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지나면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대적할 때 하나님의 이름은 부르면서도 능력을 의심하는 불신앙적 태도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보란 듯이 광야에 식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라고 믿었던 룻은 비록 이삭을 줍는 가난한 삶이었음에도 보리밭에 식탁을 베푸신 하나님의 그늘 아래서 은혜 입기를 원하였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세상이 아무리 어려워도 살아볼 만합니다.
첫째, 온전한 상 주시기 원함
본문 12절에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전한 상’은 평강, 평화라는 의미로 전쟁, 분쟁, 다툼이 없는 상태입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지나가는 것과 영원한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머물 수 없습니다. 바울과 함께 했던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믿음을 저버렸고 바울은 누가만 함께 있다고 하였습니다.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룻은 주님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왔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확신하고 모압의 그모스 신에게서 탈출하였습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 16:27).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께 상 받기를 사모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룻은 족보 상급을 받았습니다. 모압 여인으로 엄두도 못 낼 일이었지만 룻이 낳은 아들이 (오벳-이새-다윗) 다윗 왕의 친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천국 족보의 상급을 받았습니다. 아담의 원죄로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지만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둘째,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함
본문 14절에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룻과 보아스가 떡과 볶은 곡식을 배불리 먹었던 것은 종말 성도와 재림 예수님과 말씀 교제, 성만찬적 교제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떡을 주시면서 받아 먹으라 이는 내 몸이라, 잔을 주시면서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교제의 모습이 룻과 보아스 사이에서 드러납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 2:46). 성만찬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은 한 형제가 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날마다 떡을 떼며 친교의 식사를 하였습니다. 먹고 마시는 육의 것을 통하여 영의 사실, 천국을 깨닫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먹으라고 한 두루마리가 보아스가 룻에게 떡을 초에 찍어 배불리 먹게 한 것과 연결됩니다.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계 10:9-10). 보아스가 룻을 긍휼히 여겨 그녀를 보호하고자 떡을 배불리 먹였듯이 예수님께서 참 교회로 하여금 대 환난을 이기고 승리하고자 두루마리를 먹어버리라 하십니다.
셋째, 배불리 먹고 남았음
본문 14절에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룻은 모압에서 빈손으로 왔습니다. 오죽하면 이삭줍기를 하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 안에 머물기만 하면 하늘과 땅의 축복을 받습니다. 여호와의 날개 밑으로 찾아온 룻을 하나님은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이삭을 주우며 밥까지 얻어먹고 한 에바(17절) 즉 두 말 반의 소득을 올렸고 시어머니에게 빈손으로 가지 않고 남은 떡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 107:9). 만족함을 누리려면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좋은 것으로 채우심을 받으려면 의에 주리고 목마름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룻처럼 은혜의 날개 밑으로 나오면 하나님의 계획과 맞아 떨어지는 인도하심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더 이상 빈손 인생이 아닙니다. 먹고 남으며 남는 것으로 베풀며 사는 풍족함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식탁을 베풀 수 있느냐고 시험하며 대적하였지만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확신하였습니다. 부정적인 습관을 빨리 내려놓고 말씀 앞에 ‘예’와 ‘아멘’으로 순종에 도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