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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맥스무비
사진 : 손홍주,글 : 박아녜스
<못> 서호빈 감독, 배우 호효훈, 강봉성, 이바울
고교생 현명, 성필, 두용, 건우는 사이 좋은 친구들이다. 하지만 성필의 여동생인 경미가 생일날 건우와 함께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으면서 모든 것이 달라진다. 우정은 끝났고, 사건은 또 다른 사건으로 이어진다. 영화 <못>은 잘못된 사건 하나가 가슴 속 ‘못’으로 박혀 아파하는 청춘들의 모습을 담아낸 작품이다.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연못인 ‘못’처럼 영화 속 청춘에게 한 번 뒤므틀린 관계는 막막할 뿐이지만, <못> 덕에 평생의 인연을 맺은 이들도 있다. <못>의 서호빈 감독과 세 주연배우 강봉성, 이바울, 호효훈을 만났다.
강봉성
장편 <들꽃>(2014)
< 못>(2013)
< 족구왕>(2013)
<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2013)
단편 <여름 기류>(2013) <밤>(2012)
<족구왕>의 주역 중 한 명인 강봉성이 <못>의 ‘성필’을 연기한다. 엉뚱하고 코믹한 <족구왕>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악인에 가까운 역할이다. 주연 배우들의 캐스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서호빈 ⇢ <못>은 지난해 2월부터 촬영했는데 봉성이는 가장 이른 12월에 이미 캐스팅이 확정돼 있었다. 나는 배우를 볼 때 눈만 본다. 프로필 영상에서 봉성이가 빡빡머리를 하고 어두운 곳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마음에 들더라. 그때는 지금처럼 이렇게 잘생기지도 않았었다. (웃음)
호효훈 ⇢ 봉성이와는 안양예고 동기고 지금도 친한 친구다. 봉성이가 추천해 ‘현명’ 역에 지원했다. 내 영상 프로필도 봉성이가 찍었는데, 가장 먼저 캐스팅이 결정된 봉성이와 달리 나는 촬영 들어가기 3일 전에 캐스팅이 확정됐다.
이바울 ⇢ 원래 ‘두용’이 아닌 ‘건우’ 역에 지원했다. 그런데 감독님이 두용을 추천하더라. 건우보다 분량이 많아 욕심나는 역할이었다. 캐스팅이 확정되기 전에 PD님이 나를 만나러 천안까지 오셨는데, 알고 보니 다른 단편에서 만난 적이 있는 분이었다. 나로 확정해 놓고선 갑자기 잠수를 타서 그때 그 단편을 못했는데 이렇게 만나다니. <달콤한 인생>의 대사처럼 정색을 하고 “저한테 왜 그랬어요?”랬더니 “미안하다. 나는 미워해도 우리 작품은 미워하지 말아 달라”고 하시더라. (웃음)
서호빈 ⇢ 바울은 <줄탁동시> 때문에 선입견이 조금 있었다. <줄탁동시>의 ‘준’과 두용이 비슷한 이미지여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 반면, 양심상 똑같은 캐릭터를 또 하게 할 순 없어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는데 프로필이 왔다. 건우 역을 한 (변)준석이도 만난 자리에서 눈을 보고 “아, 무조건 얘로 해야겠다”고 맘먹었다. 건우는 영화에서 일찍 사라지는데, 그럼에도 끝까지 그 영향력이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곱상하고 예쁘장한 남자가 좋겠다고 생각했고, 준석이가 ‘딱’이었다.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생각한 캐스팅이다. (웃음)
<못>은 사건 중심의 드라마라기보다 한 사건을 겪은 고교 단짝들이 이 사건으로 훗날 어떤 영향을 받게 되는 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심리 묘사가 중심인 영화다. 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강봉성 ⇢ 처음 시나리오에서는 성필이라는 캐릭터가 지금보다 더 이유 없이 악하게 그려져 있었다. 대본을 보면서 호빈이 형한테 이메일을 보내 의견을 나눴는데, 성필이 이만한 악한이 된 것에 대한 이유가 조금 더 필요해 보여서였다. 성필은 왜 그런 선택들을 하고, 상황을 극한의 방향으로밖에 몰고 갈 수 없었을까? 그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찾은 답이 여동생을 잃은 상실감, 그녀를 지키려 했던 마음을 더 보여 주자는 것이었다. 돌이켜 보면 촬영을 하면서 매일 밤 호빈이 형이랑 정말 많은 대화를 한 것 같다. 기숙사에 우리를 가둬 놨거든.(웃음)
서호빈 ⇢ 촬영이 진행된 한 달 반가량 합숙 생활을 했다. 아파트 식으로 된 기숙사에서 배우들이랑 같은 방에서 자면서. 지정 식당도 있고.(웃음)
강봉성 ⇢ 밥 먹고 연기하고, 밥 먹고 연기하고.(웃음)
의도치 않게 커뮤니케이션은 굉장히 잘됐겠다. (웃음)
강봉성 ⇢ 내 역할에 대해서만 물어보면 좋겠는데 자꾸 영화 전체에 대해 물어봐서.(웃음) 촬영이 가까워지니 감독 본인도 확신을 얻어야 하는데, 사실 그건 배우들한테 얻는 게 가장 편하다. 그래야 같이 믿고 갈 수 있으니까 자꾸만 물어보더라.(웃음) 그런데 나는 그게 참 마음에 들었다. 그 덕분인지 촬영장에 가서는 어떤 걸 해도 빨리 이해할 수 있었다.
호효훈 ⇢ 촬영 하는 내내 ‘땅 속 끝까지’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현명은 <못>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사건을 목격하는 인물이다. 내가 뭘 좀 표현하려고 할 때마다 감독님이 “그냥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그 절제 그대로”라고 하니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결국 촬영하면서 내내 힘들었던 당시의 상황과 그 심정이 그대로 영화에 잡힌 것 같다.
서호빈 ⇢ 효훈이가 가장 어려웠을 거다. 대놓고 드러내는 게 없는 역할이다. 현명이의 행동과 말들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을 많이 냈는데, 그때마다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아마 날 많이 싫어할 거다.(웃음)
이바울 ⇢ 나는 어떤 촬영이든 촬영장에서 내 모습 그대로 놀고, 장난도 많다. 대신 카메라 앞에서는 조금 다르다. ‘컷’ 소리가 나면 그사이에 내가 한 연기가 뭔지도 잘 기억하지도 못할 만큼 깊게 몰입하는 편이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 선 때가 아니면 편하게 임한다. <못>의 두용을 연기할 땐 간단하게 생각했다. 과거는 밝고 현재는 어둡게. 단순히 나눠서 연기해서인지 감정적으로 힘든 건 별로 없었다. 그런데 봉성이나 효훈이는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매일매일이 다를 정도로 살이 빠졌다.
강봉성 ⇢ 촬영하는 동안 8kg이 빠졌다. 현장 여건상 사건이 발생한 4년 후인 현재 장면을 먼저 찍고 나중에 고교시절인 과거 신을 찍었는데, 살이 빠져서 고등학생인 과거가 더 늙어 보인다. 무슨 해골처럼 나오더라.(웃음) 과거의 현명이 책을 읽는 장면이 나오는데, 언뜻 보면 회상 신 같다. 마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한 장면처럼.
서호빈 ⇢ 밥을 굶긴 건 아니다. 우린 밥은 다 먹였다. (웃음)
합숙은 물론이고, <못>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협업’에 다름 아닌 듯하다.
서호빈 ⇢ 촬영 3, 4일 전쯤 되면 그때부턴 시나리오는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보다 봉성이가 성필을 잘 알고, 또 바울이가 두용을 더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사전에 캐릭터에 대한 의견은 많이 나누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연기에 대한 개입은 디테일이 아니고선 거의 하지 않는다. 사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배우들까지 모두 합숙을 하면서 영화를 찍는다는 게 흔한 경우는 아니다. 그래서 <못>의 촬영 과정이 정말 중요했던 것 같다. 사실 이 친구들이 아니었으면 영화를 완성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많이 흔들렸을 때 이 친구들이 곁에 있어서 끝까지 찍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촬영장 분위기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같이 먹고 자고 하는 것처럼 끈끈해지는 건 없는 것 같더라.
강봉성 ⇢ 나는 모든 영화가 다 이렇게 찍는 줄 알았다.(웃음) 그런데 같이 있는 시간이 길었던 탓인지 촬영이 끝나고 나서 공허함이 더 컸던 것 같다. 방황을 좀 했다. 한 달 반 동안 하나의 목적을 향해 달렸는데 그게 사라져 버렸으니까. 그래도 <못> 덕분에 그 후에 참여한 다른 독립영화 현장에서는 적응이 아주 쉬웠다.(웃음)
독립영화 감독, 독립영화 배우로 사는 건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가?
서호빈 ⇢ 사실 ‘독립영화’의 정확한 정의를 잘 모르겠다. <못>도 그저 ‘저예산 장편영화’라고 생각하고 있고, 또 딱히 독립영화에 대한 자부심도, 사명감도 갖고 있지 않다. 지금 구상하고 있는 차기작의 경우 막연히 3~5억 사이에서 찍으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 적당한 인건비에 맛있는 밥, 편안한 숙소에서 지내며 영화를 찍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상업 저예산이냐, 독립영화냐 하는 것보다 일단 내게는 ‘찍는 행위’ 자체가 더 중요한 것 같다.
강봉성 ⇢ 독립영화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사실 성필도 대형 기획사에서 탐냈던 역할인데 호빈이 형이 그저 학생일 뿐이던 나를 이미지 하나로 선택한 거였다. 독립영화가 기회에 있어서는 조금 더 열려 있고, 또 공평한 공간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과거에 비해 독립영화와 독립영화 배우에 대한 인지도나 선호가 훨씬 높은 편이다. 나중에 영화배우로 성공을 하든 못하든, 독립영화를 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서호빈 ⇢ 이거 꼭 기사로 써 달라. ‘독립영화를 잊지 않겠다.’ (웃음)
강봉성 ⇢ 상업영화와 비교하면 우리는 ‘뜻’만 모인 것이나 마찬가지이지 않나. 자본에 의해서가 아니라 호빈이 형이 “좋은 영화로 보답하겠다”고 우리를 설득해 마음으로 모였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도 <못>은 ‘진짜 내 것’이나 다름없는 영화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 독립영화를 하면 이미 완성된 사람들이 아닌 무언가를 ‘하려는’ 이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예를 들어 나와 효훈이가 같은 선에 있다면 <족구왕>의 (안)재홍이 형은 조금 앞서 있는 사람인데, 이들을 보면서 ‘조금 더 하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구나’하는 희망을 얻게 된다. 지금도 오디션을 보러 가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한데, 이런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게 된 게 다 독립영화 덕분이 아닌가 싶다.
호효훈 ⇢ ‘왕도가 없다’는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데, 뭐든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상업영화를 하는 게 정답도 아니고, 오히려 내가 걸어가는 길들이 나에겐 답이 아닐까? 간혹 오디션에 가면 비중 없는 역할이니 대충 하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독립영화는 그와 달리 서로 소통하며 진지하게 작업에 임하는 것이 참 좋다. 나에게 독립영화는 참 ‘고마운 존재’다.
이바울 ⇢ 얼마 전에 출연했던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에 이런 대사가 있다. “모를 때가 좋죠.” 요즘 이상하게 그 말을 많이 생각한다. 작품을 하고 경험이 쌓일수록 고민도 많아지는 것 같다. 일단 지금은 독립영화를 하면서 좋은 사람, 또 나와 맞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알아 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소속사도, 별다른 백도 없이 발로 뛰면서 여기까지 왔지만 여전히 배워야 할 게 많은 것 같다.
배우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도 ‘청춘’의 한가운데 서 있다. 나의 청춘에게, 혹은 또 다른 청춘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호효훈 ⇢ 손현주 선배님을 존경하는데, 그분이 언제나 하시는 말씀 중에 ‘뚝배기론’이라는 게 있다. 지금 당장 완성된 음식이 아니라 하더라도 오래 끓다 보면 언젠가는 더 깊은 맛을 낼 수 있을 거라는 의미다. 지금 당장은 별맛이 나지 않는 상태라 해도 멈추지 않고 무엇이든 하는 청춘이 되길. 사서 고생을 하는 시간이길 바란다.
강봉성 ⇢ ‘어느 누구도 두 걸음을 한 번에 뗄 수는 없다’는 말을 요즘 많이 생각한다. 철학자 강신주 선생이 한 말인데, 누구든 한 걸음 다음에 두 걸음째를 갈 수 있지만 우리는 항상 한 걸음은 보지 않고 두 걸음, 세 걸음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말이 많이 와 닿았다. 솔직히 나는 지금의 나보다 항상 더 나은 나만을 생각해 왔던 것 같다. 그러면서 정작 나에게 첫걸음인 연기에는 소홀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됐다. 청춘들에게 ‘우리 모두 첫걸음을 제대로 한 번 밟아 보자.’고 말하고 싶다.
이바울 ⇢ 매 순간을 즐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이든 움직이며 행동했으면 한다. 그 한편에서 겸손할 필요도 있다. 옳고 그름에서 다수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소신대로 했으면 좋겠고. 그리고 한 가지 더. 약속을 잘 지키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서호빈 ⇢ 좌우명이 좀 많다. 그중 하나가 ‘후회하지 않아’인데, 뭘 하든 후회하지 않고 했으면 좋겠다. 놀 때는 미친듯이 놀고,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목표한 것이 있으면 하고 싶은 대로 맘껏 했으면 좋겠고. 자신의 인생에 ‘사건’보다는 ‘사고’를 많이 만들기를, 그게 재미있게 사는 방법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