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금 100만 원 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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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시인 약력
1988년 《시조문학》 추천완료, 시집 『빛나는 부재』. 한국시조시인협회 본상 수상. 오늘의시조시인회의 부의장, 역류 동인, 율격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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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무등시조문학상 심사평/ 유헌
낚시터에서 꽃을 낚은 시인
가을이다. 낙엽이 속절없이 나뒹구는 늦가을이다. 시간이라는 2023 급행열차가 종착역을 앞두고 서서히 속도를 늦추고 있다. 이때가 되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슬쩍 옆도 쳐다보고 뒤도 한번 돌아보게 된다. ‘광주전남시조문학’도 지난 1년을 갈무리한다. 연간집을 발간해 자축의 시간을 갖고, 좋은 작품을 골라 문학상이라는 이름으로 시상도 한다.
올해 제20회 무등시조문학상 수상작으로 박정호 시인의 「낚시터 단상斷想」이 선정됐다. 최종심에서 올라온 작품들을 대상으로 논의를 한 결과 쉽게 심사위원 전원의 의견일치를 볼 수 있었다. 그만큼 박시인의 작품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박정호 시인은 1988년 《시조문학》 추천완료로 문단에 나온 후 꾸준히 수준 높은 작품을 발표해왔다. 문학평론가 이재창 시인은 “박정호의 시조는 낯선 만큼 신선하다”며, “기존 시인들의 손때 묻은 낡은 비유나 기교 등 문단의 시류에 편승한 유행을 단호히 거부하는 시인”이라고 평한바 있다.
이번 수상작 「낚시터 단상斷想」만 봐도 그렇다. 깊다. 신선하다. “낚시란 허공에 미끼를 다는 일이다”라는 진술부터가 남다르다. 시의 중요한 두 축은 묘사와 진술이다. 묘사만으로 지은 시조는 깊이가 덜하고, 진술이 주를 이루면 너무 관념적이어서 잘 읽히지 않는다. 3수로 된 연시조의 시작을 진술로 시작했지만 시각적, 후각적 이미지 등을 동원해 읽는 맛을 더해주고 있다. 낚시터의 정적을 깨는 발버둥, 몸부림, 팔딱팔딱, 낚아챈, 훅 등의 시어를 배치해 생동감도 주고 있다.
어느 가을, 저수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시적화자가 찌에 집중하고 있다. 어디서 날아왔을까. 문득, 찌에 앉아 날갯짓을 하고 있는 잠자리 한 마리를 목격한다. 한가로이 수면에 제 모습 비춰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잠자리를 바라보며 화자는 물속의 또 다른 세상을 읽는다. 잡느냐 잡히느냐, 생과 사의 비릿한 물결이 저, 수면 밑에서 출렁이고 있을 것이란 상상에서 이 시조는 출발한다.
그래서 고작 40여 센티 안팎의 낚시찌가 백척간두로 보였을 것이다.
생과 사의 갈림길이니 그게 천척절애千尺絶崖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우리 인생을 잠자리에서 읽었을까. 화자는 결국 물고기 대신 “허구의 물고기에게 밑밥을 주”고, 시간을 누천년 전으로 되돌려 “나무 물고기 청동 물고기 입질을” 느낀다. 공간은 허공, 어느새 낚시터가 된 하늘, “물결구름 일렁이는 하늘의 그물”에 걸려 “발버둥 몸부림하는” ‘그것’ 그 무엇을 보기에 이른다.
시상은 첫수 낚시터의 고요에서, 둘째 수 “물결구름 일렁이는 하늘의 그물”에 걸려 ”발버둥 몸부림“치는 폭풍우를 만났다가 마지막 수에서 다시 ”붕어가 꽃이라면 팔딱팔딱 뛰는 꽃이라면“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서정의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가 ”미늘에 걸려든 꽃이 훅, 끼치는 물비린내“까지 맡고 있다. 이미지는 붕어낚시가 아닌 꽃을 낚는 낚시로 확대돼 3수로 된 이 시조를 마무리하고 있다. 절창 중의 절창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낚시터에서 월척을 건진 박정호 시인의 수상을 축하하며 계속 좋은 작품 기대한다.
심사위원 노창수, 이한성, 김강호, 서연정, 유헌 시인(대표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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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시조문학상 박정호 시인
수상작 |
낚시터 단상斷想
낚시란 허공에 미끼를 다는 일이다
백척간두인 줄 모르고 찌에 앉은 잠자리 보며
허구의 물고기에게 밑밥을 주는 일이다.
나무 물고기 청동 물고기 입질을 할 때마다
물결구름 일렁이는 하늘의 그물 속에서
발버둥 몸부림하는 그것처럼, 일인 것처럼.
붕어가 꽃이라면 팔딱팔딱 뛰는 꽃이라면
낚아챈 아가미에서 향기가 날 것인가
미늘에 걸려든 꽃이 훅, 끼치는 물비린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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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다가 어찌어찌 가까스로 기어 나와 나자빠져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천변 밭의 감나무에서 홍시 하나가 툭, 떨어진 느낌이다. 근심이나 고통 핍박 따위가 모두 끊어질 듯하면서도 연속성에 놓여 있으니 길이 험하고 말고의 차이는 실상 같은 것이다.
그런 길을 혼자 간다는 것은 당연한 삶의 여건이라 고독의 대변자로 문학을 택해 내면에 쌓인 것들을 쏟아내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행위로써 썩 훌륭한 방편이라 여기었으나, 근래에 들어서 그것마저도 부질없음을 헤아리고 있던 차였다.
문학의 길에 들어선 지 어느덧 40년을 셈하게 되었고 정식으로 활동하던 시간도 그쯤에 이르렀으니 이는 아직도 미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반박하지 못하겠다.
그런 나에게 왜 이런 소식이 닿았을까. 가슴 뛰고 즐거운 일이어야 함에도 정작은 담담함을 넘어 무덤덤하다. 글 쓰는 것에 게을렀고 큰 관심 밖에 있었으므로 어떠한 기대나 욕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초심을 돌이켜보라는 배려인 것 같아 내심 부담이 되면서도 그 의미를 수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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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시 축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