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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 생일 편지"를 쓰신 정종 박사님을 소개해 드립니다.
60년만에 찾아온 백호의 해, 정초에 95세에도 청정한 삶을 살고 계시는
온버린 정종 박사님을 소개해 드립니다.
■ 정 종 박사
아호: 온버림
․ 1915. 전남 영광 출생,
. 1938. 중앙불교전문학교 졸업
․ 1941. 일본 동양대학 철학과 졸업
․ 1942. 경성보육학교 교감,
.1944. 영광유치원 원감
․ 1945. 영광민립중 교감,
. 1948 광주의대 예과 부교수
․ 1952. 전남대 철학과 교수,
. 1958. 동국대 철학과 교수
․ 1975. 철학박사 (돋국대),
. 1980. 한국공자학회 부회장
․ 1981. 원광대 철학과 교수,
. 1985. 한국공자학회 회장
․ 현재, 동국대 명예교수, 전남대 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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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시인은 씨를 뿌리고 철학자는 거둔다
우리는 위에서 하이데거와 횔더린과의 생산적인 <씨와 열매>의 근친관계를 뚜렷이 보았다. 철학이 없는 시와 시가 없는 철학이 모두 절름발이 시며 철학임도 아울러 살펴 보았다. 그들의 공통분모는 조르게 Sorge 또는 고뇌였다. 난제難題가 없는 시인과 철학자가 없듯이 안팎으로 찾아오는 우수나 고뇌가 없는 시인도 철학자도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 속에 철학이 또 철학 속에 시가 깃들어 숨쉬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생철학의 창시자 딜타이(Dilthey, 1883. 11. 19 - 1911. 10. 1)는 우리의 “삶은 불꽃이다. 그리고 존재가 아니다 삶은 에너르기다. 그리고 실체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더욱 삶은 구조연관 Struktur zusammenhang이며, 통일체고 역사적이다. 따라서 그것은 개념적 사유로서가 아니고 체험 Erleben 또는 Erlebnis(독일어에 있어 삶 Leben은 체험에서 나왔고, 양자는 결국 하나다)에 의해서만 파악된다 라고 한다. 실인생의 생생한 Erleben에 밑받침된 진실한 사색에 의하여 Leben의 의의와 가치를 추구하고 Leben의 수수께끼를 해명하는 일이야말로 생철학 Lebenphilsophie의 본령이라고 딜타이는 말하면서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무엇 때문에 거기에 있는가?”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들이 모든 물음 가운데서 가장 보편적인 물음이며 또 가장 많이 나를 엄습해 오는 물음이다. 시적 천재(괴테 등)나 사상가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도 한다. 지난 70년대 유신체계의 공포시대에 민심을 사로잡고 허무적이고 인생무상을 노래한 선풍적인 유행가, “인생은 나그네 길 /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로 시작되는 <하숙생>(최희준 노래)의 가사를 연상하게 하거니와 또 다른 측면에서 유명한 영화 <사브리나 Sabrina>는 주연자인 오드레 헵번 (Audrey Hepburn, 1929 - 199?)의 이름인데 그녀는 빠리에 가서 요리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외쳤다. 만년소녀며 영화속의 자기와 실존적 자기가 언제나 하나이기를 고집해본 일종의 성격배우였던 그녀의 <사브리나> 속의 대사를 직접 들어보자. “나는 실로 많은 것을 배워왔노라. 비단 요리학 뿐 아니라, 더욱 더 중요한 것을 익혔다고 생각하노라. 나는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하여 배워왔노라 - 이 세계에서, 그리고 이 세계 앞에 어떻게 나설 것인가? How to be in the world and of the world를 배워 가졌노라.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나의 인생 - 단 한번 뿐인 인생에 대한 방랑자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결단코 두 번 다시 나의 인생으로부터도 그리고 나의 사랑으로부터도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란, 영화속의 사브리나의 인간 선언이자 인간 헵번의 실존선언으로, 딜타이의 생철학의 본령의 구현이자 구체화다. 이 작품의 씨나리오 라이터는 필시 딜타이 철학의 신봉자요 구체현자 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딜타이와는 전연 무관하게 우리들 모두의 인간으로 태어난 인간 모두에게 일반적 ․ 근원적인 또 보편적인 생철학적 염원과 동기에서, <철학 이전>의 상태에서 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딜타이의 생을 근원으로 삼는 철학은 그 뒤로 <철학적 인간학>과 <실존철학> 등의 모체 구실을 톡톡히 하게 되거니와 그의 이와같은 생절대 긍정 사상은 괴테로부터 특히 <파우스트 Faust>에서 잉태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체험과 창작> Das Erlebnis und die Dichtung - 1905, 참조)
우리는 “언제나 이성 理性을 분모로 하여 우리의 삶의 총액을 쪼개려고 하지만, 실인즉 불가능하며, 또 이로써 하게 될 것 같으면 언제나 삶의 잉여剩餘 das Mehr가 더 많이 생기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체험으로 쪼개내지 않으면 商상이 나오지 않는 계산이 있으니 이게 바로 생의 유형 Lebensform의 본체다.”라는 괴테의 영향 하에 딜타이는 “어떠한 삶에도 분석되지 않는 잉여가 있다”라고 요약하고, 전기 저서에서는 모국어 시인들의 삶 Leben의 체험 Erleben으로서의 시적 표현 속에서 삶의 구조적 연관성을 이해 ․ 파악하고 특히 괴테의 문학을 시와 철학의 아름다운 조화의 극치로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위대한 작품치고, 자기고백 아닌 것이 없다” (곧 자기체험의 고백)라고 갈피한 괴테의 체험을 통한 발언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괴테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위에서 우리가 지적한 바 실상을 잘 밑받침해 주기도 한다. “나는 겪지 않은 것, 나를 애타게 하거나 마음 쓰게 하지 않은 것 들은 작품으로 쓰지도 않고, 표현하지도 않았다. 사랑할 때만 사랑의 시를 썼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세상은 넓고 또 풍성하며 인생은 다양하니까 시를 쓸 동기가 사라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라고 괴테는 덧붙였다. 과연 그렇다. 인생은 다양 ․ 다원 ․ 다기하고 그 이모저모가 기기묘묘하고 오밀조밀하고 데리케이트한 것이므로 시원 詩源과 더불어 철학의 원천도 이 지구에 종말이 오기까지는 인류와 그 삶과 함께 고갈하지는 않을 것이다.
괴테에게 있어서는 <무체험 곧 무문학>이다. 체험이란 딜타이에게 있어, “나에 있어서의 나의 발견”이므로 곧 삶이요, 따라서 삶을 떠나서는 시도 철학도 사상도 없다. 그리하여 우리에게도 <무체험 곧 무철학>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한 인생”과 “넓고 풍성한 세상”을 살기 위해 괴테가 중점적으로 택한 것이 무엇일까? 그건 다름 아닌 이성과의 사랑, 그것도 “사랑해선 안될 대상”과의 사랑이었다. 오로지 거기서만 사랑으로 인한 애탐과 마음씀과 고뇌가 자신을 못 살게 굴음으로써, 인생의 깊이와 오묘함과 이상야릇함 ․ 신비로움 ․ 슬픔 ․ 우수와 고뇌를 맛볼 수 있고 그 삶의 음미 곧 체험을 통해 시詩가 창작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입장에선 처녀 ․ 총각과 과부와 홀아비 사이의 그것은 조금도 사랑이 아니다. 풍성한 가능성을 전제로 한 이성관계에서는 사랑체험도 삶의 심연체험도 시적 고뇌체험도, 불가능하게 되고 따라서 불가능성에의 도전과 그러한 사랑의 공격에서만이 이 소중한 것들이 비로소 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손바닥 뒤집듯 쉽게 이루어지는 이성 사이에서는 “육肉의 질서”가 형성될 뿐 사랑에 의한 창조는 있을 수 없다. 난공불락의 성채는 (함락되지 말고) 영원한 철옹성으로 남아 있어야만 공격과 전투가 끈질기게 계속되는 법, 이와는 반대로 손쉽게 함락될 때는 일체가 끝나고 만사휴의 정적으로 돌아간다. 정적은 정열이 아니다. 따라서 사랑의 공격의 영구화를 위해선 상대편에서 언제까지라도 백기를 들고 나와서는 안된다. 우리는 “사랑 - 약혼 - 파혼 - 독신”이라고 하는 사랑체계의 소유자인 케르케골의 구원의 연인 레기네 ․ 올젠 (Regine Olsen, 1823 - 1904)에 대한 짝사랑에서도 괴테의 귀족 유 ․ 부녀며 연상의 여인 C. 슈타인 Stein에 대한 사랑의 공격과 그에 대한 사랑의 함락으로 (두 시인이 모두) 이제까지의 사랑을 급중단 ․ 포기하고 이국땅으로 고비원주해 버린 사실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잠간 이야기가 옆으로 흘렀지만 그것은 괴테의 시적 ․ 철학적 입장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가 나는 “사랑할 때만 사랑의 시를 썻듯이” <무체험 곧 무시無詩>론을 재확인 하면서 철학이고 기타 온갖 문화활동이고 구별없이 모두가 체험 ․ 경험 ․ 실험이라는 생생한 방법이 중심이 되어, 삶의 (현)장場으로부터 일탈된 원심점에서 구심점으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와 복귀를 감행하자는 데서였다. 추상화나 추상시가 아니고 <실존시 實存詩>라야 감동 될 수 있듯이 철학도 구체적 현실의 그것이 되고 삶의 그것, 인간의 그것, 그래서 실존의 철학이 되어 보자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과 철학자의 상즉상입相卽相入의 관계를 재정립해 보기로 한다. 시인은 남이 못 보는 것을 보는 눈과 남이 못 듣는 것을 듣는 귀와 남이 못 느끼는 것을 느끼는 감각을 가지고 있지만 (여기서 남은 일반인), 그에게 더욱 발달한 것은 미각과 후각과 영감(각)이다. 날카로운 미각으로 (괴테는 요리의 대가요 황석영도 그렇다.) 역사 ․ 시대 ․ 사회의 갖가지 맛을 먼저 맛 보고 그 참맛을 읽어내며 거기서 인간의 <멋>이 무엇이고, 또 <멋>이란 어떠한 것이어야 함을 정리 ․ 표현해 내야하고, 짐승처럼 예민한 후각을 가지고 역시 역사 ․ 시대 ․ 사회와 민중의 삶의 터전에서 썩고 더러워진 악취를 맡아 썩지 않는 것을 들추어내야 하며 제6〮〮〮제7 영감(각)을 가지고는 지금 도래하고 있는 역사와 시대, 그리고 거기서 전개될 사회와 민중의 삶터의 소리 아닌 소리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이상한 증후에 대하여 후각과 촉각을 곤두세우며 맛없는 맛을 맛보고 아직 썩지 않은 원초의 순백이나 때 묻지 않은 동심과 같은 자연(스러움)의 세계, 태초와 대자연의 원형과도 속삭일 줄 알아야 한다.
여기서 나는 위에서와 같은 나의 생각과 적이 공감대가 형성되는 시 한편을 발견했다. 김윤호의 <새 천년 밝혀 줄 영광의 희망이여!>가 그것이다. 여기에 옮겨 본다.
억울한 자의 눈물을 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까지 보는
영광의 밝은 눈
힘없는 자의 한숨소리를 듣고
풀잎들의 숨소리까지 듣는
영광의 큰 귀
두려움 없이 동네방네에 알려서
사람들의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는
영광의 보배 입
철학자는 이 시인들의 위와 같은 온갖 소식 ․ 보고 ․ 고발 ․ 정보 ․ 표현들을 에누리 없이 생생하게 종합 ․ 정리하되, 원 모습 그대로를 살리는데 힘써야 한다. 이 작업은 시인과 철학자의 1차적인 역할 분담에 자나지 않는다. 이 작업은 “미네르바 Menerva의 올빼미”처럼 “죄없고” “사무사思無邪”한 시인의 작업이 일단 끝난 뒤에나 또는 작업과 거의 동시에 그 발자취를 추적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추사유追思惟nachdenken라고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시인이 자신의 오관과 제6감을 동원하여 이들을 받아들이면서도 그와 동시에 철학자적 안목을 가지고 개념적으로 재구성하고 표현함으로써 시작詩作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이에 철학자도 자신의 고유한 오관과 제6감으로써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시인적 안목을 동원하여 직관적으로 재구성하고, 표현함으로써 일련의 사상을 체계화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전기 <체험과 창작>에서 딜타이가 이룩한 작업에서 그것을 본다.) 이처럼 시인은 시인이로되 철학자적 안목으로 시작(詩作)해야 하고 이에 대해 철학자는 철학자로서 시인적인 안목으로 철학을 영위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올바른 시, 민족과 더불어 호흡을 같이 하고, 민중의 눈 ․ 귀 ․ 혀 ․ 코와 피부가 되어 주는 시 또는 이것들을 대신하는 시 곧 민중의 소리가 산채로 묻어 나올 것이며 “신의 눈짓”을 눈짓으로 붙잡아 민족에게 눈짓으로 전하는 감동의 시가 되어 질 것이며 철학은 공리공론에 흐르지 않고 사상을 위한 사상도 아니고 중세기적 번쇄에도 흐르지 않고 관념의 유희나 말장난 따위는 더욱 아닐 것이며 주관적 취미론도 아닌 현장론적 이며, 보편 타당한 공감적 체취가 물씬거리는 사상으로써 현실을 똑바로 지도하고 민중을 우매와 맹종과 방황으로부터 구제해야 할 것이다.
공자시대의 중국은 통일 정부 없는 난세 였다. 난세를 등지고 대자연 속에 묻혀 사는 은자隱者들은 동가식서가숙하며 동분서주하는 공자와 그 문도들을 비아냥 거렸다. 이 어처구니없는 작태를 보고 공자는 장태식하며 말했다. “나는 저들처럼 조류나 짐승과는 도저히 함께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도탄에서 헤매는 이 사람들 (논어, 공야장 8)과 동고동락하지 않으면, 대체 누구와 더불어 하란 말인가? 내가 몽매간에도 잊을 수 없는 것은 이 민중이다. 이들이 무리져 살고 있는 인간 사회를 내어놓고 내가 갈 곳이 어디란 말인가? 물론 그렇다. 천하에 인仁지도나 인륜지도를 비롯해 정치적 ․ 도덕적 질서가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면야 구태여 내가 나서서 구제니 개혁이니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 아닌가?” (미자편 6)라고 했다. 동서고금의 위정자들은 그것을 직업으로 삼는 정상배가 아니라 삼고초려로 이끌려 나오는 소명의식에 찬 지도자라야 할 것이다. 민중을 팽개치기는 커녕 항상 더불어 살기를 소원하고 실천에 옮긴 공자의 진면목은 일목요연하다. 철학자며 시인인 인간 공자의 발자욱을 따르기만 한다면 시인도 살고 철학자도 살아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철학은 하루의 역사가 끝난 석양에나 날갯짓을 하는 따위의 “미네르마의 올빼미”가 아니라 꼭두 새벽부터 땅거미가 질 때까지의 밝음 속에서 역사의 현장과 씨름하며 민중의 소리 없는 소리 곧 천심으로서의 민심을 읽고 기록, 정리, 판단하고 또 전파 해야만 민중을 위한 민중의 진리가 되고, 그들의 앞길을 밝혀 주는 행복의 철학 곧 <민중을 위한 철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민중은 현실이요 이상은 반드시 현실 속에서 잉태 ․ 생산 되어야만 사상을 위한 사상이나 지식을 위한 지식이 아닌, 토착적 ․ 실존적인 철학이 될 것이다.
9. 시인과 철학자는 민중의 한恨을 풀어줘야 한다.
우리 나라는 건국 이래로 오늘 이 시각에 이르기까지 끊임도 없이 줄기차게 이어지는 외침과 외침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 실록>의 집계에 따르면 건국이래 931회의 외침을 받았는데, 조선왕조가 입은 외침 360회가 그중에 포함되어 있다.) 사이 사이의 짧은 <막간 평화> 속에서 민족의 맥을 이어 오는 동안 대륙의 넓으나 넓은 국토를 강탈당한 끝에 압록과 두만의 두 강 이남의 좁디 좁은 반도의 산악지대로 밀리고 또 밀려 가까스로 겨레의 핏줄을 이어 오면서도 국토를 지키고 고유하고도 우수한 <한글>이라는 말과 글자와 전통문화를 고집스럽게 지켜 왔다. 전쟁과 전쟁의 하프타임 속에서도 평화를 노래하며 슬픔과 한恨을 춤으로 승화시켰다. 그만큼 한국민족은 낙천적이며, 이승과 지상과 인간중심적이었기에 예술민족으로서의 <멋 사상>을 간직하게 되었다. 저승과 천상과 신에게는 멋이 필요 없다. 종교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승과 인간제일주의 사상에만 멋이란 깃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후각과 미각이라고 하는 원시적 기본감각이 유난히 발달한 한민족은 다채로운 음식문화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맛의 세분화 ․ 섬세화 ․ 정밀화를 통한 미각 곧 예술감각의 비상한 발단도 독특하고 고유한, 감칠 <맛>나는 세계를 구축하고 이상적인 인간상을 민족적 목표로 삼고, 이를 <맛이 있는 사람>이라고 일컬었으나, 인지가 발달하면서 형이하적에서 형이상적 차원으로 높여져 <멋>이 정립됨으로써 맛과 구별짓게 되었다. 이를 정의하자면, 멋이란 “이상적 인간상(물론 한국적인)이 풍기는 아름다움에 대한 예술민족으로서의 한민족 특유의 미의식적 표현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한민족에게 있어서 <멋>의 발견은 전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는 보편타당적인 이상적 인간상의 제시임과 동시에 종합감각으로서의 미味감각이 발달한 한국인 고유의 표현형태라는 점에서 인류 전체와 그 문화에의 공헌이 자못 크다. (공자가 정립한 중국민족의 <군자>개념과 그래시아민족의 <미차선 美且善 Kalokahathia>사상과 이를 구체현한자 카로카가토이 Kalokagathoi에 대한 사상과 표현방식만 달리했을 뿐, 보편적인 목표에 있어서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민족 사회에는 신분제도의 벽이 두터워, (양)반 ․ 상(놈)의 계층차와 적 ․ 서출의 구분도 심한 터다. 착취 ․ 피착취 계층차로 인한 빈부의 격차 또한 극에 달했다. (반상의 갈등과 조선왕조의 지나친 배불숭유 정책으로 승려들이 천민 취급되는 바람에 으레 <놈>자를 붙여 부르는 등, 우리 속담에 대량으로 나타 나고 있다. 이 불미한 풍습의 거개가 좁은 국토의 산악지대에서 외부와의 단절 에서 살다 보니 그렇게 <울안주의>로 흐르게 되었고 그래서 비대륙적이다. (오늘날의 지역감정주의나, 텃세주의나 이방인 거부증 등 모두가 <울안주의>의 산물이다.) 직업의 귀천관이나 남존여비사상도 그 테두리 안에서 못 벗어난다. 그럼에도 국란을 맞게 되면 상민과 빈민과 농민이 앞장서 나라의 방패 역할을 다 했다. 이 나라의 그 나마의 명맥은 이들 민병, 의병, 승병들에 의하여 이어지고 그 가냘프나마 질기고 줄기찬 민족의 저력 덕분에 오늘에 이르렀으니, 천민 ․ 빈민 ․ 상민들을 망라한 절대다수의 민초들이 이 나라의 실질적인 주인공이자 불멸의 생명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멋을 알고 멋을 체득하고 멋을 구현하는 오늘의 시인들은 민중 속으로 뛰어들어가 <더불어 고뇌하는 한 마당>을 만드는 데 (공 고뇌의 공간 형성) 힘 써야 할 것이다. 흔히 하는 우리말로 “슬픔은 같이 할수록 줄어들고 기쁨은 같이 할수록 늘어나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희로애락을 같이 하며 그 시원詩源에 자극을 줌으로써 높은 차원의 예술로 승화시켜야 한다. 흡사 신라의 원효대사가 그 생애의 후반기에 민중을 찾아 누항에 뛰어들어가 호흡을 같이 하며 귀족독점의 상층불교 또는 민民의 한과 뇌와 고를 외면만 해 오던 불교, 불의 뜻을 어긴 불교를 밑으로 바닥으로 끌어내림으로써 민중불교화의 길을 걸으며 사사무애의 경지를 몸소 구체현 했듯이 시인과 철학자도 갇혀 있던 껍질을 깨고 이를테면 플라톤의 동굴 밖으로 뛰쳐 나와야 한다.
나는 30년대 초의 고보생 시절에 배운 애창곡 하나를 오늘도 가끔 혼자 부르며 젊은 날을 되살려 보곤 한다. 그러노라면, 왜나라 강점하의 우리 겨레가 얼마나 비참했던가를 되짚어 보게 된다. 일제를 살아보지 못했던 후생들이 선인들의 수난고를 오래 간직해 둬야 한다는 뜻에서 <낙동강변 넘어로>를 남겨 두기로 한다. (귀포는 구포로서 지금은 부산시에 편입돼 이 노래를 부를 수 잇는 어른들 거의 떠나버렸을 것 같아서다.)
① 달빛아래 칠백리 낙동강변 넘어로 / 은혜로운 봄바람 한가히 불어들 제 / 귀포의 물레방아들은 / 목놓아 우나이다.
② 봄철마다 울리는 아름다운 노래여 / 만백성을 기르는 영원한 어머니라 / 고요한 그대의 젖꼭지에 세월은 흐릅니다.
③ 창포밭에 저 비석 제비똥 가득한데 / 밭고랑에 청기와장 간장을 끊는구나 / 귀포의 물라방아들은 언제까지 우시나요?
이 노래는 애조를 띠운 가락에 가사도 회고적 향수적이고 잃어버린 조국땅에의 간절한 그리움과 슬픔을 담은 민족혼가라는 이유에서 얼마 안가 금지곡 처분을 받았다. 이 노래는 몰래 불렀다. 그 젊은 날 친구끼리 부르노라면 우리의 한과 겨레의 한이 맞아 떨어져 위안이 되는 듯 싶었고, 카다르시스 작용으로 어떤 분노와 억울함과 슬픔이 마음의 평온과 흐뭇함으로 뒤바뀌는 듯도 싶어 자주 자주 불렀다. 그 땐 애국가도 모르던 때였다. 그러나 그 가사 작성의 시인은 애국가 가사도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이처럼 한국의 시인과 철학자들은 지정학적 ․ 역사적 조건에 바탕을 두고 오fot 동안 안팎으로 시달리며 살아온 소리 죽인 민중의 심신양면에 걸친 숙명적인 고달픔을 함께 괴로워하면서 이를 척결 ․ 호소 ․ 고발하고 또 그것의 조국을 위한 사회적 ․ 국민적 차원의 관심 환기에 이바지 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 들은) 항상 공동전선을 편다. 전환기적 역사상황과 안정기적 상황 (또는 창업기적 및 수성기적 상황)에 따라 주어진 각자의 조건과 한계성 타개를 위한 공동의 목표를 향해 시인은 철학이 있는 시작(詩作)에 종사하고 철학자는 풍성한 시정신이 넘쳐 흐르는 사색, 이를테면 앞에서 “<조르게 Sorge에 잠긴 사람 곧 가인歌人에의 사색> 만이 곧 그러한 철학자만이 시인을 참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시인과 철학자는 조르게를 매개로 서로가 민중의 한恨과 비애와 고뇌를 나 자신의 그것으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나 자신의 실존적인 한과 비애와 고뇌의 자기 체험을 바탕으로 민중 전체의 그것을 이해하고 공감 수용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의 젊은 날 (1930년)에는 제정 러시아에서 펼쳐진 1820년 대의 농민개혁을 동인 <브-나로드 V narod>운동을 본떠, 농민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계몽운동을 전개하기도 했거니와 독일어 힌아인레벤 hineinleben도 “그 속으로 들어가 함께 산다”는 뜻으로 <브-나로드>와 통한다. (여기서 힌아인디히텐 hineindichten(뛰어 들어가 더불어 시작(詩作)한다)과 힌아인덴켄 hineindenken(뛰어 들어가 함께 사색한다.)과 힌아인라이덴 hineinleiden(뛰어 들어가 더불어 고뇌한다.) 라는 말이 나왔거니와) 그와는 반대로 <뛰쳐나와 시작하고 사색하고 고뇌함> herausdichten, herausdenken, herausleiden은 적어도 오늘날과 같은 전환기적 극한상황 하에서는 무의미하다. (공자시대의 은자의 경우처럼) 들어가면 나 자신도 전체가 되지만, 뛰쳐 나오게 되면 혼자도 결국 혼자일 수 조차 없다. 혼자만의 안일과 독선이나 배타적 외면 따위는 그 자신도 위협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전체와의 상즉상밉의 혈연관계가 그 바탕을 이루는 데서만 개인의 자유와 개인간의 평등의 원리도 가능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중국의 전통적인 이상적 인간상으로서의 군자는 “화이부동 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 同而不和”한다고 갈파한 (논어 자료편 23) 공자의 <사회 윤리학>은 2,600년 뒤의 오늘에도 여일하게 유효 적절하다.
10. 시인이자 철학자인 인간 공자
음악 애호가에다 음악 평론가이기도 한 공자는 시인으로서 그리고 구도자로서 인생고와 세계고에 시달리고 있는 민중들이 무리져 있는 곳을 떠나거나 그들을 잊어본 적도 없거니와 그의 삶의 한복판에서 우려(곧 고뇌)도 기쁨도 보람도 멋도 찾아 즐길 줄도 아는 (지 ․ 효 ․ 락 知孝樂, 논어 옹야편 18) 예술가로서 교육자며, 철학자 였다. 그는 철두철미 시의 세계에 무게를 두고 이를 높이 평가 했으며 (논어 계씨편 13) 항상 신비스러운 것 ․ 초자연적인 것 (불가사의 한 것들)의 불합리성에 대해 경계하고(논어 학이편 20) 이들을 경원敬遠 (논어 옹야편 20)하는 과학정신의 구현자이기도 해서 노상 인간적으로 겸허하고 솔직하며 인간과 이승과 지상의 삶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했다. (인간본위 ․ 이승제일 ․ 지상유일주의 등) 전술한 바와 같이 <시경>의 정신인 “사무사思無邪”는 동시에 인간 공자 자신의 내면 세계를 단 한마디로 자기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인류의 교사”로서 <인류의 구제>를 위해 떨치고 나선 공자는 도탄에 빠진 민중의 탁류 속으로 한 몸을 기꺼이 던졌다. (애중주의 愛衆主義 - 논어 학이편 6) 그가 군주학 ․ 제왕학 ․ 치자학을 강구講究 한 것도 궁극적으로는 민民의 입장에서 민을 살피기 위해서 였다. 그는 그 자신을 두고, “오소야천 吾少也賤 (논어 자한편 6)”이라 솔직 무심하게 자기폄하할 정도로 천민들의 벗이었다. 그래서 한 말이 이랬다. 당시의 은(둔)자들 그러니까 헤라우스레벤 herausleben 곧 박차고 나간 삶을 영위하는 도당들파의 대결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공자로 하여금 자신의 입장과 미발표의 사상 천명에 크게 이바지 하고 있다. 나의 삶의 터전과 싸움터가 이 땅, 이 민중 속이 아니고는 어디에도 없다고 대응한 것이 그것이다. (논어, 미자편 6) 현실참여의 적극성에 대한 당위성과 너무 인간적 ․ 인간스러움 ․ 인간미가 넘치는 심정을 진솔무미하게 피력하고 있는 여기 공자의 사인주의斯人主義는 2,600년뒤의 지금에 와서도 효과 백프로를 자랑한다. 현대의 허무주의 ․ 상대주의 ․ 염세주의 ․ 정치냉소주의 ․ 자포자기주의 ․ 일체무정주의 특히 타의 권위불인정 ․ 인간부정의 황금과 기계만능주의의 탐욕적 무한경쟁 ․ 아무렇게나 살자는 금수지향주의 등등이 기승을 부리고 일체를 부정하려든다 해도 최후의 하나 인간 그 것만은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진작 강조한 바 있다. 그래서 일체의 이념과 이데올로기가 모조리 살아져 버린다 해도 단 하나 남아야 하는 것이 휴머니즘이요. 우리의 사인주의다. 시인과 철학자와 구도자와 삼천대천 세계의 제왕들은 민중 속으로 뛰어들어가 민중의 한과 애닲음과 고뇌를 대신 노래하고 그들의 순박하고도 죄가 없는 인간성을 드높이고, <존재한다> 곧 깨끗하게 열성을 다하며 지금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값어치가 충분하다는 새로운 경지를 열어야 할 것이다. 괴테가 “최대의 기적은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서동시집> 라고 말한 것 처럼 말이다. 우리 속담에서와 같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식으로, 산다는 것을 내어놓고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건 없다. 인격은 존엄하고 삶은 절대가치에 속한다. 그러니 사람노릇 - 사람도리(사람다움) - 사람구실 - 사람몫 - 사람값을 다하는 삶이 슬기롭고 멋있는 삶이다. 죽어서 무릉도원으로 간들 무슨 소용이랴. 미생물이 인간과 같은 생명체라는 한가지 점에서 아무런 질적 차도 없다고 본다면 인간생명체에게 저승이 있다고 믿는 이상 미생물에게도 나름대로의 저승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며 만약 미생물에게는 그게 없다고 단언한다면 인간 생명체에게도 역시 그게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인간의 선택된 존재설이나 만물 영장설을 믿는 사람은 생물학적으로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생물 - 인간 - 무저승 문제는 무척 많은 종교적 ․ 신앙적 논란을 일으킬 것 같으니 별도의 문제로 치부해 둘밖에 없다.
나는 지구촌 Global Village, Mcluhan의 조어)의 하루살이 뿐 아니라 일체의 존재자 (만유 - 삼라만상)에게는 한결같이 존재 이유 raison detre가 있고 제각기 쓸모가 있는 것이므로 한국의 속담에서는 “사람과 쪽박은 있는 대로 쓰인다”, “개천에 내다버릴 종 없다”라고 했듯이, 이를테면 쓰레기통 속의 누더기 하나로부터 수성 ․ 금성 ․ 화성에 이르기까지 버릴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며 또 그렇게 실천에 옮기고도 있으니, 이건 나의 천성에 속하는 사항인 것 같다. (일체만유 개유 “존재이유”론)
공자의 사고학 아닌 사인학事人學과 지사학知死學 아닌 지생학의 근본되는 정신 (논어 선진편 11)은 한민족에게 그대로 온존溫存되어 있다는 역력한 사실이 위에서 그대로 보인다. 다시 본즉, 공자는 신을 섬기기 전에 사람을 섬겨야 하고, 죽음을 논지하기 전에 삶을 말하고 또 터득해야 한다는 것인 즉 우리네의 이승 - 지상 - 사람 제일주의와 생명절대주의 사상은 그 이념의 계승 ․ 실천 ․ 주체화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기에 이르는 말이다.
11. 인간 ․ 삶의 으뜸 사상
인간은 시인이 되거나 철학자가 되고 과학자나 운전기사가 되기 위한 과도적인 방편으로서가 아니라, (그 와는 정반대로) <인간>이 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개성 창달적 직업인 또는 전문가가 되는데 불과하다. 무엇인가의 특수인이 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그것을 궁극 목표로서의 “사람이 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사람다운 사람 - 사람 노릇과 사람 몫을 다하는 이라는 뜻의 사람으로서, 삶다운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해 각자의 흥미 - 관심 그리고 능력에 따라 올곧은 삶의 자기 완성을 위해 이 땅에 온데 불과하다. 인간 앞에는 아무것도 없듯이 삶을 내어놓고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사람이 되는 게 궁극목표고 그때 그때와 그곳 그곳에서의 직업이나 일거리, 기술 따위는 문자 그대로 한낱 생존수단에 불과하므로 오랜 전통사회의 전근대적 직업귀천관도 외국 선진사회에서처럼 일소될 것이며 또 그렇게 되면 절로 입신양명주의나 출세 만능주의적 아귀다툼도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공자의 <군자학>에서 그 전모를 보았다. <공자의 “군자불기君子不器” (논어, 위정편 12) 사상은 그 단적인 표현이다.> 군자 곧 제 도리 제 구실을 다하는 인간만 되고 나면 그 바탕 또는 토양 위에 특정 직업이나 기술등 창조적인 개성이 뿌리를 내리게 된다. 우리 겨레의 전통적 교육 목표가 “사람이 되라”는데 있고 더 나아가 <멋이 있는 사람>이 되라는 데 있음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사람이 다 된 사람>은 곧 <멋이 있는 사람>인데 그 신분여하에는 관계없이 지상에 온 보람을 다한 것으로 최고로 명예로운 일이고 그 반대의 경우는 자상에 와 해악만 남기고 갈 뿐이다. <사람이 덜 된 사람>의 경우 말이다. 전자를 우리는 <보통 사람> 또는 <상식인>이라고 부른다.
보통사람의 철학은 상식common sense 이다. (프랑스인들의 봉․쌍스 Bon sens) 인간에게는 보편적인 공통의식으로서의 <상식>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이미 증명이 불필요한 자명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는 바 이 근본적인 원리를 직감 ․ 직각할 수 있는 능력을 일러 상식이라고 한다. 따라서 상식의 세계는 주어진 공동체의 율법적인 규범이라고 하는 도덕적인 압력의 세계며 다시 말해 시민사회의 공통분모적인 준거의 세계이기도 하다. 때문에 상식에 어긋나는 말이나 행동을 한다거나 거짓 증언을 하는 예외적인 특정 위인은 무용지장물이며 이 땅에 와서는 안 될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상식이란 평평범범한 보통사람들 곧 민중의 보편적 의식 또는 그 행동의 근본 바탕을 뜻한다. 이렇게 상식으로 무장된 보통사람들로 가득찬 사회가 건전한 사회요 이상적 ․ 민주적인 대망의 사회다. (이와 같은 상식은 초등교육을 통해 그 바탕이 형성되는 것이므로, 이를 위해 교육대학 교육의 충실도 제고와 학생들의 엘리트화를 도모하고, 이를 위한 당해 교육기관의 완전 국제화 계획이 우선적으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우리들의 입장에 서기만 하면 인류사회에서 계층간의 별이나 귀천의 차가 사라지고 <사람이 된다>라고 하는 맹자의 <천작天爵>만이 최고의 현직顯職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직업이나 신분 따위의 귀천은 한낱 인작人爵에 불과하다.) 만인에게 공통된 직업은 <인간(이라는) 직업> 곧 천작자가 되는 데 있다. 인간의 인간으로서의 천직은 그래서 성聖직이 되는 것이다. 고대 그래시아의 소피스트 Sophist들이 자기에 직업을 자기 선전한 데서 프로펫션 Proqession이라는 직업명이 나온데 반해 하늘의 부르심을 받아 자신의 부족감을 떨치고 나온 곧 베루펜 berufen 되어 나온 Beruf는 현직으로 번역되는 독일어요 영어의 콜링 Calling에 해당된다
아무튼 <인간 성직론>이나 <인간 천직관>은 그 자체가 최고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므로 하루라도 빨리 상식화 ․ 보편화 시키면 시킬 수록 좋을 것이다. (초등교육으로 부터) 이 성직작업은 호모-사피언스 homo-sapiens가 지구상에 뿌리를 뻗은 이래로 더욱 동북아시아 서의 일대 <전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
나는 고보 시절에 교과서를 팽개치다시피한 독서광이었으므로, 고향의 선배요 한국 다산학의 개척자인 현암 이을호 박사 (1910 - 98)의 영향으로 장-쟈크-룻소 (J. J. Roussau, 1712 - 78)의 전집을 독파하는 기회를 갖게 되고 또 그 덕분에 “최초의 근대인”이라고 일컬어지는 룻소 그리고 누구보다도 광범위한 근대적 고양을 갖춘 그의 영향을 다소나마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래선지 위에서와 같은 <인간 존재 절대론>도 나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새삼 든다. 그 일단을 한번 살펴 보기로 하자. 그는 그 자신의 정치적 이상사회도 제도의 주인공인 인간 그 자신의 혁명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고 “인간의 혼 속에 공화국”을 건설해 보려는 의도에서 쓴 교육의 <에밀 Emile>에서 재래 귀족사회의 지적 조기교육에 반대하고 덕육과 체육을 통한 인간교육을 강조하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이 되라!”고 주장했다. 그는 말한다. “자연의 질서 가운데에서는 인간은 모두 평등하며, 그 공통의 천직은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일이다. ... their common calling is that of manhood 나의 어린이가 군인이 되고 목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거나, 그건 조금도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양친의 직업을 물려주기 전에 자연은 어린이를 인간으로서 자라고 생활하도록 하게 한다. 산다는 일이야말로 내가 그에게 가르치고 싶은 직업이다. Life is the trade would teach him 나의 손으로부터 떠날 때에 그는 법률가도 군인도 승려도 아닌 것이다 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는 무엇보다도 인간일 것이다. 그는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은 어떠한 일이거나, 필요에 따라서 배우게 될 것이다.”라고.
룻소 서거 10년 뒤에 프랑스 대명이 발발하는데 그 도화선 구실을 다한 그의 사상은 룻소주의 - 신룻소주의 - 아동중심주의 등으로 발전하거니와 애국 철학자 피히테 (Fichte, 1762 - 1814)가 1807 - 08년에 프랑스 혁명군이 베를린을 침공하자 베를린 대학 강당에서 전국의 초등학교 교사 200여명 앞에서 <독일국민에게 고함>(Reden an die dentsche Nation 1808)이라는 제목으로 장기 연속강연을 하였는데 그는 거기서 푸로시아가 적의 침공에 굴복한 것은 무력의 패배가 아니라 교육의 패배 때문이라고 자성하면서 재래의 우리교육은 “어린이에게 <무엇>Etwas을 주기에만 급급했으나 이로부터의 새 교육은 어린이에게 <인간 그 자체>를 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두 번이나 스위스로 페스탈로찌 (Pestalozzi, 1746 - 18??)을 찾아가 그를 통해 룻소의 사상을 배운 덕분에 나올 수 있었던 이 강연집은 그러니까 피히테의 룻소주의적 새 교육 철학서가 분명하다.
위의 <인간 천직론>에서와 같은 논법으로라면, 삶의 문제도 절로 풀리게 되고 삶의 고귀성과 절대성도 제자리를 얻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살아서> <무엇>을 하는 따위가 아니다. 여기서 삶과 무엇은 완전히 하나의 개념으로 귀착된다. 무엇을 한다는 것은 바로 산다는 것 그것이다. 무엇을 통해 인간은 제 몫을 지킨다. 따라서 <무엇>인가의 특정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 삶을 얻는 게 아니고 삶의 충실 ․ 삶의 만조滿潮를 위해서, 이를테면 개미나 벌은 그것들로서의 삶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애쓰고 있듯이 생명체로서의 인간의 경우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사람다웁게 산다는 그것이 중요하다. 살아서 <무엇을 했기 때문에> (곧 훌륭한 일을 하겠다고 해서) 중요한 건 결코 아니다.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 하고 남의 흉내를 내거나 휩쓸리지 않고 (부화뇌동), 나름대로의 삶을 독자적 주체적으로 영위하며 건전하고 상식적이며 책임을 다하는 시민으로서, 자기의 세계 구축과 거기에 최선을 다 하면서, 이를 즐기고 거기서 보람을 느끼며 행복을 찾고 나를 필요로 하거나 또 내가 아니면 안될 때, 사회 참여나 과거에서처럼 독립 투쟁에 앞장서 나아가는 과정이 우리네 삶의 참모습이다.
그런데 공자의 살신성인殺身成仁 (논어, 위령공편 8)하는 사상 (또는 맹자의 “사생취의捨生取義”)은 우리의 <생명 절대 긍정론>과 일견 배치되는 성 싶으나 실지로 공자는 이를 지사인인志士仁人에게 국한 시키고 있다. 그들은 구생求生으로 해인害人에 이르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서양의 노블레스 오브리제 noblesse oblige 정신이 뜻하는 대로 고귀한 신분인 그만큼의 나라 혜택을 받았으니 나라에 대한 책무도 그만큼 크다는 것이고 또 그래서 거기에 상반하는 절충보국을 다한다는 것과 통한다. 공자가 “견의불위 무용야 見義不爲 無用也”(논어, 위정편 24)라고 한 것도 그들에게 향해진 지당한 요청인 것이다. 자살설로 귀결되는 충무공의 최후나 안중근 ․ 윤봉길 의사들의 경우가 지사인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공자의 이 사상은 그러므로 예외인에 대한 예외지사로서, 우리의 생명 존중 사상과는 무관할 뿐 아니라 그 정신의 확충이자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살신으로 만인의 생명이 재생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보통사람 - 상식인 - 무명의 민중, 그러니까 “노블레스 오브리제”를 바랄 수 없는 일반 국민이라고 해서 살신성인을 안 해도 좋다는 건 물론 아니다.
조선왕조 519년간은 두분 덕분에 죄 닦음을 했다고 보는데, <한글>대왕을 내어놓고는 충무공이 있을 뿐이다. “그 이가 아니었더라면”이라는 가정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거니와 전라좌도 수군 절도사 충무공이 좌수영 곧 여수의 진중에서 가까운 친구에게 쓴 서찰 속에서 “약무호남 즉무국가 若無湖南則無國家”라고 실토한 것은 호남의 순박한 농민군들의 진충보국 정신과 그 용감성을 찬양한 것으로서 무명전사의 살신성인 정신은 고금동서에 산재해 있기 때문에 이른 말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보기 하나를 우리는 그리이스에서도 볼 수 있다.
그리이스가 낳은 서양의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 (Herodotos, B.C 484 - 430 B.C)가 지은 서양 최초의 역사서 <히스토리에tm Histories>의 첫머리에 나오는 그리이스인들의 행복관이란 바로 우리가 위에서 전개한 생각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이건 동서고금이 하나가 되는 사상일 것 같은데 그건 보통사람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동일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이스의 7현인 중의 한분인 쏘론 Solon이 본 행복관으론, 평범한 무명의 시민으로서 자기 삶에 충실하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상식인이야 말로 <행복한 사람>이었고 소아시아의 대제국 류디아 Lydia를 통치하는 크로에수스 Kroesus대왕은 결코 행복인이 아니었다. 그러면 쏘론이 전하는 그리이스인들의 <행복인>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생각해온 보통사람을 닮은 그들의 행복인은 이렇다. 조국 아테나이를 위한 용전사자인 평범한 시민은 국민오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하며 과욕을 부리거나 사치와 낭비에 흐르지 않고 어느 경우에나 <티>를 내는 일이 없고 항상 남을 배려하며 그러나 여력이 생기면 남을 돕는 한편 자기 일에 충실하며 여가를 즐길 줄도 안다. 이처럼 그리이스인의 <행복인>과 그 바탕을 같이하는 우리네 보통사람들도 일단 유사지추엔 의병도 농민군도 승병도 그리고 시민군이 되기도 하거니와 그와 같은 보통사람의 이상상理想像을 우리는 한국인의 <착한 아버지>의 모습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 뿐이 아니다. 임진왜란을 맞아 용악 출전한 남편의 후환이 없도록 집안 단속을 잘 하다가도 적군의 마수를 피해, 열녀로 삶을 마감하는 장하고 아름다웠던 허다한 조선의 아내들이나 논개論介와 같은 열녀도 거기에 넣어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한국 전래의 어머니상들이 그랬고, 또 그것이 대륙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의 역사를 유구하게 만들 수 있었다.
맺 는 말
우수에 찬 얼굴로 공자가 어느 날 제자들 앞에서 “지아자 기유천호? 知我者 其侑天乎?” (논어, 현문편 37)하고, 자기를 알아 주는 이가 없음을 자탄했고, 더욱 그가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논어, 학이편 1)를 공자학단의 3대 강령 중의 하나로 내걸 만큼 이 문제를 두고 평생을 노심초사한 공자, 너무나 인간적인 공자의 일면이 무척 매력적이다. 1930년대 고보시절의 아직 <논어>에 무관심했던 나도 한학자 신호열辛鎬烈님과 나의 공부방인 영광의 해불암에서 이야기 끝에 “지아자 기유아호? 知我者 其侑我乎?”라고 써 보였다가 “됐다”라는 판정을 받고 책갈피에 써넣은 이래로 어언 망구望九의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에 변함이 없고, 또 그러고 보니 십철十哲에다가 문도 삼천의 공자에게 조차 저와 같은 구도자의 고독에 대한 장태식이 자주 일어나고 있음을 새삼 공감하며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군중속의 고독 Lonely Crowd”과 부귀영화 속에서 오히려 고독에 에워싸이는 인간의 <원고독>은 그야말로 보편타당한 진실이요 또 진리일지도 모른다. 행복하고 불행하고 잘 나고 못 나고는 자기만이 잘 알고 있는 터, 또 이런들 저런들 어찌하겠는가? 속담대로 “저 잘난 <멋>으로” 살다 가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지 않은가? 혹시 그 반대의 경우라면 하루를 어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인간은 시종 원고독에서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그 처럼 우리가 우리의 삶을 절대긍정하는 (생명긍정에서 지구상의 일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낙천적 입장에 굳건히 서서 절망일랑 잠시동안 접어 둔채 (절망이고 고뇌고 슬픔이고 모두가 살자는 데서 온 것들이니까) 그리고 제 아무리 “헤매더라도 노력해 볼”(괴테) 밖에 없지 않는가. (진인사 대천명하는 노력제일주의 ․ 근근자자하며 “학불염하고 교불염 學不厭 敎不倦"(논어, 술이도 2) 하는 구도자의 진지한 모습은 그대로 인간 공자의 인생 역정이기도 했다.
소중한 자살의 젊은 날의 권리를 포기 아닌 오랜 보류였고, 또 노인들의 경우는 하필 자살이 아니더라도 종말의 문턱에 와 있거늘 구태여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이 아닌가. 삶의 의미를 심었거나 말았거나 이제와 보니 산다는 것 자체가 더욱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나도 일찍이는 “어떻게 살 것인가?” How to live? - Wie soll ich leben? 가 평생의 과제일 줄 알았으나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고 보니 그것이 아님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미래가 풍부한 젊은이에게는 그렇지만 (곧 이물음이 왕성하게 물어지지만) 미래가 없는 노인에게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How to die? 가 절실하고도 다급한 물음으로 매순간 마다 줄기차게 다가온다. 철학이란 궁극적으로 “죽음에 대한 훈련”이라고 했으니까 말이다 (플라톤). 가르칠 때는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싶더니 체험이 그것을 비로소 일깨워 주는 것이다. 미련하기도 할진저! “저승 길이 (대)문턱 밖에 있다.”라는 속담속의 민중들은 잘도 가르쳐 왔건마는, 그러나 이 물음에 대한 나의 열성적인 자세는 그대로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의 연속선상에 있으면서 그보다 앞선 물음 How to live?를 뒤집어 놓은 것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님을 이윽고 알게 된다.
인간에게 있어서의 궁극의 문제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Was ist der Mensch? 이고 삶의 궁극의 문제가 또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Was ist das leben? 이듯이 철학의 궁극적 물음도 “철학이란 무엇인가?” Was ist die philosophie? 이다. 따라서 철학사는 철학에 대한 정의사定義史다. 인간이 인간이면서 인간을 묻고 버젓이 이렇게 살고 있으면서 “삶이란 무엇이기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듯 철학자들은 밤낮으로 철학하면서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되묻곤 한다. 철학이란 이 물음 자체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 물음에 대한 잠정적 방편적인 나의 답은 이렇다.
철학이란 “① 가장 근원적인 학 Grundwissenschaft으로서 ② 우주와 인생에 있어서 가장 궁극적인 것 곧 진리를 파악하여 ③ 인간과 그 현실을 지도할 수 있는 세계관 또는 인생관을 수립함으로써 ④ 인생을 진실하게 영위하려고 하는 인간정신의 본질적인 표현이다.”라고 말이다. “인생을 진실하게 살라”라고 사람들은 말하는데, 어떻게 하면 진실한 인생을 경영할 수 있다는 말인가? -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또 실천에 힘써 왔다. 삶의 모든 시간이나 공간은 순간의 연속일 뿐이므로 주어진 각자의 순간 순간을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최후로 알고, 그 순간과 공간에 최선을 다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 속의 모든 순간이 최후이므로 그 최후의 순간을 정성껏 보낼 수밖에 없다. 모든 모임 모든 만남 온갖 대화의 시간은 그대로의 반복이 절대 불가능한 것이므로 주어진 그 시간을 최고도로 밀도있게 살아야 한다는 <순간최후설>은 나의 인생을 사는데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이 길이야말로 주어진 생애의 하루하루를 빈틈없이 낭비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므로, 인생 100년 36,500일을 그렇지 않은 경우의 곱절을 잘 살게 될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비록 매미와 같은 미물일지라도 일주일 동안을 인간의 일백년으로 여기고 노래 부르며 그 자신의 생애를 힘차게 찬양하리라. “순간을 최후로 알고”
옛 물음이나 지금의 그것이나 모두가 인생을 진실(Veracitas)하게 살아보자는 데서 나온 것인즉 “어떻게 죽을 것인가?” 도 결코 부정적이 아니며, 그러기는 커녕 가장 긍정적낙관적인 것이 분명하다.그 진실 속에서만이 진리(Veritas)가 나올 것이니까 이르는 말이다.
결론적으로는 진실(Veracitas)성실진지한 태도 참된 대응이나 대결이야말로 , 아니 그것이 곧 진리이니까 하는 말이다.인간의 진실을 내어 놓고 진리가 따로 없고 다시 말해 진실이 곧 그 자체가 진리라는 나의 생각이다. 모든 진리탐구의 노력의 궁극목표는 인간의 윤리적 태도의 진실성 또는 <중용>의 성지자誠之者의 진지한 태도수립에 있기 때문이다. 오직 인생을 <진실하게, 거짓없이 진솔하게 살자> 는 것 뿐이다. 오로지 거기서만 온갖 이를테면 시와 철학의 진리가 솟아나온다는 한갓돤 신념에서이다.
-2000. 9. 6. 조운曺雲선생 탄신100주년기념사업회 창립총회 전날, 전남 영광읍 도동리 청우서재에서
덧붙임
내가 요즘 쓰는 글은 모두 ‘유서’와 같은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주어진 기회의 글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더는 쓰지 못하고 절필한 글들이라는 생각 때문에 이 글도 이렇게 길어졌다. 나의 오랜 체험기를 한 군데 모아 놓은 데 지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확실한 것은 두 번 다시 이 내용의 체험기를 쓸 기회가 없으리라는 것이다.그러한 의미에서 이 글도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유서’이며 ‘절필문’이 분명하다.
-2000. 9. 16. 정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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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공부 잘 하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