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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속의 춘향전
여러분 춘향전 좋아하십니까? 춘향전은 한국의 고전, 사랑이야기입니다.
성경은 우리와 하나님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요즘은 유치원생들도 사랑을 약속합니다.
철이가 순이에게 말합니다. “순아, 사랑해, I love u”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하니, 나중에 커서 우리 결혼하자”
순이가 말합니다.
“안돼, 우리는 결혼할 수가 없어”
“나도 너를 사랑하고, 너도 나를 사랑하는데 왜 안된다는 거야”
“에이 바보, 자 봐, 우리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결혼했지,
우리 아빠는 우리 엄마와 결혼했지, 우리는 가족끼리만 결혼한단말야“
철이가 말합니다.
“에이 바보, 그런게 아냐! 원래는 남남이었지만, 결혼해서 가족이 되는 거야”
순이 말이 맞아요. 철이 말이 맞아요?
철이 맞이 맞아요. 남남이 만나 결혼해서 가족이 됩니다. 결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결혼서약, 사랑의 약속입니다. 이 세상을 지탱하는 가장 큰 약속, 언약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사이에도 가장 큰 약속에 기초되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켜야할 약속 그것을 십계명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을 언약궤에 넣어서 보관했습니다.
언약의 증서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마귀는 교묘하게 이것을 변경했습니다. 왜요? 하나님과 우리와의 언약 관계를 깨트려서 남남이 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몇 개를 깨트려야 언약에 깨어질까요?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 2:10)
사탄은 이 사실을 알까요 모를까요? 그래서 어떤 계명을 깨트릴까요? 가장 중요한 계명, 가장 덜 중요한 계명,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그래서 사탄은 교묘하게 이것을 깨트리는데 사람들이 잘 몰라요. 왜요. 사탄의 꿰임에 넘어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남원에 가면 맹약의 단이라고 해서 이런 손을 집어넣는 곳이 있어요.
남자친구와 여자친구가 손을 집어넣으면 음악이 착 나오면서 이제 둘이 하나가 되었다 하는 그런 약속을 기억하게 만들어주는 멋진 곳이 있습니다.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은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그죠?
나이가 들어도 사랑하고 싶습니까? 요즘 그런 노래가 있더만요.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뭐 그런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보실 때에 어떻게 보실까요? 우리를 보실 때 어떤 눈으로 보실까요?
너는 사랑 사랑하기에 너무 늙어서 안 되겠는데 이러실까요? 너는 사랑하기에 너무 어려워.
이렇게 하시지 않으세요? 마치 이도령이가 아련한 눈빛으로 춘향이를 바라보듯 하나님의 눈앞에 우리 모두는 존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래서 어제 저녁의 제목은 나의 생명 나의 전부야.
주님께서 우리를 보시면서 오늘 다시 이야기하십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몰라도 주님은 오늘 우리를 향하여 내가 너를 이 세상에 하나뿐인 것처럼 그렇게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도령이가 춘양이를 사랑한 것 이상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의 가장 중요한 절정은 결혼이고, 결혼의 가장 중요한 절정은 어디에 있을까요? 약속인 것입니다.
그저 사랑의 언약 이제 흰 머리가 까만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사랑하겠습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신랑이 아니요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그러면 결혼이 돼요 안 됩니까? 안 됩니다.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사랑하겠습니까? 그런데 건강할 때는 괜찮은데 아플 때는 생각 좀 해보고요.
그러면 결혼이 성사가 될 수 없어요.
결혼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하면 언약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언약이 이루어질 때 가정이 생기고
행복이 생길 수 있어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도록 사랑하셔서 어제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바친 그 사랑을 이야기해 드렸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사랑의 언약을 지키듯이 우리도 그 언약을 누구처럼요? 춘향이처럼
일편단심 춘향이처럼 그 언약을 지킬 때에 누가 오셔서, 이도령보다 더 멋진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영원한 사랑의 나라로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알고 보면 어렵잖아요.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누가 누구를 사랑한 이야기요 온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께서 보잘 것 없는
참 볼품 없는 나를 미치도록 사랑하신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쓰신 그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사랑에는 꼭 뭐가 나타나는가 하면 방해꾼이 나타납니다.
이 방해꾼이 누군지 아세요?
변사도입니다. 변사도 제가 성씨가 변가인데 왜 우리나라는 꼭 나쁜 놈으로 변씨성을 가지고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변사또, 변강세 어째 우리 족보는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변사또가 딱 나타나서 춘양이 보고 뭐라 그러는가 하면 사랑한다고 말이 되느냐 가장 지체 높으신 분이 가장 천하고 낮은 기생인 너를 사랑하겠느냐 그게 말이 되겠느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내 수청이나 들으라.
누가 그런다고요?
변사또가 아니고 사탄 마귀가 그러는 것입니다.
“이 세상 이 우주에서 가장 높고 아름다우신 예수님께서 생각해 보면 지지리도 못나고 부족한 우리에게 쏙 빠져서 사랑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사랑 속에서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 모두의 마음을 노크 하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죽도록 사랑한다.
내가 너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고 너와 맺은 언약을 지키기 위하여 내가 반드시 너를 데리러 오겠다.
그래서 다시는 눈물이 없는 슬픔이 없는 그 영원한 행복의 나라에 너를 꼭 데려가고 싶구나.
그것이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제목이 뭔가 하면 구약과 신약입니다. 머리 아플 때는 구약을 먹고 배가 아플 때는 신약을 못 가는 약이 아닙니다.
이게 약속 약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다시 오겠다 너를 데리러 오겠다.
그것이 성경에 나와 있는 약속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프로포즈를 받아보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어떻게 프러포즈 하세요?
첫 번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으로 프러포즈를 하시는가 하면 온 하늘 땅 가득한 그분의 사랑으로 프로포즈를 하십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온 하늘 땅 가득 뭐가 가득 차 있는가 하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근데 어떤 사람은 그럴 거예요.
내가 하나님 사랑 보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했는데 어디에 그런 사랑이 있어요. 여러분 아무리 그렇게 말씀하실지 몰라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여러분 코가 벌렁벌렁 걷고 있네요.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 하나님이 마련해 놓으신 여러분 먹고 살려고 마련해 놓으신 공기를 마시지 않으면 죽어요.
우리가 뭘 먹고 사는가 아침에는 뭐 먹어요 아침 먹고 점심에는 뭐 먹어요 점심 먹고 저녁에는 뭐 먹어요 저녁 먹는데 그것이 다 생각해 보면 하늘 땅 가득한 하나님의 사랑들을 거두어 와서 우리 입으로 쏙 집어넣으면서 냠냠 짭짭 맛있게 먹으면서 하나님 언제 나를 사랑했어요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우리의 코가 하나님의 사랑을 먹고 산다고 이야기하고 마시고 산다고 이야기하고 우리 입이 그 사랑을 먹고 살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꽃들이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하는 주님의 사랑의 고백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면 째째하게 장미꽃 한 송이 바치고 I love you. 그러는데 우리 하나님은 온 산천을 철쭉으로 진달래로 단풍으로 물들여서 내가 너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니 마음을 나에게 주지 않겠니?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도 눈치 없는 우리는 아무 반응이 없자 얘들이 좀 배가 고파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철에 맞는 과일들을 주셔서 우리를 향한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그래도 그 사랑을 못 알아들으니까 하나님께서 러브레트를 보내 주셨는데 이게 사랑의 편지, 성경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없는 깊고 놀라운 사랑이 기록되 있습니다. 그래도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으니까 이래서 안 되겠다 직접 내려가야 되겠다 하셔서 사랑의 주인공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내가 너를 이만큼 사랑한다 죽도록 사랑한다 고백하신 분이 우리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받아들이면 그 언약을 지키면
우리 주님이 오실 때 우리는 정말 생각도 못했던 상상도 못했던 아름답고 행복한 나라로 우리를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이 성경책이 다 하나님의 말씀이시지만은 이 성경 가운데서
하나님이 친히 돌판에 당신의 손가락으로 쓰신 것은 무엇밖에 없는가 하면 십계명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떤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봐도 이렇게 말하는 목사님 없어요.
“이 성경은 다 거짓말입니다. 성경 믿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 말씀 믿지 마십시오.”
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말씀대로 사십시오.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이 말씀대로 살아야 영생을 받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그런데 그렇게 하는 수많은 교회들이 사실은 알고 보면 하나님이 친히 친수로 돌비에 기록하신 십계명조차도 제대로 지키고 있지도 않고 가르치고 있지도 않다고 하는 사실을 이야기해 드리는 것입니다.
출애기 31장 18절에 보니까 이 돌판은 하나님께서 친히 쓰셔서 주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돌판에 쓰셨을까요?
이것은 변치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10계명을 기록하신 다음에 언약궤라고 하는 그 궤안에 집어넣어놓으셨어요.
언약궤 안에는 뭐가 들어있을까요? 언약의 문서가 들어있는 거야.
내가 너를 이렇게 사랑한다. 너도 나를 사랑하면 이 약속을 꼭 지켜라 하시는 언약의 문서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은 몰라도 무엇을 꼭 지켜야 되겠어요? 언약을 꼭 지켜야 합니다.
춘향이가 뭘 꼭 지켜야 돼요? 사랑의 언약을 꼭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변사또가 와가지고 맛있는 거 사준다고 오늘 변사또 따라 소풍 가고 내일 김 서방하고 놀러 가고 그럼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그러면 이도령이 왔을 때에 춘향이는 결코 사랑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영상을 하나 보니까 대단한 말씀을 하시는 목사님을 봤어요.
“수많은 교인들을 지옥으로 보낸 거짓말이 있다.
교회 다닌다고 다 천국 갈 줄 알았는데 교회에 다니는 수많은 교인들을 지옥으로 보낸 거짓말이다.
그러면서 무슨 얘기를 하는가 하면 제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히틀러의 선전 대장이었는데
요제프 괴벨스라고 하는 아주 괴상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사람을 세뇌시키는 데 아주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는 것 이 사람이 기술을 공개하기를 그의 가르침에 세뇌가 되어서 유대인 600만 명이 학살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독일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도록 그렇게 세뇌가 돼버렸습니다.
그는 그가 세뇌시킨 방법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거짓말만 하면 사람들이 잘 안 믿으니까 99가지 거짓말에다가 한 개의 진실을 살짝 섞어놓으면 사람들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잘 분별하지 못한다. 그래서 대중이 처음에는 거짓말이라고 하지만 처음에는 부정하지만 그 다음에는 의심하지만 자꾸 자꾸 말해주면 세뇌가 돼가지고 결국에는 믿게 된다.
이것이 괴벨스의 궤변이었어요.
괴벨스의 궤변처럼, 사람을 가장 많이 지옥으로 보낸 거짓말이 2개 있는데, 하나는 진화론이고, 또 다른 하나는 거짓 구원론이라는 거예요.
한 번 예수 믿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 여러분 좋습니까? 말은 좋지만 말은 좋지만 그것이 가장 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낸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치 그것은 뭐와 같은가 하면 이도령이하고 언약만 맺으면 아무리 변사또 하고 놀아놔도 괜찮다.
그런 거야. 괜찮을 수 있겠어요? 여러분이 결혼에 도장만 찍으면 아무리 바람을 피워도 가정이 행복하다.
말이 됩니까? 정 모르겠으면 실습을 한번 해보세요.
그게 말이 되나?
김태인 목사님이라고 하는 장로교회 목사님이 한 분 계시는데 많은 경우에 언약이라고 하면 구원 언약, 구원 언약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목사님이 성경을 다시 한 번 20년 동안 성경을 붙잡고 씨름했는데 언약의 중심은 알고 보니까 언약궤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계명이더라. 이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언약과 율법 시리즈에 보면 22번이나 이 목사님께서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언약을 지키는 것이다.
그 언약은 바로 하나님의 계명이다라고 하는 설교를 끊임없이 하고 계시면서 얼마 전에
이런 책을 써냈어요. <언약과 율법으로 세워가는 하나님 나라 이야기>
이분이 20년 전에 어느 날 공원을 걷고 있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는 거예요.
태인아 태인아 공부 좀 해라. 깜짝 놀랐어요.
무슨 공부를요?
니가 목사가 될 신학생인데 성경을 니 스스로 읽지 않고 어떻게 목사가 될 수 있겠니!
스스로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어봐라.
그때부터 이제 목사님 될 이 신학생이 다른 사람의 말을 다 귀를 막고 정말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는지 진지하게 읽고 도전해 보다가
드디어 언약의 중심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라는 사실을 깨닫았습니다.
일반 장로교회도 세례를 받기 위하여 대요리 문답, 소요리 문답하는 게 있는데 거기에도 이렇게 돼 있어요.
죄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율법을 불순종하는 것이다
어기는 것이다. 그렇게 나와 있어요.
제가 한 게 아니고 그 목사님께서 연구하신 내용입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에서 이 언약에 대하여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오늘 한국 교회가 불신자들에게 욕을 먹고 있다는 거예요.
어느 유튜브의 제목은
기적으로 낳은 아이 목사가 기적으로 낳은 아이,
저는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래가지고 어떻게 요즘 목사님이 기적으로 애를 낳았나 보니까요.
목사님이 교회 여신도와 어떻게 해서 애를 낳았는데 신문 기자가 와서 물어보니까 나는 애의 씨를 심지 않았다라는 거예요.
그런 적이 없다는 거야. 그러니까 제목이 뭔가 하면 기적으로 낳은 아이라는 거예요. 사실은 바람을 피워서 그런 짓을 해놓고 기적을 핑계되는 기독교를 풍자하는 기사들이 얼마나 가득 차 있는지 여러분들이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공산당도 아닌데 세습하는 그런 모습들을 우리는 보면서 애통하는 것입니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24)
목사님은 이렇게 간증합니다.
재림교회는 개혁 교회 중의 개혁 교회이다.
저는 제 7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재림 교인으로 개종하는데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루터의 종교 개혁 이후 하나님의 구속 역사와 성경 말씀에 견주어 보았을 때 가장 분명하게 종교 개혁을 한 교파는 오직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밖에 없다.
다른 교단에서 안식을 지킵니까? 율법준수, 넘어 가잖아요. 정확하게 얘기를 못하잖아요.
...저는 언약과 율법과 하나님의 나라를 공부한 저의 신앙과 재림교회 신앙관과 일치했기 때문에 재림교회가 전혀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가장 큰 변화라면 재림교회으로 개종함으로 진리를 제대로 찾아왔다는 것이 변화 중에 변화입니다.
이분이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성경을 연구해 보니까 언약의 중심이 하나님의 계명인데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는 오늘 말 안한다는 거야.
그저 예수 믿고 교회에 헌금만 많이 내면 구원은 따논 당상이다 그렇게 이야기한다는 거예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라.
어떤 분은 새 언약으로 바뀌어져가지고 이제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사랑의 언약, 새 언약이 무엇인가? 히브리서 8장 10절에 보면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 은혜가 너무 크기에 그 은혜에 감사하여 마음속에
하나님의 계명을 아로 새기는 경험이 참 백성이 되는 경험이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에도 나더러 주여 죄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 하여 들어가리라.
이것은 어느 교파의 교리가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 중대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날의 많은 사람들이 나더러 이르되 주의 이름으로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목사 노릇을 하고 주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뭐 하는 자들아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순종치 않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사랑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아내에 대한 친절한 언어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계명의 본질도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슨 나라일까요? 사랑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의 사랑이 없이 어떻게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10계명을 하나로 하면 사랑이고
둘로 나누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십계명을 나누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마라”라는 계명과 “하라”라는 계명으로도 나눌 수가 있어요.
“마라”라고 하는 계명이 몇 가지예요? 2가지예요. 8가지가 “하라”는 계명이예요.
그런데 이웃 사랑에 대한 계명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사람의 마음속에 기록해 놓으셔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건 안 믿는 사람이건 그 계명이 마음속에 새겨져 있어요.
하나님 안 믿는 사람도 부모 공경합니까? 예 맞습니다.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도적질하는 것을 죄라고 여깁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 2:14-15)
그러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의 참 관계를 결정해 주는 것은 첫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 계명입니다. 하지 말라고 하는 계명은 더해진 계명이고 하라고 하는 계명은 본질적인 계명입니다.
그래서 인간관계의 근본을 규정짓는 계명은 다섯 번째 계명입니다.
내 부모를 공경하라
그것이 모든 인간관계의 근본입니다. 그래서 유교에도 효는 백행지 근본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이웃 사랑의 첫 번째 계명으로 올리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사랑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사랑도 놀랍게도 어렵지 않습니다.
부모님께 대한 것과 하나님에 대한 것이 일치합니다.
부모님께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사람을 아비라고 섬기지 말아라.
다른 아버지의 모양을 만들거나 섬기거나 절하지 말아라.
아버지의 이름이 김개똥이면 개똥이라고 막 부르지 말고 개자 똥짜 존경스럽게 불러라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럼 아들이 깜짝 놀라가지고 아버지
뒷집 아저씨는 아빠보다 저한테 용돈도 더 많이 주고 더 잘해주는데요.
그 아버지는 아버지라고 부르면 안 되나요? 그렇게 물으면 여러분 뭐라고 대답할 수 있겠어요? 그래 막 불러라. 그럴까요?
여러분이 세상에서 내 사랑하는 아이의 유일한 아버지라는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
“야 이놈아 정신 차리고 잘 생각해 봐라.
세상에 아버지가 많아도 내가 없이 니가 어떻게 세상에 나올 수 있겠느냐?”
어머니가 그러지 않겠어요
“세상에 어머니가 많아도 내가 없이 니가 낳을 수가 없어.”
그러면 뭐 명확한 대답이 됩니까? 그것 외에 더 명확한 대답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로 네 번째 계명은 왜 우리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는지
왜 우상을 숭배하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 때 일컫지 말아야 하는지 그 근본된 이유를 말씀해 주고 있는데 내가 너희를 낳아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를 창조해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11)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영원한 관계의 표가 되어서 너는 내 자식이고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그것을 알려주는 계명이 네 번째 계명입니다.
그래서 에스겔 20장 20절에 보면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표정이 되어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그런데 성경에 보면 변사도가
마귀가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계명을 변경시킬 것이다.
그렇게 돼 있어 놀랍게도 다른 계명은 열심히 지켜라.
그런데 가장 중요한 계명을 싹 변경해 버렸습니다.
이 계명이 왜 중요한지
자동차로 설명해 드리면 이 차를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면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하나는 내가 만들던가 하나는 내가 사오든가 자녀로 만들 수 있는 것도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하나는 내가 만들든가 하나는 내가 사오든가 만드는 것을 출생이라고 하고 사오는 것을 입양이라고 해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되어진 것을 창조라고 하고,
죄로 팔려간 우리를 사오시는 것을 구속이라 그래요.
그것을 십자가라고 그래요. 이 두 가지의 표가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시간 속에 하나님께서 그 표를 집어 넣어놓으셨어요.
그래서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리라 하시면서 안식하시고,
똑같이 금요일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시고 돌아가시면서 안식일을 쉬셨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창조와 구원의 표정이 되고 우리의 신분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호적 등본과 같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변사또가 춘향이 손을 잡고 그러는 것입니다.
“춘향아, 어찌 이리 내 마음을 모르느냐 세상에 너처럼 답답한 여자가 세상 어디 있느냐 어찌 이리 고생을 살려고 사사하려고 하느냐 세상 바라 누가 토요일을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느냐 일요일 날 지키면,
직장 다니기도 좋고 출세길도 열리도, 조금만 양보하고 편히 살면 좋을 터인데
쓸데없는 고생하지 말고 나랑 살자.
언제 올지 모르는 이 도령이 말고 나와 함께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지 않겠느냐!.”
그렇게 꼬셔요.
하나님의 계명을 바꿔버리면 성춘향이가 뭐로 바뀌는지 아세요?
성춘향이가 성추향이로 바뀌어요.
약속을 깨뜨리면
우리의 영적 상태가 음란한 여인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놀랍게도 성경은 마지막 시대가 되면 크게 두 부류의 교회가 있습니다.
한 교회는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변사또가 아무리 구박을 해도 그 꾀임에 넘어가지 않고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진실된 교회가 있습니다.
반대로 얼마나 바람 피우기를 좋아하는지 땅의 임금들도 음녀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하는 음녀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시대에
큰 음녀 바벨론이 있는데 그것이 온 세상의 왕들과 다 놀아나는 일을 하겠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돼 있어. 그가 어떻게 사람들을 꼬시는가 포도주로 먹여서 사람들을 취하게 하는데 그 바벨론은 타락한 교회여.
포도주는 거짓된 가르침이었어요.
오늘날 세상이 그 거짓에 속아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속아 넘어가고 있다는 거야.
오늘날 많은 교회를 다니는 분들이 이걸 몰라요.
하나님의 십계명과 천주교의 십계명이 다르다고 하는 사실을 몰라요.
천주교회는 우상을 만들지 말라라고 하는 두 번째 계명을
없앴습니다. 왜요? 성당에 가면 마리아가 먼저 나오니까.
그리고 하나가 모자라니까 10번째 계명을 둘로 나누어서 9번째 10번째가 됩니다.
그 다음에 가장 중요한 안식일을 주일로 지키고라고 하는 것으로 변경시켜놨어요.
누가 그랬다고요? 천주교회가 그랬어요.
오늘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슨 문제인가 하면 이상기온에 대한 문제입니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문제요. 또 종교 분쟁에 대한 문제예요.
전쟁에 대한 문제예요. 그래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또 전염병에 대한 문제 이런 것은 어느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예요.
그렇죠? 우리나라만 마스크 쓰고 다닌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전 세계적인 문제예요. 그래서 이 모든 문제에 대하여 이제는 세계적인 의논을 하고 세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만약에 의논하고 최고의 지도자를 꼽는다고 하면 이 세상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누구일까요? 여러분 사실 생각해 보세요.
미국의 대통령보다도 로마 교황의 권위가 더 높은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은 교황청에서 벌써 지구온난화에 대한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거친 지가
몇 년이죠 사실 천주교회는 종교 분쟁에 대하여 1960년대부터 연구했습.
그래서 어떻게 하면 세계의 종교를 하나로 통합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세계의 정치 경제를 종교를 하나로 합칠 수 있을까를 연구해 왔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 십계명이라고 하는 것을 네이버에 검색하면 누구든 검색할 수가 있어요.
행복하려고 하면 이렇게 사십시오. 참 좋은 말입니다.
틀린 말이 있는지 없는지 한번 찾아보세요.
자신의 인생을 살고 타인의 인생도 존중하라.
좋은 말입니까?
타인에게 마음을 열라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라 삶의 여유를 찾으라 이러이런 가족과 함께 보내라 젊은 세대의 가치 있는 일자리를 만들자 자연을 사랑하고 존중하라 부정적인 생각과 태도를 버려라 타인을 개종시키려 하지 말라 평화를 위해 행동하라.
이걸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습니다.
행복하려고 하면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
그런데 사실은 이 말 속에는 놀라운 놀랍고 무서운 전략이 들어 있습니다.
보세요. 타인을 개종시키려 하지 말라 하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전도하지 말라는 소리야.
왜 전도하지 말라고 하는가 하면
교황은 불교도 구원이 있고, 이슬람도 구원이 있고, 각자 토속 종교를 가져도 구원이 있다.
그렇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종교는 다 구원이 있다.
그러니 싸우지 말고 하나가 되라 하는 종교 통합 운동을 강력하게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세상의 재난을 멈추려고 하면
하나님이 십계명을 일요일로 변경하고 그 날을 지키도록 강제로 법령을 만들기 전에 아주 친절하게 가족의 행복을 위하여 일요일날 쉬는 것이 어떻겠니? 그렇게 속삭이고 있습니다.
정말 일요일을 지켜도 일요일로 변경시켜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인지
제가 세 가지 질문으로 요약해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어떤 목사님 어떤 신부님 찾아가서 여쭈어봐도 되는 세 가지 정확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여쭈어보십시오.
첫 번째는 제7일 안식일은 어느 날인가?
어떤 목사님께 어떤 신부님께 여쭤도 괜찮습니다.
정말 그분이 솔직한 분이라고 하면 “금요일 일몰 때부터, 토요일 일몰 때까지입니다.” 답변 할 것입니다.
두 번째 왜 일요일을 지키는가라고 물어보면 많은 목사님들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일요일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경했다.
세 번째 질문입니다. 성경에서 일요일을 첫째 날을 지키라고 한 구절이 있습니까? 고 물어보면 그런 구절은 없습니다.
천주교 교회가 우리의 권위로 그렇게 바꾼 것입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실 제가 이렇게 하면 여러분들은 저것은 뭐 저 교회니까 이렇게 이야기하겠지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공식적인 재판관 네이버를 소개하겠습니다.
네이버에게 물어보면 이 편 저 편 들지 않고 객관적인 답을 줍니다.
여러분이 네이버에서 어학 사전에 안식일을 치면
뭐라고 나오는가 하면 안식일 이렇게 나옵니다.
“유대교에서 일주일에 제 7일인 성일. 금요일 일몰에서 토요일 일몰까지 모든 일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한다.”
그렇게 딱 나와요. 그럼 그 밑에는 뭐라고 나오는가 하면 “기독교인들은 안식일의 의미는 기억하되 예수가 부활했다는 일요일을 주일로 지킨다.” 그렇게 설명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사실 우리 교회에서 돈도 안 주는데 그 밑에 뭐라고 나는가 하면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는 전통적으로 안식일을 지켜온 개신교의 한 분파다.
이렇게 나와 있어요. 그러면 정말 예수가 부활했다고 일요일을 지키는 것은 타당한가 하는 걸 알기 위하여 다시 세 단어를 찾아보면 됩니다.
첫 번째는 부활이라고 하는 단어와 두 번째는 부활절이라고 하는 단어와 세 번째 성탄절이라고 하는 것을 찾아보면 누구든지 명확한 답을 얻을 수가 있어요.
부활이라고 하는 단어를
사전에 딱 집어넣어보면 영어로 더 레저렉션이라고 하는 단어 좀 글자가 복잡한 단어가 나옵니다.
그러면 부활절은 뭐라고 말해야 되겠어요? 레즈 렉션스 데이 뭐 이렇게 돼야 되는데 그렇게 나오지 않고 부활절은 이스트라고 나옵니다.
이스트는 빵 굽을 때도 집어넣죠 근데 여기 나오는 건 그 빵 굽을 때 집어넣는 거 아니고 여신의 이름이에요. 여신 봄의 여신의 이름인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한국 컴퓨터 선교에서 뭐라 그런가 하면 부활절은 봄의 여신 이스트에서 비롯되었다.
제가 하는 얘기가 아니에요. 성서 대백과 사전에 이렇게 나와 있는 거예요.
오늘날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왜 부활절이 부활절이 정말 중요한가 제가 이걸 이제 말씀드리겠습니다.
부활절이 언제인지 아시는 분 계세요? 부활절이 언제일까요?
부활절 언제인지 잘 몰라요.
사람들이 자꾸 바뀌던데요. 그래요 우리 목사님이 알려주면 그냥 그건 줄 알아요.
교회 다니는 분도 잘 몰라요.
부활절을 어떻게 정하는가 잘 보세요.
잘 보세요. 첫 번째 뭐가 들어가 뭐가 나와야 돼 춘분이 나와야
두 번째는 뭐가 나와야 돼요 만월이 나와야 돼요.
춘분이 지나고 만월이 지나고 그다음에 오는 일요일을 부활절로 삼아요.
그래서 매년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또 수수께끼가 궁금증이 생기잖아요.
왜 예수님의 부활절을 이렇게 충분히 지나야 하는가 왜 보름이 지나야 하는가 궁금하지 않아요 그죠? 예 맞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성경에는 날짜 이렇게 유월절 무교절 요제절 이렇게 나와 있지.
무슨 요일 그게 나오잖아요. 사실 이것은 부활절의 축제는 프리기아 왕국에서 전례되어졌는데
춘분는 무슨 날인가 하면 밤과 낮의 길이가 꼭 같으면서 그때부터 낮의 길이가 길어지는 날이요.
그러니까 태양신을 믿는 사람들이
태양의 신이 부활한 날이다 생각한 거예요.
그러면 그날을 부활주일로 삼으면 되는데 그다음에 뭐가 와요? 보름이 와요.
보름은 양역일까요 음력일까요? 음력이에요.
음력 15일이 여러분 보름은 남자일까요 여자일까요? 여자죠 보름달 그죠? 우리나라도 그러잖아요.
태양은 양
달은 음 이렇게 얘기하듯이 많은 나라에서 이 달을 달덩이 같은 여신을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것은 태양신이 부활하고 달등이 같은 여신이 나타나야 뭘 할 수가 있어요 엘리리 꼴리를 할 수 있다는 거
그리고 나서 다가오는 일요일을 부활절로 삼았는데 이 프리기아 왕국에서 어떻게 하는가 하면 여기 나오는 그림처럼 이제 부활절 축제 아침에 울면서 통곡하면서 우리 남편 태양신이 죽었다.
곡을 하면서 가다가 동쪽에서 태양이 떠오르면 우리 신랑이 부활했네.
그러면서 이 여자들이요
옷을 하나씩 둘씩 벗고 앞에 삘릴리 노래를 부르던 이 남자들과 더불어서 성적인 축제를 벌이는 것이 이교 부활절의 모습이었어요.
그 모습이 교묘하게 기독교 속으로 탈을 쓰고 들어왔는데
그 모습이 구약 성경에는 뭐로 나오는 가면 바알과 아세라 숭배로 나와요.
이것이 남방 유다와 북방 이스라엘이 멸망한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민수기 25장에도 가나안 직전 싣딤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자들과 더불어 뭐 했어요? 음행을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왜 음행을 하는가 2절에 보니까 그 여자들이 뭐 할 때에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청함에 가서 했던 거짓이 거짓이라는 거 5절에 보니까 그때 예배를 했던 신이 무슨 신이다? 바알이다.
바알브올이라고 하는 것은 브올에 있는 바알이다 하는 소리입니다. 이 제도가 교묘하게 기독교 안으로 들어와서 부활절 탈을 쓰고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태양신은 남자신이고 달 신은 여신이고 바알과 아세라 숭배를 통하여 민수기 25장에 2만 4천 명이 죽임을 당합니다. 바로 이것이 태양신과 달신의 모습인데 놀랍게도 성탄절의 기원을 찾아보면 네이버 지식백과에 뭐라고 나오는가 하면 예수님의 탄생일이 아니라 12월 25일은 로마의 동지로서 정복되지 않은 태양의 탄생일이었다.
그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식 사진을 이야기하기를 321년에 매주 휴일을 태양의 날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리스 선데이 태양의 날이라고 부르고 그것이 콘스탄틴 대제를 통하여서 일요일 법령으로 선포되었다.
네이버 사진에 나오는 거예요.
박도식 신부가 쓴 효성여대 총장인 박도식 신부가 그렇게 씁니다.
바로 이것을 천주교회가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그런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오늘날 왜 이렇게 교파들이 많은가?
원래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성경 중심의 교회였습니다.
중세 시대에 성경의 신앙과 태양 숭배 이방 종교들이 짬뽕되어서 만든 종교가 중세 카톨릭 로마 천주교회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성경적인 것을 찾아가는 개혁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 종교개혁 잘했습니다.
루터 켈빈 잘했습니다. 문제는 무엇인가 하면 “내 교파의 가르침만 붙잡고 내가 최고다” 하는 것이 문제예요.
이제 우리는 내 교파, 내 네 교파 내려놓고 오직 성경적인 것만 모아서 우리는 진리를 회복해야 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10월 30일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뭐라고 불러요 10월 30일이 뭐예요?
할로윈데이의 기원이 뭔지 아세요? 그 말은 모든 성인의 날 이런 소리예요.
천주교에서 정한 거예요. 천주교에서 이 세상의 모든 종교를 통합시키기 위하여 귀신들을 불러오는 귀신 축제의 날에서 영문도 모르고 수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노래하고 귀신 따라가는 짓을 하지 말라.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멸망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
성경은 이야기하기를 이사야 58장에 무너진 하나님의 계명을 수많은 사람들이 나오겠다.
그들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는 자들이다.
그래서 여기 보니까 성경 교회 목사님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성경에 근거 없는 주일 예배에 우리가 언제까지 할 것인가?
춘향전의 최고의 감동적인 장면은 이것입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이도령이 옵니다.
근데 이도령의 마음속에 고민이 하나 생겼어요.
“저 춘향이가 거지 이도령도 사랑할까? 아니면 사또 아들 이도령만 사랑할까?”
여러분 고민이 들겠어요 안 들겠어요? 너무 오랫동안 보지 않았는데 정말 저 여자가 출세하려고 사랑하는 건 아닐까 궁금한 거야.
왜냐하면 참 사랑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이도령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죠? 거지 중에 산거지로 나가 가지고 뭐라는가 하면 춘향아 내가 왔다 그러는 거예요.
만약에 춘향이가 그때 팔자 피려고 연애했더라고 하면
“어 이거 뭐야 거지가 왔네. 자네 이도령 맞아요”
“ 맞는데요.”
“근데 니가 왜 거지가 됐어”
“아이고 제가 가서 과거 시험을 치다가 쫄딱 망해서 한두 번도 아니고 그게 목에다가 쫄딱 망해서 이렇게 거주 중에 상거지가 되어 왔습니다.”
그렇게 얘기하니까 만약에 팔자 피려고 사랑했다고 하면 여봐라 변사또를 불러라 그랬을 거야.
이 도령이 말합니다. “이 춘향아 니 소원이 무엇이냐 니 소원이 있다고 하면 내가 다 들어주마.”
거지인 주제에 그렇게 하는 거야. 근데 정말 감동적인 장면이 이것입니다.
춘향이가 뭐라 그런가 하면
“도령님 도령님! 소원이 있사옵니다.
내일은 변사또 생일날이 되어서 제가 수청을 들지 않으면 분명히 제 목이 떨어질 것이 분명하니 제가 죽게 되거든 제 시신을 거두어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십시오.
이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님으로 제 시신을 거두어주신다면 이보다 더 큰 소원은 없습니다.”
여러분 그 얘기를 들었던 이몽룡의 가슴이 어땠을까요? 진짜로 사랑하고 있구나.
진짜로 사랑하고 있어. 내일 한번 보자. 내가 너를 정말로 행복하게 해줘야 되겠다.
드디어 다음 날 일이 벌어집니다.
자 이것이 너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나의 청을 들겠느냐 아니면 죽겠느냐 망나니의 칼이 춘향이의 목에 붙었다.
떨어졌다. 붙었다 떨어졌다. 이제 드디어 세 번째 목이 날아갈 찰나에 큰 소리가 납니다.
“암행어사 출도야” 하면서 누가 나와요.
마지막 이제 세상에 그런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들은 하나로 통합이 되어지고, 이 세상의 재난을 멈추기 위하여 거짓된 계명에 충성하라고 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런데 진실된 춘향이들은 그곳에 절을 할 수 없어요.
그들의 목이 떨어지는 것 같은데 떨어지기 전에 우리 주님께서 오셔서 영원한 사랑의 나라로 데려가는 것이 성경 속의 춘향전입니다.
여러분 춘향이처럼 지조 있는 일편단심의 사랑을 주님께 드릴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날 우리가 이 세상의 화려함들을 보면서 우리의 마음에 정조를 팔아버리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데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랑을 주셨는데 감히 우리가 그 사랑을 외면하고 세상과 짝하여 향락을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 온 세상은 주님의 언약에 등지고 배반하며 살아간다 할지라도 우리는 끝까지 주님께 충성하는 일편단심 춘향이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사랑이지만 오늘 저녁 다시 한 번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온전한 사랑을 주님께 드리기 원합니다.
우리의 사랑을 붙잡아주시고 천국까지,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 변치 않는 일편단심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축복해 주시옵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의지하여 간절히 간구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