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사는 지금, 2022년 3월까지 정착하며 살아가고 있다.
처음엔 도망으로 넘어온 제주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곳으로 넘어온 나는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오히려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이 도망이 운명인 거겠지.
나와 맞는 주파수를 가진 제주.
나는 현재 이곳에서 미래를 그리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수보드 굽타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 공간 전시
제주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곳 '제주도립미술관'을 뽑겠다. 고요한 시간, 가장 완벽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게 그곳이니까. 이번 전시 또한 그랬다. 한국의 거장 '홍종명'의 전시를 몸소 느낄 수 있었고, 현대 미술에 대해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가장 완벽했던 그 순간을, 그 시간을 오늘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제주도립미술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1100로 2894-78
제주도립미술관은 2009년 개관 이래 제주 미술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지역대표 미술관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제주도립미술관은 지역을 넘어 세계로 향하는 제주다운 미술관을 지향하기 위해 지역성과 국제성을 연계한 기획 전시와 문화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지역 미술문화 발전에 이바지했다. 지역 미술사의 정립 및 국내외 현대미술의 흐름을 아우르며 자연 속에서 휴식을 제공하는 제주도립미술관은 전시, 교육, 수집, 보존, 연구 활동을 활발히 하며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으로 미술의 벽을 한층 낮춰주는 곳이다. 또, 질 높은 프로그램을 통해 방문자들에게 더욱 다채로운 미술 문화 경험을 도와주는데 힘쓰는 곳이다.
홍종명 : 내면의 형상화
2022.01.25 - 04.17 제주도립미술관 기획전시실 1
'홍종명 전시 中'
소학교 때 부터 그림을 그렸는데 미술학교를 나와서 처음에는 사실을 추구하였으며 다음에는 추상을 연구해 보기도 했다. 오랜 세월 지금까지 자연에 흩어져 있는 색과 형태를 담아 아름다움을 정리하고 구현해 보는 내면 작업에 무척 마음이 안타까운 심정이다. 이 그림은 봄의 노래인데 자연은 모두 음악이고 시이다. 자연의 노래를, 말을, 그리고 봄의 속삭임의 내면을 깊이 추구하여 미의 새로운 경지를 찾아낸다. 그리고 소생하는 모습을... - 1978년 <봄의 찬가>를 끝내고, 홍종명 작가 노트
홍종명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그런 생각이 든다. 내면의 숨겨둔 무언가를 표출해낸다는 게 이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어둑한 그림, 그 위에 입체적으로 표현된 작품의 형상, 알듯 모를 듯 궁금증을 자아내는 작품의 의미와 작품 그대로의 모습. 어쩌면 그의 작품은 위 작가 노트에 함축적으로 표시된 건 아닐까 싶다.
홍종명 그는?
'제주 삶 시작'
홍종명(1922-2004)은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나, 일본 '데이코쿠미술학교'(현 모사시노미술대학)에서 유학하고 43년 평양으로 돌아와 미술교사로 생활했다. 하지만, 작품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그는 '1.4 후퇴' 당시 서울과 부산을 거쳐 제주로 피난을 갔다.
'홍종명을 알리다'
1951년 남제주에서 일 년을 지내다 북제주로 옮겨 '오현중학교' 미술교사로 제직했다. 이번 전시는 이때 그린 작품 <자화상>(1953), <제주도 사라봉>(1953)도 같이 전시가 된다. 이후 그는 54년 봄 서울로 다시 상경한 뒤, 작품 제작에 몰두하였고 57년 국전에서 처음으로 입선했다. 이후 65년 특선, 66년 문교부장관상 등을 받으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50년대 작품은 침울한 푸른색 계통으로 그림을 그렸다면 60년대 이후 작품들은 황토색으로 칠해졌다. 거기에 형상을 겨우 알아볼 수 있게 그려 추상적인 분위기를 내뿜는다.
'70년대 그의 작품'
국전에서 추천작가상을 수상한 그는 해외 미술계를 탐방하는 기회를 부여받아 그의 작품 세계를 해외에 알릴 수 있게 되었다. 82년 개인전을 열었을 때 인터뷰 기사에서 "제주 피난시절에는 검정 색조에 무게도 있고, 박력도 있고 했었는데, 이제는 무언가 문화적으로, 설화적으로 좀 풀어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을 보아 그의 작품에 형상이 더욱 짙게, 또 구체화 되어 그려지기 시작한다.
'그의 마지막 작품'
그는 교수직을 퇴임하고 작업실도 옮겨 작품에 열중할 수 있었던 시기를 맞이했으나, 1990년대 작업실에 강도가 든 후 작품세계를 펼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현대미술의 추상과 구상 양쪽을 모두 오가며, 예술가의 혼을 불태웠고,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그리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다. 또한 제자 양성에도 힘썼는데 그의 제자로는 강태석 한승북, 김욜철, *김택화 등이 있다.
*제주에 김택화 미술관이 있을 정도로 김택화는 제주에서 유명한 화가이다.
홍종명 작품을 눈으로 마음으로 담은 나는 2층으로 올라가 홍성석의 전시를 만나게 됐다.
홍성석 : 인간의 절망을 표현하다.
제주도립미술관은 21년 9월 홍성석(1960~2014)의 작품 21점을 기증받았다. 이에 이곳 도립미술관은 수집된 소장품을 소개하고, 기증자의 뜻을 기리기 위해 특별전을 개최했다.
홍성석의 작품은 대략 세 시기로 구분하며, 첫 번째 '인체'시리즈는 상품화된 인체화 상실된 인간성을. 두 번째 시기는 2000년 초반, 인간의 무의식과 기억을 재해석하는 초현실주의적 성향으로, 마지막은 제주의 자연을 재구성하는 '탐라별곡'으로 바끼게 된다.
그는 생명성을 추구한다는점이 그의 작품세계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앞으로 연구가 뒤따라야겠지만, 그가 활동했던 시기인 90년대는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개최, 해외여행의 자유화로 국제화와 자유화가 일어났다. 이때 홍성석은 현대문명 속에서 인간성 상실, 정체성 혼란을 탐구했고, 이를 표현하고자 했다.
한 시간이 넘는 시간, 작품 세계에 빠져 유영한 나는 마지막 사진을 끝으로 전시관을 나왔다. 대한민국에, 또 제주에 이런 소중한 화가들의 작품과 그들의 시간을 엿볼 수 있다는 게 매력인 '제주도립미술관'은 특별한 경험을 선물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