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들의 신년사를 보면 두 해를 읽을 수 있다. 대부분 지난해 성과를 강조하는 한편, 올해 계획을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총장들의 신년사는 천편일률적인 느낌이 들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총장들의 신년사에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 대학의 미래에 대해 누구보다 고민하는 게 바로 총장이기 때문이다. 해당 대학 교직원들에게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는 동시에 대학가의 전망과 향후 흐름이 담긴 각 대학 총장들의 신년사를 살펴봤다.
■서울대 등 국립대 ‘법인화’ 화두=국립대의 화두는 단연 ‘법인화’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 서울대법인화법이 통과되면서 서울대를 비롯한 국립대는 법인화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오연천 서울대 총장은 신년사를 통해 주로 법인화에 대한 당위성과 필요성을 강조했다. 오 총장은 “‘자율’과 ‘책임’을 핵심 정신으로 하는 국립서울대학교 법인 설립은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고, 또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서울대는 개교 64년 만에 바야흐로 ‘자율과 책임’이라는 두 개의 바퀴로 결코 순탄치 않은 여정을 헤쳐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법인화 추진 과정에 대해 “법인 설립을 둘러싼 쟁점들과 우려들을 원대하고 슬기로운 미래의 가치로 승화시키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한편, 우려에 대해서는 “새로운 체제에서도 서울대는 국립대의 장점을 여전히 살려나갈 것이고, 기초학문과 인본주의적 교육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수 전남대 총장도 ‘국립대 법인화’를 직접 거론했다. 김 총장은 “신묘년 우리의 다짐과 각오가 더욱 새로워야 할 것”이라며 “지난해 말 통과된 서울대법인화법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올해는 호남을 대표하는 거점국립대로서 전남대가 여러 측면에서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해가 될 것”이라며 법인화 의지를 비치기도 했다.
함인석 경북대 총장의 신년사에도 법인화가 나왔다. 함 총장은 “현재 우리나라 대학들은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 봉착해 있다. 교육시장의 개방, 법인화, 대학 간 통합, 대학 내 구조조정, 우수학생 유치의 어려움 등 내우외환의 위기”라면서 “특히 지난 연말 ‘서울대법인화법’이 통과되면서 주변의 상황 역시 크게 변화했다”고 말했다. 함 총장은 이에 대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지역 전체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라며 국립대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작년 성과 토대로 내년에도 파이팅=지난해 성과를 강조하는 한편, 이를 토대로 내년에도 힘을 내자는 내용이 신년사 중엔 가장 많았다. 김한중 연세대 총장은 2010년 QS/US News & World Reports 평가에서 142위에 오른 일 등 각종 평가지표를 들고, 인천 국제캠퍼스 1단계 공사 완료, 송도국제화복합단지개발주식회사가 건물을 학교에 기부한 일, 수시합격자 등록률이 의예과의 경우 지난해 67%에서 87%로 상승한 점 등을 들어 국제캠퍼스의 성공적 출발을 자축했다. 이 밖에 연구특성화를 위한 10-5-20(10년 내 5개 분야에서 세계 20위권 진입)을 목표로 한 원주캠퍼스의 ‘비전 2020’을 알렸다.
이성우 국민대 총장은 △4600여 평 규모의 교육시설 확보 △7호관 2500여 평 규모 증축 완공 △2200평 규모의 기숙사 완공 등 국민대의 숙원이었던 공간문제를 거론했다. 또, 내부순환도로 진입램프 착공에 대해 “단숨에 강남지역과 20분대의 교통로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반겼다.
김대근 숭실대 총장은 △민자기숙사 완공 △학생회관 착공 △교육문화복지센터 건립의 순조로운 진행 △캠퍼스 환경 개선 등 교육환경 개선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숭실융합기술원 개원, 외부연구수주비 4분의 1 이상 초과 달성 등을 지난해 성과로 꼽고 “입시현장에서도 우리 학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바뀌고 있다. 입학경쟁률도 예년보다 월등하게 높아졌다”면서 “학교운영의 책임자로서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박철 한국외대 총장은 반대로 냉철한 자세를 요구했다. 박 총장은 “대학을 둘러싼 제반 환경 역시 지각변동에 가까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며 그 예로 언론사 대학평가와 대학교육협의회의 대학인증평가, 정부의 학자금 대출제한 대학 명단발표 등을 들었다. 박 총장은 이에 대해 “대학 구조조정의 신호탄으로 여겨진다”면서 “2016년부터 본격화될 학령인구 감소는 우리와는 거리가 먼 일부 대학들의 고민처럼 들리지만, 냉엄하게 현실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맹언 부경대 총장은 “고교 학급에서 5등 이내의 우수한 인재들이 입학하는 대학으로 도약했으며, 이들의 취업률도 2년 연속 대형 국립대에서 가장 높은 기록을 나타내고 있다”면서 “새해 첫날을 자신감으로 당당하게 시작하자”고 제안했으며, 박남기 광주교대 총장은 “미래선도형 초등교원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 개편, e-프로세스 폴리오(GNUE-EPP) 가동, 박사과정 개설, 대학의 자랑스러운 독립운동 역사 복원, 릴레이 장학금 확충 작업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올해는 “ㅇㅇㅇ하는 해”=각종 평가지표를 거론, 지난해를 ‘특별한 한 해’로 꼽는 대학도 많다. 이종욱 서강대 총장은 “2010년은 ‘특별한 서강이 많은 성과를 이루어낸 해’”라고 정의했다. △한국서비스품질지수(KS_SQI) 평가 2년 연속 1위 △국가품질경영대회 품질경영상 대통령표창 수상 △아시아대학평가 졸업생 평판도 부문 2년 연속 사립대 1위 등이 이유다.
서거석 전북대 총장은 아시아대학평가에서 전국 10위권 대학으로 평가받은 것을 들어 “지역 대학 최초로 1000억 시대를 열었다”고 자부했다. 이를 가리켜 “많은 대학들이 우리 대학을 두고 가장 역동적인 대학, 대한민국이 주목하고 있는 대학이라고 부러워했다”는 설명도 이어갔다.
영남대 이효수 총장은 “영남대의 저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한 해”라고 말했다. △교육개혁대상 △전국 대학 최초 취업지원시스템 부문 대통령상 △자원봉사 부문 대통령상 등이 이유였다. 평가지표를 거론한 후에는 “‘지방의 한계를 뛰어넘은 대학’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반겼다.
소병욱 대구가톨릭대 총장은 “교육기관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와 찬사인 ‘잘 가르치는 대학’에 선정돼 ACE University가 됐다”면서 “전국의 10개 대학과 함께 당당히 ACE League를 형성해 우리나라 대학교육을 주도해 가는 선도대학으로서의 위상을 갖추게 됐다”면서 “새해 우리나라 대학가의 화두는 단연 ‘학부교육의 혁신’”이라고 말했다.
■정상화·일반대 전환 준비하자=홍덕률 대구대 총장은 지난해 초 법인정상화안을 도출해 내는 데 성공한 것을 가장 큰 성과로 꼽고, 이 밖에 “처음으로 교육역량강화사업에 선정됐고, 취업률에서도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으며, 사범대학 최우수 A등급을 받았다”고 반겼다. 올해 계획에 대해서는 “임시이사체제 17년 만에 법인정상화를 이루고, 대학경쟁력 강화의 획기적 계기를 마련, ‘대구대 제2의 건학’ 원년을 선언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전호종 조선대 총장은 “지난해, 22년의 임시이사체제를 청산하고 법인정상화를 이뤘다. 힘들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구성원 여러분과 지역사회의 도움으로 정상화를 이룰 수 있었다”고 구성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올해에는 “대학의 정체성을 지키고, 대학을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는 일”을 우선 목표로 꼽았다. 전 총장은 이에 대해 “대학의 정체성은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릴 수 없는 조선대의 뿌리이고, 대학의 발전은 지역사회가 우리 대학에 부여해 준 사회적 책무”라고 강조했다.
노준형 서울과학기술대 총장은 오는 3월 일반대학으로 전환을 두고 “이후 5년간 우리나라의 대학교육 환경은 치열한 경쟁상황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일반대로 전환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잘하고 있고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장점을 살려 우리만의 차별성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학부교육 혁신 △새로운 산학협력의 성공적 모델 도출 △종합정보시스템의 개선·확충 작업 등을 과제로 꼽았다.
■날카로운 비유법 돋보여=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총장사에서 날카로운 비유법이나 일화 등으로 귀에 쏙쏙 들어오는 신년사도 돋보였다. 김필식 동신대 총장은 “바닷물이 잘 얼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염분이 있고,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총장은 “바닷물 속에 있는 3.5%의 소금기가 어는 온도를 낮춰준다. 어느 조직이든 소금과 같은 3.5%의 노력이 있다면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3.5%의 사람이 조직을 이끌어가서는 안 된다”며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제각각 3.5%씩 진화하기 위해 정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수 전남대 총장은 토끼해인 ‘신묘년(辛卯年)’에 대해 “묘(卯)시는 농부들이 논밭으로 나가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우리 조상들은 토끼의 해를 성장과 풍요를 상징하는 해라고 믿고 실천해 왔다”며 “성장과 풍요의 삶은 거저 주어지는 선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도연 울산대 총장은 “맹인으로 태어난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은 시력은 있으나 비전이 없는 것이다(The only thing worse than being blind is having sight but no vision)”는 헬렌 켈러의 말을 들어 “우리 모두의 꿈은 울산대가 우리 사회에서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세계무대에서 존경받는 대학이 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김 총장은 이에 대해 “무엇보다도 이러한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긍정의 마인드를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채수일 한신대 총장의 신년사 주제는 ‘전쟁과 평화’였다. 채 총장은 “연평도 사건 이후, 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며 해외의 지인들로부터 걱정과 우려의 편지를 받았다”면서 “어떤 전쟁이든 결국 승자가 있겠지만, 우리 시대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모두의 희생으로 끝난다는 것이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다른 대학 총장들이 각종 성과를 든 것에 비해 정세현 원광대 총장은 “현재 우리 대학은 ‘강자’가 아니라 ‘약자’의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에 대해 정 총장은 “따라서 우리의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재도약의 길을 찾아 ‘강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촌철살인 4자성어로=긴 말보다 촌철살인의 4자성어, 고사성어는 신년사 단골메뉴다. 장호성 단국대 총장은 “작게는 소통과 친절을 의미하는 ‘예상왕례(禮尙往來)’를 실천함으로써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하는 교육시스템과 편리를 제공하는 행정시스템을 구축하고 서로 예를 갖추어 따뜻함이 넘치는 대학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윤수 전남대 총장은 “신묘년 새 아침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지혜를 찾자”는 주제로 신년사를 풀어내기도 했다.
이종욱 서강대 총장은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거론하며 “과거 만들어진 오래된 미래를 오늘에 되살려 새로운 혁명을 일으킨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2011년은 서강이 미래의 대학으로 가는 도약의 원년으로 삼아야겠다”고 말했다.
오영교 동국대 총장은 지난해 성과를 나열하며 “구성원들의 ‘합심협력(合心協力)’과 ‘각고면려(刻苦勉勵)’를 통해 현재의 성과를 이뤄냈다”면서 “우리 모두가 동국의 발전이라는 소명에 뜻과 힘을 모아 ‘용맹정진(勇猛精進)’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교용어로 용맹정진은 ‘부처님께 귀의하는 행위’를 가리키기도 한다. 여기에 “새해에도 부처님의 ‘가피’가 모든 동국 가족에게 항상 함께하시어 뜻하시는 바 ‘원만성취하심’과 동국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고 마무리했다.
서거석 전북대 총장은 “지난 4년간 그래왔던 것처럼 저와 우리 구성원이 힘을 모은다면 반드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은 전국에서 가장 뛰어난 분들이고,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분들이기 때문이다”는 말로 구성원들을 미소 짓게 했다. 이에 반해 김한중 연세대 총장은 “올해 가장 큰 공사는 경영대학 신축이 될 것”이라며 “경영대학 신축은 비용 전액을 자체 모금으로 조달할 예정이다. 연세 구성원 전체가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면서 ‘강요 아닌 강요(?)’를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