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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의 제 목
※주제: 1.레지오단원의 의무 2.성모님께 대한 레지오 단원의 의무 3.레지오단원의 봉사 4.단원의무를 통한 봉사
2009 . 5. 9. 강사명 : 강 광 섭 분도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 애덕의 모후 레지아 이메일 :guri1977@ naver.com |
강의 제목 |
레지오단원의 의무와 봉사 |
대상 |
전단원 |
강사명 |
강광섭분도 | |
목표 |
레지오 단원의 내적 자질향상을 통한 신심 | |||||
준 비 물 |
(강 사)교육계획안 및 강의자료 | |||||
(피교육자) 교본 및 필기도구 | ||||||
과정 |
시 간 |
강 사 학 습 활 동 |
기 타 참 고 자 료 | |||
<강 사> | ||||||
레지오 단원의 의무 1) 성모 신심을 묵상, 실천하고 앙양해야 할 의무(교본 46-49쪽) 성모 신심이란 '하느님의 구원 경륜에 있어서 탁월한 지위와 역할과 성덕을 지닌 구세주의 어머니, 인류의 어머니인 성모님께 자녀다운 애정과 각별한 공경을 드림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께 가까이 가려는 인간의 자세' 라고 하겠다 가톨릭 교회는 성모님과 관련된 대축일과 축일, 기념일과 성월을 통해 성모께 대한 신심을 권장, 앙양하고 있다. 그것들을 여기에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1윌 1일)로써 새해를 시작한다. 다음으로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2월 11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5월 31일),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축일(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 토요일), 가르멜 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7월 16일), 성모 대성전 봉헌 기념일(8월 5일), 성모 승천 대축일(8월 15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8월 22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9월 8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9월 15일),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10월 7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11월21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12월 8일) 등이다. 주님 봉헌 축일(2월 2일), 예수 성탄 대축일(12월 25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 가정 축일(예수 성탄 다음 주일)도 성모 신심과 관련이 있다. 특히 5월 '성모 성월'과 10월 '묵주기도 성월' 그리고 매월 '첫토요일 성모 신심'을 통해 교회에서는 성모께 대한 각별한 신심을 장려하고 있다. 우리나라 신자들은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을 수호자로 모시고 있어서인지 성모 신심이 강하다. 특히 레지오 마리애는 두드러진 성모 신심을 보여 주고 있다. 왜냐하면 "레지오 마리애는 성모님께 드리는 신심과 성모님을 닮으려는 노력으로부터 그 생명력을 얻고 있기"(교본 494쪽) 때문이다. 그래서 레지오 단원은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진지하게 묵상하고 실천함으로써 성모 신심을 드높여야 할 엄숙한 의무가 있다. 이 의무는 본질적인 것이며, 단원이 지켜야 할 모든 의무 가운데 가장 앞서는 것이다.
성모님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차지하시는 데 필수적인 도구이므로 성모 신심이 없는 레지오 단원은 성모님을 이 세상에 모셔 오는 레지오의 목표에서 동떨어져 있게 된다. 그러나 굳건한 성모 신심으로 성모님과 일치하게 되면 놀라운 개인 성화의 은총을 얻게 되며 다른 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게 된다. 모든 신심 행위나 활동 중에 성모님께서 자신의 영혼 안에 항상 활동하고 계신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며, 오로지 성모님께 의탁하고 신뢰하는 레지오 단원은 성모님의 모습과 생각으로 가득 채워져 "몸이 공기를 마시듯 내 영혼은 성모님을 마신다."(참된 신심, 217항)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두 영혼은 하나가 된다. 이렇게 성모님의 영혼 속에 깊이 깃든 레지오 단원은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게 된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님을 통해 이루어진 구원 사업의 신비를 묵상하도록 힘써야 하며 미사, 영성체, 묵주기도 등의 신심 행위를 할 때에도 성모님과 일치하고 있는지를 살핌으로써 성모 신심을 드높여야 한다. 2) 성모님의 겸손을 본받아야 할 의무(교본 49-55쪽) 겸손이란 자신의 처지를 알아 스스로 높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면서 남을 존중하고 모든 것이 하느님 덕분이라고 여기는 자세이다. 곧 하느님 앞에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며 자신만으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임을 솔직히 받아들이는 자세이다. 레지오 조직에서는 겸손이 독특한 역할을 한다. 단원들은 대인 접촉 활동을 할 때 겸손한 마음으로 활동 대상자들에게 부드럽고 소박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겸손이야말로 효과 있는 활동의 요람이며 도구이기 때문이다. 교만은 악의 뿌리이다. 천사도 교만 때문에 악마가 되었던 것이다. 레지오 단원에게 악마가 접근하는 방법은 먼저 단원의 귀부터 즐겁게 만든다. 곧 사도직 활동을 할 때 찬사와 칭찬을 받게 한다. 그리고 칭찬과 찬사에 집착하도록 단원을 유인해서 서서히 교만해지도록 한다. 일단 단원이 교만하게 되면 악마는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자신을 스스로 높이면 떨어지고 낮추면 안전하다. 언젠가 미국에서 지진 피해를 입은 신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귀중한 골동품을 남들에게 잘 보이게 하려고 진열장 위에 두고 신통치 않은 물건은 진열장 맨 아래에 두었단다. 지진이 나자 위에 있던 골동품은 모조리 떨어져 박살이 났으나 맨 아래 있던 물건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겸손은 모든 덕의 바탕이다. 주님의 강생도 겸손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시면서도 자신을 낮추어 인간이 되셨다.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과 같은 존재가 되려는 교만 때문에 낙원에서 쫓겨났지만 예수님과 성모님은 겸손 때문에 새 아담, 새 하와가 되어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셨다. 성자께서 하필이면 왜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겠는가? 그것은 바로 주님의 뜻이라면 무엇이나 받아들이는 마리아의 믿음과 겸손 때문이었다. "주님의 종이오니"라고 대답한 마리아의 겸손으로써 강생이 이루어졌고 "이제로부터 과연 만세가 나를 복되다 일컬으리니"라는 마니피캇의 예언도 실현되었다. 몽포르의 성인이 말한 대로 "성모 마리아는 지극한 겸손으로 항상 세상 사람들 몰래 숨어 살기를 원하셨고 오직 하느님만 자기를 알아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셨다"(참된 신심, 2항).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은 활동을 할 때 겸손의 표본인 성모님을 닮아야 한다. 레지오 사도직은 성모님을 통하여 움직인다. 성모님이 지닌 겸손의 덕을 갖추지 않고서는 성모님을 닮았다고 할 수 없다. 겸손은 모든 레지오 활동에서 성모님과 일치를 이루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활동이 뿌리라면 그 뿌리가 내린 흙이 겸손이다. 흙은 뿌리를 부드럽게 감싸 주면서 생명을 성장시킨다. 겸손하지 못한 레지오 단원은 흙에서 뽑혀진 뿌리처럼 그가 하는 사도직 활동도 시들어 말라 버릴 것이다. 겸손한 단원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교만과 이기심을 물리치는 싸움을 치러야 한다. 늘 '내 탓'으로 돌리고 자기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 중심으로 삶의 초점을 맞출 때 사도직 활동이 성공할 것이다. 다행히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고 겸손되이 봉사하는 단원들이 많다. 그들은 성모님을 본받아 자신이 하느님께 종속되어 있음을 알고 보잘것없는 일도 기꺼이 떠맡으며 남의 멸시와 박해도 견디면서 주님의 뜻을 따르고 있다. 이처럼 레지오 단원들은 활동의 뿌리이며 수단인 성모님의 겸손을 반드시 본받아야 한다. 3) 참된 성모 신심으로 사도직을 수행해야 할 의무(교본 55-59쪽) 성모님의 소원은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을 믿게 하고 쉬고 있는 신자들을 회두시켜 온 인류가 구원받는 것이다. 성모 신심을 실천하는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님의 그러한 소원을 들어드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도직을 수행해야 한다. 성모님은 사도직을 수행하는 사도들의 모후이다. 성모님의 생애는 구세주와 온 인류의 어머니로서 구원 사업을 위한 사도직의 생애였다. 그래서 사도직 활동과 성모 신심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레지오 회합에서 사도직 활동 배당과 활동 보고를 하는 것도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 사도직 활동 의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성모님은 주님 탄생 예고의 순간부터 구세주의 어머니와 인류의 어머니 역할을 하기 시작하셨다. 이 역할은 나자렛에서 시작되었지만 차츰 온 세계로 확대되어 지금도 성모님의 모성적 역할은 계속되고 있다. 레지오의 사도직 활동은 이러한 성모님의 역할에 동참하는 것이다.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은 성모님과 일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성모님과 일치하려면 성모님의 고귀한 성품과 사명의 온갖 측면을 생활 속에 재현하고 그분의 모성적 역할에 참여해야 한다. 영혼들에 대한 어머니 구실은 성모님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된 성모 신심은 영혼들에 대한 봉사와 사도직의 의무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어머니 역할이 없는 성모님이 있을 수 없듯이 사도직 활동이 없는 레지오 단원은 있을 수 없다. 레지오는 마리아와 사도직이라는 두 원리가 아니라 마리아라는 단일 원리를 바탕으로 세워졌다. 왜냐하면 마리아라는 원리가 사도직과 신자 생활 전부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레지오 단원이 사도로서 헌신하려면 말로 봉사할 것이 아니라 사도직 활동으로 봉사해야 한다. 봉사하는 사도직은 수동적으로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어느 신경 정신과 의사에게 우울증 환자가 찾아왔다. 의사는 그 환자의 환경을 알아보았지만 별로 나쁘지 않았다. 병의 원인은 환자 자신에게 있었다. 의사는 처방전을 주면서 지금부터 보름간 매일 남을 어떻게 기쁘게 해 줄 수 있는지, 남에게 봉사할 만한 일은 없는지 힘써 찾아서 기꺼이 봉사하라고 하였다. 병의 치유를 위해 처방전에 적힌 약을 복용하는 것보다 봉사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그 환자는 의사의 지시대로 남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힘써 찾아 실천하다 보니 어느새 우울증이 치료되었단다. 그 환자는 사랑을 하지 못해 우울증에 걸렸던 것이다. 이처럼 봉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봉사할 수 있는 기회와 능력도 생기고 정신 건강도 좋아진다. 레지오 단원이 사도가 되는 단 하나의 효과적인 방법은 봉사 능력을 발휘하여 사도직 활동에 착수하는 것이다. 일단 사도직 활동을 시작하면 성모님의 어머니 역할을 도와 드리게 된다. 성모님은 어머니로서 임무를 수행하는 데 우리가 도와주기를 바라신다. 그러므로 단원들은 참된 성모 신심으로써 사도직을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명심하고 성모님께서 마음껏 활용하실 수 있는 사도가 되어야 한다. 4) 온 힘을 다해 성모님께 봉사해야 할 의무(교본 59-63쪽)
레지오 단원들 중에는 바쁘고 귀찮아서, 또는 성모님께서 나 대신 일을 다 해 주신다는 구실로 일주일에 2시간 이상의 사도직 활동을 게을리 하고 레지오 확장 사업도 소홀히 하며 봉사 활동을 기도로써 대신하려고 함으로써 성모님께 전력(全力) 봉사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면서도 회합 후 이른바 친교를 위한 2차 주회에는 시간을 아끼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입단 후 처음에는 성모님께 대한 봉사에 열의를 보이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결심이 흔들려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다들 적당히 대충대충 하는데 나 혼자 애쓸 필요가 있느냐'는 유혹을 받는다. 레지오 단원들은 사도직 활동을 할 때 성모님께 의탁하고 의지해야 한다. 그러나 성모님께 의탁한다는 구실로 성모님께 대한 봉사를 게을리 하거나 소홀히 할 수 없다. 오히려 온 힘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언젠가 독일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어떤 이가 폭우가 쏟아진 다음날 친구와 함께 사냥하러 갔는데 그 친구가 발을 헛디뎌 그만 거센 강물에 휩쓸려 버렸다.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는 친구를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그 친구에게 사냥총을 겨누어 쏘기 시작했다. 기겁을 한 그 친구는 필사적으로 헤엄쳐 가까스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그 친구가 복수하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달랬단다. '이 친구야, 너를 살리려고 물살이 거센 강물에 나마저 빠지게 되면 둘 다 죽는거야. 오직 너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네 힘으로 헤엄쳐 나오는 것 밖에 없었어. 내가 총을 쏘았기 때문에 죽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헤엄쳐 살아난 것이니 오해하지 말고 화를 풀게나.'"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님께 봉사할 때는 온 힘을 다해야 한다.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님의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성모님과 공동 노력을 하는 협력자이다. 단원들은 세심한 방법과 인내심으로 다듬어진 모든 지능과 능력을 성모님과의 협동 사업에 쏟아야 한다. 성모님 편에서는 단원이 바치지 않은 것을 보충하지는 않으신다. 어떤 단원들은 레지오와 관련된 일에 온 힘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기도로써 성모님께 의지하니까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변명한다. 이러한 변명은 단원의 노력이 성모님 앞에서 별로 큰 의미가 없다고 결론을 내릴 위험이 있다. 단원 스스로 할 수 있는 노력과 방법을 성모님께서는 결코 면제해 주시지 않는다. 단원들은 모든 일이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처럼 여기며 활동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활동의 쉽고 어려움을 스스로 가늠하여 어느 정도의 노력을 기울일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왜냐하면 영신적인 일에 타산적인 정신이 스며들면 은총을 잃게 되어 결국 실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성모님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모자라는 점을 성모님께서 채워 주실 것이고 성모님의 전폭적인 협력을 얻어 낼 수 있다. 성모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마르 12,30)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빌려 당신에게 온 힘을 다해 봉사할 것을 호소하신다. 따라서 어떠한 경우에도 성모님께 전적으로 의탁한다는 구실로 노력을 게을리 하거나 조직에 결함이 생기도록 해서는 안 된다.
5)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의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을 실천해야 할 의무(교본 63-69쪽)
레지오에서 성모 신심의 출발점은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가 지은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이다. 이 책은 '레지오 마리애 영성의 원천'이다.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실천하는 레지오 단원들은 이 책에서 성인이 가르쳐 준 성모 신심의 내용을 완전히 터득하고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 이 신심의 목적은 성모님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완전히 예수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성모님께 자신을 완전히 봉헌하는 것이다. 성모님은 예수님께로 가는 가장 쉽고 안전하고 확실하고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모님께 봉헌해야 할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우리의 몸을, 감각 기능까지 포함하여 온전한 전체로서 바친다. (2) 우리의 영혼과 영혼의 모든 기능까지 합하여 바친다. (3) 현재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물질을 바친다. (4) 우리의 내면적이며 정신적인 재산, 곧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공로와 덕행과 선행을 바친다. 한마디로 자신의 소유물은 아무것도 없는 노예와 같은 상태가 되어 전적으로 성모님께 의탁하고 성모님께서 쓰시도록 자신을 철저히 내맡기는 것이다. 이 봉헌은 합당한 준비를 갖춘 후 특별한 날을 택하는 것이 좋다. 레지오에서는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인 3월 25일을 전후하여 봉헌식을 거행한다. 봉헌식에서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봉헌 기도문이다. "저의 모후, 저의 어머니시여, 저는 오직 당신의 것이오며, 제가 가진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옵니다." 언젠가 미국의 한인 레지오 단원들을 인솔하여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레지오 세계 본부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콘칠리움의 단장이 우리에게 가장 먼저 권장한 것은 바로 성모님께의 봉헌식이었다. 그것은 단원들이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의 핵심을 터득하고 습관화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우리는 대형 레지오 단기를 손에 쥐고 봉헌 기도문을 바쳤던 것이다.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은 예절 갖춘 봉헌식에서부터 시작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봉헌 후에 어떠한 삶을 사느냐 곧 봉헌의 생활화이다. '참된 신심'은 하나의 행위가 아니라 생활 안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태로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자께서 나자렛에서 몸소 보여 주신 모범을 본받아 습관적으로 항상 성모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봉헌의 핵심이다. 성모님께서 우리의 삶 전체를 차지하지 않고 일부분만 차지한다면 그 봉헌은 한낱 스쳐 가는 기도의 가치를 지닐 뿐이다. 이 신심을 실천하는 이들에게는 많은 은총이 약속되어 있다. 예수님과 성모님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조건 없이 기꺼이 바치는 이들에게 풍성한 은총으로 보답해 주신다. 그런데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했다고 해서 평소에 바치는 기도나 생활 방식을 바꿀 필요는 없다. 평소의 생활은 그대로 하고 각자의 지향과 모든 특별한 목적을 위한 기도도 그대로 계속하며 다만 이제부터는 성모님께서 즐겨 받으시도록 마음을 향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성모님께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일상 생활에서 드러나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저의 모후, 저의 어머니시여, 저는 오직 당신의 것이오며, 제가 가진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옵니다."라는 봉헌 기도문을 하루에 한 번씩 화살 기도로 바치는 것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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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행동 단원들이 지켜야 할 기본 의무 사항(basic duties)외에 용기를 지닐 의무, 봉쇄 피정을 해야 할 의무, 성체 신심을 가져야 할 의무, 내적 생활을 해야 할 의무, 크리스찬 소명을 실천해야 할 의무 등이 있다.
1. 주회에 규칙적으로 정각에 출석해야 할 의무 (교본288쪽)
쁘레시디움 주회 출석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상훈과 레지오의 기본 요소(교본11장 )에 잘 드러나 있다. 주회 출석은 단원의 으뜸가는 첫째 의무이다. 이 의무는 건강이나 기후 관게로 혹은 공휴일이거나 바쁜 일이 있을 경우 지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교본 본문의 말대로 "어려운 경우가 아니면 어디 시련이 있겠으며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어디 참된 공로가 있겠는가?" 단원들은 주회에 참석하되 규칙적으로 정각에 출석해야 할 의무가 있다. 아프리카에 레지오 사절로 파견된 에델 퀸은 비가 억수처럼 퍼부어 도저히 자동차로 강 같은 길을 건너갈 수 없었음에도 주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기어코 건너가 주회에 정각에 참석한 모범 사례를 보여 주었다. 그녀는 주회에 규칙적으로 정각에 출석하도록 독려하는 사제들을 특히 존경하였다. 주변환경의 어려움과 유혹을 극복하는 참된 공로를 쌓는것이다. 지각 단원이나 조퇴 단원은 로사리오 기도를 제외한 레지오의 기도문을 개별적으로 바쳐야 한다. 그러한 단원들은 더욱 더 회합에 대한 존경심을 지녀야 한다. 교본 본문에 의하면 활동보다도 회합 출석이 우선적이고 더 중요한 의무이다. 회합과 활동의 관계는 뿌리와 꽃의 관계와 간다. 꽃은 뿌리없이 살지 못한다. 회합 참석은 전체 활동의 한 요소가 되므로 회합 참석을 위해 소요된 신간은 결코 낭비된 시간이 아니다.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려고 긴 여행을 하신 것은 시간의 낭비가 아니었다. 주회에 규칙적으로 정각에 출석하는 행위는 깊은 초자연적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주회합-뿌리 활동-꽃)
2. 주간 활동 이행의 의무 (교본 289쪽)
주회 출석 다음으로 단원의 중요한 의무는 활동 의무이다. 행동 단원은 1주일에 최소한 두 시간 이상을 활동해야 할 의무가 있다. 주간 활동은 영웅적이고 실질적이며 적극적이어야 한다. 레지오 활동은 반드시 쁘레시디움 주회에서 배당한 활동이어야 한다. 단원 각자의 기호에 따라 임의로 선택한 활동이어서는 안된다. 활동은 형태를 달리한 기도이긴 하지만 기도 자체가 활동이 될 수는 없다. 프랭크 더프의 말대로 기도로써 활동을 대신할 수 없다(cf. F. Duff, Victory through Mary, p.34). 교본 본문은 이에 대해 "기도나 다른 신심 행위는 아무리 많이 할지라도 활동 의무를 채우지 못하며 그 일부로 칠 수도 없다"고 하였다. 다만 특별 지시가 있거나 외출이 어려운 노인 단원의 경우에 기도 보고를 할 수 있지만 사업 보고서에는 기재하지 않는다. 기도에 관한 규칙이 활동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활동은 기도처럼 초자연적인 기틀이 없으면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레지오 단원은 어려운 활동을 높이 평가하고 그러한 활동을 통해 초자연적인 수련을 쌓아야 한다. 레지오 단원은 영적 군인이므로 활동 의무를 이행할 때 군인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특히 자기 희생, 강인함, 충성심 등 군인의 훌륭한 특성을 활동에 반영해야 한다. 레지오 활동은 마리아와 일치하여 이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활동 대상자들 안에 마리아에 대한 이해와 참된 사랑을 불어넣는 것을 본질적인 활동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영혼들로 하여금 마리아께 대한 어떤 형태의 봉사를 시작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레지오 단원들은 마리아께 대한 이해와 신심이 영혼의 건강과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알아야 한다.
3. 회합에서 구두로 활동 보고할 의무 (교본291쪽)
단원들은 회합에서 1주일 동안 활동한 내용을 구두로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교본에 의하면 "단원들은 회합에서 자리에 앉은 상태로 보고를 해야 하며 수첩에 적어 놓은 것을 보아도 좋으나 구두로 보고를 해야 한다"(110쪽 교본 299쪽). 예수께서도 사도들로부터 구두로 활동 보고를 받으셨다(루가 10, 17 참조). 단원들의 구두 활동보고는 중요한 의무이며 레지오의 활동에 대하 흥미를 지속키는 데 도움을 주는 주요 실천 사항 중의 하나이다. 구두 보고를 하도록 하는 것은 활동에 대한 흥미 지속뿐 아니라 회합에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도 그 목적이 있다. 보고 준비와 보고 방법을 통해 단원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다. 하나 하나의 보고는 회합이라는 건물의 벽돌이다. 보고가 잘 되어야 할 회합이 온전하게 된다. 보고가 없다든지 보잘것없는 보고라면 회합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프랭크 더프의 말에 의하면 레지오는 쁘레시디움 회합의 기초 위에 서 있으며 쁘레시디움 회합은 활동 보고의 기초 위에 서 있다. 활동보고는 단원들의 활동을 영성화 시키는 동시에 소극적인 성격을 중화시키는 기능이 있다. 단원을 훈련시키는 중요 방법 중의 하나는 보고를 통해 활동방법을 배우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자신의 보고에 대해 경험 있는 단원들의 의견을 듣고 배우는 것이다. 따라서 불충분한 보고는 자신에게나 동료 단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 흔히 단원들의 활동보고 내용을 점검해 보면 훌륭한 보고도 있지만 보잘 것 없는 보고가 더 많다. 그러기에 활기도 없고 흥미나 관심도 결여되어 있으며 상투적인 보고를 하게 된다. 그런 보고는 오히려 쁘레시디움에 손실을 입힌다. 단원들은 예수님과 성모님이 말씀하실 때 열성을 다하셨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cf. F. Duff, Victory through Mary, pp.228-233). 활동 보고거리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회합에 참석하거나 불참하는 레지오 단원들도 있다고 한다. 활동 보고거리가 결코 회합 참석의 방편이 될 수 없다. 자신이 칭찬 받을 목적으로 활동보고를 한다면 올바른 활동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올바른 동기에서 우러나온 활동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과장된 허위 보고를 할 우려조차 있다. 활동 보고에 있어서 좀더 자세한 사항과 그 방법에 대해서는 " 쁘레시디움 회합의 순서"(18장 9항, )를 참조할 것이다.
4. 비밀을 엄격히 지켜야 할 의무 (교본292쪽)
이 의무에 대해서는 이미 "비밀 엄수가 극히 중요하다"(19장 20항, )에서 상세히 설명한 바 있으므로 해설에 중복을 피하고자 한다. 매월 첫 주회에서 단장이 단원들에게 들려주는 상훈에도 비밀엄수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레지오 조직에서 비밀 엄수가 막중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일깨워 주고 있다. 교본 본문의 말대로 "레지오 단원은 회합에서 들었거나 활동 중에 알게 된 사실에 대해 엄격히 비밀을 지켜야 한다. 그러한 사실은 레지오 단원이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사실을 누설하는 단원은 레지오에 대해여 용서받기 어려운 배신행위를 하는 것이다. 물론 활동보고는 쁘레시디움 회합에서 해야 하지만 여기에서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단원들이 회합에서 보고하는 것은 가족이 그 집안의 비밀스런 사항에 대해 논의하는거소가 같은 것으로 여겨야 한다. 그런데 대외비에 해당되는 사항이나 남에게 알려지면 곤란한 사항에 대해서는 반드시 비밀을 지켜야 하지만 이미 알려진 사실이나 남에게 널리 알려도 좋은 공지 사하은 비밀 엄수에 해당되지 않는다. 여기에도 분별력이 요구된다. 레지오는 비밀스런 단체나 요란스런 단체가 아니다. 레지오는 말썽의 소지가 없는 단체여야 한다. 단장은 회합에서 비밀 사항에 대해 단원들에게 비밀 엄수를 상기시키고 특히 새단원에게도 당부를 해야 한다.
5. 수첩을 지녀야 할 의무 (교본292쪽)
레지오 수첩은 뗏세라처럼 레지오 단원의 신분증과 같다. 행동 단원은 활동 대상자의 인적 사항, 활동 배당 및 실천 등 레지오와 관련된 제반 사항을 기록하여 활용할 수첩(notebook)을 소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 수첩 사용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활동 사항을 사무적으로 처리한다. 2) 완결된 일이나 아직 마치지 못한 배당 받은 활동을 잊지 않는다. 3) 회합에서 정확한 활동 보고를 한다. 4) 일을 정리하는 습관을 붙인다. 5) 실패와 성공에 대한 평가로써 교훈을 삼는다.
따라서 행동 단원은 활동을 수행할 때와 회합에서 활동 보고를 할 때 수첩을 활용해야 한다. 교본 본문에 의하면 수첩을 사용할 때 활동 대상자가 보는 자리에서 기록해서는 안되며 비밀 유지를 위해 가능하면 부호를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 그리고 수첩을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보관해야 한다.
6. 까떼나 레지오니스를 매일 바쳐야 할 의무 (교본293쪽)
행동단원은 레지오의 까떼나를 매일 바쳐야 한다. 까떼나 레지오니스(Catena Legionis)는 레지오의 사슬(Legion's chain)이란 뜻으러서 일반적으로 그냥 까떼나라고 부른다. 까떼나에 대해서는 이미 레지오의 기도문에서 설명한 바 있다(22장 2항 ). 까떼나의 후렴(아가 6, 10 참조), 성모의 천주찬가(루가 1, 46-55 참조), 화살 기도 및 청원 기도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주요부분은 마리아 자신의 노래인 천주찬가(Magnificat)이다. 교본 본문은 다음과 같이 까떼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까떼나는 레지오나 모든 단원들의 일상 생활을 연결하는 고리이다. 곧 까떼나는 단원들끼리 서로 연결시키고 또한 성모님과 결합시키는 끈이다. 또한 까떼나는 매일 바칠 의무를 암시하기도 한다. 각 고리는 전체 사슬을 완성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고리가 연결된 사슬이라는 개념은 레지오 단원으로 하여금 일상 기도인 레지오의 사슬에서 부서진 고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레지오를 그만둔 단원도 까떼나만은 매일 바침으로써 일생동안 성모님과 레지오와의 연결끈을 보존해야 할 것이다.
7. 동료 단원들과 원만한 관계를 이룰 의무(교본294쪽)
레지오 단원은 일반적으로 동료 단원들을 사랑할 의무를 잘 지키고 있지만 그들의 결함에 온화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점은 잊어버리는 것 같다. 그리고 동료 단원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언행에 큰 영향을 받거나 자제력을 잃지 말아야 한다. 자제력은 모든 공동체의 기초가 된다. 자기 개성을 억제하고 조직체에 적응하는 사람이 레지오에 크게 이바지한다. 단원들 상호간에 지녀야 할 태도에 있어서 특히 질투는 금물이다. 질투는 각 사람의 심장 안에 있는 산과 같아서 인간 관계에 해독이 된다. 레지오 단원은 강력한 자연 본성을 극복하고 질투심을 그리스도교적 사랑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에 입각하여 살아갈 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각 단원은 동료 단원들과 활동 대상자 하나 하나에서 성모님이 주님을 뵙고 공경하듯이 하라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대한 가르침을 받아 왔다(교본의 상훈 및 그리스도 신비체 교리 참조). 따라서 동료 단원들에 대한 질투심이 생길 때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두고 한 말처럼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 30)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러한 태도는 영웅적이며 거룩한 것이다. 선구자는 언제나 그가 내세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사라지기를 바라야 한다. 주님의 사도는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이 성장하는 것을 기쁘게 바라보아야 한다. 사도란 언제나 말째가 되어야 하므로 질투심은 진정한 사도직과 공존할 수 없다. 모든 단원은 질투심이나 사심 없이 그리고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료 단원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원만한 관계를 이루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8. 공동 방문자끼리 일치를 이루어야 할 의무 (297쪽)
레지오 단원은 둘씩 짝지어 공동으로 방문 활동을 한다. 도제제도에 의해 단련된 단원과 경험이 부족한 단원이 한 조로 편성되는 것이다. 2인 1조의 편성은 바로 예수님의 방법이다. 예수님께서는 일흔 두 제자를 뽑아 방문할 여러 마을과 고장으로 '둘씩 짝지어' 보내셨다(루가 10, 1 참조). 둘씩 짝지어진 공동 방문자(co-visitors)는 서로 일치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교본 본문에 의하면 "둘이라는 숫자는 풍부한 열매를 맺는 사랑의 상징이다. 이 숫자는 단순히 함께 활동을 하게 된 두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 하나로 얽혀 있었던 다윗과 요나단의 영혼에서 볼 수 있는 일치를 나타내는 것이다"(1사무 18, 1). 공동 방문자끼리의 일치 정신은 사소한 일에도 드러나야 한다. 공동 방문자는 다음과 같은 수칙을 잘 지킬 때 서로 일치할 수 있다 : 1) 약속 시간을 지킬 것, 2) 생각이나 말에 사랑이 담겨 있을 것, 3) 예의를 지킬 것, 4) 겸손한 마음을 지닐 것. 9. 새단원을 모집해야 할 의무 (교본298쪽)
레지오 단원은 새 행동 단원을 모집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의무 때문에 쁘레시디움 회합 순서에 새단원 모집 점검이 포함되어 있다.
레지오의 행동 단원이 되면 다음과 같은 은혜를 받게 될 것이다 1) 개인 성화로써 자신이 구원받는다, 2) 복음화 활동으로써 남들도 구원받게 한다, 3) 주님 사업에 적극 동참함으로써 보람있고 감사로운 나날을 지낸다, 4) 기도와 공부와 활동을 통해 굳건하고 성숙한 신앙 생활을 하게 된다, 5) 성모님의 군인으로서 선종한 단원의 영혼을 위해서 끊임없이 바쳐지는 전 세계 레지오 단원들의 기도 (마침기도)의 은총, 6) 매년 11월 위령성월에 위령 미사를 받게 된다, 7) 성령과 성모님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8) 사목자의 관심어린 사랑과 강복을 받는다.
교본 본문은 단원들이 레지오를 통해 받은 은혜를 다른 이들에게도 가져다 주도록 해야 하며 활동을 통해 레지오 사업을 확장할 마음을 가져야 한다면서 새단원 모집에 주력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10. 교본 공부를 해야 할 의무 (교본298쪽)
레지오 단원은 교본()을 공부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교본 공부는 학습 활동으로서 레지오 활동의 일부이지만 활동을 대신할 수 없다. 50여 개 국어로 번역되어 있는 레지오 교본은 프랭크 더프의 저술에 의해 1929년 2월 17일 처음으로 발행된 이래 여러 번에 걸쳐 개정, 증보되어 왔으며 마지막으로 1993년 12월 8일에 재검토된 최신판이 발행되었다. 교본은 레지오의 공식 해설서이며 교과서이다. 교본은 레지오의 기원, 목적, 정신, 원리, 신심, 규칙, 활동, 관리 운영 등 단원들이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중요 사항들을 간결하게 설명한 규범집이다. 교본은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 입각한 교리도 포함하고 있어 가톨리 교리서로의 가치도 지닌다. 교본 본문에 의하면 흔히들 레지오 교본에 대해 '너무 길고 자세하다. 사상과 어휘가 어려워 이해하기 힘들다'고 불평한다. 교본의 사상은 사도직의 일반 원리를 담고 있기 때문에 사도직 활동 수행을 위해 마땅히 알아두어야 한다. 그리고 교본의 어휘도 공부를 하면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반대 의견은 교육의 제1원칙 즉 배우는 학생을 점차 미지의 영역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는 원칙에 모순된다. 쁘레시디움은 단원으로 하여금 교본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교본에 제시된 사상과 교리는 각기 적극적이니 활동과 연결되어야 하며 그 활동에 영신적인 의미를 부여하야 한다. 모든 행동 단원은 수련기에 활동 의무의 일부로서 교본 전체 내용을 공부해야 할 것이다.
11. 항상 복무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의무 (교본303쪽)
레지오 단원은 언제 어디서나 레지오의 정신으로 무장되어 일상 생활의 모든 면에 항상 복무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단원은 죄의 왕국을 쳐부수고 그리스도 왕국을 세우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영적으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사랑과 구원의 대상이고 활동 대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과거의 천주교 요리 문답에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은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하느님을 열심히 믿어 자기 영혼만 구원하면 된다고 생각함으로써 그리스도교를 편협한 의미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경향이 짙었다. 그리하여 타인의 구원에 무관심하고 개인주의적인 신앙생활로 흐르게 되었다. 다행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그것이 시정되었다. 이웃 사랑의 실천이 없으면 그리스도교 사상은 알맹이가 없어지게 된다. 그러한 신앙 생활은 반쪽 신자 생활에 지나지 않으며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살의 이중 계명에도 어긋난다. 레지오 단원은 지상에서 모든 형제들과 함께 살다가 천상에도 그들과 함께 가야 한다. 교본 본문에서 인용한 뻬기(Peguy)의 말처럼 "우리는 함께 구원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함께 가야 한다. 만일 우리 가운데 다른 사람들 없이 주님 앞에 혼자 나타난다면 하느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겠는가?" 단원이 복무 자세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차별 없는 사랑이다. 비록 어려운 일이긴 하겠지만 누구에게나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단순히 감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의무감, 희생과 봉사정신이 담긴 사랑이여야 한다. 레지오 단원은 이러한 그리스도교적 정신의 실천자가 되어야 한다. 항상 복무하는 자세는 규율을 잘 지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규율을 지키는 단원은 언행이 일치하고 예의 바르고 솔선수범한다. 그러므로 말씨, 옷차림, 태도, 행동 등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거슬려서는 안된다. 사람들은 레지오 단원들을 주시하고 결점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남들에게 좀더 고상한 일을 하라고 권장하는 단원들에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분별력과 판단력이 요구된다. 단원 자신이 지니지 못한 완덕을 남들에게 말해 준다고 해서 위선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자신의 부족한 점 때문에 사도직 이행을 포기하거나 침묵을 지켜서는 안된다. 그럴수록 더욱 투철한 레지오 정신으로 항상 복무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12. 활동과 더불어 기도를 해야 할 의무 (교본306쪽)
레지오 단원은 기도와 더불어 활동해야 하지만 동시에 활동과 더불어 기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 활동과 기도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떨어질 수 없다. 교본 본문에서 강조하는 기도는 뗏세라에 있는 모든 레지오 기도이다. 행동 단원이 매일 까떼나만 바칠 의무가 있다 하여 로사리오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바림직하지 않다. 행동 단원도 협조단원처럼 묵주의 기도를 포함한 뗏세라의 모든 기도를 매일 바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협조 단원은 레지오의 모든 기도문을 매일 의무적으로 바치는데 행동 단원이 그보다 못하다면 모범이 되지 못한다. 협조단원이 인내심을 가지고 매일 꾸준히 레지오 기도문을 바치는 것은 대부분 그들보다 뛰어난 희생과 영웅적인 봉사를 하는 행동 단원을 도와주고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도 행동 단원은 협조 단원들에게 모범을 보여 주고 고무해 주어야 한다. 모든 레지오 단원은 로사리오회에 가압해야 한다. 로사리오회는 한 주일 동안 적어도 묵주기도 15단을 한번 이상 바칠 의무를 가진 신심단체이다. 이 회원이 되면 숱한 은혜를 받게 된다(부록 7 참조 교본 448-449쪽 참조). 새교본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레지오 단원은 매일 적어도 몇 분 동안은 묵상, 염경기도, 성서 봉독을 해야 한다(교본 본문 참조). 레지오 기도문 외의 이러한 기도는 새교본에 있는 내적 생활의 의무 중 '기도'(204-205쪽)를 참조하면 될 것이다.
13. 내적 생활을 해야 할 의무 (교본307쪽)
단원의 의무중에 봉쇄 피정의 의무와 성체 신심의 의무대신에 내적 생활의 의무를 교본에 새로이 추가하여 특히, 교회 문헌을 자주 인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개인 성화는 레지오의 목적이므로 레지오 단원은 내적 생활(interior life)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내적 생활이란 자신의 생각과 원의와 감정이 주님께로 향한 생활을 뜻한다.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갈라 2, 20) 생활이다. 내적 생활의 모델은 복되신 동정 성모이다. 성모님은 일생 동안 성덕과 완덕에로 정진하셨다. 성덕과 완덕 추구는 모든 신자들의 의무이며 소명이다(교회헌장 40항 및 42항 참조). 성덕은 실천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교본 본문의 말대로 "모든 성덕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느님의 사랑은 그분의 뜻을 실행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성 알퐁소 리구오리) "우리의 생활에서 실제로 주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경청, 꾸준한 기도, 영적 지도, 하느님이 주시는 은사와 자질 및 다양한 상황에 대한 식별이 있어야 한다"(평신도 그리스도인 58항). 단원들은 내적 생활에 충실해야 한다. 내적 생활에는 세가지 요소, 기도와 금욕과 성사가 필수적이다. 이 세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1) 기도(전례헌장12) 기도는 공적이면서도 사적이 성격을 띠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 본성에는 사회적인 면과 개인적인 면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예배의 의무 역시 공동체적인 동시에 개인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기도의 이러한 양면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그리스도 신자는 비록 공동으로 기도하도록 부름을 받았더라도 방에 들어가 은밀한 곳에서 성부께 기도할 것이고 더구나 사도의 가르침을 따라 끊임없이 기도할 의무가 있다"(전례헌장 12항). 개인 기도의 형태는 "묵상, 양심 성찰, 피정, 성체 조배, 성모 신심 그 중에도 특히 로사리오 기도"(Mediator Dei 186항) 등이다. "개인 기도는 신자들의 영성 생활을 풍요롭게 하면서 공동예배에도 일익을 담당하고 전례 기도가 형식적인 예식에 빠지지 않도록 해 주는 구실을 한다"(상게서 187항). 사적인 영적 독서도 기도 생활에 유익을 준다. 영적 독서에 있어서 우선적인 것은 가톨릭 주해서를 참고하면서 신약성사를 읽는 것이다(계시헌장 12항 참조). 그 다음으로는 고전에 속하는 영성 서적을 읽는 것이다. 특히 성인전은 영성 생활의 좋은 안내자가 될 것이다. 모든 단원은될 수 있는 대로 매년 한 번씩 봉쇄 피정을 해야한다. 피정을 함으로써 자신의 소명을 확실히 깨닫게 되고 그 소명을 충실히 따를 의향을 갖게 된다. 2) 금욕 혹은 극기 금욕(Mortification)이나 극기(self-denial)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사시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그분의 삶을 온전히 나누기 위해 자아를 극복하는 것이다. 금욕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자기 훈련이다. 원죄로 인해 지성은 어두워지고 의지는 약해지며 감성은 쉽사리 악에로 기우는 경향이 있으므로 금욕과 극기가 필요하다. 레지오 단원들은 먼저 교회에서 정해 주는 속죄의 시기와 그 방법을 지키고 따라야 한다. 단원이 되면 자주 극기와 금욕의 기회가 주어진다. 금욕을 하게 되면 하느님이 주시는 일상의 십자가와 노고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다. 금욕은 내적인 감정을 조절하도록 도와주며 게으름이나 이기적인 태도를 극복하게 해 준다. 금욕하면서 사도직을 수행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예의 바르고 사람들과 친교를 맺어 그들을 구원으로 이끈다(1고린 9, 22 참조). 약을 누르고 덕을 쌓는 노력은 신비체 안에서 자신과 타인의 죄를 보속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신비체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우리 죄 때문에 고통당하고 목숨을 바치셨다면 우리는 금욕과 극기로써 속죄해야 한다. 3) 성사 개인 성화와 영혼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영혼들 안에 사심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의 일치가 필수적이다.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세례성사에 근원을 두고 견진성사로써 발전되며 성체성사로써 양육되는 동시에 실현된다.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위해 고해성사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고해성사는 속죄의 성사, 화해의 성사라 불리기도 한다. "고해성사를 보게 되면 자신의 참 모습을 깨닫고 겸손으로써 악습을 고치며 영적 나태와 냉담을 막아주고 양심이 깨끗해지며 의지가 강해지고 훌륭한 영적 지도를 받게 되며 성사 자체의 효력으로 은총을 풍부히 받게 된다"(Mystici Corporis 87항). 레지오 단원은 고해성사를 규칙적으로 자주 봄으로써 그리스도를 만나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고해성사의 은혜를 체험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고해성사를 보도록 권면하게 될 것이다. 교본 본문은 마리아의 영성이 세례성사와 관련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즉 신자들이 세례성사 때 한 약속에 따라 충실히 생활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은 성 루도비꼬 마리아가 제시한 대로 마리아를 통해 자신들을 그리스도께 봉헌하는 것이다(구세주의 어머니 48항 참조). 끝으로 교본 본문은 영성 생활과 교의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89항 참조).
14. 그리스도교인의 소명을 수행해야 할 의무(교본313쪽)
레지오는 활동보다 생활 방식을 더 중요시 한다. 회합이나 활동을 할 때에만 레지오 단원 구실을 한다면 그것은 레지오의 정신이 아니다. 레지오는 단원들이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신자로서의 소명을 충분히 인식하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크리스찬 소명의 원천은 세례이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또 하나의 그리스도가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들이 되었을 뿐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 되었다"(성 아우구스띠노). 세례로써 그리스도와 결합된 모든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직분인 사제직, 예언직, 왕직을 나누어 받게 되었다. 그러면 이 세 가지 직분(삼중직무)을 간략히 알아보자. 신자들은 경신 행위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한다. 경신 행위에 있어서 최상의 형태는 희생(sacfifice)이다. 신자들은 영적인 희생 제물로서 자신과 자신의 모든 행위를 성부께 봉헌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의 사제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 "평신도들의 모든 일, 기도, 사도직 활동, 결혼생활, 가정생활, 일상 노동, 심신의 휴식 등을 성령 안에서 행하며 더구나 생활의 번민을 인내로이 참아 받는다면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이 될 것이며 미사 때에 주의 몸과 함께 정성되이 성부께 봉헌될 것이다. 이와 같이 평신도들은 예배를 드리며 어디서나 거룩하게 삶으로써 이 세상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다"(교회헌장 34항).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예언직을 나누어 받는다. 그리스도는 "생활의 증거와 말씀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였다"(교회헌장 35항). 평신도는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여 그것을 말과 행동으로 선포할 사명을 맡았다. 신자들이 해 줄 수 있는 크나 큰 봉사는 사람들에게 신앙의 진리를 전하는 것이다. 특히 진리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다. 레지오는 단원들에게 종교적 지식 습득을 도와주며 그것을 실생활에 반영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마지막으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왕직을 나누어 받는다. 이 왕직은 자신 안에 있는 죄의 왕국을 쳐부수고 이웃에게 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평신도는 그리스도처럼 다른 사람들의 종으로서(마태 20, 28 참조)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완수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왕직을 수행한다. 복음 정신(“섬김을 받으러 온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태오 복음20,28)으로 현세 질서 안에서 세속적인 일을 완수하는 것은 평신도 그리스도인의 자랑스런 과업이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그분의 행동, 지능, 음성, 눈짓, 예의범절에도 드러나셨다. 애덕을 실천하려면 작은 덕도 갈고 닦아야 한다. 그 덕이란 다루기 힘든 사람들에게도 친절과 호의, 예의, 동정, 인내, 포용력을 보이는 것이다. 레지오 단원들은 이상의 세 가지 그리스도교인 직분을 충실히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성모님께 대한 레지오 단원의 의무 가)마리아께 대한 레지오 신심을 드높이여야 할 의무(교본 46-69쪽) 1)마리아께 대한 레지오 신심은 오직 성모님과 일치하는것이다. -레지오 단원은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진지하게 묵상하고 실천해야 한다. -성모님을 이 세상에 모셔오는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우리의 영혼은 성모님 없이는 스스로 를 하느님께 드러올릴수 없고 하느님의 일도 할수 없다. -성 보나벤뚜라-성모님은 주님의 거룩한 피를 분배하시는 분,
2)성모님께 봉헌 -저의 모후, 저의 어머니시여,저는 오직 당신의 것이오며,제가 가진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옵니다.
나)성모님의 겸손을 본받음은 레지오 활동의 뿌리이며 수단이다.(교본49쪽) 1)겸손은 레지오 사도직 활동에 없어서는 안될 뿌리이며 수단이다.-대인접촉 -성모님의 겸손은 자신이 어떠한 인간의 자손들보다 더욱 완벽하게 구원 되엇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보십시오,저는 주님의 종입니니다.(루카1,38)-성모님은 겸손한 태도로 주님의 뜻을 따름. 2)레지오 사도직은 성모님을 통하여 움직인다. 성모님을 닮지 않고서는 성모님과 일치 할수 없으며 성모남의 덕을 갖추지 않고서는 성모님을 닮았다고 할수 없다. 3)겸손하신 동정성모님의 발꿈치는 “자아”라는 뱀이 지닌 여러형태의 머리를 바수어 버린다. -자기 현시-이기심-자만심-자부심-자기애-자기만족-아집이라는 뱀의 머리다)성모님께 대한 참된신심은 사도직의 의무를 요구한다.(교본55쪽) 1)성모신심이란 성모님의 고귀한 성품과 사명의 온갖측면을 울 삶안에서 재현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2)성모님과의 일치만이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완성하는 것이다. 3)레지오 단원들은 풍부하게 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일하시는 성모님의 참된 협력자라는 점이 핵심이다. 라)성모님께 봉사할때는 온힘을 다해야 한다(교본59쪽) 1)레지오 단원들은 마리아의 협조자로서 그분을 위해서 활동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마리아께 드릴 선물은 최선의것이 되어야 마땅하다. 2)마리아께서도 단원 스스로 도울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실천하고 어떠한 어려움도 참아나가며 아낌없이 바치는 자에게 풍부한 은혜가 내리신다고 전력을 다하는 봉사를 할것을 권고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3)“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12,30) 4)우리 단원들이 최선을 다하는 실질적인 황동을 하지 않으면 성모님께 대한 실직적인 협력자가 되지 못함에도 때로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변명을 일관하고 있지 않는지 성찰해 본다. 5)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사항은 마귀는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접근할까? -험상궂은 얼굴로 접근하질 않고 -언제나 그렇듯하고 예의바 르고 상냥하게 -거부반응 없게 접근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유혹에 빠지거나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마)레지오 단원들은 몰포르의 루도비꼬-마리아 성인의 성모님께 대한 참된신심을 실천해야 한다.(교본63쪽) 1)참된신심은 하나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생활안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태로서 드러나야 하고 전적으로 성모님께 의탁하고 성모님이 쓰시도록 자신을 철저히 내맡기는 즉 봉헌을 해야 한다. 2)봉헌은 모든생각,영혼으 움직임,숨겨진 재산,그리고 가장 깊이 도사린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말한다.(완전한 노예) -세속의 노예는 자신의 생각과 내적 생활은 자신이 지배하므로 자신과의 관계에서는자유로울 수가 있지만 마리아께 무릎을 끓는자는 모든 것을 모조리 바치기 때문이다. -일종의 순교생활이며 성모님을 제단으로 하여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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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 단원의 봉사(교본29-35쪽) 1) 하느님께서 주시는 무기로 완전 무장을 해야 한다(에페 6,11:교본 29쪽) 레지오 마리애는 이웃의 구원을 위해 봉사하는 영적 군대다. 그런데 봉사를 잘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악마의 군대가 존재한다(마르 5,9 참조). 이른바 호사다마(好事多魔)이다. 레지오의 마침 기도문에 '한평생 싸움이 끝난 다음'이란 말이 있듯이 레지오 단원 생활은 악의 세력과 싸우는 영적 군대 생활이다.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 교회 신자들에게 "속임수를 쓰는 악마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주시는 무기로 완전 무장을 하십시오."(에페 6,11)라고 호소하면서 그 당시 로마 군인의 완전 무장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무기는 영적인 무기로서 진리, 정의, 평화의 복음, 믿음, 하느님의 말씀, 기도이다(에페 6,14-18 참조). 특히 레지오 마리애에서는 악마의 상징인 뱀의 머리를 짓밟고 계신 성모님을 사령관으로 모시고 있으므로 성모님이 좋아하는 하느님의 무기인 묵주 기도를 활용해야 한다. 소년 다윗이 작은 돌팔매로 거인 골리앗을 물리쳤듯이 레지오 단원들도 영적 무기인 묵주로 악마의 군대를 무찌를 수 있다. 클레멘스 성인이 로마 군단을 교회가 본받아야 할 표본으로 보았듯이 로마 군대는 지상 군대 중에 가장 강력하고 용맹한 군대였다. 그러나 그 군대는 어디까지나 로마 제국의 영토와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세속적인 군대였지 봉사하는 군대는 아니었다. 레지오 단원들은 로마 군대가 지녔던 자질보다 더 훌륭한 자질을 지녀야 한다. 특히 봉사할 때는 특출한 군인 정신을 지녀야 한다. 레지오 단원들은 아무리 어려운 봉사라도 거뜬히 완수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무기로 완전 무장을 해야 한다.
2) 세상을 본받지 말고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한다(로마 12,1-2:교본 30쪽) 이 성경 구절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여 하느님께 산 제물로 바치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삶 전체를 하느님께 바쳐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한다는 바오로 사도의 강력한 권고이다. 그러기 위해 신자들은 세속을 본받지 말고 꾸준히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본 본문은 일생 동안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린 현대의 성녀 소화 데레사를 귀감으로 소개하고 있다. 선교 사업의 수호자 예수 아기의 성녀 소화 데레사(1873-1897년)는 프랑스 북부 지역 알랑송에서 태어나 15세에 리지외의 가르멜 수녀회에 입회하였고 9년 동안의 짧은 수도 생활을 하고 24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생을 마감한 성인이다. 전혀 외적으로 업적을 남기지 않았음에도 성녀로 추앙받는 것은 뛰어난 영성과 성덕 덕분이다. 데레사 성녀가 완덕에 이른 비결은 복음 삼덕 외에도 겸손, 순박, 의탁, 봉헌, 희생, 사랑이다. 성녀는 어떠한 어려움이나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도 굴하지 않고 오로지 십자가에서 보여 주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참아 이겨냈다. 그뿐 아니라 밖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신체 기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심장처럼 교회 안에서도 심장이 되어 선교사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와 희생을 바쳤다. 성녀의 자서전 '한 영혼의 이야기'에 성녀의 특출한 성덕과 영성, 일상 생활이 잘 드러나 있다. 성녀는 세속을 본받지 않고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일상의 자기 본분과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린 것이다. 레지오 단원들도 산 제물이 되신 십자가상 예수님을 묵상하고 그 귀감이 된 성녀 소화 데레사를 본받으면서 선교 활동과 봉사에 투신해야 한다.
3) '노고와 고통'(2고린 11,27)을 피해서는 안 된다(교본, 30-31쪽)
레지오 단원들은 봉사 활동을 하면서도 고통과 노고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단원들은 바오로 사도가 체험한 '노고와 고통'을 본받아야 한다. 그는 수없는 매와 몽둥이와 돌에 맞아 여러 번 죽을 뻔했고 몇 번이나 파선당해 바다에서 표류했으며 선교 여행 중에 온갖 종류의 위험을 겪었고 노동과 고역에 시달리며 수없는 밤을 뜬눈으로 새웠고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헐벗음을 겪었다(2고린 11,23-27 참조). 레지오 단원들은 바오로 사도처럼 참된 사도가 되기 위해 죽음이나 고문까지도 당할 각오를 해야 하다. 그 예로서 교본 본문은 '최근의 사태'를 들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의 레지오 단원들이 박해받고 순교한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중국은 1937년에 레지오 마리애가 도입되었으나 전혀 발전하지 못하다가 1947년 아일랜드의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소속 애단 맥그라스(Aedan McGrath) 신부가 레지오 확장 사업을 전담하자 불과 3년 만에 수천 개의 프레시디움이 생기고 3개의 세나투스가 설립될 정도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1949년에 공산당이 권력을 쥐고 가톨릭 교회를 박해하기 시작하여 5년 후에는 거의 모든 가톨릭 선교사들이 추방되었다. 1957년에는 중국 자체의 '애국 가톨릭 교회'가 결성됨으로써 공안 당국은 애국 교회를 반대하는 수많은 레지오 단원들을 체포하여 고문하였다. 전국적으로 20만 명 이상의 레지오 단원 중에 약 2만 명이 투옥되고 그 중 2천 명 이상이 순교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레지오 단원들은 선교와 봉사 활동을 할 때 노고와 고통을 피해서는 안 되며 순교 정신을 발휘하여 교본 본문의 내용대로 "온갖 어려움을 달게 참아 내고 즐거움으로 여기며 끝까지 버티어 나간다면 벗을 위해 제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신 바로 그 사랑의 경지에 마침내 접근하게 될 것이다."
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같이 사랑의 생활을 해야만 한다(에페 5,2:교본 31-32쪽)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셔서 우리 구원을 위해 당신 자신을 바치시고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셨다(필리 2,6-8 참조). 예수님은 이처럼 사랑으로 인류를 구원하신 분이다. 레지오 단원들도 예수님을 본받아 사랑의 생활을 함으로써 이웃을 구원에로 이끌어야 한다. 레지오의 활동 대상자는 비신자, 냉담자, 혼인 장애자, 환자, 수감자, 임종자, 예비신자 교리 중단한 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등 모두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기에 단원들이 그들을 만나는 것을 꺼려하고 부담스러워할 것이다. 그래서 활동배당을 받으면 한 번으로 빨리 해치우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단원들의 활동은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이어야 하므로 한계선을 그어서는 안 된다. 어느 지점에 한계선을 긋고 여기까지만 희생을 바치겠다고 한다면 알맹이 없는 봉사가 될 것이고 보잘것없는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단원들이 끈기와 희생정신을 지니지 못하면 레지오 단원 생활도 오래 지탱하지 못할 것이다. 교본 본문의 말대로 대인 관계에서 성공을 거두는 비결은 사랑과 이해심을 바탕으로 하는 개인적 접촉에 있다. 이러한 사랑은 단지 겉으로 드러내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되며, 온갖 시련을 극복하는 참된 우정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 정도가 되려면 다소의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때도 흔히 있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만 만나기 싫고 꺼려하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어렵다. 진정한 사랑과 봉사에는 아픔과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활동 대상자를 예수님으로 여기고 벗으로 여길 때 비로소 대인 관계가 원만하고 봉사 활동도 성공하게 될 것이다. 참사랑은 아픔과 희생이 따르기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에페5,2) 모든 봉사의 밑바탕에는 희생정신이 담긴 참사랑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레지오 단원은 봉사 활동을 할 때 자신을 전적으로 바치고 아낌없이 봉사하려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
5) 달릴 곳을 끝까지 다 달려야만 한다(2디모 4,7:교본 32-35쪽) 달릴 곳을 끝까지 다 달려야만 한다(2티모 4,7).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제자요 협력자인 티모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2티모 4,7-8)라고 말했다. 이 내용은 그 당시 경기장에서 달리기나 마라톤을 하여 우승한 선수에게 월계관을 씌워주는 것을 상기시킨다. 바오로 사도는 신자들로 하여금 어려운 복음화 활동을 통해 구원의 월계관을 받도록 하려고 종종 달리기 경기를 비유로 들고 있다. 경기장에서 달리기하는 이들이 모두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리십시오. 우리는 썩지 않는 화관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목표가 없는 것처럼 달리지 않습니다(1코린 9,24-26).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습니다(필리 3,13). 레지오 단원들도 활동을 할 때 바오로 사도처럼 끈기 있게 달릴 길을 끝까지 달려야 한다. 뛰고 달린다는 것은 능동적, 적극적, 활동적임을 뜻한다. 레지오의 선교 활동과 봉사 활동도 마찬가지이다. 단원들은 한평생 뛰고 달려야 한다. 레지오의 마침 기도문에도 있듯이 단원들은 한평생 싸움이 끝날 때까지 항구하게 달려야 한다. 목표를 향해 달릴 때 한눈을 팔거나 옆길로 새는 변덕스러움이 있어서는 안 된다. 경기를 하는 사람도 규칙대로 경기를 하지 않으면 승리의 화관을 얻지 못합니다(2티모 2,5)라고 했듯이 레지오 활동에서 단원들이 변덕을 부리면 레지오의 규칙과 규율을 깨뜨리게 된다. 복음화 활동에서 아무리 희망이 없어 보이는 일도 가망이 없다는 낙인을 찍어 쉽사리 포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포기한다는 것은 마치 한없이 귀중한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해도 좋다고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다. 농부는 씨를 뿌리자마자 수확하려는 조급한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성공하려면 씨를 뿌린 농부처럼 끈기 있는 기다림, 굳건한 의지, 줄기찬 노력이 필요하다. 교본 본문은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가 서술한 성모 마리아의 신앙에 참여한다(참된 성모 신심 214항)는 내용과 레지오의 마침기도 내용에 살을 붙여 설명하면서 불가능한 것이라도 해내겠다는 마음을 지니고 매사에 똑같이 세심한 관심과 똑같이 지치지 않는 인내심과 똑같이 꿋꿋한 용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모든 임무를 황금 같은 끈기로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레지오 단원들은 달릴 곳을 끝까지 다 달리게 되고 모두가 주님으로부터 승리의 화관을 받아 쓰게 될 것이다. 레지오는 단원 자신의 성화와 이웃에 대한 봉사활동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하느님과 성모님이 늘 함께해 주신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건강을 위해 '머리는 차게, 발은 뜨겁게'라는 말이 있다. 발을 뜨겁게 하기 위해 뜨거운 물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개들 많이 걷고 뛰고 달린다. 군대에서 훈련병들은 구보(驅步)할 때 발바닥이 보이지 않게 뛰어라는 호령을 받는다. 뛰고 달린다는 것은 능동적, 적극적, 활동적임을 뜻한다. 레지오의 선교 활동과 봉사 활동도 마찬가지다. 한평생 뛰고 달려야 한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제자요 협력자인 디모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2디모 4,7-8)라고 말했다. 이 내용은 그 당시 경기장에서 달리기나 마라톤을 하여 우승한 선수에게 월계관을 씌워 주는 것을 상기시킨다. 바오로 사도는 신자들이 온갖 어려움이 따르는 복음화 활동을 통해 자신도 구원받고 타인도 구원하는 것 곧 불멸의 월계관을 받도록 다음과 같이 달리기 경기를 비유로 들고 있다. "경기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모르십니까? 여러분도 힘껏 달려서 상을 받도록 하십시오. 우리는 불멸의 월계관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을 하되 목표 없이 달리지 않습니다"(1고린 9,24-26).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면서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뿐입니다"(필립 3,13-14). 이처럼 레지오 단원들도 선교 활동과 전반적인 의무 하나하나에도 완전성과 지속성을 지니고 아낌없는 봉사와 노력을 기울이면서 달릴 길을 끝까지 달려야 한다. 목표를 향해 달릴 때 한눈을 팔거나 옆길로 새는 변덕스러움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운동 선수가 월계관을 얻으려면 규칙대로 경기를 해야 하듯이"(2디모 2,5) 레지오 활동에서의 변덕은 훌륭한 레지오 규율을 깨뜨리게 된다. 복음화 활동에서 아무리 희망이 없어 보이는 일도 '가망이 없다'는 낙인을 쉽사리 찍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마치 귀중한 영혼이 멸망해도 내가 알 바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활동의 다양성만을 추구하거나 활동의 결과가 빨리 드러나기를 바라는 생각은 더욱 중요한 활동 목표를 소홀히 다루게 된다. 농부가 씨를 뿌리자마자 수확을 거두려 하지 않듯이 목표를 향해 달릴 길을 다 달리려면 끈기 있는 기다림, 굳건한 믿음, 끈질긴 노력이 필요하다. 정해 둔 목적을 달성하고 성공하려면 굳센 의지와 줄기찬 노력이 있어야 한다. 성 루도비코 마리아가 강조하듯이 "불가능한 것이라도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되 매사에 똑같이 세심한 관심과 똑같이 지치지 않는 인내와 똑같이 꿋꿋한 용기와 황금 같은 끈기를 지녀야 한다"([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 214항). 레지오 단원들도 그렇게 할 때 비로소 목표를 향해 달릴 곳을 끝까지 다 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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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