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102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께서 진멸령을 내리실 수 있는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넘기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안의 남자를 다 쳐 죽이고 너는 오직 여자들과 유아들과 가축들과 성읍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너를 위하여 탈취물로 삼을 것이며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적군에게서 빼앗은 것을 먹을지니라(신 20:13~14)
이보다 더 잔인한 명령을 내릴 수 있을까? 아무리 타락했다 하더라도 남녀 노유와 심지어 가축들까지 진멸하라니…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께서 이런 명령을 내릴 수 있는가? 속사도 시대의 마르시온(Marcion)은 이런 명령을 내리는 진노의 하나님은 십자가에 나타난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가르쳤다. 과연 그런가? 물론, 그렇지 않다.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사실, 하나님의 진멸령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노아 홍수 때에 이미 있었다. 하나님은 그때 "내가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창 7:4)고 하였다. 그 결과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21절)이 다 죽었다. 지구 차원의 진멸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어떤가? 그때에도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창 19:25)다. 제한된 지역이지만 역시 진멸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품성과 관련된 의문이 제기되지 않는다. 그들의 죄의 상태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주어진 기회로 하나님의 심판의 정당함이 납득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나안 진멸도 같은 맥락에서 주어졌고 또 진행되었다면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가 있다.
그러면 당시 가나안의 죄악 상황은 어떠하였는가? 결론부터 미리 말하면 소돔과 고모라에 버금가는 상태였다. 그들은 주신(主神)으로 '엘(El)'을 섬겼다. '엘'은 아버지를 쫓아내고 아들을 죽이고 딸을 목벤 잔인한 신이었다. 그 '엘'의 아들이 '바알(Baal)'인데 '주'라는 뜻으로 북쪽산 위에 보좌가 있다고 믿었다.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한(사 14:12)루시퍼를 나타낸다. 여신으로는 아나트(Anath), 아세라(Asherah), 아스다롯(Ashtaroth) 등이 있었다. 이 여신들은 서로 바알의 아내가 되고자 싸우는 다산(多産)의 여신들이었다. 그래서 아나트는 바알의 여동생이면서도 바알에게 강간당했을 때, 기뻐 날뛴다. 그들이 믿던 신화의 일부이다.
이런 종교가 지배하는 가나안이었기에 그곳은 음란과 부도덕이 넘쳐흘렀다. 제사 의식은 남녀노소가 벌거벗고 신전에서 혼음하는 것이었다. 어린 미동들이 여사제들을 위한 남창(男)의 역할을 하였다(신 2017 왕상 1424 참조). 처녀는 결혼 전에 일주일 동안 소위 '성창(城倉)의 일을 하며 받은 화대로 바알 신전에 드려야 했다. 유부녀들도 일생에 한 번은 바알 신전의 창녀로 일해야 하였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가나안에는 근친상간(近親相姦), 동성연애(同性愛), 수간(獸姦) 등 갖가지 성적 범죄가 범람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들이 고고학 발굴에 의해 확인되었다. 1929~1952년에 북시리아의 해안 도시인 라스샴라(RasShamra)가 발굴되었다. 그리고 그곳은 BC 15~14세기에 크게 번성하였다가 BC 1360년경 지진으로 폐허가 된 우가릿임이 판명되었다. 발굴된 자료들은 매춘 행위를 중심으로 한 당시의 타락한 신전 의식이나 뱀숭배를 보여 주었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발견된 다량의 어린아이 유골이었다. 인신제물의 희생이 된 것이다.
이런 죄악 상황은 너무나 전염성이 강하여 이스라엘에게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그래서 모세는 가나안 진멸령을 내리는 것은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 하게 할까 함이니라"(신 20:18)고 하였다. 가나안의 상태는 더 이상 남겨 둘 수 없는 암덩어리와 같았다. 그런데 가나안이 이런 상태에 이르면 진멸의 때가 된다는 것이 이미 아브라함의 시대에 주어졌다. 아브라함이 번제를 드렸을 때에 주신 말씀이다.
네 자손은 사 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창 15:16).
이 내용을 역으로 표현하면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가득 차면 애굽으로 내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 일곱 족속을 대표한다. 그 족속 전체를 가나안족이라고도 하고 때로는 아모리족이라고도 한다. 성경에서 '죄악이 가득 차면'이란 표현이 딱 한 번 더 나온다. 노아홍수 때이다. 창세기 6장 5절은 하나님이 대홍수의 심판을 내리기로 한 것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였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한글개역은 관영'이라고 표현하였다.'죄악이 관영 혹은 가득함'이란 표현은 성경에서 이 두 곳에만 나타난다. 노아 홍수가 '죄악이 가득하여 진멸의 심판이 내린 것처럼 가나안도'죄악이 가득 차면' 이스라엘이 돌아와 심판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엘렌 G. 화잇은 놀랍게도 이 두 사건을 연결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명령은 성경의 다른 부분에 있는 사랑과 자비의 정신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것은 참으로 무한히 자비로우시고 선하신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가나안인들은 가장 더럽고 가장 부패한 이교에 빠졌으므로……그 땅에서 제거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가나안인들은 홍수 전 사람들처럼 하늘을 모독하고 땅을 더럽히는 삶을 살 뿐이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와 인류의 원수들을 신속히 처형하기를 요구했다.” (부조, 492).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마치 홍수로 세상을 멸하시고, 유황불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신 것처럼 이스라엘 군대를 통해 그들을 멸하기로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홍수 전 사람들에게는 120년의 유예기간을 주셨던 하나님께서 가나안 사람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셨는가? 그렇다.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시간을 주셨다.
그 사실을 정탐꾼에게 한 여리고의 기생 라합의 말에서 알 수가 있다. 그때 라합은 정탐꾼들에게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수 2:10)고 하였다. 이 말은 가나안 사람들이 출애굽 초기부터 최근까지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듣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합은 듣고 회개하였기에 정탐꾼을 만났을 때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하던 그 40년은 이스라엘을 훈련하는 기간이기도 하였지만 가나안 사람들에게는 회개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었다. 화잇은 그 사실을 다시 이렇게 설명한다.
가나안 거민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허락되었다. 40년 전 홍해를 가르시고 애굽에 형벌을 내리심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권능이 가장 위대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 모든 사건을 여리고 거민들은 잘 알고 있었다(부조, 492).
40년의 기간에도 회개하지 않은 가나안 사람들 아니 아브라함 시대부터 생각하면 사실 그 열 배인 400년이 넘는 기간이 가나안에 주어졌다. 그들의 죄악의 잔이 찼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것같이 너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멸할 것이라"(신 9:3)고 당부했던 것이다. 가나안 진멸령은 홍수 때와 같이 죄악이 관여한 가나안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실제 역사 속에서 이 하나님의 명령은 제대로 시행되지 아니하였다. 사사기 1장은 여호수아의 사후에 이스라엘 지파들이 그들을 쫓아내지 못한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므낫세 지파도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삿 1:27)다. 이런 결과로 이스라엘은 오히려 가나안 사람들에 의해 타락하고 만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을 정복하는 그때에 이미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 곧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아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삿 2:11~13)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