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강가를 따라 하동으로 가는 길
작년에 이 길을 갈 때는 단풍이 지고 있더니만
올해는 밑동서니 나무가 되었다
음력 10월 15일로 잡은 진주 반야재의
昌寜公 시제를 먼저 모시고
후대 할아버지는 그 이후로 잡고 있어서
오늘은 먼저 玉宗으로 가게된다
11월 19일 새벽 기온은 영하 3도.
낮 동안 바람은 불지 않았다
미리 날자도 예고를 했었다.
그리고 하루 전 다시 보낸 안내문.
내일 玉宗 시제의 초헌관은
灒자 할아버지 嫡長子孫인
英淳이 되고
田垈 초헌관은
洙자 손 采榮입니다
아헌관 종헌관은 따로 두지 않습니다
모두 위전에 술을 올리는 순서로
진행합니다.
헌관의 焚香降神
재위자 일동 재배
초헌례에 이어 집례위원의 告由
재위자 모두 헌주
첨작을 하게 되는 侑食禮
음복
고유문을 사루고 사신
재위자 일동 재배
웃자란 풀들은 발목까지 차올랐다.
작년에 한 번 쳐낸 자리에
죽순이 올라와 대나무가 되었다
孫이 없는 묘지가 있다면
바로 이런 형국일 듯 싶다.
2024년 11월 19일 구례 英淳 貞淳 광양 炅求 采榮은
옥종면 병천리 진제할아버지 묘역에 엎드려
선대 할아버지 할머니께 삼가 술을 올리오니 흠향하여 주소서
지금의 산청군 단성면 어느 곳에서 東酉坐라 하여
서쪽을 향해 누워 계실
克新할아버지와 長水李氏 할머니
그분의 셋째 아드님으로 태어나
지금 합천군 三嘉面 금리 어느 곳에 누워계실 再慶할아버지와 豐山洪氏할머니
그 아드님 遇昌할아버지와 全州李氏 할머니
그리고 아들 손자가 변변치 못하여 숙종 조 때
구례 토지면 송정리에 쌍분으로 조성한 뒤 失傳하고만
鳳老할아버지와 密陽朴氏 할머니께
잔을 올려 드립니다
진제할아버지가 스물한 살 나던 1670년 庚申 대기근이 시작되던 때
이 시절은 너나 할 것 없이 먹고 산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을 때,
爲先위선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을 일입니다
험난한 시대를 고단하게 살아
8대에 이르는 선대 할아버지의 음택을 찾을 수 없음을
그래서 失傳이라는 이름으로 보첩상에 기록되어 오늘에 이름을
안타깝게 여깁니다.
德元할아버지 死後 285년이 지난 후 鎬자 항렬이 152명에 이르고
淳자 손들이 수백에 이르고 있으나
오늘 이렇게 단촐하게 찾아왔습니다
다음에는 일가들이 더 많이 참석하여
姜門의 결속과 단합을 이룩할 것을 다짐하면서
삼가 英淳 고하였습니다.
이어 德元할아버지의 세 아드님 차례가 된다.
이름하여 전대 시제인데
이곳에 洙할아버지 沃할아버지가 자리한다
洙자 할아버지 死後 263년
沃자 할아버지 사후 281년에 이르는 2024년 11월 19일
8세손 采榮이
7대조 洙자 할아버지와 金海金氏 할머니
沃자 할아버지와 晉州 鄭氏 할머니
6대조 載寅할아버지와 全州李氏 할머니
載昶할아버지와 南原梁氏 光山鄭氏 할머니
載炳할아버지와 淑夫人 金海金氏 할머니
5대조 齊會할아버지와 光山金氏 할머니
陽會할아버지와 全州李氏 할머니
宜會할아버지와 光山金氏 할머니
縉會할아버지와 淑夫人 陜川李氏 할머니
4대조 永伯할아버지와 晉州 鄭氏 할머니
永宇 할아버지와 全州李氏 할머니와 金海金氏 할머니
永杓할아버지와 光山金氏 할머니
永亨할아버지와 光山金氏 할머니
永來할아버지와 岳林洪氏할머니
永培할아버지와 金海金氏 할머니
永泰할아버지와 貞夫人 文化柳氏 할머니
永錄할아버지와 淑夫人 咸安趙氏 할머니께
술과 안주를 올리오니 흠향하여 주소서
이 자리에 함께한
灒자할아버지
9세손 구례 英淳 貞淳 광양 炅求의
선대 할아버지 할머니를 향한 정성 지극한 추모의 情도
함께 잔에 담아 올렸으니
이 모두에게 넘치는 재복과 행운 그리고 건강을 내려 주소서
삼가 8세손 采榮 고하였습니다
이제 德元할아버지의 長子 차례.
청암면으로 간다.
호반의 중심 자락에 자리할 줄 누가 알았을까.
水 변에 총 22획으로 쓰인 灒 자는 물을 뿌린다는
뜻을 지닌다.
2024년 11월 19일 英淳은 灒찬자할아버지 묘역에 엎드려
한없는 숭모의 정을 술잔에 담아 올립니다
오늘 할아버지의 9세손 구례 貞淳 광양 炅求
洙 자 할아버지 8세손 광양 采榮은
할아버지 死後 252년 후 이 자리에 와서
자식을 출사의 길로 나서게 하신 영광을 한 몸에 받으시고
가문의 중흥을 이룩할 터전을 마련해 주셨음을 감축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걸어온 걸음걸이를
광양 현감 윤심휘가 짓고
하동도총부사 이원덕이 쓴 묘비를 어루만지며
자손 된 도리를 다할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비록 음택陰宅을 달리하고 있으나
貞夫人의 봉작을 받으신 光山金氏 할머니
아들이 관직에 오르는 영광을 입으신 貞夫人 靑松沈氏 할머니의
술잔도 함께 올립니다
할아버지의 음택을 자식 이상으로 돌보며 관리해 왔던
수호인 수상 일가가 세상을 뜬 지 며칠 됩니다.
치하해 주시고 일가의 권속들에게도
재복과 건강을 축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모두를 잔에 담아
삼가 英淳 고하였습니다
향을 사루어 魂을 부르고
술을 땅에 부어 魄을 일으켜 세운 후
술을 올리고 안주를 드리는 이런 시제에서
음복은
저승과 이승을 잇는 다리가 된다.
이런 음복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러 이곳으로 온다
작년에는 시제는 뒷전이고 제물을 올리는 그 앞에서
무슨 억한 심사로 치고받고 난리를 치다가도
여섯 자리에 앉았는데
오늘은 네 자리가 됐다.
이러다 내년에는 세 자리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첫댓글
옥종면 병천리 산16번지 임야992평방미터
그 곳에 우리의10대조晉悌진제할아버지와
9대조德元덕원할아버지 묘소가 있다
병천리802-1번지 답1,873평방미터의 토지는
산과 마찬가지로
진제공파문중으로 등기가 나 있다
晉悌진제할아버지는 내외가 이곳에 쌍분雙墳으로 자리하고
德元덕원할아버지의 김해김씨 할머니는 이곳에 있지 않고
田垈里 山65의3번지에 있다
1994년 12월
진주강씨대동보편찬위원회가 발행한
진주강씨대동보 六권 28쪽에 이렇게 나와 있다.
박사공 18세
晉悌
初諱 錦爀 字 仁本 1650年 庚寅生
贈 通訓大夫
玉宗面 屛川里 山15 番地
配 淑夫人 金海金氏墓 雙墳
이를 옮기면
진제는 어려 이름이 금혁이다.
커서 인본이라 불렸다.
1650년 호랑이해에 태어났다.
죽은 후 정삼품 당하관에 해당하는
통훈대부라는 명예를 입었다.
옥종면 병천리 산15번지에
숙부인으로 추존된 김해김씨와
두 묘가 나란히 있다.
박사공 19세인
덕원할아버지는
어릴 때 서원으로 불렸다
1673년생
1739년 9월 12일 세상을 떠난 후
통정대부라는 정3품 당상관의 품계와
공조참의라는 직책을 부여 받았다.
묘는 하동군 옥종면병천리 산15번지
雲谷村 오른쪽에 정남향으로 묘가 있다.
숙부인으로 추존된 부인은 김해김씨로 부친은 淑昌이다
1675년생
대동보에는 사망년도 없이
정월 24일 세상을 뜬 것으로 만 나와 있다.
묘는 여기에 있지 않고
하동군 횡천면 전대리 산65의 3번지
마을 뒤에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비석이 있다.
初諱瑞元1673年癸丑生贈通政大夫
工曹參議1739년己未9月12日卒
墓河東郡玉宗面屛川里山15番地
雲谷村右子坐
配
淑夫人金海金氏父淑昌1675年乙卯生
正月24日卒
墓 河東郡橫川面田垈里山65의 3番地
村後子坐有碣
시제 제물은 광주광역시에 소재한
제사음식과 구례김치 전문점에 주문하여
이를 받아왔다.
광주광역시 북구 평교로 42-1
대주 1차 아파트 상가동
산신제물을 없앴고
밥과 국도 쓰지 않았다.
술은 무등산막걸리
제물가격은 70만원씩이다.
옥종의 진제공, 덕원 할아버지 묘역에 한 제물
그리고 전대 洙자 沃자 할아버지 제단에 한 제물로
제물대로 140만원이 쓰여졌다.
송금계좌는
광주은행 093-122-240163
이다남
11시 30분에 옥종시제를 마치고
옥종면소재 대우정육점 2층
한식부페식당에서 1만원짜리 점심식사 비용은
진제공파 종중기금에서 사용한다.
4천원하는 소주 1병을 포함하여 44,000원.
청암 소재 灒자 할아버지 시제 제물은
洙자 沃자 할아버지 제단에 올린 70만원짜리를
주문하지 않고
구례하나로 마트에서 290,890원에 이르는
제수 일체를 구입하여
식혜는 만들고
생선은 쪄서 제물상자에 담아 왔다.
명가떡집에서 22,500원의 떡값은 별도다.
이에 灒자 할아버지 제물대로 313,390원이 쓰였다.
이 돈은 청암 소재 위토답 토지 사용료에서 나간다
음복을 마치고 난 뒤 차려진 제물은 이렇게 분배하였다.
옥종 시제제물은 광양의 경구/채영이
전대 시제제물은 구례의 영순/정순이
그리고 청암제물은 오래동안 찬자할아버지 산소를
관리하다 얼마전에 세상을 뜬
일가 수상씨 가정에도
나누어 드렸다
11.15
진주반야재 제물대 161,590
구례↔반야재 차량비 50,000
11.19
옥종/전대 두 제물 1,400,000
옥종 점심 44,000
제물운반차량비 50,000
시제참가 采榮 차량비 50,000
이렇게 쓴 돈이 1,755,590원입니다.
라고 진제공파 회장님한테
영수증을 보여주고
설명을 드리며
이 구좌로 이체해주면 된다고
하려 했다가
내년 총회때 洙자, 沃자 孫이 있는데서
결산을 해야되는게 아니냐고 해서
내가 좀 신경질을 부렸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회장님한테
사과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