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6. 16
조금 아쉬웠지만 행복했다. 16일 새벽 폴란드 우치에서 열린 U-20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결승전에서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1대 3으로 패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비록 분패했지만 그동안 최선을 다해 최고의 경기력을 펼친 20살 이하의 젊은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국민들의 응원도 대단했다. 이날 새벽 KBS 2TV, MBC TV, SBS TV 지상파 3사에서 동시 생중계한 이 경기의 실시간 시청률합은 42.49%에 달했다.
지상파 3사의 중계방송은 FIFA에서 제공하는 같은 화면에 해설 목소리만 다른 중계여서 매우 불편했다. 지상파 3사는 이번 U-20 축구경기뿐 아니라 올림픽, 아시안게임, 월드컵 경기 중계에서도 늘 그래왔다. 국가간 대항의 스포츠 경기는 국민통합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모든 국민들이 동일한 프로그램을 봐야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오히려 지상파 3사의 동시 생중계로 인해 국민들은 프로그램 선택권을 빼앗긴 셈이다.
스포츠게임의 동시 생중계 관행은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의아해하는 한국적 현상 중 하나다. 가령, 미국에서는 지난 2000년 이후 모든 올림픽게임의 TV중계권을 NBC가 확보, '미국 유일의 올림픽네트워크'(America's Olympic Network)로 자리잡았다. 경쟁사인 CBS와 ABC 등은 올림픽 경기중계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자국 선수들의 경기결과와 메달순위 소개 등에 그치고 있다. 올림픽 기간 동안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방송되면서 국민들의 쏠림현상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동시 생중계 관행은 오는 2026년 올림픽 경기부터 사라질 전망이다. 왜냐하면 종합편성채널(종편) JTBC가 최근 2026년부터 2032년까지 개최되는 동·하계 올림픽의 국내 중계권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JTBC는 2028년 로스앤젤레스 하계올림픽과 2026년 동계올림픽, 2030년 동계올림픽, 2032년 하계올림픽을 비롯해 이 기간에 열리는 유스올림픽 대회에 대한 TV 및 인터넷, 소셜 플랫폼을 이용한 중계권을 획득했다고 최근 밝혔다.
KBS와 MBC, SBS의 지상파 3사는 JTBC의 올림픽 중계권 계약은 '보편적 시청권'(Right of Universal Access) 도입 취지에 어긋나며 국부유출이라고 지적한다. 방송법 76조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월드컵, 야구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와 같은 국민관심행사를 보다 많은 국민들이 보편적으로 시청하고 정보에 접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상파 3사는 JTBC가 유료 플랫폼을 통해 방송하는 종편 사업자라는 점을 이유로 지상파 안테나로 시청하는 가구들의 보편적 시청권이 침해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JTBC가 지상파 3사의 컨소시엄인 '코리아풀'에 공동입찰제의를 거절하고 단독입찰하는 과정에서 중계권을 비싸게 구입해 국부가 유출됐다는 지적도 한다.
사실 시장자본주의 국가에서 자유경쟁을 통해 올림픽 중개권을 확보한 JTBC를 탓할 수도 없다. 오히려 보편적 시청권을 규정해놓고도 지상파 사업자와 유료방송 사업자가 스포츠 중계권 획득을 위해 경쟁하도록 방치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책임이 크다. 지난 2016년 기준으로 국내 가구 중 95.6%가 유료방송을 통해 TV를 시청하고 있다. 즉, JTBC가 올림픽을 단독중계하면 4.4%의 가구는 올림픽 게임을 보지 못하게 된다. 지난 2017년 국내 총가구수가 2016만8000가구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약 88만 7000가구 이상이 배제된다. 적지 않은 수치다. 가구 중 1%라도 가난하다고, 도서벽지에 거주한다고 올림픽게임 시청권이 거부되어서는 안된다. 그렇기에 방송통신위원회와 JTBC는 보편적 시청권의 보장을 위한 추가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JTBC의 올림픽 중계권 확보는 '코리아풀'의 동시 생중계 관행을 없애면서 한국 사회가 보다 다원화된 사회로 나아가는 데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올림픽을 중계해온 KBS와 MBC, SBS의 경험이 사장(死藏)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들 방송국들은 1988년 서울올림픽과 지난해 2월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개최국 주관방송사로서 참여했다. 오는 2032년 서울·평양 올림픽 유치에 나선 상황에서 유료방송채널인 JTBC가 기존 주관방송사의 경험과 노하우를 어떻게 이어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체계적인 고민 역시 필요하다.
홍성철 /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디지털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