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아인입니다. 그의 재능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그리고 고민은 무엇인지 명리학적으로 들여다 보겠습니다.
[오행, 십성]
유월 계수이므로 섬세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딥한 인간관계를 하는 스타일입니다. 월지를 편인이 잡고 있어서 예술과 연기를 하는 원천이 되고 있네요. 주목할 것은 일지에 편관을 깔면서 또한 묘지이기 때문에 사색적이고 대단히 깊은 생각의 소유자이면서도 그것을 잘 드러내지 않고 시니컬하게 한마디씩 툭툭 던집니다. 그렇다고 하여 미토 편관이 일간을 극하는 칠살 역할을 하느냐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미토는 편인을 생하고 편인이 다시 일간을 생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느냐면 이 세상의 난관에 대하여 고찰하고 그것을 모티브로 다시 창작 활동에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연지에 상관이 있는데 연기나 예술적 표현력이라고 해석되며 중요한 것은 천간에 재성입니다. 이 사주는 편인격이면서도 천간에 재성이 드러나서 현실감각이 매우 뛰어나 편인의 단점인 아웃싸이더, 사차원 기질을 어느정도 감추고 눈치가 필요할 때에는 눈치가 빠르며 꾀돌이 같은 인상을 줍니다. 그와 동시에 현실이라는 차가움을 선천적으로 인지하고 있으며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기도 합니다. 지지에 있는 편인, 편관, 상관이 모두 흉신이여서 절대로 모범적인 스타일은 아니고 반항적 기질이 있습니다. 학창 시절에 일진이 되지는 않지만 일진들에게 절대 꿀리지 않는 약간 삐딱한 스타일입니다.
이 모든 것은 유아인의 연기 스타일로 나타나는데 아래는 평론가가 유아인에 대하여 논평한 것입니다. 약간 길어도 이 사주 전체를 이보다 잘 표현할 수는 없는 것 같으니 읽어보세요.
유아인은 배역을 감당하는 배우가 아니라 배역으로 자신을 창조해가는 배우다. 자기로서 배역을 소화한다기보다 배역으로써 자기를 살찌워간다. 본래 배우는 해석자다. 배우는 자신의 지성과 감성, 경험과 신체로서 영화의 인물을, 장면을, 스토리를 해석하여 체화하는 ‘해석 창작자’다.(그런 의미에서 배우는 일종의 ’비평 주체’다.) 그런데 배우 유아인은 자기의 감각과 경험을 가지고 대상을 해석, 창작하는 사이에, 그 과정을 통해 만난 새로운 감각과 경험을 다시 자기에게로 가져오는 듯하다.(천간 재성의 작용) 자기를 인물로 만드는 동시에 인물을 자기로 흡수해버리는 것 같다. 그의 연기가 궁극적으로 해석하고 창조한 것은 배역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그는 연기보다, 삶에 더 뛰어나다.
삶에 뛰어나다니, 이게 가능한 말인가. 무엇이 뛰어난 삶인가. 한 인터뷰에서 유아인은 “이 순간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일 뿐, 사실 난 다 잘 모르겠고, 혼란스러움을 온전히 노출하는 것 말고는 어떠한 정답도 결론도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건 이 혼란스러운 상태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는 것”, “끊임없이 찾고, 구하고, 괴로워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러한 끝없는 고민과 방황의 삶이야말로 편인 그자체라고 할 수 있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에게 삶의 능력은 결론을 내리고 혼란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혼란을 지속하려는 용기로써 그는 결론 없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 이것이 그가 “자기를 부정하면서 자기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방식이다.
본연의 자기를 유지하면서 다른 삶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삶을 자기 본연의 것으로 살려내는 일, (‘본연’이란 원래의 모양이 아니라 항상 변화 가능한 움직임일 것이다), 이것이 배우 유아인의 연기이자 삶이다. 그는 자기 본연을 잘 드러내는 편인데, 그의 말에선 연기 뒤의 삶이 읽히고, 그의 연기에선 배역 너머 배우가 보이는 까닭이겠다. 그는 간혹, 연기와 삶 모두에 대해 지나치리만큼 진지하단 소리를 듣는다. 당연하다, 진부해지지 않으려면 진지해져야 한다. 고색창연하게도 ‘청춘의 아이콘’이라 불릴 때도 많다. 괜찮다, 그는 여전히 자기 창조 중에 있고, ‘대변하는’ 배우의 역할도 잘 알고 있으니까. ‘아인시대’라니 좀 호들갑스럽게도 들리지만, 좋다, 유아인이 대세라면 청년이 대세인 것이다. 반갑다, 이런 대세, 어쩌면 세대. 오랜만에 청춘이 대세다. 아님 대세니까 청춘인가.
백지은 문학평론가, 〈사람과 글〉 통권 54호 「이런 대세 혹은 세대 ― ‘아인시대’」
[용신]
용신 잡기 망설여지는 사주인데 편인 하나를 둘러싸고 상관, 재성, 편관이 모두 있으니 인성을 제1용신으로 하고 식상과 재성을 제2용신으로 잡으면 됩니다. 유아인 사주에서는 각 운이 올 때 그 십성에 해당하는 성향이 증가하게 되어 긍정적으로 쓸 수 있습니다. 관성은 사주원국에 있는 편관을 건드려서 자극하여 정신적으로 날카로워질 수 있고 천간으로 오면 재생관 하여 일간을 괴롭히니 그닥 바라지 않고 비겁은 편인격에서 별로 유용하지 않은 십성입니다.
천간으로 정인이 들어오는 경자대운부터 연기활동을 하기 시작하여 신축 대운에서는 천간으로 편인이 들어오고 지지 축토는 유금과 (사)유축 금국을 짜니 그야말로 인성 용신을 얻어서 충무로의 블루칩이 되고 영화를 흥행시키며 스타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편인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운이 오기 때문에 본업인 연기 뿐 아니라 글쓰기나 그림 등 다른 예술활동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구조]
편인격에 천간으로 재성이 있어 재극인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데 마침 대운 천간에서 인성이 들어오기 때문에 재극인이 확실하게 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재극인이 무엇인가요. 관성을 건너 뛴 것이 재극인 아니겠습니까. 본래 재생관-관생인으로 가야 하는데 중간에 관성을 없애 버리고 재성이 인성을 바로 만나 버렸으니 이것은 곧 '관성이라는 절차와 사회적 단계를 무시하고 곧바로 결과물을 가져가겠다'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재극인을 재테크에 비유를 많이 하는데 직장(관성)을 다니지 않고도 결과(재성)를 챙기겠다라는 것입니다.(단적인 예시로 유아인은 검정고시로 학교를 졸업했는데 이것도 학교를 다니지 않고 곧바로 졸업장을 따겠다는 재극인의 물상임) 대신에 인성이 재성에 의하여 극을 받을 때 인성이 다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서 재테크를 통하여 투자를 해 놓으면 이것이 오를지 떨어질지 노심초사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것이고 상황에 따라 직장에 다니는 것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유아인은 사주에 별처럼 빛나고 있는 민감한 유금 편인을 화기운이 자극하므로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더욱 예민해졌습니다. 그리고 용신으로 쓰는 인성을 재성으로 극했다... 무엇인가 감이 오시지 않습니까? 인성은 본래 사람다움이요 아름답고 편안한 마음이고 평화입니다. 그것을 현실의 욕망과 냉정함을 뜻하는 재성으로 극을 했으니... 유아인은 그것을 기가 막히게 해냈기 때문에 스타의 반열에 올랐으면서도 그 부작용으로 엄청난 내면의 갈등과 괴로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심리적 안정을 찾아 예술로 승화시켜 보기도 했지만 파도치는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약물을 가까이 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