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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 Ballroom:
Waltz (왈츠)
1910-1914년경, 많은 사람들이 central London에 있는 사보이호텔의 보스턴클럽으로 모여들었는데, 보스턴왈스(Bostonwals)라는 댄스를 하기위해서였고, 이 춤이 오늘날 왈츠의 전신이다.
"보스턴"이라는 춤은 미국으로 부터 수입되었지만, 1914년경에 사라져 버렸고, 그것의 기본 스텝은 "왈츠"의 방향으로 변화되었다.
세계1차대전 후에, 왈츠는 좀 더 변화 발전하여, Natural Turn, Reverse Turn, Closed Change 등의 figure를 갖게 되었다. 왈츠의 변화 발전 과정은 쉽게 이루어 진 것이 아니고, 무척 더디게 진행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기여한 사람은 "조세핀 브래들리"(Miss Josephine Bradly), "빅터 실베스터"(Victor Silvestor), 그리고 첫번째 영국 챔피언이었던 "맥스웰 스투어드" 와 "팻트 사익스" (Maxwell Steward and Pat Sykes) 들이었다.
왈츠 피겨(figures)의 표준화에 기여한 곳은 영국왕실무도선생협회(Imperial Society of Teachers of Dancing :ISTD) 이었다. 여기?정립된 많은 베리에이션(variations)들이 오늘날의 댄스 경기에서도 대부분 보여지고 있다.
History - Waltz (왈츠의 역사)
왈츠의 전신은 "보스턴"인데, 이것은 미국으로 부터 1874년에 수입되었지만, 1922년경이 되어서야 탱고만큼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보스턴" 의 이상한 특징은, 파트너가 오늘날처럼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나란히 서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계1차대전이 끝난 후에 제모습을 갖추어 발전하게 되었다. 1921년에는 기본동작이 "step, step, close"로 정하여졌다.
1922년 빅터 실베스터가 영국 왈츠 선수권을 땄을 당시에, 그의 스텝(figure) 프로그램은 Right Turn, Left Turn 과 Change of Direction (비고: Change of Direction 이것 역시 오늘날에 초보자가 배우는 것보다도 못한 형태였다.). 1926/1927년에 왈츠는 현저하게 발전하게 되었는데, 기본동작(basic movement)는 "step, step, shut" 로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의 결과로써, 댄스할 수 있는 많은 여러가지 베리에이션(variations)가 생겨나게 되었고, 이것을 ISTD(Imperial Society of Teachers of Dancing; 영국왕실 무도선생협회)가 표준화시켰다. 이런 것들이 오늘날에도 춤추어지고 있는 것이다.
Tango (탱고)
탱고의 전신은 "밀롱가"이다. "밀롱가"에서도 이미 머리와 어깨의 동작 특성을 갖고 있었는데, 이것이 어느날 "정지상태"의 동작으로 바뀌었다.
20세기초에 상류사회 사람들이 가는 소규모 극장에서 "밀롱가" 춤이 추어졌는데, 이 즈음에 그 이름이 "밀롱가"에서 탱고로 바뀌게 되었다. "밀롱가"라는 명칭은 부에노스아이레스 빈민가의 많은 추억을 담고 있다.
탱고는 그후 유럽에 소개되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파리의 아르헨티나 출신자 지역으로 소개되었던 것이다. 1907년까지도, 런던에서는 탱고가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 댄스가 너무나 관능적이어서 많은 사람이 일을 반대했다. 몇가지 스타일의 변화를 통하여 파리와 런던에서 수용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1912년경이다.
1920/1921년에는 런던의 회의에서 탱고가 표준화 되었다. 1930년대에 들어서 스타카토 액션이 탱고 안무에 포함되게 되었다.
History - Tango (탱고의 역사)
이 댄스는 남미 (주로 아르헨티나)에서 유래되었는데, 부에노스아이레스 빈민가, "바리아 데 라스 라나스" (Barria de Las Ranas)에서 처음 춤추어 졌다.
당시에 이 댄시의 명칭은 "바일레 콘 코르테" (Baile con corte; "dance with a rest"라는 뜻)으로 불리어 졌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멋쟁이들은 이것을 두가지 면에서 변화시켰는데, 첫째는 "폴카 리듬" (Polka rhythm)을 "하바네레 리듬" (Habanere rhythm)으로 바꾼것이고, 둘째는 그 명칭을 탱고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의 탱고를 옹호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반대자도 많았다. 특히 프랑스의 추기경들은 이 댄스에 대해서 반대입장이었다. 그 이유는 탱고가 상대를 유혹하는 듯한 요소와 관능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고, 이 댄스를 하는 사람들은 신성모독이라고 했다
1924년에 뉴욕의 "보헤메" 라는 의사 (Dr. Boheme)는 새로운 질병을 발견하여 "TANGO-foot"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다. 1915년 5월 30일자 뉴욕타임즈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도 있었는데, "탱고의 위험은 독일제국주의 보다도 더 위험함." 이라는 것이었다. 오늘날이라면 이런 메세지에 사람들이 눈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Slowfox (슬로우폭스)
폭스트롯트는 세계1차대전 전에 유럽에 소개되었는데, 이것은 원래에는 "슬로우" 동작과 "퀵"동작이 혼합된 정렬적인 댄스였었다. 명칭자체는 이것을 창안한 "해리 폭스"(Harry Fox)의 이름에서 온 것이다.
유럽의 댄스선생들은, 이 폭스트롯트가 갖는 거친성격때문에 이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그대신 이것을 좀 다듬기 시작했다.
1922년에서 1929년 사이에 "프랭크 포드"(Frank Ford)가 "조세핀 브래들리"(Josephine Bradley)와 함게 시범을 보이고, 또한 슬로우 폭스트롯트의 기본동작을 발전시켰다. 이렇게 변화된 내용을 가지고, 1927년에 그는 파트너인 "몰리 스페인"(Molly Spain)과 함께 Star Cham pionship에서 우승을 했다. 이때에 했던 많은 피겨(figures)는 오늘날가지도 댄스경기자들에 의하여 사용되고 있다.
그 당시에는 이 댄스에 꼭 맞는 음악은 없었다. 폭스트롯트는 40 - 50 BPM(Bars / Min.)의 템포를 갖는 것이면 어떠한 음악에도 맞추어서 추었다. 누가 밴드를 지휘하는냐에 따라서 댄스스타일이 제멋대로 변했었을 것임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빅터 실베스터"(Victor Silverstor)의 밴드가 레코드 취입을 한 이휴로는 이런 문제가 해결 되었다.
History - Slowfox (슬로우폭스의 역사)
슬로우 폭스트롯트는 왈츠가 나오기 전까지 오랫동안의 시기를 가졌는데, 폭스트롯트에 나오는 많은 베리에이션(variations)가 나중에 왈츠에도 많이 적용되었다. 이 댄스는 가장 자연스러운 댄스의 하나인데, 그 동작은 보통의 걸음걸이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제1차세계대전 끝난무렵에는, 슬로우폭스트롯트의 구성 스텝은 walks, three-steps, a slow walk, 그리고 spinturn 같은 것이었다. 1918년 말에 "재즈롤"(jazz-roll)이라는 새로운 물결이 일어났고, 1919년에는 미국인 "모건" (Morgan)이라는 사람은 일종의 Open Spinturn인 "모건 턴"(Morgan-turn)이라는 것을 소개했다.
1920년, "조세핀 브래들리"(Miss Josephin Bradley)는, 아주 재능이 많은 "앤더슨"(Mr. G.K. Anderson)이라는 사람과 함께 댄스를 했는데, 많은 슬로우 폭스트롯트의 피겨(figures)를 만들어진 것은 이사람의 공이 크다. 이 훌륭한 댄서들을 모방하는 가운데, "훼더스텝" (Feather Step)과 "체인지 어브 디렉션"(Change of Direction)같은 것이 우연히 만들어 지게 된 것이다.
오늘날에 있어서, 이러한 Feather Step과 Change of Direction 이라는 두가지 피겨(figures)없이는 슬로우 폭스트롯트를 상상할 수 도 없다. "힐 터언"(Heel turns)같은 동작은 1922년경에는 없었다.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는 많은 새로운 피겨 (firgues)들이 생겨난것은 Star Championship 대회 우승자였던 "프랭크 포드" (Frank Ford)덕분이다.
Quickstep (퀵스텝)
퀵스텝은 폭스트롯트로부터 변화되어 나온것이다. 1920년대에는 많은 밴드들이 폭스트롯트를 아주 빠른 텝포로 연주하였다. 약 50 BPM (Bars/min.)정도로 빨랐는데, 이러한 템포로는 오늘날의 폭스트롯트에 나오는 커다란 스텝은 할 수도 없었다. 즉, 초창기의 폭스트롯트는 슬로우가 아니라 Fast Foxtrot라고 불러야만 맞다.
원래 "찰즈턴"(Charleston) 이라는 것으로 부터 변화 발전된 것인데, 영국사람들이 찰즈턴으로부터 "킥"(kick)동작을 빼고, 진행해 나가는 형태의 댄스 (a progressive dance)이면서, 앞에서 얘기한 빠른 템포의 폭스트로트(fast foxtrot)와 혼합시켜서 만든 것이고, 명칭도 "퀵타임 폭스트롯트 앤드 찰즈턴"(the Quicktime Foxtrot and Charleston)이라고 불렀다.
영국인 커플인 "플랭크 포드"(Frank Ford)와 "몰리 스페인" (Molly Spain)은 1927년의 Star Championship 대회에서 "찰즈턴"의 특징인 무릎액션을 빼고 Quicktiem Foxtro and Charleston을 추었는데, 이때에 이것을 혼자서 추는 춤이 아니고 두 사람이 함께 추는 댄스로 변화시켰다. 이 댄스의 피겨에는 Quarter Turns, Cross Chassées, Zig-zags, Cortes, Open Revers Turns, 와 Flat Charleston 같은 것이 있었다. 1928/1929년에는 오늘날의 퀵스텝 특징인 "샤쎄" (Chassees)스텝형의 Quickstep이 나오게 되었다.
History - Quickstep (퀵스텝의 역사)
1920년대에는 많은 밴드들이 폭스트롯트를 너무나 빠른 템포로 연주했기 때문에 많은 불평도 있었다. 심지의 몇몇 유명한 신문이나 잡지에서도 이런 것을 언급했었다.
사람들이 "퀵타임 폭스트롯트"(quick-time-foxtrot)에 대하여 얘기를 했습니다. 찰즈턴은 퀵스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폭스트롯트의 빠른 버전(version)이 바로 퀵스텝이 된것이다.
Viennese Waltz (비에니즈 왈츠)
비에니즈왈츠 (Viennese Waltz)는 원래 독일 남부 알프스지역으로 부터 유래된 것이다. 18세기에 "벨러"(Weller), "발쩌"(Walzer)와 "랜들러"(Landler)라는 댄스가 있었는데, 이중에서 랜들러가 변화 발전하여 비에니즈왈츠가 된것이다.
1800년에서 1820년사이에 랜들러의 스텝과 피겨들의 종류가 줄어들었는데, 그이유는 음악의 속도 때문이었고, 6가지 스텝만 남아서 비에니즈왈츠가 되었다.
1960년대에는 독일과 영국에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 졌는데, 공식 시합에서 허용할 수 있는 비에니즈왈츠의 피겨 베리에이션(variations)의 숫자를 몇가지로 할 것이냐에 관한 것이였다. 1983년에 ICBD에서 최종 결정을 내렸는데, 댄스 경기대회에서 사용할 수 있는 비에니즈왈츠의 피겨는 다음의 것으로만 제한하기로 하였다. - Natural and Reverse Turns, Natural and Reverse Fleckerls, The Contra Check change from reverse fleckerl to natural fleckerl danced over on-e bar of music
필자 개인견해로는 비에니즈왈츠에서도 좀 더 많은 피겨를 추가하는 것이, 이 댄스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는데, 제한하고 싶은것은 다음과 같은 피겨들은 포함시키면 어떠할까 생각한다. - Throwaway Oversway, Natural Hinge line on right side, Natural Off-beat Spins
History - Viennese Waltz (비에니즈 왈츠의 역사)
12세기와 13세기경으로 되돌아 가면, 비에니즈왈츠의 뿌리라고 볼 수 있는 "나흐트탄쯔"(Nachtanz)라는 것이 있다.
비에니즈왈츠는 원래 바바리아 지방(Bavaria)으로 부터 나왔고, 원래 댄스 명칭을 "German" 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근원설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블란서 파리의 한 잡지인 "La Patrie"(The Fatherland)에 실린 어느 주장에 의하면, 왈츠의 원조가 되는 댄스는 1178년 파리에서 처음 춤추어 졌고, 그 이름이 "Volta" 같은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기서 주장하는 비에니즈왈츠의 원조라는 것이 아마 3/4박자의 댄스인것 같은데, 왈츠 멜로디가 처음 나온것은 1770년 경이다. 이것이 파리로들어간 것은 1775년이다. 그러나 많은 곳에서 비에니즈왈츠가 춤추어 진것은 이 보다 훨씬 뒤의 일이다.
1813년, 시인 바이런(Byron)은 왈츠를 평하기를 "정숙하지 못한"(또는 "음란한") 댄스라고 하였다. 1816년에 왈츠가 영국에서 수용되었는데, 왈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논란이 1833년까지 끊이지 않았다. 1833년 "셀바트"(Miss Celbart)가 "좋은 행동"(good behaviour)가 어떠한 것인가를 논하는 저서가 출판될 때까지 논란이 계속 된 것이다. 셀바트의 저서에 의하면, 왈츠라는 댄스가 결혼한 숙녀에게는 허락되지만, 결혼안한 처녀들이 하기에는 좀 곤란한 것이라고 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