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01.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에 대한 논란은 중요한 생각거리를 던졌다. 심각하다면 할 수 있는 많은 문제가 거론됐지만, 현재 우리가 직면한 거대한 도전 앞에서 교육의 수장(首長)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후보자가 그것에 대해 어떤 식견과 비전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검증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찬반 양측의 인식 수준은 '쓰나미'로 비견되는 기술 변화의 영향과 그것을 증폭시키는 글로벌 경쟁에 대해 그 본질을 파악하고 대응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는 국민의 기대 수준에 턱없이 모자랐다.
이러한 기대는 우리의 과거에 비추었을 때 더 절박해진다. 인적 자원의 우수성은 그간 한국 경제 발전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요인으로 꼽혀왔다. 세계은행과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는 경제 발전 전략과 보조를 맞춰 인적 자원을 고도화시키고 이를 다시 산업 구조 고도화의 동력으로 삼은 우리나라를 개발도상국들이 배워야 할 최고의 모범 사례로 꼽고 있다.
문맹률이 80%에 이르던 1950년대 초등교육을 보편화하고, 마을마다 교사를 보내 문자 해득과 수리 교육을 시행함으로써 불과 몇 년 만에 대다수 국민이 기본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은 1960년대 산업화를 가능하게 했다. 뒤따른 경제 발전 과정 역시 교육 투자 확대와 긴밀하게 맞물렸다. 배움이 있는 국민은 경제 발전의 토양인 동시에 부가가치가 높은 신생 산업에 취업함으로써 성장의 과실을 개인이 거둬들일 수 있는 지분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중간층이 두텁게 형성된 것에는 무엇보다 교육과 경제성장의 선순환이 기여했다.
많은 개발도상국이 이를 따라 배우려 했지만 재현해내지 못했다. 자녀를 가르쳐 나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하겠다는 부모의 열망, 배움에 대한 개인들의 갈증, 이를 경제성장과 조화시키기 위해 대외 상황과 미래 경쟁력을 끊임없이 살피며 인적 자원 전략을 조정해낸 정부 등은 알아도 따라 하기 어려운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성공 신화의 빛은 거의 꺼졌다. 주입식으로 지식을 전수하는 소위 '프러시안 방식'의 교육이 다수 국민을 일정 수준까지 신속히 끌어올리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경이로운 속도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창의성과 소통능력이 중시되는 흐름과는 더 이상 맞지 않기 때문이다. 알파고 앞에서 국민이 느낀 것은 우리의 현재를 쌓아올린 전제들이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애써 외우는 지식은 곧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질 것이고, 학원에서 배운 대로 수학 문제를 기계적으로 풀고 있는 아이들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것은 바로 어른들 스스로의 안일함이라는 집단적 예감이기도 했다.
더구나 일찍부터 다양한 시도를 해온 선진국들과 달리 우리 교육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경직적이고 강력한 관료적 지배 속에 머무른 결과 이제는 거의 질식 상태다. 사람밖에 자원이 없다는 일념으로 사람에 투자해 성장을 일군 나라인 만큼 교육의 실패는 더 뼈아프다. 과거 한때를 풍미했을지언정 지금은 어느 선진국보다도 수요자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교육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이는 찾기 어렵다.
그래서 인적 자원 전략에 대한 정부의 리더십이 절실한 것이다. 산업이나 복지에 대한 각국의 정부 역할이 부침(浮沈)을 겪는 와중에도 인적 자원 전략에 관한 한 정부의 비전은 항상 핵심에 자리해왔다. 급격한 환경 변화의 판도를 읽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방향을 제시하며 국민을 준비시키는 것은 여느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미래 준비에 대한 정부의 우선순위는 너무도 낮아 보인다. 어느 나라나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한 인적 자원 전략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두 기둥은 학교 교육과 직업훈련이다. 학교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현재까지 기술 진보 및 교육 개혁에 대한 어떤 식견도 내보이지 못했을 뿐 아니라 1년 남짓 남은 총선의 출마에 대해 즉답을 피함으로써 스스로 이 직(職)을 얼마나 가벼이 여기는지를 보여주었다.
기술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직업훈련 내용을 설계해 성인 역량 개발을 주도하는 기관은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기술교육대학과 폴리텍대학이다. 이 기관들의 이사장은 현재 전(前) 한노총위원장과 전 민노총위원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관 후보자의 과속 딱지 수를 세고 입시관만 점검하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금번 논란이 우리 사회가 당면한 도전의 무게를 마주하고 미래를 정직하게 논하기 시작하는 계기만이라도 됐으면 좋겠다.
윤희숙 /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