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이었다. 골프를 치고 돌아온 남편이 배를 쓱쓱 만지며 옆구리가 아프다고 했다.
너무 잘 치려고 용을 써서 근육이 삐그덕 한 것 아니냐는 내 말에 그런 것 같기도 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심히 하루를 보내고 일요일이 되었다. 오후가 되어도 나을 기미가 없다는 말에 파스를 주었다. 아무래도 근육이 놀란 것 같으니 그걸 붙이면 좀 덜 아플 거라고. 남편은 옷을 치켜올려 턱에 끼우고 배를 내려다보며 파스를 척척 붙였다. 아기처럼 고분고분 내 말을 잘 들으니 괜히 내가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월요일 아침이 되어도 아픈 부위가 그대로라며 남편은 또 징징거렸다. 나는 시큰둥하게,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고 했다. 아무 소리 없이 근무를 잘하고 돌아온 남편. 저녁을 먹고 느긋이 방에 들어가더니 후다닥 뛰어나왔다. "혹시 이거 대상포진 아니야?" 들여다보니 발간 반점이 서너 개 줄을 지어 나와있다. 아침에 붙인 파스를 떼어내다가 발견했단다. 아이구, 대상 포진이면 큰일인데.... 나는 빨리 Urgent Care에 가자며 들여다보던 컴퓨터를 그대로 팽개치고 차 열쇠를 집어들었다. 대상포진인 줄 모르고 며칠을 보낸 친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시기를 놓쳐 엄청 고생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Urgent Care 센터 파킹장에는 차 한대 없이 조용했다. 사방에 불빛 하나 없이 어두운 상황이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손님이 별로 없나보다. 다행이다. 하며 주차를 했다. 문을 밀려고 보니 closed 글자와 함께 Open 8am - 8pm 이라는 사인이 있다. 오늘이 사흘 째인데 이대로 하루를 더 보낸다면 치료 시기가 너무 늦어지는 게 아닌가? 머리 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경험이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친구는 Emergency에라도 가라고 한다. 거기에 가면 못 잡아도 서 너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우리는 마주서서 서로 결정을 상대방에게 떠넘겼다. 위기 때는 여자가 더 용감하다고 했던가. 여자는 약하나 엄마는 강하다. 갑자기 나는 든든한 보호자가 되고 남편은 순진하고 여린 아이가 되었다. 이머전시로 갑시다. 남편은 내게 순종했다.
닥터의 말이. 대상포진이 맞단다. 초기니까 주사는 맞을 필요없고 약을 먹으라고 했다. 처방전을 들고 나온 남편은 얼굴이 활짝 피었다. 주사를 놓아 달라는 남편의 요구에 닥터는 그럴 필요 없다며 약만 먹으면 된다고 했단다. " It's simple! " 닥터의 한 마디에 모든 근심 걱정이 다 날아간 모양이다. 마음의 여유도 생겼는지 당신이 오늘 너무 고생했다고 한다. 고생은 무슨. 대상포진인 줄 모르고 파스를 붙이라고 했던 나의 무식이 부끄럽기만 한데.
집에 돌아오며 미안해하는 그의 말에 문득 이제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울 엄마도 이 병원 이머전시를 자주 들락거렸는데. 그때는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며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곳인 줄 알았다. 세월이 가고 어머니도 떠나가신 오늘은 그게 아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가 되어버렸다. 우리 역시 앞으로 얼마나 더 이 곳을 들락거릴까 싶다. 부부가 번갈아 가며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다가 결국에는 자식 신세까지 지게 되겠지. 나는 남편 몰래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았다.
첫댓글 많이 놀라셨겠네요. 헌데 남편분이 참을성이 많으시네요.
대상포진은 무지 아프거든요. 저도 금요일에 등이 아팠고 너무 아파 남편에게 파스라도 부쳐달라 햇어요.
헌데 겉으로 상처도 없는데 마치 뼈를 바늘로 짜르듯 아팠고.새벽에 혹시 하는 마음에 유트브를 열어보니 대상포진이었어요.
아침에 주치의한테 전화해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고 약 처방받아 먹엇죠.혹시 예방주사를 안맞으샸으면 두분이 함께 맞아두세요.
또 걸릴 수 있거든요. 응급실에서 눈물을 훔치신 선생님의 마음 공감이 갑니다. 그래도 울지마세요. 남편은 큰 애기죠?
주말동안 깜짝 놀라셨겠네요. 일단 걸리면 약을 한달이나 먹어야 하던데... 지금은 어떤지...
전에는 대상포진주사를 한번만 맞았는데 요즈음은 두번 맞는 주사가 나왔어요. 저희부부는 한 3년전쯤 맞았어요. 옛날에 맞은건 무시하고 또 맞아야 한다고 해서요.. 저는 엄마가 두번이나 고생을 하셨었어요. 처음엔 다들 근육통으로 생각하다가 띠처럼 물집이 번져야 알게되죠. 많이 고생 안하시고 빨리 쾌차 하시길 바랍니다. 정말 이제 우리 차례가 돌아오는것 같아요.
그만하신 게 정말 다행이네요
늦게 가면 후유증이 대단하더라고요
나아들면서 병원과 친구가 되네요. 저희 부부도 응급실 , Urgent Care, 주치의사 사무실 자주 드나들어요.
선생님도 마음이 고우셔서 눈물까지.... 두 분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