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5호로 표기된 낚싯줄이라면 제조업체가 달라도 두께가 0.205mm로 똑같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1.5호 줄이 1.7호 줄보다는 가늘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확인 결과 그렇지 않았다.
▲샘플로 사용한 5개사의 1.5호 낚싯줄. 표준굵기를 지키는 낚싯줄은 한 개도 없었다.
▲시험연구원의 인스트론 측정기로 목줄의 인장강도를 실험하고 있다.
최근 낚시인들 사이에서 “같은 호수라도 메이커에 따라 낚싯줄 굵기가 다르게 느껴진다.” “유명 회사의 제품을 믿고 샀는데 막상 써 보니 강도가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낚싯줄은 100여 종 이상이 유통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낚싯줄의 홍수 속에서 ‘과연 낚싯줄들이 표준 규격을 잘 지키고 있는지’에 관한 검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낚시춘추는 전문기관에 의뢰하여 시판 중인 낚싯줄들이 표준 굵기와 일치하는지 테스트해보았다. 그리고 더불어서 각 낚싯줄들의 강도도 테스트해보았다. 그 결과는 자못 충격적이었다.
강도 좋다고 알려진 줄, 알고 보니 표준보다 굵어
낚시춘추가 전격 실시한 낚싯줄 테스트 결과 시중에 판매되는 낚싯줄들의 굵기가 제각각인 것으로 드러났다.
즉 ‘1.5호 낚싯줄의 표준구격은 0.205mm’인데 샘플로 선정된 5개 회사의 1.5호 낚싯줄 두께를 측정해본 결과, 모두 표준을 상회했을 뿐 아니라 굵기가 제각각이었다. 더구나 굵다고 강도가 강한 것도 아니었다. 각 낚싯줄의 인장강도를 테스트한 결과, 가장 굵게 측정된 낚싯줄이 인장강도는 3번째 수준 밖에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테스트 결과 대다수 낚싯줄이 표준 규격을 웃도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동안 ‘강도가 좋은 줄’로 여겨졌던 낚싯줄 중에는 실제로는 표준규격보다 ‘더 굵어서 강했던’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1.5호 줄의 실제 굵기가 1.7호 굵기에 해당하고 그래서 다른 회사의 1.5호 줄에 비해 강도가 뛰어난 것으로 인식되었다면, 제품에 표기한 호수 자체가 무의미할뿐더러 소비자를 기만하는 처사다.
실험은 지난 1월 말,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 시험연구원(FITI, 구 한국원사직물시험연구원)에서 이루어졌다.
시판중인 낚싯줄 가운데 무작위로 5개 사의 1.5호 낚싯줄 5개를 구입해 실제 직경(굵기)과 인장강도 테스트를 의뢰했다(생산된 지 1년 이내의 제품들만 샘플로 채택했다). 1.5호 줄을 선택한 이유는 바다낚시의 목줄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게 1.5호이기 때문이다.
▲*샘플 길이는 25cm로 통일하고 30cm/min 속도로 인장해 10회 반복 실험 후 평균치를 구했다. 측정 단위는 뉴톤(N). 1N=1/9.8kg이므로 대략 1N을 1kg으로 환산했다.
◀올림퍼스 BX51 현미경으로 본 1.5호 목줄의 실제 직경. 실험에 쓰인 샘플 목줄 중 하나로 표준 규격 0.205mm를 크게 웃돌고 있다.
굵다고 해서 인장강도도 강하지는 않았다
첫 번째 의뢰사항이었던 직경(굵기) 측정 결과 A, B, C, D, E로 임의 표기한 5개사 제품 중 1.5호의 표준 규격 0.205mm를 지킨 낚싯줄은 단 한 개도 없었다.
<표1>에서 보듯 표준 규격에 가장 근접한 제품은 A낚싯줄로 표준 규격보다 0.005mm가 굵었고, 가장 많은 차이가 난 제품은 D낚싯줄로 0.019m나 굵게 측정됐다. 특히 D낚싯줄은 바다낚시인들 사이에서 강도가 매우 좋은 목줄 중 하나로 인정받으며 한동안 인기를 누린 제품인데, 실제로는 가장 굵은 낚싯줄로 판정나서 실망이 컸다.
측정 결과 1.5호로 표기된 낚싯줄들의 실제 굵기는 심지어 1.7호 낚싯줄보다 굵었다. 1.7호의 표준 직경은 0.218mm인데, 테스트한 1.5호 낚싯줄 중 A낚싯줄 하나를 빼곤 모두 1.7호 규격을 상회하고 있다.
1.5호와 1.7호는 손으로 만져 봐도 굵기 차이를 현격히 느낄 수 있을 정도지만 그것을 비교해보고 제품을 구입하는 낚시인은 극소수다. 1.5부터 표준규격이 지켜지지 않고 있으니, 만져만 봐도 차이가 현격하게 느껴지는 1.7호나 다른 호수의 낚싯줄 또한 표준 규격을 어기고 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두 번째 의뢰사항이었던 인장강도 테스트에서도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각 샘플별 직경은 D-CE-B-A순으로 굵었지만 인장강도는 B-C-D-A-E 순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E낚싯줄(0.221mm)은 직경은 두 번째로 굵으면서 인장강도는 가장 가는 A낚싯줄(0.210mm)보다 뒤진 최하위로 조사됐고, D낚싯줄(0.224mm) 역시 직경은 가장 굵지만 더 가는 B(0.220mm), C(0.221mm) 낚싯줄보다 뒤진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직경과 인장강도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실은 곧 업체 간 품질 차이가 그만큼 크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시험연구원에서 보내 온 시험성적서와 낚싯줄 샘플.
무조건적인 강한 줄 선호도도 문제
사실 이 차이를 일일이 느껴가며 조과 차이를 비교 분석하는 낚시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 굵기는 1.7호 수준이지만 대부분 제품이 1.5호라고 표기하고 있으니 일단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렵고 낚시인들 자체가 ‘1.5호란 대략 이 정도 굵기’라는 개념으로만 낚싯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판 중인 낚싯줄 중에는 표준규격을 지킨 줄도 있을 것이다. 줄을 직접 만져보면 타사 제품보다 유난히 ‘가늘고 부드럽다’는 느낌이 드는 제품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런 낚싯줄들은 표준 규격을 지키려 애쓰다가 ‘강도가 약하다’는 그릇된 인식을 주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결국 양질의 낚싯줄을 출시하고 있는 선의의 업체들만 피해를 본 셈이 된다.
어쩌면 이런 낚싯줄 굵기의 오기(誤記)를 낚시인들이 유도한 것일지도 모른다. ‘가장 강한 줄이 최상의 줄’이란 인식하에 유연성보다 강도만 따지다보니 은근슬쩍 굵은 줄을 가는 줄이라고 속여서 파는 비규격 낚싯줄의 출시가 이뤄진 것은 아닐까?
어쨌든 낚싯줄 굵기와 호수의 불일치한 표기는 소비자의 올바른 선택권을 위하여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문제다.
낚싯줄의 ‘표준 직경’과
호(號)의 유래
1947년 일본의 낚싯줄 메이커 도레이사의 전신인 동양레이온에서 표준 직경 표시와 호수 개념을 최초로 도입했다. 이후 일본의 다른 업체는 물론 한국에서도 그 기준을 그대로 따르며 표준화됐다. 한편 서양에서는 낚싯줄의 규격을 굵기가 아닌 강도(파운드)로 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