감싸 안았다.
이른 봄에는 두엄 말리는 건조장 노릇을 했다. 외양간에서 거둬낸 오물을 한쪽 구석에 모아 두었다가 나중엔 온 마당에 널어 말렸다. 따스하게 내리쬐는 봄 햇살에 잘 마른 두엄덩이들은 곰방메로 깨뜨렸다. 잘게 부서지면 가마니에 담아 소달구지에 싣고 논밭에 가 골고루 뿌렸다. 자연에서 얻어 쓰고 남은 찌꺼기를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작업장이기도 했다.
넓고 편편한 마당에는 늘 무엇인가를 널어 말렸다. 여름에는 빨간 고추가 널려 태양빛을 받아 빛났고, 가을에는 벼가 황금빛 햇살을 받으며 말랐고, 겨울에는 무가 흰 눈빛을 받아서 무말랭이가 되었다. 마당에 그렇게 저장해 두고 먹을 것만 말리지는 않았으리. 그 마당을 밟고 다니는 가족들의 크고 작은 발자국에 꿈을 묻어 놓기도 했으리라.
한여름 저녁이면 마당 가운데 살평상에 식구들이 둘러앉아 칼국수나 수제비를 먹는 날이 잦았다. 마당에 피워 놓은 모깃불의 매콤한 연기에 기침을 하거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처마 밑에 매달아 놓은 남포등 불빛 받으며 식구들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광경은 여름밤에만 맛볼 수 있는 오롯한 정취였다.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는 할머니의 구수한 옛이야기를 듣다가 북극성, 북두칠성, 견우직녀… 별자리를 찾기도 했다. 마당은 고급 레스토랑을 능가하는 식당이며 자연학습장이었다.
가을에는 타작마당이 되었다. 마당에 높다랗게 쌓아 놓은 볏가리, 탈곡하는 날이면 일꾼들은 온몸에 먼지와 검불을 뒤집어써도 가득가득 차는 벼 가마니에 고됨을 잊은 듯 만면에 넉넉한 웃음을 띠었다. 볏짚가리를 만드는 일은 식구들 차지. 온 가족이 동원되어 손발을 맞춰야 수월했다. 마당은 공동체의 사랑을 기르는 현장이기도 했다.
집안 대사를 치르던 곳도 마당이었다. 마당에 멍석 깔고 차일만 치면 결혼식장이 되고, 장례식장도 되고, 연회장도 되었다. 어릴 적 보았던 결혼식에서 사모관대 차림의 신랑과 원삼 족두리 차림의 신부가 혼례상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며 절하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삼삼하다.
뭐니 뭐니 해도 어린 시절 마당은 우리들의 안전한 놀이터였다. 숨바꼭질, 고무줄놀이, 팔방놀이, 공기놀이, 땅 뺏기, 제기차기 등 놀이도 다양했다.
도시화된 생활공간에는 마당은 없다. 두엄 대신 각종 화학 비료가 쓰이고, 탈곡은 논에서 트랙터가 다 해버리니 마당은 쓸 데가 없다. 또 혼례는 결혼식장에서, 상례는 장례식장에서, 연회는 음식점이나 호텔에서 도맡아 하고 있다. 변해 버린 세월이 마당의 역할을 송두리째 앗아 가버렸다.
내가 사립문 안에 들어서며 "엄마!"하고 부르면 얼른 나와 반겨 맞아주던 어머니. 어머니마저 떠나 버리고 없는 고향집 빈 마당이 이 겨울 아련한 꿈처럼 아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