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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지초등 34회 동창회(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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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게시판 스크랩 명옥헌 원림(鳴玉軒 苑林)
수운거사 추천 0 조회 20 11.08.23 17:2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오희도(吳希道)가 자연을 벗삼아 살다가 죽자 그의 네째 아들 오이정(吳以井 1619-1655)이 자연경관이 좋은 도장곡(道 藏谷)에 헌(軒)을 짓고 물소리가 구슬에 부딧혀 나는 소리와 같다고 하여 명옥헌(鳴玉軒)이라 이름지었다. 오이정은 스스로 호(號)를 장계(藏溪)라 한 바 장계정(藏溪 亭)이란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그 후 100여년이 지나 정자가 퇴락함에 따라 후손 오대경(吳大經)이 다시 중수하였다. 명옥헌(鳴玉軒)은 정자 앞뒤에 연못을 만들고 둘레에 적송(赤松) 및 베롱나무(자미나무) 등을 심어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었다. 명옥헌 원림(鳴玉軒 苑林)은 주변의 자연경관이 너무 아름답다. 연못 안에는 원형의 섬이있는데, 정방형 모양의 연못은 음을 상징하며 땅을 의미하였고 연못 속에는 양을 상징하며 하늘을 의미하는 둥근 섬을 만들어서 음양오행 사상에 의한 천원지방의 우주관을 반영하였다. 또한 연못 주위에 약20주의 베롱나무(자미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수령 은 100여년 정도이다. 정면 3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의 아담한 건물로 정자의 구성은 외부로 퇴간을 돌리고 그 중앙에 실(室)을 두었으며 방에는 구들을 깔았고 평천장이다. 마루의 외곽에는 평난간을 두었다.

 

인물탐구 - 오희도(吳希道 1584-1624)의 자(字)는 득원(得原), 호(號)는 명곡(明谷), 1602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3년(인조1) 알성문과(謁聖文科)에 합격하였다. 예문관(藝文館)의 관원으로 천거되었고 기주관(記注官)을 대신하여 어전에서 사실을 기록하는 검열(檢閱)에 제수되었으나 곧 사망하였다.

 

 

명옥헌으로 가는 길목

 

 

명옥헌 가는 길가의 왕버드나무

 

 천리포수목원 감사로 계시는 조규호 선생님이 국민일보에 연재한 "조규호의 식물이야기" - ‘도깨비나무’라는 별명의 나무가 있다. 납량특집 드라마가 한창인 한여름 밤이면 나무 주위에 희부윰한 도깨비불이 번쩍거리며 날아다니는 까닭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드라마 속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농촌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도깨비나무라는 별명을 가진 이 나무는 경기도 이남 지역에서 잘 자라는 버드나무 종류의 하나인 왕버들이다. 버드나무 종류의 나무들은 모두 물과 친한 성질이어서 대개는 개울이나 연못 가장자리에서 자란다. 그러다보니 나무줄기는 습기가 가득차 있게 마련이다. 마를 새 없는 나무줄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썩어들기 쉽다. 특히 비가 많이 내려 공기가 습한 여름이면 부식은 더 심해진다. 그러다보면 줄기 한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뚫리는 건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구멍이 바로 도깨비 소굴이다.하루살이를 비롯해 여름철 날벌레들이 우연찮게 이 구멍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구멍은 생각보다 깊어서 어두운 안쪽에 들어간 벌레들은 일쑤 되돌아나오는 길을 잃곤 한다. 하릴없이 어두운 구멍 안에서 시체가 되어 쌓이게 된다. 때로는 들쥐와 같은 설치류도 그 구멍 안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벌레나 설치류의 시체에는 스스로 빛을 발하는 인(燐) 성분이 있는데, 성냥의 원료로도 쓰이는 인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에 더 반짝거린다. 게다가 이 음울한 빛은 흐르는 바람을 따라 춤추듯 흔들리는데, 이 빛의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던 옛 사람들은 이를 도깨비불이라고 부른 것이다. 도깨비불이 살아 머무는 왕버들을 도깨비나무, 혹은 ‘도깨비버들’이라고 했다. 한자로도 ‘귀류(鬼柳)’라고 썼다.물과 친한 왕버들은 심지어 연못 한가운데에서도 잘 자란다. 영화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진 경북 청송의 주산지는 오랜 세월 연못 속에서 크게 자란 여러 그루의 왕버들을 볼 수 있다.흔히 버드나무를 이야기하면 가지가 땅으로 길게 늘어지는 능수버들이나 수양버들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버드나무 종류에는 버들피리를 만드는 데 쓰는 갯버들, 가지가 배배 꼬이며 솟아오르는 용버들을 비롯해 40여 종류가 있다.그 가운데 왕버들은 가지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오르며 사방으로 넓게 퍼져 그늘을 짓기 때문에 농촌에서 정자나무로도 많이 심어 키운다. 크고 굵은 줄기로 웅장하게 자라는 왕버들은 왕의 기품을 갖춘 우리의 대표 버드나무라 할 만하다.

 

 

 

우리나라의 옛 연못이 모두 원형이 아니고 네모 모양을 한 이유는 이 우주의 땅은 네모지다고 생각하였고 하늘은 둥글다고 여긴 선조들의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이곳 명옥정에도 네모 모양의 땅을 의미하는 연못을 만들고, 연못 속에는 하늘을 의미하는 둥근 섬을 만들어서 천원지방의 우주관을 표현하였다.

 

 

 

 

 

연못 주위에 약20주의 베롱나무(자미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수령은 100여년 정도되었고, 베롱나무의 수피(樹皮)는 강인한 운동선수의 근육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불퉁불퉁하다. 활짝 핀 목백일홍(紫微花)은 명옥헌의 풍광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베롱나무의 줄기는 미끈하다. 손톱으로 살살 긁어주면 나무 전체가 흔들리어 마치 간지럼타는 것 같다고 하여 간지럼나무라고 한다는데, 아직 확인해 보지 못했다. 베롱나무는 나무줄기의 매끄러움 때문에 여인의 나신(裸身)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옛날부터 대갓집 마당에는 심지 않았다. 또한 나신의 베롱나무를 어머니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어머니가 가진 모든 것을 오직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다 내어주고 빈 몸둥아리만 남은 어머니의 사랑을 베롱나무로 표현하였다. 그런 반면에 절과 선비들이 머무르는 곳에는 더 많은 베롱나무를 심었다. 그 이유는 베롱나무가 껍질을 다 벗어 버리듯 스님들은 번뇌의 얽매임에서 벗어나라는 뜻에서 절 마당에 주로 심었고, 선비들의 청렴을 강조하기 위해 정자나 향교, 서원 등에 많이 심었다.

 

 베롱나무에 얽힌 이야기 - 옛날 어느 어촌에 목이 세 개 달린 이무기가 나타나 매년 처녀 한명씩을 제물로 받아갔다. 그해에 한 장사가 나타나서 제물로 선정된 처녀 대신 그녀의 옷으로 갈아 입고 제단에 앉아 있다가 이무기가 나타나자 칼로 이무기의 목 두개를 베었다.

처녀는 기뻐하며 "저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사오니 죽을 때까지 당신을 모시겠습니다." 하자 " 아직은 이르오, 이무기의 남은 목 하나도 마저 베어야 하오. 내가 성공을 하면 흰 깃발을 달고 실패하면 붉은 깃발을 달 것이니 그리 아시오"하고 길을 떠났다.

처녀는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드렸다. 백일이 되던 날 바다 저멀리 배가 오는 것을 보니 붉은 깃발이 걸려 오는 것이였다. 그리하여 처녀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배가 닫기도 전에 그만 자결하고 말았다. 장사는 너무 힘이 들어 이무기가 죽을때 뿜은 피가 깃발에 묻은 줄을 몰랐던 것이다. 그 후 처녀의 무덤에서는 붉은 꽃이 피어났는데 그 꽃이 백일 간 기도를 드린 정성의 꽃, 그것이 백일홍이다.

 

잎이 나올 때는 꽃이 피지 않고, 잎이 말라 버리고 난 뒤에 8월에 꽃이 핀다. 잎과 꽃은 만나지 못하고 서로 그리워하며 생각한다는 뜻에서 '상사화(相思花)라고 한다.

 

 

우암 송시열(宋時烈 ; 1607~1689)이 쓴 '鳴玉軒 癸丑(명옥헌 계축)'이라고 적힌 현판의 글씨는 1673년(현종 14년)에 바위에 적은 글씨를 옮겨 만든 것이라고 한다.그리고 물소리가 구슬에 부딧혀 나는 소리와 같다고 하여 명옥헌(鳴玉軒)이라 이름지었다고한다. 또한 건물 안쪽에는 '三顧(삼고)'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는데, 후한 말엽에 유비(劉備)가 제갈공명(諸葛孔明)을 세 번이나 찾아가 군사(軍師)로 초빙(招聘)한 데서 유래(由來)한 삼고초려(三顧草廬)에서 온 말로, 임금의 특별(特別)한 신임(信任)과 우대를 받는 다는 뜻이다.

 

 

 

정면 3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의 아담한 건물로, 정자의 구성은 외부로 퇴간을 돌리고 그 중앙에 실(室)을 두었고, 툇마루의 외곽에는 평난간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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