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78/ 여성인권의 악법처럼 보이는 아내의 정절을 확인하는 의심의 법이란?
이는 의심의 법이니 아내가 그의 남편을 두고 탈선하여 더럽힌 때나 또는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서 자기의 아내를 의심할 때에 여인을 여호와 앞에 두고 제사장이 이 법대로 행할 것이라 (민 5:29~30)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부사이의 신뢰를 흔들며 그들을 괴롭히는 것이 있다. 의처증(症)과 의부증(疑夫症)이다. 현대정신의학은 이것을 질병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여기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심을 합법적으로 공인하는 듯하는 법이 있다. 이름 하여 '의심의 법'이다. 이 법은 아내의 행실에 의심이 생긴 남편이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가서'의심의 소제'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소제는 드리는 헌물 내용부터 일반 소제와 달랐다. 그것은 '보릿가루 십분의 일 에바"(15절)였다. 일반 소제는 '밀인데 의심의 소제는 '보리'다. 보리는 가장 천한 식량으로 취급되었다. 또 일반 소제는 가루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레 2:1)야 했다. 그러나 의심의 소제에는 "기름도 붓지 말고 유향도 두지 말(민 5:15)아야 했다. 기름과 유향은 감사와 즐거움(시 45:7;아 3:6)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외도를 의심하는 아내에 대한 심리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1) 제사장은 그 여인을 '여호와 앞', 즉 성막 뜰에 서게 한다(16절). (2)제사장은 물을 질그릇에 담아 성막 바닥의 흙을 긁어 그 물에 탄다(17절). (3) 머리채를 풀고 의심의 소제를 손에 들고 서 있는 여인 앞에 제사장이 쓴 물을 들고 선다(18절). (4) 제사장이 여인에게 저주의 맹세를낭독한다(19~21절). (5) 여인이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한다(22절). (6) 제사장이 저주를 기록한 두루마리를 쓴 물에 담가 씻는다(23~24절). (7)제사장이 여인의 손에서 의심의 소제물을 취하여 주 앞에서 흔들고 제단으로 가져가 한 움큼만 집어내어 제단에서 불사른다(25~26절). (8)마지막으로 제사장은 준비된 물을 여인에게 주어 마시게 한다(26b절).(⑨) 여인의 외도 여부에 따라 저주의 결과가 몸에 나타난다(27~28절).
현대의 양성평등의 관점으로 보면 이런 의식 절차에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요소가 다분히 있어 보인다. 그러나 철저하게 남성 중심적이었던 고대 가부장 사회의 배경에서 보면 이런 절차는 오히려 여성을 보호하는 장치로 작동하였다. 그런 시대와 사회에서 아내에 대한 남편의 권위는 일방적이고 절대적이며, 아내에 대해 신뢰가 깨어진 남편들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폭력적이다. 일단 의심이 생기면 전후 사정을 알아볼 필요도 없이 그 스스로 아내에 대한 조치를 내린다. 무고한 여성들도 자신을 변호할 아무런 장치가 없다. 그저 남편의 가혹한 처사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아내를 의심할 일이 생긴 남편들에게 어떤 조치도 내리지 말고 일단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가라”고 한 규정은 강력한 여성 보호의 장치이다. 그것은 의심하는 남편들이 나타내는 폭력적 반응을 제어하고, 무고한 여성들을 하나님의 권위로 보호하며, 그의 명예를 회복하여 자유롭게 해 주는 공적인 절차이다.
그러면 실제로 외도를 범한 여인의 경우는 어떠한가? 남편이 소제를 준비하면서 '밀가루'가 아니라 '보릿가루를 드는 순간부터 가슴이 철렁할 것이다. 그를 따라 제사장 앞에 끌려가, 머리를 풀고, 저주의 글을 듣고, 그것을 빤 물을 마시게 되는 그 모든 과정 동안 그 여인이 느끼게 될 정신적-심리적 압박이 어떠할지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다. 이런 절차만으로도 여성들의 부정을 제어하는 강력한 장치가 되었을 것이다. 여하튼 마침내 물을 마신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 대부분의 역본들은 그 결과가 여인의 몸에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즉 제사장이 선언한 저주대로 쓰라린 고통과 함께 배가 부어오르고 허벅지가 마른다" (27절, 새번역성경)는 것이다.
정말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가능할까? 현대의학은 마음의 반응이 그대로 신체 현상으로 나타나는 두 가지 효과를 발견하였다. 이름 하여 플라시보(Placebo) 효과와 노시보(Nocebo) 효과이다. 전자는 가짜 약에 대한 믿음이 효과를 내는 긍정적인 경우이며, 후자는 그 반대로 생각만으로도 신체에 질병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화학요법을 받는 환자들이 치료를 시작하기도 전에 메스꺼움을 느끼는 것이 노시보 효과이다. 제사장의 저주에 대해 아멘 아멘으로 화답한 여인이 그 쓴 물을 마셨을 때 실제로 그런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배가 붓고 넓적다리가 마른다'는 것을 그 순간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질병 현상이 아니라 그 여성이 항구적으로 성과 임신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배'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베텐은 그야말로 복부를 가리킨다. '배가 붓는다'는 것은 태아의 성장으로 배가 나온 여인의 모습을 가리킨다. '넓적다리'나 '허벅지'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야레크는 새번역성경이 난주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성기'를 나타내는 완곡어법(euphemism)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성기는 마르고 배는 붓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임신이 불가능한데 임신한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불임(不) 상황에서 가상임신 현상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그 여인은 정녕 그 백성 중에서 저줏거리가 될 것”(27절)이다. 공동체로부터 공개적인 망신과 수치를 당한다는 뜻이다. 이런 이해는 정결이 입증된 여인은 결국 “해를 받지 않고 임신하리라"(28절)는 선언을 듣게 된다는 것과 대조된다. 그 심판의 결과로 부정한 여인은 불임(不)을, 정결한 여인은 가임(可)을 확인받는 것이다. 여인이 생식과 임신 기능을 잃는 것은 저주의 결과이다.
물론, 이 규정이 아내의 순결이 증명되어도 무고한 아내를 의심했던 남편은 무죄이고(31절), 남편의 외도에 대한 의심의 소제는 없다는 사실로 인해 여전히 여성에게 불리한 규정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런 규정의 모법이 되는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은 당연히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무엇보다 아내의 외도가 확인되었을 때에도 이 규정은 그녀를 죽이라고 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들의 경우는그런 사실이 확인되면 반드시 죽이라고 하였다.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반드시 죽일지니라"(레 20:10). 성경에서 외도에 대한 경고는 아내들보다 남편들에게 훨씬 더 강력하였다. 잠언은 남편들의 외도에 대해 그것은 불을 품은 것과 같고 숯불을 밟은 것과 같으며, 분노한 상대 여자의 남편으로부터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된다고 경고한다(잠 6:26~35). 결국, 이 규정은 여성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성적 정결의 의무를 강조하면서도 가부장적 사회에서여성들을 보호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섬세한 장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