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의 대안, 도산의 애기애타
-민주공화국을 실현하는 상생 철학의 생활 원리
핵심 내용: 물음과 정리
1 세계 근현대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민주화: 봉건왕조의 신분체제와 관행을 청산하고 자유·평등·사랑의 민주공화국 건설
과학기술(산업)화: 비과학적 미신과 운명론, 결정론을 타파하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삶과 사회 건설
세계화: 민족과 국가, 지역과 종교를 넘어서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세계 보편의 문명 건설
2 한국 근현대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1) 동서 문명의 합류를 통해 민족의 주체적 자각을 이루고 조선왕조의 낡은 이념과 관행을 청산하고 외세(일제)의 제국주의를 극복하여 민주·공화의 나라를 이룬다.
2) 한국과 중국의 낡은 정신과 사상, 비과학적이고 운명론적인 사이비 철학과 사상을 극복하고, 지배와 정복을 지향한 서양의 반생명적 반공동체적 사상, 물질론, 기계론, 관념론을 극복하여 민주공화국을 완성하는 상생 철학을 닦아낸다.
3) 상생 평화의 철학을 가지고 세계시민으로서 민족과 국가, 지역과 종교의 벽을 넘어서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이루는 세계 문명의 길을 연다.
3 극우세력의 정치적 철학적 배경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1) 권리에 기초한 민주주의 체제의 한계와 효력 상실로 국가사회의 위기와 불안이 고조되고, 시장경제의 세계화와 인공지능과 로봇 중심의 산업혁명으로 일자리를 잃고 가난으로 내몰린 노동자 대중이 불안과 분노 속에서 극우세력과 결탁하여 파시즘과 선동가들의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 국가권력과 부, 국가이념과 체제를 앞세우는 국가주의 세력, 입시경쟁교육과 능력주의 철학을 신봉하는 지식인 엘리트들은 대중의 불안과 분노를 조장하여 파시즘적 전체주의로 이끌고 있다.
2) 미국의 기독교 보수세력은 근현대의 도시산업화, 과학적 진화론, 동성애에 대한 불신과 저항으로 세력을 키워왔으며 반지성적 교리주의 신앙과 신학에 매여 있다. 이들은 시대착오적으로 전근대적 기독교 국가를 건설하려 한다.
3) 한국의 기독교 보수세력은 미국의 기독교 보수세력과 결합 되어 있으며 동조하면서 전근대적 반지성적 교리 신앙과 근본주의 신학(fundamentalism)에 매몰되어 있다. 한국의 극우세력은 무당, 얼치기 도사와 법사들의 영향으로 더욱 부풀어 오르고 있다. 만일 자연생명세계의 물질적 공간과 시간에 인간을 예속시켜 운명론과 결정론을 조장하는 주역 팔괘, 음양오행, 풍수지리, 사주명리학이 없다면 무당, 얼치기 도사·법사들의 위력은 1/10로 줄어들 것이다.
4) 세계 근현대와 한국 근현대의 시대정신을 구현하면서 민주공화국과 세계시민의 정신을 형성하는 상생 철학을 정립하고 널리 알리고 실천해 가야 한다.
4 조선왕조의 신분 질서와 체제를 혁파하고 외세(일제)의 제국주의에 맞서 민주공화의 나라와 새 문명을 창조하는 안창호와 신민회의 민족 교육운동에 대한 바른 이해와 평가는?
1) 신민회의 주역으로서 안창호와 이승훈이 주도한 민족교육운동은 새 나라 새 문명을 짓는 운동이었다. 민족의 한 사람, 한 사람의 ‘나’가 새 나라 새 문명의 창조자적 주체이며 책임적 주인이다. 오산학교 교가(이광수): “불과 쇠를 주물러 새 누리를 짓고 말련다.” 오산학교 운동가(유영모): “다물은 입 열면 우레 울리고 손을 한번 움직이며 번개 치리라.”
유영모는 “지구라는 흙덩이를 타고 호호탕탕 우주를 노닌다.”고 하였다. 그는 “해를 삼키고 달을 토하며 나를 갈고 닦아 세우련다.”고 했다. 해와 달은 자연의 힘과 질서, 시간과 때의 변화와 움직임을 나타낸다. “해를 삼키고 달을 토한다.”는 유영모의 말에서 자연 질서와 때의 변화의 주인과 주체로 산다는 의지를 본다. 그는 인간의 주체 ‘제’(나)와 시간의 ‘제’(때)를 일치시켰으며 “내가 나의 때를 사니 즐겁고 신난다.”고 하였다. 나아가서 그는 인간의 ‘나’가 길(道)과 법, 참과 이치의 창조적 주체이고 근원이라고 하였다.
2) 도산이 조직하고 이끈 신민회의 민족독립교육운동은 삼일운동과 임시정부의 뿌리와 불씨였다. 그것은 민주공화국의 내용과 토대를 놓는 운동이었고 민주화와 산업화, 민족 독립과 통일의 정신과 토대를 다지는 운동이었다.
5 도산 안창호의 상생철학과 생활원리 애기애타
1) 체천동인(體天同仁), 상생상양(相生相養), 애기애타(愛己愛他)의 철학은 오늘 우리를 서로 주체가 되어 서로 살리고 서로 키워주는 상생철학이고 미래를 열어주는 민주공화국의 철학이다. 체천동인(體天同仁), 애기애타(愛己愛他)의 상생철학은 새로운 기축시대를 여는 민주공화의 철학이다. 하늘(하나님)을 체험하고 체화하여 차별없는 하늘의 사랑으로 서로 살리고 길러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늘, 하나님을 우러러 섬기고 받드는 한국과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사상을 넘어서, 하늘의 법도와 성실을 본받는 고대 중국의 철학에 머물지 않고 하늘, 하나님을 체험하고 체화하여 하나님처럼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내 속에 들어와 있다. 하늘의 사랑과 성실(정직)이 내면화 주체화하여 나의 생각, 말, 삶, 행동, 일과 관계에서 표현되고 실현되고 구현된다.
체천동인, 상생상양, 애기애타는 하늘과 인간의 하나 됨을 지향한 중국고대 철학의 천인합일이나 한울님을 모시고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는 동학의 시천주(侍天主), 사인여천(事人如天), 하늘과 인간과 생물을 공경하는 동학의 삼경(三敬)보다 깊고 주체적이고 현대적이다.
2) 도산이 보인 상생의 지도력은 서로 섬기고 복종하며 서로 이끄는 쌍방향 지도력이다. 상생의 철학이 민주공화국의 철학이다. 전봉준의 죽창가도 신채호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철학도 오늘 우리의 민주공화국의 상생 철학이 될 수 없다.
3) 상생 사회를 어떻게 실현할까?
서로 주체가 되어 상생 사회를 실현하는 생명철학, 역사철학, 실천철학을 확립하여 체화해야 한다. 서로 살리고 서로 길러주는(相生相養) 생명철학의 생활 원리인 도산의 애기애타 정신을 체화한 사람이 참 사람이고 생명과 역사의 씨ᄋᆞᆯ이다. 참 사람, 씨ᄋᆞᆯ의 생각 한 조각, 말 한 마디, 삶, 행동, 몸짓, 표정, 눈길에서 상생 사회는 열리고 시작되고 실현된다. 지금 여기서 나와 우리의 삶과 일 속에서 상생 사회와 상극사회(진영 당파 사회)가 갈라진다. 내가 지금 하는 참된 생각, 말, 행동, 눈빛이, 우리가 하는 일, 관계가 서로 살리는 누리를 열고 짓고 만든다. 나의 생각, 말, 삶, 행동이, 나와 너와 그가 함께 만들어가는 관계와 일이 상생 사회, 새 문명의 씨ᄋᆞᆯ이고 불씨다.
21세기의 대안, 도산의 애기애타
-민주공화국을 실현하는 상생 철학의 생활 원리
들어가는 말: 한국 근현대의 시대정신과 상생 철학
1 민주주의 체제의 위기와 극우세력의 강화
민주주의 체제의 위기와 불안 속에서 극우세력이 전면에 등장하고 적대와 배척의 진영논리와 당파주의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권리 중심의 법과 정의에 기초한 민주주의 체제는 한계에 이르고, 효력을 잃어간다. 인공지능, 로봇을 중심으로 한 산업혁명, 제조업 공장들의 외국 이전, 이주노동자 증가로, 미국, 유럽, 한국, 일본의 산업노동자들은 일자리 상실과 생존 위기를 겪고 있다. 로봇과 이주노동자에 밀려 버림받고 가난과 실직 상태로 내몰린 사람들이 미국 유럽 일본 한국의 극우세력과 파시즘, 선동적인 지도자들의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
미국과 한국의 극우 기독교 세력은 시대착오적으로 근현대의 시대정신(민주화, 과학기술화, 세계화)을 거스르며 전근대적인 기독교 국가를 건설하려 한다. 한국 기독교 극우세력은 미국의 기독교 극우세력과 긴밀하게 결합 되어 있으며 동조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시대착오적인 무당, 무속, 얼치기 도사, 법사들도 위력을 떨치고 있다. 극우 기독교 세력은 반지성적 비과학적 교리주의 신앙, 근본주의 신학에 매몰되었고, 한국 무당, 무속들은 전근대적 비과학적 주역 팔괘, 음양오행, 풍수지리, 사주 명리 같은 낡은 중국 전통사상과 결합되어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
2 국가 문명의 성숙과 민주공화국의 완성
오늘 인류의 사명과 과제는 국가 문명의 성숙과 질적 변화를 이루는 것이며, 낡은 국가주의 이념과 관행을 청산하고 국민주권에 기초한 민주공화국을 완성하는 것이다. 민주공화국은 국민주권과 상생 사회의 실현으로 완성된다. 한국 근현대의 시대정신과 한민족의 과제는 서양문명을 주체적으로 수용하여 민족의 주체적 자각을 이루고, 동서 문명을 창조적으로 융합하여 민주화, 과학기술화, 세계화를 완성하는 새 문명을 형성하는 것이다. 한국 근현대의 시대정신과 민족적 과제를 이루려면 먼저 한국·중국의 낡은 정신문화, 철학사상을 극복하고 청산하며, 지배와 정복을 추구한 반생명적 국가주의적인 서구 문명과 정신문화를 극복하고 정화하여, 새로운 민주공화의 생활 철학으로서 상생 철학을 닦아내야 한다.
한국 근현대의 시대정신을 온전히 구현하고 실현한 사람이 도산 안창호다. 정신 문화적 주체성을 가지고 서양의 기독교 정신, 과학사상, 민주 사상을 깊이 받아들인 안창호는 “하늘(하나님)을 체험하고 체화하여 서로 살리고 서로 길러주는”(體天同仁 相生相養) 상생 철학을 확립하고 민중 속에 들어가 민중과 함께 일어서서 서로 살리고 서로 키워주는 민주공화국 운동을 일으켰다.
3 상생 사회를 어떻게 실현할까?
서로 주체가 되어 상생 사회를 실현하는 생명철학, 역사철학, 실천철학을 확립하여 체화해야 한다. 서로 살리고 서로 길러주는(相生相養) 생명철학의 생활 원리인 도산의 애기애타 정신을 체화한 사람이 참 사람이고 생명과 역사의 씨ᄋᆞᆯ이다. 참 사람, 씨ᄋᆞᆯ의 생각 한 조각, 말 한 마디, 삶, 행동, 몸짓, 표정, 눈길에서 상생 사회는 열리고 시작되고 실현된다. 지금 여기서 나와 우리의 삶과 일 속에서 상생 사회와 상극사회(진영 당파 사회)가 갈라진다. 내가 지금 하는 참된 생각, 말, 행동, 눈빛이, 우리가 하는 일, 관계가 서로 살리는 누리를 열고 짓고 만든다. 나의 생각, 말, 삶, 행동이, 나와 너와 그가 함께 만들어가는 관계와 일이 상생 사회, 새 문명의 씨ᄋᆞᆯ이고 불씨다.
1 한국 근현대 시대정신의 구현: 동서문명의 만남과 융합
1) 상생 사회로 이르는 가운데 큰길
근현대의 이념과 원리는 왕조사회의 신분체제를 극복하는 민주화, 미신과 운명론을 타파하는 과학·산업화, 민족과 지역의 경계를 넘어서는 세계화다. 한민족은 서양 정신문화의 핵심인 기독교정신, 과학사상, 민주사상을 받아들이고 중국 중심의 정치 문화적 질서와 세계를 벗어나서 세계 보편의 새로운 문명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서양의 사상과 문화는 이미 한국 사회에 깊이 들어왔고 생활화하였다. 마치 서양의 정신과 문화가 들어오지 않은 것처럼 한국과 중국의 전통문화와 사상만 탐구하고 내세우거나, 한민족의 문화와 역사, 삶과 정신이 없는 것처럼 서양의 정신과 문화, 사상과 이론에만 몰입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그릇된 일이다.
과학적이고 민주적인 상생사회를 실현하려면 근현대의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한국과 중국의 낡은 사상과 문화를 철저히 비판하고 한국과 중국의 전통문화와 철학에서 생태학적 사고와 가치, 도덕적 성실과 수행의 전통을 계승해야 한다. 지배와 정복을 추구한 서양 제국주의 문명의 반생명적 문화와 사상을 극복하고 서양문명에서 기독교의 초월적 생명(인간) 이해, 합리적인 과학사상, 민주 사상의 핵심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안창호는 누구보다 치열하고 철저하게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였다.
한국 근현대는 한민족의 역사문화적 주체와 정체를 확립하고 서양문명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여서 조선왕조의 낡은 질서와 관념을 청산하고 일본제국의 식민 지배를 극복하여 민주공화의 나라를 이루고 세계정의와 평화를 이룰 사명과 과제를 안고 있었다. 안창호는 그 사명과 과제를 이루기 위히여 인간과 민족 사회를 새롭게 하는 민족교육 운동에 힘썼다. 신민회를 조직하고 평생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민족교육에 힘쓴 안창호의 교육·독립운동은 삼일 독립운동의 불씨와 뿌리가 되었으며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의 정신과 이념이 되었다. 이러한 민족교육 운동을 통해 한민족은 민족의 주체적 자각을 이루었으며 민주화와 산업화를 통해 민주 공화의 나라를 실현하였다.
안창호가 신민회를 조직하고 민족의 독립교육 운동을 벌인 1907~1910년의 짧은 기간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다. 신민회는 처음으로 민주 공화의 정신과 이념을 분명히 제시했고 민족의 구성원을 나라의 책임적 주인과 주체로 깨워 일으키고 민족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확립하였으며 새 문명의 과학사상과 민주 정신을 고취시켰다. 신민회의 구성원들은 교육운동과 독립운동의 중심과 주체가 되었다. 여기서 삼일 독립운동의 불씨와 토대가 마련되었고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이끄는 주역이 나왔다.
안창호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상, 민주공화의 정신과 이념에 충실한 교육과 운동을 벌이고 애기애타의 상생철학을 제시하고 실천한 것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통해 상생사회를 이루어가는 길과 방향, 귀감과 모범을 보여준 것이다. 한국 근현대의 중심과 방향은 안창호를 통해 마련되고 확립되었다. 오늘 우리가 진영논리를 극복하고 상생사회를 이룰 수 있는 정신과 철학, 실천 원칙과 방법은 안창호에게 배워야 한다.
죽창을 들고 나섰던 5만 명의 동학농민군은 일본군에게 물살을 당하고 일본군은 이어서 10~40만 명의 농민을 학살하였다. 이때 한민족이 맛본 절망과 고통은 말할 수 없이 깊고 컸다. 동학혁명군의 장엄함과 아픔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마땅하지만, 그 혁명의 실천방식과 형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또한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 총을 쏘고 폭탄을 던져서 일본제국주의 세력을 응징했던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를 기리고 찬양해야 하지만, 우리가 이들처럼 총을 쏘고 폭탄을 던져서 오늘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또한 흔들림 없이 꼿꼿하게 일제에 저항했던 신채호처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을 역사의 철학으로 내세우면서 진영논리 극복과 상생 사회 실현을 말할 수 없다. 진영과 당파를 넘어서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내세우며 애기애타, 상생상양의 철학을 정리한 도산 안창호가 상생 사회로 이끄는 길잡이가 될 수 있다.
2) 동서문명의 만남과 융합을 위하여
동서문명의 만남과 융합은 한국 근현대의 삶과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만남과 융합이 주체적으로 창조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동서문명의 핵심 내용과 정신을 깊이 이해하고 체화해야 한다.
(1) 한민족의 생명체험
한민족은 5~10만 년 전쯤부터 국가 문명을 형성한 5천 년 전까지 아프리카에서 해 뜨는 동쪽을 향해 유라시아 대륙 끝까지 멀고 험한 편력을 하면서 특별한 생명 체험을 하였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보면서 아름답고 풍성한 삶을 위해 길고 오랜 여행을 하는 동안, 하늘을 우러르는 높은 뜻과 고결한 이념을 지니게 되었고 강인한 생명력과 생명 사랑을 체득하였다. 한반도와 만주에서 해 뜨는 아침의 나라(아사달, 朝鮮)를 이룬 한민족은 하늘의 높은 뜻과 이념을 가지고 나라를 세웠다. 한민족은 하늘을 열고 나라를 세운 하늘의 자손(天孫)이라는 자각을 지니게 되었다. 그들은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생명을 사랑하는 나라를 이루려 했다. 고대의 한민족은 생명을 사랑하여 서로 생명 살리기를 힘쓰는 겨레였다.
하늘을 우러르며 생명을 사랑하고 생명 살리기를 힘쓰는 한민족의 상생 정신은 건국 설화와 종교문화에 나타나며, 한국어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한국어는 일인칭 주어가 약화 되거나 생략되고 상대를 대상화, 타자화하는 삼인칭도 발달하지 못했다. 다만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상대와 소통하고 교감하는 언어다. 대상을 주체로서 존중하므로 형용사와 부사, 의성어와 의태어가 발달했고 존댓말이 매우 발달했다. 상생과 공존을 추구한 한민족은 착하고 평화로운 성향과 기질을 지켜왔다. 한반도와 만주에서 한민족은 서로 경쟁하고 다투었으나 중국대륙이나 일본을 정복하는 전쟁을 하지 않았다.
2) 인도 유럽어족의 국가주의 문명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서 시작하여 코카서스산맥 북쪽과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에서 세력을 키운 인도 유럽어족은 말과 수레와 무기를 가지고 전쟁을 잘하는 호전적인 집단이 되었다. 이들은 국가 문명이 형성된 다음 4,800~3,500년 전쯤에 서쪽으로는 유럽으로 남쪽으로는 인도로 침입하여 유럽과 인도를 정복하고 지배하였다(마리아 짐부타스). 이들은 전쟁과 정복, 지배와 통치에 특화된 민족이었다. 이들이 3,500년 전에 인도로 침입하여 확립한 카스트제도는 이들의 지배와 정복이 얼마나 잔혹하고 확고하게 유지되었는지 보여준다. 인도 유럽어족은 국가주의 문명을 주도했고 국가주의 문명의 꽃을 화려하게 꽃피웠다. 땅의 정복자. 지배와 정복을 추구한 인도 유럽어족은 땅(물질)의 현실과 대상을 계산하고 분석하는 순수수학과 과학을 발전시켰다. 지배와 정복을 추구하며 물질론과 관념론(이데아)을 바탕으로 수학과 과학을 발전시킨 유럽의 철학에서는 물질과 관념을 초월하여 없음과 빔의 자유와 초월을 가지고 사물과 생명과 인간을 주체와 전체로서 함께 실현하고 완성하는 참된 생명철학에 이를 수 없었다.
지배와 정복을 추구한 인도 유럽어족의 언어, 이성철학, 정치역사의 성향은 정확히 일치한다. 이들의 언어에서 주어가 문장, 객어와 술어를 주도하고 지배한다. 상대, 객어는 문장에서 거의 구실을 하지 못한다. 주어가 문장을 완벽하게 지배하고 규정하고 상대, 대상은 객관화, 타자화된다. 상대, 대상을 객관화, 타자화함으로써 삼인칭이 발달했다. 이 언어는 정교한 기계처럼 정해진 복잡하고 자세한 문법과 규칙에 따라 정교하게 논리적으로 구성된다. 이런 언어의 특징은 ‘알다, 앎’을 나타내는 인도 유럽어족의 뿌리말 ‘skei’가 ‘자르다, 가르다, 분리하다’를 뜻하는 데서 알 수 있다. 인도 유럽어에서 앎, 지식은 자르고 가르고 분리하여 얻는 조각난 지식, 정보, 데이터다. 이에 반해 생명 철학적 지향을 지닌 한국어에서 ‘앎, 알다’는 인식대상의 알짬, 알맹이, 본질을 뜻한다. 한국어에서 앎은 조각난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사물과 생명의 존재론적 깊이와 본질을 나타낸다. 앎은 대상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깨달음과 성찰을 담은 지식이다.
그리스의 로고스(이성) 철학은 인식주체인 이성만을 주체로 하고 모든 대상은 대상화, 타자화, 관념화한다. 플라톤은 로고스 이성의 본성과 원리를 이상화한 이데아를 존재의 실체와 이념으로 높였다. 따라서 현실 자연 물질세계의 모든 존재자들은 이데아의 그림자, 모조품으로 전락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론과 존재론도 인식대상에 대한 인식주체의 공격과 지배의 경향을 분명히 드러낸다. 그가 법정에서 심문과 공격을 뜻하는 말 ‘아이티아’(원인, 실체)를 인식론과 존재론의 핵심어로 사용했을 때 인식대상에 대한 인식주체 이성의 공격적이고 정복자적인 성향이 뚜렷이 드러났다. 모든 존재자들을 형상인, 질료인, 운동인, 목적인으로 분해한 것은 인식대상에 대한 공격과 심문의 자세를 드러낸 것이다. 형상인은 꼴, 정체를 묻는 것이고 질료인은 성분을 묻는 것이며 운동인은 활동을 묻는 것이고 목적인은 의도와 지향을 묻는 것이다. 자연 사물과 인간에 대한 이런 공격적이고 정복자적인 철학적 경향은 근현대의 자연과학과 철학에서도 뚜렷이 확인된다.
인도 유럽어족은 순수 수학과 자연과학을 발달시키고 과학기술혁명을 이루었으나 자연생태계와 다른 민족과 국민(민중)에 대한 공격적이고 정복자적인 자세를 시종일관 유지하였다. 전쟁과 폭력, 지배와 정복을 추구한 인도 유럽어족은 자연생태계를 파괴하고 오염시키는 데 앞장섰으며 다른 인종과 국가들에 대한 식민지쟁탈 전쟁을 벌임으로써 인류를 1, 2차 세계전쟁으로 내몰았다.
3) 중국의 농본주의적 전통 철학: 자연·생명친화적 생활철학
중국철학은 유기체적 통합적 생명공동체적 인간 이해를 제공한다. 하늘과 땅 사이의 자연 생명 세계와 인간사회를 하나의 가족, 집으로 생각했다. 아버지 하늘과 어머니 땅이 생명을 낳고 기르고 돌본다고 여겼다. 중국인들은 아시아 대륙의 중심을 지키며 하늘과 땅의 질서와 법도에 충실하고 성실하게 조화롭고 평화롭게 살려고 하였다. 하늘과 땅을 구분함으로써 중국의 정신과 철학은 물질론, 기계론, 관념론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형이상학적 사유(무와 공을 말할 수 있는 생명·정신세계의 형이상학)를 가능케 한다. 예법과 관계에 충실하고 의리를 지키며 하늘의 법도에 맞추어 살기 위해서 극기 수양의 전통이 발달했다. 자기의 몸과 맘, 생각과 행동을 갈고 닦는 수양의 종교, 정성스럽게 생활하는 생활의 종교를 발전시켰다.
천인합일, 천지인합일, 주역 팔괘, 음양오행, 풍수지리, 사주명리는 모두 하늘과 땅의 자연생명세계의 질서와 법도에 순응하며 조화롭게 살자는 사상이다. 유가사상과 도가사상의 뿌리와 배경이 되는 『주역』(周易)에서 큰 사람은 천지 일월 사시(四時)의 법도와 질서, 변화와 운동에 부합하는 자라고 했다.(夫大人者, 與天地合其德, 與日月合其明, 與四時合其序). 하늘과 땅의 힘과 작용, 해와 달의 밝음과 힘, 사계절의 변화와 흐름에 부합한다는 것은 자연주의적 질서와 법도, 변화와 흐름에 순응하며 살자는 것이다. 주역팔괘에 따르면 천지자연의 중요한 요소들인 건(乾, 하늘) 태(兌, 늪, 호수) 이(離, 불) 진(震, 우레) 손(巽, 바람) 감(坎, 물) 간(艮, 산) 곤(坤, 땅)의 관계와 영향이 인간과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
음양오행은 해와 달(또는 하늘과 땅) 불(火) 물(水) 나무(木) 쇠(金) 흙(土)의 관계와 영향이 인간과 국가의 운명을 결정(규정, 좌우)한다. 땅의 물질세계, 자연환경과 공간 세계가 그리고 때와 시간이 생명과 인간과 정신을 지배하고 결정한다고 보았다. 이런 사고에는 근현대 국민, 시민의 주권자, 민주정신에 걸맞는 주체적 자기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인간은 우주, 자연생명세계, 하늘의 보편적 질서와 법도에 귀속되는 존재다.
중국인들은 자연질서와 시간에 순응하는 철학을 형성했다. 동양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통합된 것으로 보았다. 우주(宇宙)는 시간과 공간의 통합이다. 우(宇)는 사방상하(四方上下)의 공간을 나타내고 주(宙)는 고금왕래(古今往來)의 시간을 나타낸다. 공간의 우와 시간의 주가 합하여 우주를 이룬다. 사계절이 변화하는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기 때문에 유기체적인 생명철학의 관점에서 자연 생명 인간 세계를 시간과 공간이 통합된 세계로 보았다. 우주(宇宙)는 시간과 공간이 미분화된 세계다. 우주 공간 속에서 시간은 되풀이되는 것이다. 공간이 시간에 앞서고 시간은 공간에 예속된다.
사주명리(四柱命理)는 태어난 해, 달, 일, 시의 시간이 운명을 결정한다고 보는 주장이니 시간, 때가 인간을 지배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인간의 운명은 때, 시간에 예속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주역 팔괘, 음양오행, 풍수지리는 땅의 공간, 환경이 인간과 역사를 결정하고 지배한다고 보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미분화된 중국의 우주관, 하늘과 땅 사이에서 펼쳐지는 자연생명세계의 법도와 이치에 맞게 살려는 자연주의적 생활관, 땅의 지배력과 영향력을 강조한 주역 팔괘, 음양오행, 풍수지리, 태어난 년(年), 월(月), 일(日), 시(時)의 시간이 인생과 역사를 지배·결정한다고 본 사주명리학은 자연 생명 세계 전체의 질서와 법도, 운행과 변화에, 때와 시간에 인간을 예속시켰고 인간과 국가의 운명론과 숙명론을 조장했다.
동양의 전통종교사상들, 유가의 공자는 극기복례(克己復禮)를 말함으로써 인간의 자아가 사회의 질서와 예법에 순응하게 하였고 도가의 노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 도법자연(道法自然)을 말하여 인간의 자아가 자연의 법도에 순응케 하였다. 인도 불가의 석가도 사물과 인간을 인연과 계기로 해체하는 연기설을 말하고, 인생과 역사를 지배하는 다르마(법, 진리)와 원인·결과의 업보(카르마)에 인간의 자아를 예속시켰다.
유가가 말하는 사회의 법도와 질서, 도가가 말하는 자연의 법과 도, 불가가 말하는 인생과 역사와 우주의 진리와 법, 다르마, 유대교가 말하는 도덕과 종교와 국가의 법과 질서인 율법은 내용과 의미가 꼭 같은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서로 통하고 하나로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동양의 이런 세계관과 철학은 국민주권과 민주 공화의 나라, 과학기술과 보편적 인류문명의 시대에 걸맞지 않다. 인간이 자신의 삶과 역사, 국가사회의 주인과 주체로서 새 역사와 문명을 창조적으로 지어가는 시대에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세계관이고 철학이다. 이런 세계관과 철학은 민의 한 사람 한 사람을 주권자, 주인, 주체로 보는 현대 민주사회의 사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자연 친화적이고 생명 친화적인 중국의 전통적 정신과 사유는 생태학적이고 공동체적인 사상으로 존중하고 계승해야 하지만, 땅, 자연 생명 세계의 질서와 법도에 순응하는 자세와 태도를 극복하고, 인간을 땅과 자연 생명 세계의 주인과 주체로서 바로 세우는 민주적이고 영성적인 생명철학을 형성해야 한다.
4) 히브리 기독교의 초월주의 철학과 종말론적 역사관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과 정복, 억압과 수탈 속에서 형성된 히브리 기독교 전통은 국가주의문명에 대한 저항적 비판적 초월적 철학을 형성하였다. 인생과 역사, 사회와 국가를 비판하고 초월하는 하늘, 하나님의 초월적 능력과 존재에 대한 신념과 정신을 확립하였다. 자연 생명 세계와 인류의 국가사회와 역사를 초월한 하나님은 불의한 국가주의 체제와 낡은 세계를 심판하고 새 하늘과 새 땅, 새 나라와 새 역사를 창조하는 하나님이다. 이러한 초월적 하나님 신앙은 자연과 역사의 어떤 조건과 상황에도 굴복하지 않는 절대 낙관과 희망을 지니게 하였다. 또한 이 전통은 신의 사랑과 정의가 실현되는 새로운 나라를 기다리는 종말론적 역사관을 형성하였다. 히브리 기독교 전통은 하늘과 땅의 창조자,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자를 믿고 기다리는, 창조와 심판의 변혁적 역사관을 낳았다. 이처럼 히브리 기독교 전통이 자유와 초월, 창조와 혁신을 추구하는 신앙을 지녔으나 히브리 전통의 유대교는 율법 종교로 타락했고 기독교는 제국주의와 유착됨으로써 창조적이고 변혁적인 신앙과 힘을 잃고 말았다.
한민족은 히브리 기독교 신앙에서 “나는 나다!” 하는 해방자 하나님 야훼(출애굽기 3장 14절)를 만날 수 있었고,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복음 14장 6절)는 예수의 주체 선언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생명의 길과 진리, 법과 도에 순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길과 진리와 생명의 창조적 근원과 주체다. 또한 과거와 현재의 불의한 현실에 저항하고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는 변혁적 역사관을 배울 수 있었다. 히브리 기독교 신앙은 한민족에게 인간과 역사에 대한 초월적 주체적 이해와 현실에 저항하고 비판하는 미래지향적 역사이해를 제공하였다.
서양문명에 대한 비판과 반성
서양문명 속에서 히브리 기독교 전통은 제대로 옹글게 꽃과 열매를 맺지 못했다. 로마 제국은 기독교인들과 함께 수만 명의 노예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으며, 노예들과 맹수들, 노예들과 노예들의 살인 경기를 즐겼다. 히브리 기독교 전통은 국가주의 문명에 저항했지만, 국가주의 문명에 짓눌려 호전적이고 배타적이며 제국주의적 종교로 전락하였다. 그리스 이성 철학은 노예제 사회를 바탕으로 순수 수학, 자연과학을 발전시켰으며, 지배와 정복의 언어, 사회 철학 전통을 가진 인도 유럽어족은 지배와 정복의 국가주의 문명을 가장 화려하고 힘차게 펼쳤다.
이성철학이 주도한 서양정신문화에서는 과학적 인과관계와 법칙을 바탕으로 실증적 사실, 실험정신, 정보와 지식, 기능과 능력, 합리적 효율적 사고를 중시한다. 근현대 서양철학은 제국주의와 유착된 물질론, 관념론, 기계론에 함몰되어 생명과 영혼을 잃어버렸다.
2. 동서 문명의 만남과 민족의 자각
1) 중국 정신문화에 짓눌린 민족정신
하늘을 우러르며 하늘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한민족의 정신 문화적 주체성과 정체성은 땅을 중시한 중국 문명과 그 철학의 영향 속에서는 충분히 구현되고 완성될 수 없었다. 한민족은 중국철학의 영향을 깊이 받았고 중국철학에 의해서 단련을 받고 성숙해지기도 했으나 한민족이 본래 지녔던 자질과 능력, 뜻과 염원은 중국철학에 의해서 짓눌려서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였다. 땅에 충실한 중국 정신문화가 실용적이고 자연주의적이고 현실적이라면 하늘을 우러르며 새롭게 동트는 아침의 나라(땅)를 열망한 한국 정신문화는 높고 큰 이상을 품었으며 더욱 진취적이고 정신주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이었다. 단군설화에서 보듯이 하늘처럼 높은 뜻과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크고 어질고 하나로 품어주는 심정으로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고’, ‘이치로써 교화하며’ ‘밝고 떳떳한’ 삶을 추구하였다. 중국 중심의 정치 문화에서 벗어나 서양 문화를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한민족은 본래 지녔던 정신문화적 주체성과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2) 동서 정신문화의 만남과 합류
하늘을 우러르며 생명을 사랑하는 한민족의 정신은 서양문명에서 기독교정신, 과학사상, 민주정신을 만남으로써 보완되고 강화될 수 있었다. 한민족의 정신문화가 지닌 약점은 한국어의 특징에서 드러나듯이, 일인칭이 약화 되고 삼인칭이 없으며, 깊은 반성과 비판 없이 하늘과 상대에 대해 낙관적 신뢰와 감정을 가진다는 것이다. 일인칭이 약화하거나 생략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일인칭 ‘나’에 대한 자각과 확고한 신념이 부족했다. 삼인칭이 결여된 것은 객관적이고 공적인 생각이 부족한 것을 의미한다. 샤머니즘이 여전히 종교문화의 중심을 차지하고 노래와 춤을 좋아할 뿐 현실에 대한 심각하고 진지한 철학적 성찰이나 종교적 체험이 부족하다.
한국 근현대에 이르러 한민족은 히브리 기독교 전통에서 생명과 정신의 주체 ‘나’에 대한 깊고 초월적인 이해와 현실을 부정하고 비판하는 변혁적 역사이해를 배울 수 있었다. 과학사상에서 객관적이고 공적인 정신과 사상을 배웠다. 민주 공화의 정신과 사상에서 개별적 인간의 주체적 책임과 공동체의 자치와 협동을 배울 수 있었다. 한민족은 서양문명을 만남으로써 비로소 주체적 자각을 이루고 자신을 보완하고 심화 발전시킬 수 있었다.
3) 동서 문명의 만남과 민족의 주체적 자각
근현대에 이르러 조선왕조가 쇠퇴, 몰락하고 서양문화가 깊이 들어오면서 한민족은 중국문명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었고 서양의 과학정신과 민주정신, 히브리 기독교 정신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늘을 우러른 한민족의 정체성과 주체성이 활달하게 발현될 수 있었다. 서양문명을 깊이 받아들이면서 민족의 주체적 자각운동을 일으킨 안창호가 신민회를 조직하고 민주공화국의 이념과 정신을 고취하기 위하여 지은 애국가 1~4절은 한민족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잘 드러낸다.
애국가 1절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는 나라를 지키려는 한민족의 간절하고 사무친 염원을 나타내고, 자연과 역사의 물질적 조건과 상황을 초월한 믿음과 희망을 새겨준다. 2절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는 자연환경과 계절의 변화와 위력에 굴복하지 않는 한민족의 강인한 의지와 용기를 나타낸다. 3절 “가을 하늘 공활한데 구름없이 높고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는 가을하늘처럼 높고 크고 고귀하며 밝은 달처럼 뚜렷하고 떳떳하며 변함없이 충성스러운 한민족의 고결한 마음을 나타내고 4절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는 강인한 용기와 변함없는 맘으로 조건과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충성을 다해 나라를 사랑하자는 다짐과 권면을 담고 있다. 애국가는 한민족의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노래이면서 민주 공화의 나라를 세우는 한민족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노래다.
4) 한국 근현대의 시대정신과 과제
동서 문명의 만남과 민족의 주체적 자각으로 전개된 한국 근현대의 시대정신과 과제는 동서양의 전통문화와 정신을 비판적이고 창조적으로 계승함으로써 민족의 주체적 자각을 이루고, 동아시아의 문명사적 지평을 넘어서 동서양의 정신문화를 아우르는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문명을 이루는 것이다. 한국 근현대의 이러한 시대정신과 과제는 조선왕조의 낡은 신분질서와 체제, 관념과 철학을 청산하고 외세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를 극복하여 민주공화의 나라를 이룩함으로써 세계평화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근현대의 한민족은 일제의 식민통치와 남북분단의 고통을 견디어내고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루었으며 민족의 통일과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지향하는 민주공화의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다. 근현대 한민족의 이러한 과제는 아직도 완성되지 못했다. 우리 민족에게는 하늘을 우러르며 ‘큰 하나’를 추구하는 경향과 함께 ‘하나임’을 느끼는 작은 단위로 갈라지는 경향도 있다. 동학농민혁명, 3·1 독립혁명, 4·19혁명, 5·18 민주항쟁, 6월 시민항쟁, 촛불혁명에서는 한민족이 큰 하나 됨의 정신을 구현하였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주체성과 자존감을 잃고 민족정신이 쪼그라들 때는 사대주의와 당파싸움에 빠져들었다. 주체성과 정체성을 잃고 사대주의와 당파싸움에 빠진 조선왕조는 결국 쇠퇴하고 멸망하였다. 오늘 한국에서 인문철학의 문화적 사대주의와 진영 당파주의는 조선왕조 시대보다 더 심각하다.
2 도산의 민족교육 운동과 철학: 민족의 주체적 자각과 전통사상의 극복
1) 중국 전통사상의 극복과 창조적 주체의 확립
(1) 새 세상을 짓는 창조적 주체의 확립
도산이 조직하고 이끈 신민회의 교육정신과 이념에 따라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의 교가와 운동가에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주체로서의 인간관이 잘 드러난다. 오산학교 교사로서 유영모는 안창호·이승훈의 국민교육운동의 정신과 사상을 계승하여 민주적이고 영적인 생명철학을 형성하였다. 1918년 1월 28일 일기에 다석은 “큰 흙덩어리를 타고 거닐며 노는데 하늘길은 끝없이 넓구나.”(乘大塊, 逍遙兮 天道浩蕩)라고 하였다. 우주의 무한대 속에서 ‘지구(큰 흙덩어리)를 타고 논다’는 말로써 다석은 우주가 인간의 놀이터임을 밝힌 것이다. 인간은 우주 자연의 법칙과 질서, 변화와 운동에 예속된 존재가 아니라 우주 자연 세계의 주인이고 주체다.
인간을 우주 자연의 자유롭고 창조적인 주체로 보는 유영모의 관점은 그가 오산학교의 교장으로 있었던 1922년의 글에서 이미 명확하게 나타난다. 3·1운동 이후 민족교육을 경계했던 일제는 이광수가 지은 오산학교의 운동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학교 운동회를 앞두고 유영모는 갑자기 오산학교의 운동가를 지었다. 그가 새로 지은 운동가는 민족주의 성향을 직접 드러내지 않지만, 인간의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주체를 고양시키는 철학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1922년 5월경에 다석이 지은 오산학교 운동가에는 다석의 역동적이고 주체척인 생명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첫 소절에서는 역동적인 우주 속에서 사는 인간의 생명을 ‘목숨 불’로 파악하였다. 후렴에서는 목숨 불로 파악한 인간이 입을 열면 “우레 울리고”, 손을 들면 “번개치리라.”고 하여 우주를 움직이는 주인과 주체로 인간을 보았다. “(1절) 저 하늘에 해와 달도 돌아다니며 이 땅 위에 물과 바람 또한 뛰노니, 천지 사이 목숨 불을 타고 난 우리 열센 힘에 번뜩이어 빛을 내이자. (후렴) 물이나 불이 모두라 우리의 놀거리 뛸 터라. 다물은 입 한번 열면 우레 울리고 내렸던 손 들게 되면 번개 치리라. 힘을 몹고 맘 다스려 이김 얻도록.”
1절에서 하늘의 해와 달이 운행하고, 땅의 물과 바람이 뛰노는 세상에서 우리 목숨의 불빛을 힘차고 뜨겁게 피어 올리자는 것이니 우리 인간의 생명을 스스로 주체적으로 힘차게 살자는 것이다. 후렴에서는 물이나 불이 우리를 지배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놀고 뛸 터전임을 강조한다. 입을 열면 우레가 울리고 손을 들면 번개가 친다고 했으니 자연의 힘을 상징하는 우레와 번개가 사람을 지배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뜻과 의지에 따라 사람의 몸동작에 따라 우레와 번개가 움직인다. 내가 우주를 움직이는 주인이다. 우레나 번개는 나를 지배하는 힘이 아니라 내 힘의 작은 표현일 뿐이다. 내가 움직이면 우주가 움직인다. 2절과 3절에서도 산과 바다, 물과 뭍, 공중과 바닷속이 우리 인간이 자유롭게 운동하며 뜨거운 힘을 번뜩이며 빛을 내자고 하는 것이니 우리가 세상 우주의 주인임을 말하는 것이다.
1910년경 이광수가 지은 오산학교 교가에도 인간이 세상의 주인이고 새 세상을 짓는 존재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광수의 교가는 1, 2절에서 인간이 세상의 주인과 창조자임을 밝힌다. “하늘을 꿰뚫고 땅을 들추어 온 가지 진리를 캐고 말련다.”(1절) “네 손이 솔갑고 힘도 크구나. 불길도 만지고 돌도 주물러 새 누리를 짓고 말련다.”(2절) 새 시대 새 세상의 창조자로서 인간의 자아를 확립한 오산학교의 교가와 운동가는 한국 근현대의 시대정신과 사명을 뚜렷이 표현한다.
자연환경, 땅의 질서와 시간, 때의 변화를 초월하여 자연 질서와 때의 변화에 매이지 않고, 자연 생명 세계와 시대의 주인과 주체로 살려는 유영모의 생각이 이 시기에 뚜렷이 드러났다. 주어진 시간에 충실하여 자신의 삶과 인격을 갈고닦으려는 다석의 노력은 1922년경에 쓴 자작시에 잘 나타나 있다. 함석헌은 이 시를 오산학교의 수신 시간에 직접 들었다. “멋대로 놀고 사치하면 다 함께 몸이 망하고, 학문과 예술 사업은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오래 가는 것이니, ‘이제’를 돌 삼아서 ‘나’라는 옥을 일평생 닦으며, 해를 삼키고 달을 토하며 백 년을 늙어 가리라.”(放逸奢侈偕身亡 學藝事業共世長 今石我玉一生攻 呑日吐月百年老) ‘이제’(지금 이 순간)와 ‘나’에게 집중하고 해와 달의 주인으로서 살려는 다석의 의지와 다짐이 잘 드러나 있다. 해를 삼키고 달을 토한다는 말에서 우주 자연의 질서와 법도, 해와 달의 시간과 절기에 순응하며 살지 않고 우주 자연 세계의 주인으로서 때와 시간의 주인으로 살겠다는 다짐과 의지가 뚜렷이 드러나 있다.
(2) 주역과 음양오행의 세계관 극복과 씨ᄋᆞᆯ생명철학적 세계관
다석에 따르면 인간의 ‘나’는 “만물의 변화와 발전의 대법칙을 따라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 인간의 ‘나’는 물질의 낮은 단계에서 정신의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생물학적 진화의 과정과 법칙을 구현한 존재로서, 땅에서 하늘로, 물질에서 영으로 올라가는 존재다. 다석은 “변화 발전해 가는 이치의 길··· 그 이치를 파악하고 그 이치를 가지고 다시 하늘을 올라가는 길이 만물의 이치를 아는 중묘지문(衆妙之門)”이라고 했다. 다석에 따르면 물질변화와 생물진화의 이치를 가지고 하늘로 올라가는 인간의 길이 만물의 이치를 아는 ‘모든 오묘함에 이르는 문’이다. 하늘로 올라갈수록 만물의 이치를 잘 알게 된다. 또한 다석은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자연을 연구하여 법칙을 찾고, 그것을 이용하여 우리의 생활을 풍부하게 하는 신비의 문이 인생”이라고 하였다. 다석은 생명의 통합적 진리를 깨달으면 논리와 물리(物理)와 윤리가 하나로 통한다고 했다.
다석에 따르면 ‘나’는 우주와 생명의 중심이며 길이다. 다석은 우주와 생명의 큰길로서의 ‘나’를 이렇게 표현한다. “길은 언제나 환하게 뚫려야 한다...비록 성현이라도 길을 막을 수는 없다...언제나 툭 뚫린 길 이 길로 자동차도 기차도 비행기도 자전거도 나귀도 말도 벌레도 일체가 지나간다. 이런 길을 가진 사람이 우주보다 크고 세계보다도 큰길이다. 이런 길을 활보하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이다...우주와 지구를 통째로 싸고 있는 호연지기가 나다. 그것은 지강지대(至剛至大)하여 아무도 헤아릴 수가 없고 아무도 견줄 수가 없다. 그것이 나다.”
‘생각하는 나’는 땅과 시간에 매인 존재라는 측면에서 보면 지극히 작은 존재이고, 하나님과 소통하는 존재라는 측면에서 보면 한없이 크고 강한 존재이다. 인간이 바로 우주자연과 생명의 큰길(大道)이라는 다석의 주장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공자나 “인간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는 노자의 생각과는 크게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유영모에게는 ‘나’가 곧 길(道)과 법과 자연의 주인이고 주체다.
유영모의 생명철학에서는 시간과 주체의 통일이 이루어진다. 다석은 ‘이제’를 지금 이 순간의 의미(때)와 ‘이 사람, 나, 제’의 의미(주체)로 이해했다. 다석은 ‘제’에서 때의 제와 주체의 제를 함께 본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 제때를 사는 존재다. 저마다 저의 때, 내가 나의 때를 살기 때문에 흥겹고 신나는 것이다. 그는 또 시(時)를 시(是), 시(詩)와 동일시함으로써 시간의 현재적 주체성(是)과 창조적 기쁨(詩)을 말했다.
2) 민족의 주체와 정체를 확립한 도산의 교육운동과 철학
(1) 민족의 자각: 홍익인간, 재세이화, 광명정대의 건국이념과 정신을 구현하다
무실역행, 애기애타, 대공정신을 가지고 살았던 도산은 어디서나 한인 노동자와 농장주, 기업인과 정부 모두를 크게 이롭게 하였다. 언제나 그는 길거리와 집안을 깨끗하고 아름답고 질서 있게 만들고 덕력과 체력과 지력을 높이고 모든 일과 생활을 이치에 따라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계획하고 준비하고 추진했으며,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방안과 대책을 제시하고 큰 구상과 목적을 가지고 일하였다. 그는 또한 언제 어디서나 정직하고 성실하게 삶으로써 민족과 인류 앞에 바르고 떳떳한 광명정대의 정신과 삶을 구현하였다. 그는 크게 사람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 이치로서 교화하는 재세이화(在世理化), 바르고 떳떳한 광명정대(光明正大)의 건국이념을 온전히 실행하고 구현하였으며 ‘나’ 철학을 확립하고 애기애타, 무실역행, 대공정신(세계대공)을 제시하고 실행함으로써 한민족의 기본 정신과 건국이념을 심화하고 확장하였다.
‘한’은 ‘하늘, 하나님, 큰 하나’를 뜻하면서 우리 민족을 나타내는 말이다. ‘한’은 ‘한’(하늘)과 자신을 동일시한 한민족의 정신적 원형질이 되었다. 강인한 생명력과 생명 사랑을 품은 ‘한’의 정신과 사상이 한민족의 정신과 삶과 문화 속에 사무쳐 있다. ‘밝고 환하고 크고 하나’인 한의 광명정대한 정신이 우리 민족의 건국 설화에서 홍익인간과 이화세계의 건국이념으로 표현되었다. 도산은 애기애타의 정신으로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고 무실역행으로 이치로써 사람들을 가르치고 이끌었고 정직하고 성실한 대공(大公)의 정신과 행실로써 밝고 떳떳한 광명정대한 삶을 살았다. 그는 누구보다 건국정신과 이념에 충실히 살았고 건국이념과 정신을 오롯이 구현하였다.
(2) 도산은 중국전통문화를 넘어서고 서양의 제국주의 문명을 극복하였다. 그는 수행종교이며 생활철학이었던 유교, 불교, 도교의 핵심과 정신을 이어받아 수행과 생활철학을 확립하였다.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고 철저한 수행자이며 지극정성을 다해 살았던 생활 철학자였다. 그의 수행과 생활의 철학은 하늘(하나님)을 체험하고 체화하여 하늘의 사랑과 진리, 정직과 성실을 자신의 삶과 일 속에 체현하는 체천동인, 애기애타, 상생상양으로 나타난다.
1907년 서북학생회 친목회 연설에서 애기애타의 내용이 잘 나와 있다. “도덕은 위 하늘(上天)이 내게 주신 것을 받은 것이며 몸과 맘에 간직한 것이고 사물에 행하는 것이다. 도덕은 하늘을 체험하고 체화하여 차별 없는 사랑으로 남을 나처럼 사랑하여 인류사회의 상생·상양(相生·相養)하는 요소다.” 하늘을 체험하고 체화하여 차별 없는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나처럼 사랑하여 서로 살리고 키우는 일(體天同仁 愛人如己 相生相養)이 애기애타의 내용이다.
도산에게 도덕은 사람 되는 자격이다. 참된 사람이 되려면 마땅히 도덕을 알고 행해야 한다. 그가 내세운 도덕은 주체적이고 새로운 것이다. 고대 중국의 도덕, 명덕(明德) 개념이나 고대 그리스의 덕(아레테)과 비교하면 안창호의 도덕 개념이 얼마나 새롭고 주체적인지 알 수 있다. 중국에서 덕은 하늘의 법도와 이치를 밝게 깨닫고 실천하는 맘의 능력이다. 인간에게는 하늘의 도리(道理)를 깨달아 알고 실천할 수 있는 본성과 능력이 주어져 있다. 밝히 깨달아 알고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란 의미에서 밝은 덕(明德)이라고 하며 깨달아 알고 실행할 수 있는 좋은 능력이란 의미에서 양지(良知), 양능(良能)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덕은 인간 자신의 주체적인 능력이라기보다는 하늘의 법도와 이치를 깨닫고 이해하고 실천하는 능력으로서 하늘의 법도와 이치에 맞추어 살 수 있는 인간의 본성적 능력이다.
고대 그리스의 덕, 아레테는 인간의 기능적 능력을 나타낸다. 피리를 잘 불고 그림을 잘 그리고 말을 잘하는 탁월한 기능적 능력이 아레테이다. 그리스 철학자들에게 인간의 가장 고유하고 본질적인 기능적 능력은 이성이다. 이성은 개념, 논리, 정의(定義)를 바르게 사용하여 사물과 사상을 바르게 분석·추론하고 이해하여 바르게 판단하고 결정하는 능력이다. 이성이 인간의 본성적 능력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덕과 같지만, 이성은 인간의 주체적인 이해와 판단의 능력이다. 따라서 중국에서는 인간의 심성과 삶, 말과 행동을 하늘의 보편적 도리에 맞게 사는 도덕철학을 발전시켰고 그리스에서는 분석과 추론, 이해와 판단을 추구하는 과학철학을 발전시켰다.
“하늘이 주신 것을 받아 몸과 맘에 간직한 것이며 사물에 행하는 것”이라는 안창호의 도덕은 중국의 도덕 개념과 비슷하며 다르다. “하늘이 주신 것을 받은 것”이라는 말은 중국의 도덕 개념과 비슷하다. 그러나 “몸과 맘에 간직한 것이며 사물에 행하는 것”이라는 말은 몸과 맘에 체화된 것임을 역설하고, 하늘의 도리에 맞추기보다 “사물에 행하는 것”이라고 한 것은 인간의 주체적이고 책임적인 행위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안창호가 “하늘을 체험하고 체화하여 서로 살리 서로 길러주는” 일을 도덕의 내용으로 이해한 것은 중국의 도덕 개념과 이해를 크게 넘어선 것이다. 하늘을 체험하고 체화하여 차별 없는 하늘의 사랑을 행한다고 한 것은 내가 하늘이 되어 하늘의 일(사랑)을 한다는 것이니 하늘의 도리와 질서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중국의 전통적 사상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중국의 전통 도덕에서는 하늘이 주(主)와 본(本)이 된다면 안창호의 도덕에서는 하늘을 주체화 내면화한 ‘내’가 주와 본이 된다. 유교 경전 『중용』에서 성(誠)이 하늘의 도(天道)라면 안창호는 자신의 삶과 행동, 생각과 말 속에 주체화, 내면화하였다. 그는 하늘(하나님)을 체험하고 체화하여 내면화, 주체화하였다. 하늘, 하나님, 하늘의 도리와 이치가 체험되고 체화되어 철저하게 내면화, 주체화하였으므로 도산은 하늘, 하나님, 법도, 이치를 내세우기보다 삶과 나라의 주인과 주체인 나를 중심과 전면에 놓았다.
또한 안창호가 도덕 행위의 내용을 “서로 살리고 서로 길러줌”으로 파악한 것도 도덕을 하늘의 도리를 본받아 행하는 개인의 수양과 행위로 본 중국의 전통적 도덕관과는 다르다. “서로 살리고 서로 길러 준다.”는 것은 사람들이 서로 주체로서 하늘의 사랑과 뜻을 행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늘과 직결된 개인의 내적 도덕을 나라의 주권자인 국민, 시민이 더불어 사회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로 역사와 사회의 지평으로 끌어내리고 확대한 것이다. 중국에서 상생(相生)이란 말은 오행(五行)사상에서 상극(相剋)이란 말과 짝이 되어 쓰일 뿐 널리 쓰이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19세기 말에 강증산이 해원상생이란 말을 써서 상생이란 말이 많이 쓰이게 되었다. 도산이 상생이란 말을 중요하게 쓸 뿐 아니라 평생 서로 살리고 유익하게 하는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 상생 철학을 정립하고 실천했다고 본다. 도산은 상생이란 말을 자주 쓰지는 않았으나 1906년 공립협회 1주년 기념식에서 도산은 “(더불어 살고 서로 살리기 위해) 민이 서로 보호하고 단합하는 것”이 문명부강의 뿌리와 씨라고 하였으며 평생 환난상구(患難相救)와 환난상제(患難相濟)를 내세우고 상생의 철학을 실천하면서 민주공화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도산이 말년에 내세운 애기애타는 상생상양의 원리를 새롭게 표현한 것이다.
또한 도산의 도덕철학은 이성을 중심한 그리스의 덕(아레테) 철학과도 크게 다르다. 그리스의 이성주의적 도덕 철학이 과학철학으로 발전했다면, 도산은 인간이 마땅히 도덕과 지식(과학)의 두 날개로 날아야 한다면서 도덕과 지식을 구별함으로써 과학과 도덕을 심층적 입체적으로 종합하는 생명철학을 발전시켰다. 원인과 결과의 과학적 원칙을 중시하면서 원인과 결과를 만들어내는 주체로서 인간의 도덕적 힘을 강조하고 인격혁명을 내세움으로써 과학과 도덕을 종합하는 주체와 상생의 철학을 확립했다.
체천동인 애기애타 상생상양의 철학은 중국 전통문화, 유불도를 비판적으로 계승한 것이다. 그는 진리와 법도(道, 自然, 다르마)를 본받고 따른 것이 아니라, 체험하고 체화하여 주체화, 내면화하였다. 그는 하늘의 사랑과 성실(정직)을 본받고 따르는 것을 넘어서 하늘의 사랑과 성실을 자신의 삶과 행동, 생각과 말속에 구현하고 표현하였다. 도산은 시련과 난관을 뚫고 상생의 길을 여는 이요, 절망에서 희망을 만들고 죽음에서 삶을 지어내는 이였다.
민이 서로 보호하고 단합함이 문명부강의 뿌리와 씨이며 환난상구, 환난상제를 말하며 마을 공화국의 직접민주주의를 추구한 도산의 민주철학은 서양의 제국주의 문명을 비판 극복한 것이다. 힘을 중시하고 힘을 기르자면서 무실역행을 말한 도산은 과학적 인과관계와 법칙을 존중하고 받아들였으나 인과법칙에 인간을 예속시키지 않고 사물과 생명과 정신의 원인과 결과를 인간이 지어낼 수 있다고 보았다. 큰 힘으로 큰 원인을 지어내면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산은 어떤 경우의 상황과 조건에서도 거기에 맞는 일을 하여 새로운 변화와 창조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도산은 결코 체념하고 절망하지 않았으며 끝까지 희망과 낙관을 지녔다.
도산은 사람은 도덕과 지식의 두 날개로 날아야 한다면서 “하늘을 체험하고 체화하여 하늘의 차별 없는 사랑으로 서로 살리고 서로 기르는 덕(體天同仁 相生相養)”을 가지고 “사물을 깊고 철저히 탐구하여 지극한 데까지 두루 통하여 그 작용을 다 하게” 하는 과학지식으로 인간답게 나와 나라를 구하자. 과학지식은 도덕과 깊이 연결된 것이며 사물을 깊이 연구하여 그 작용을 다 하게 한다는 것은 사물을 주체로 보고 존중하며 사물이 그 가치와 보람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사물을 단순한 대상과 타자로 보고 지배하고 정복하여 이용한다는 서양의 지식 탐구 자세와는 대조된다.
애기애타를 말함으로써 도산은 인식대상(사물, 생명, 인간)을 타자화, 대상화하는 지배와 정복의 서양 인식론 철학을 넘어섰으며, 타자, 사물과 인간, 다른 민족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제국주의적 철학과 관행에서 벗어나서 인간과 사물을 주체로 보고 서로 살리고 키우고 높이는 상생상양의 삶, 나라의 책임적 주인으로서 서로 주체로서 자치와 협동의 직접민주주의, 마을공화국의 길을 열었다.
과학사상과 민주정신을 체화한 도산은 운명론을 조장하는 사이비 철학과 미신을 극복하고 청산하였다. 중국의 전통사상, 주역, 음양오행, 풍수지리, 사주명리의 사이비 과학, 철학이 무당(무속)과 결합되어 운명론적 결정론적 사고가 한국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런 사이비 철학이 없었다면 무당의 위력은 십분의 일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이런 사상이 온존하는 한, 나라의 책임적 주인이 될 수 없고 민주공화의 나라를 이룰 수 없다. 도산에게는 이런 사이비 철학의 흔적이 조금도 없다.
3. 애기애티의 현대적 가치와 의미: 민주시민의 상생철학
1) 체천동인(體天同仁)과 상생상양(相生相養)의 도덕을 구현하다
하늘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민족의 사상과 정신의 경향에 따라서 목은 이색은 ‘하늘과 인간 사이에 간격이 없다’(天人無間)고 하여 유교의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을 더욱 철저화하였으며, 퇴계 이황은 ‘하늘과 나 사이에 간격이 없다.’(天我無間)고 하여 주체화하고 심화하였다. 하늘을 열고 나라를 세운 전통과 함께 하늘과 인간(자아)를 일치시키는 사상적 경향을 따라서 정도전과 조광조는 유교의 이상(理想)을 현실 속에서 실현하려는 모험을 할 수 있었다.
‘한’과 자신을 동일시한 한민족의 한 사상과 정신은 동학에서 시천주, 사인여천, 인내천으로 알뜰하게 표현되었다. 동학의 기본사상인 시천주, 사인여천, 인내천은 신분차별의 질서를 깨트리고 사민평등을 주장하고 인간 속에서 천지조화가 일어난다(侍天主造化定)고 함으로써 주체적인 인간과 인성 이해를 제시하였다. 또한 최제우는 “내가 천황씨다”고 함으로써 중국 중심의 정치문화적 예속을 깨트리고 민족의 주체와 해방을 선언하였다. 동학은 주체적이고 역동적인 인간이해를 제시함으로써 개인을 전체에 귀속시키는 전통적인 천인합일과 천인일치의 사상을 넘어섰다.
히브리 기독교의 하나님은 한국 동아시아의 신과는 구별된다. 한국의 하나님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신이며 인간의 삶과 행위에 감응하고 보응(報應)하는 신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신처럼 인격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친 자녀처럼 사랑하고 돌보고 보살피는 신은 아니다. 기독교의 신은 거룩하고 영원한 초월적 무한자이며 절대타자이면서 인간과 친밀하고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신이다. 이렇게 인간과 뚜렷이 구별되면서도, 더 깊고 더 가까이서 인간과 사귀고 관계하는 기독교의 신은 보다 생명적이고 역사적인 역동성을 드러내고 생명과 정신의 깊이와 높이를 드러낸다.
한국의 전통적인 하나님(하늘) 신앙을 계승하면서도 기독교의 하나님 신앙을 받아들인 안창호와 이승훈은 하늘(천주)과 인간을 직접 동일시하지 않지만, 하늘(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인간, 인간관계, 나라, 교육, 독립운동을 생각하고 행동함으로써 깊고 자유로우면서 풍부하고 다양한 삶과 정신의 세계를 열어 보이고 있다. 이들의 삶과 행동에서 하늘과 인간의 관계는 간접적이지만 보다 구체적이고 역동적으로 이해되고 실현된다. 다시 말해 하늘, 하나님과의 깊은 결속과 관계를 가지면서도 인간의 지성적 자각과 인격적 책임이 훨씬 극적으로 강조되고 실현된다.
일찍이 도산 안창호는 ‘하늘을 체험하고 체화하여 차별없는 사랑’(體天同仁)으로 ‘서로 살리고 서로 길러주는’(相生相養) 도덕을 가지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 환난에 빠진 나라를 구원하자고 하였다. 그는 마치 하늘,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았다. 예수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체험하고 체화하여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땅에서 이루었다. 따라서 하나님과 하나를 이룬 예수는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였고 길과 진리와 생명의 창조적 근원과 주체가 되었다. 예수의 삶과 행동, 생각과 말을 통해 길과 진리와 생명이 생겨나고 만들어졌다. 생명과 역사, 사회와 국가의 책임적 주인으로 살려 했던 도산도 예수처럼 길과 진리와 생명의 창조적 근원과 주체로 살았다. 도산의 삶과 행동 속에서 생각과 말에서 새로운 길이 열리고 진리가 생겨나고 생명이 깊고 풍부해졌다.
그러므로 하늘(하나님)과 하늘의 뜻과 진리는 이들의 삶과 정신, 말과 행동 속에서 표현되고 구현되었다. 도산이 정직과 진실을 저마다의 가슴에 모시어 들이자고 한 것은 도덕적인 교훈을 말한 것이 아니다. 그가 꿈에서라도 성실을 잃었으면 통회하라고 한 것은 정직과 진실을 하늘, 하나님의 절대명령으로 여긴 것이다. 그에게 정직과 진실은 하나님, 하늘의 다른 표현이다. 하늘, 하나님은 도산의 말, 삶, 행동 속에 내재화되었고 그의 말, 삶, 행동의 뒤에 위에 속에 함축되었다. 나라와 역사와 삶의 주인과 주체로서 인간의 감성과 지성과 영성, 말과 삶과 행동은 하나님을 내재화하고 함축하면서 자신과 역사의 혁신과 고양을 위해 더욱 자유롭고 풍부하고 힘있게 펼쳐질 수 있었다.
2) 21세기의 대안, 도산의 애기애타
애기애타 이해
도산이 세상에 남긴 붓글씨는 세 점뿐이다. 1934년 4월 대전 형무소에 있을 때 쓴 ‘協同’(협동), 형무소에서 나온 후 1936년 가을에 서울에서 쓴 ‘爱己爱他’(애기애타), 같은 해(1936년 병자(丙子)년) 12월에 잡지사인 삼천리사(三千里社)에서 쓴 ‘若欲改造 社會 先自改造 我窮’(만일 사회를 개조하고 싶으면 먼저 스스로 나의 궁핍을 개조하라)이다. 그가 남긴 세 개의 붓글씨 속에 자아혁신, 애기애타, 협동을 추구한 그의 정신과 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
특이한 것은 그가 애기애타를 愛己愛他로 쓰지 않고 ‘爱己爱他’로 썼다는 사실이다. 본래 愛는 마음 ‘心’과 천천히 걸을 쇠발 ‘夊’을 담은 글자인데 爱는 그 대신에 벗 ‘友’를 담은 글자다. 爱는 愛의 간자체인데 안창호는 1920년대 중국 상해에 있으면서 爱라는 글자를 알게 되었을 수 있다. 爱는 한국에서는 쓰지 않는 글자다. 爱를 쓴 것은 안창호의 특별한 생각과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마음 心과 천천히 걸을 쇠발 夊을 벗 友로 바꿈으로써 도산은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사랑을 넘어서 높고 맑은 뜻으로 이루어지는 동지의 사랑을 나타냈다.
친구와 동지의 사랑은 서로 자유롭고 대등한 관계의 사랑이다. 심리적인 사랑은 욕망과 감정과 주장에 매인 사랑이다. 친구와 동지를 내 욕망과 감정의 대상으로 보고 친구와 동지에게 집착하거나 내 주장과 의견을 강요하면 친구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친구와 동지의 사랑은 서로 욕망과 감정과 주장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서로 살려주고 키워주는 사랑이다. 그것은 서로를 주체로 보고 존중하며, 격려하고 북돋아주는 사랑이다. 친구와 동지 사이에는 충고하고 조언할 수는 있으나 비판하고 비난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도산의 애기애타(爱己爱他)는 격정적이고 감정적인 사랑을 넘어선 지성과 영성의 깨달음을 담은 사랑이다. 그것은 나와 다른 사람의 덕력과 체력과 지력을 길러주고 높여주는 사랑이며 나를 나로 너를 너로 주체로서 인정하고 존중하고 실현하고 높여주는 사랑이다.
나와 남을 주체로 사랑하고 실현하는 애기애타는 민주혁명과 과학혁명을 이룬 근 현대 정신과 철학의 원리다. 민주혁명과 과학혁명을 이룬 근현대의 시민은 과학적으로 생각하고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 민주시민은 저마다 제 삶의 주체로서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서 서로 대등하고 자유로운 친구와 동지의 관계를 이루며 서로 사랑하고 협동해야 한다. 도산은 자기를 주체로 여겼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주체로 존중하고 사랑했으며 사람뿐 아니라 일과 물건도 주체로 존중하고 깨끗하고 아름답게 닦아세웠다.
애기애타의 진리는 생명과 정신의 진리다. 산술계산과 물리 기계의 세계에서는 나와 남이 분리되어 있다. 이런 세계에서는 내가 일어서기 위해 남을 거꾸러트려야 하고, 내가 높이 올라가려면 남을 끌어내려야 한다. 생명과 정신의 세계에서 나와 남은 분리되지 않고 깊이 이어져 있다. 서로 살리고 서로 키워주는 관계에 있다. 나를 바로 세우는 것은 남을 바로 세우는 것이고 남을 아름답고 힘차게 하는 것은 나를 아름답고 힘차게 하는 것이다. 애기애타는 서로 살리고 서로 키우는 생명과 정신의 진리다.
애기애타는 나와 남을 주체로 존중하고 사랑하여 나와 남을 함께 새롭고 힘차게 하는 것이다. 나와 남을 주체로 존중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외적 강제와 결정을 거부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그’의 관점과 자리에서 보는 것이다. 그 사람 자신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나’의 관점과 처지에서 보는 것이다. 나의 욕망과 감정과 주장에서 벗어나 나도 남도 ‘스스로 하고 스스로 되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도산은 민족을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깨워 일으키려고 겸허히 절하며 가르쳤다. 덕체지의 힘을 길러 무실역행 충의용감하는 사람이 되게 하려면 사랑하고 존중하고 신뢰해야 한다. 나를 살리고 힘차게 하면 남도 살아나고 힘차게 되며, 남을 살리고 힘차게 하면 나도 살아나고 힘차게 된다.
도산이 말한 체천동인, 애인여기, 상생상양은 공자가 말한 극기복례(克己復禮)보다 훨씬 깊고 새로운 가르침이다. 수제자 안연이 공자에게 인(仁)이 무엇이냐고 묻자 공자는 극기복례라고 대답했다. 극기복례는 자기를 눌러서 사회법도와 질서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공자에게 인(仁)은 신분사회의 상하관계와 질서에 맞추어 사는 것이다. 그러나 도산에게 인(仁)은 하늘을 체험하고 체화하여 차별 없는 사랑으로 나와 남을 사랑하여 상생상양을 이루는 일이다. 다시 말해 도산은 나와 너를 함께 살리고 키우는 애기애타를 통해 인(仁), 사랑을 이루려 했다. 애기와 애타는 대등하고 자유로우면서 서로 살리고 서로 키워주는 것이다. 도산에게는 나를 살리는 것이 너를 살리는 것이고 너를 높이고 키우는 것이 나를 높이고 키우는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에 비해서 도산의 가르침은 얼마나 민주적이고 심오하며 혁신적인가!
서로 살리고 키우는 애기애타는 체천동인을 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하늘을 체험하고 체화하여 하늘의 심정과 사랑을 체득한 사람만이 애기애타를 할 수 있다. 하늘은 생명의 본성과 깊이, 목적과 사명이 드러나고 실현되는 자리다. 체천동인은 생명의 근원적 깊이와 본성, 목적과 사명을 체득하는 것이다. 체천동인과 애기애타는 주체와 전체의 일치 속에서 진화와 고양을 이루어가는 생명진화의 진실을 나타낸 것이다. 하늘을 체험하면 사랑, 기쁨, 믿음, 희망을 가지고 주체와 전체의 일치 속에서 나와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다. 하늘을 체험한 도산은 평생 기쁨, 믿음, 희망, 사랑을 잃지 않았다. 애기애타는 생명의 기쁨과 사랑,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나와 남을 함께 새롭게 하고 힘차게 하는 것이다.
체천동인에 이른 사람의 애기애타는 공과 사를 함께 세우는 공사병립, 덕체지를 기르고 무실역행 충의용감의 정신을 길러서 나(私)를 살리고 힘차게 하여 공(公)의 세계를 열어가는 활사개공(活私開公), 건전한 민주공화의 나라를 세워서 세계의 정의와 평화에 이르는 세계대공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공사병립, 활사개공, 세계대공의 대공주의를 실현하는 방법과 원리가 애기애타다. 애기애타의 정신이 도산의 삶과 사상의 처음서 끝까지 일관되게 나타난다. 애기애타의 시작과 끝은 애기다. 남을 사랑하는 애타도 남의 ‘나’를 주체로서 사랑하는 것이므로 또 다른 애기다. 도산의 철학은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여 나를 힘 있고 아름답고 값지게 하는 애기의 철학이다.
나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는 것이 생명과 정신의 가장 근본적인 일이다. 도산은 사랑이 “인류 행복의 최고 원소”이며 “진정한 신령”이라고 하였다. 옥중에서 아내에게 쓴 편지에서는 사랑이 “인생의 밟아 나갈 최고 진리”라고 했다. 1936년에 한 설교 ‘기독교인의 갈 길’에서 도산은 “모든 죄악은 사랑하지 않은 데서 생긴다.”고 하였다. 사랑하면 안락하고 행복하다. 1919년 상해에서 한 설교 ‘사랑’에서 도산은 “예로부터 우리가 하나님을 본 이가 없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한즉 하나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오.”라고 하였다. 서로 사랑하는 일이야 말로 나와 세상을 구원하는 거룩한 일이고 사랑하는 삶이야말로 아름답고 거룩한 삶이다.
도산은 어떻게 애기애타의 철학에 이르렀나?
애기애타는 민주적이고 과학적인 철학원리다. 나와 남을 주체로 받들고 존중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나와 남을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로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남을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로 본다는 것은 나와 남이 이성을 가진 합리적 과학적 사고의 주체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산은 평생 진실과 정직을 앞세우고 무실역행을 역설하며 지극정성을 다했던 것이다.
평양의 쾌재정에서 연설할 때 도산은 나이 스물의 새파란 젊은이였다. 이름 없는 민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는 고위 관리들, 유지들과 어른들 앞에서 겸허하지만 대담하게 진실하고 정직한 말을 하였다. 하늘과 땅 사이에 바로 서서 정직하고 용감하게 진실한 말을 했을 때 도산은 청중과 하나로 되었고 청중은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면서 환호하고 큰 열정과 힘을 내보였다. 도산은 자신을 바로 세움으로써 청중(민족)을 바로 세울 수 있었다. 또한 청중이 깨어나 일어설 때 도산 자신도 힘차게 일어설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도산과 민중이 서로 주체로서 함께 일어서는 체험이었다. 민중과 하나로 되어 민중과 함께 일어서는 이 체험이 도산의 근본체험이고 애기애타 철학의 뿌리와 씨였다.
미국에서 유학공부를 중단하고 도산은 한인 노동자들 속으로 들어가서 함께 일어서는 공립협회를 만들었다. 공립협회의 강령은 한인 동포들이 서로 보호하고 단합하자는 것이었다. 도산은 민이 서로 보호하고 단합함이 문명부강의 뿌리와 씨라고 했다. 이것은 부국강병과 약육강식을 추구한 제국주의적 문명이해를 극복한 통쾌한 깨달음이고 실천이었다. 도산에 따르면 워싱턴이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미국을 독립시키고 부강한 나라를 만든 것이 아니다. 잘나고 못난 사람, 가난하고 부유한 사람이 공합해서 미국을 독립시키고 교육과 산업을 진흥시켜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다. 사랑과 신뢰, 협동과 협력 속에서 민이 함께 일어나게 하는 도산의 교육 독립운동이 3·1혁명의 불씨가 되고 촛불혁명의 정신이 되었다. 민을 깨워 일으켜 서로 단결하고 협동하도록 이끌었던 도산의 교육정신과 이념이 민주화와 산업화의 정신적 동력이 되었다.
21세기의 대안 애기애타
나와 남을 주체로 사랑하고 존중하여 서로 살리고 서로 키워주는 애기애타를 실현하는 것은 온갖 낡은 신화와 교리, 운명론과 결정론, 당파주의와 영웅주의, 권위주의와 전체주의를 타파하고 민주적이고 과학적이며 세계보편적인 시민정신을 확립하는 일이다. 21세기의 대안으로서 애기애타의 의미를 다섯 가지로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애기애타는 생명의 진리다. 생명에는 거짓이 없다. 거짓으로 생명이 싹트고 잎과 꽃이 피고 열매와 씨앗을 맺을 수 없다. 나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는 상생의 삶과 행위를 거짓으로 할 수는 없다. 인터넷과 디지털의 세계는 얼마든지 거짓말과 주장을 지어낼 수 있다. 돈과 기계는 생명의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다. 수학적 계산과 형식논리, 관념과 이론은 생명의 진리를 왜곡할 수 있다. 계산적 가치와 관념적 이론과 주장, 돈과 기계, 인터넷과 디지털의 지식과 정보가 지배하는 세상은 거짓을 조장하고 거짓으로 이끈다. 거짓은 인간의 삶을 파괴하고, 공동체 사회의 약속과 연대를 무너뜨린다. 돈과 기계, 인터넷과 디지털이 지배하는 이런 세상에서 삶과 사회의 주인과 주체로 살려면 정직과 진실의 도덕을 확립해야 한다. 도산이 내세운 절대 정직과 성실의 도덕준칙은 21세기 현대사회에서 상생의 삶을 위한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둘째 애기애타는 인생과 역사, 사회와 나라의 주인으로서 국민이 저마다 제 삶을 저답게 사는 민주시대의 원리다. 민주시대는 나와 세상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시대이며 개성과 창의를 발휘하는 시대다. 민주시대는 나를 주인과 주체로서 사랑하고 존중하는 데서 시작한다. 고대와 중세는 주어진 사회질서와 제도에 맞추어 사는 시대이고 남에게 맞추어 사는 시대다. 애기애타는 고대와 중세의 합일주의 철학을 극복하여 현대적이고 민주적인 생명철학을 정립한 것이다. 극기복례, 무위자연, 범아일여, 무념무아처럼 전체와의 합일을 강조하는 신비주의철학은 전근대적이다. 전체와의 합일과 일치를 강조한 이런 철학은 개별적 주체의 개성과 창의를 드러내고 실현하지 못한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기독교의 가르침도 이웃사랑을 강조한 것이다. 묵자의 겸애설도 남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이다. 타자인 이웃에게 초점을 맞춘 이러한 가르침도 현대 민주사회에 적합한 가르침은 아니다. 이성적 자아를 강조한 고대 그리스철학이나 근 현대 서양의 이성철학은 관념과 지식(정보)로 나와 세상을 대상화하고 타자화하여 지배하고 정복하는 철학이다. 탈현대주의는 이러한 이성적 자아를 해체하려고 했다.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라는 애기의 가르침은 동서고금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도산의 독창적 사상이다.
도산의 애기애타는 근현대 민주시대의 새로운 가르침이다. 도산은 민족 전체의 통일을 추구했지만 나를 사랑하는 애기와 자아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자아혁신을 중심에 두었다. 전체를 강조하면서도 주체 ‘나’를 중심에 두고 앞세웠다. 세상(나라, 민족)의 혁신도 나의 혁신에서 시작된다. 나의 혁신에서 개성과 창의가 나온다. 도산은 주체와 전체의 일치와 합일 속에서 진화와 혁신을 이루어가는 ‘나’를 중심에 놓고 앞세웠다. 하늘 체험을 강조하면서도 도산은 역사와 사회의 구체적 현실 속에서 주체로서 살았다.
함석헌은 목욕탕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하는 것처럼 합일체험, 신비체험에 들어갔다가는 다시 현실 속으로 나와야 한다고 했다. 지금 여기 나의 삶 속으로 역사와 사회의 구체적인 현실 속으로 들어와야 하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노래 ‘영혼의 지도’(Map of the Soul)에는 “내가 너고 네가 나다. 네가 나고 내가 너다. 우리가 나고 우리가 너다.”는 노랫말이 나온다. 그리고 “하나뿐인 희망, 하나뿐인 영혼, 하나뿐인 Smile, 하나뿐인 너”라면서 모두가 전체가 하나임을 노래한 다음에 바로 “세상 그 진실에 확실해진 답, 변하지 않는 그 어떤 나 Right”라고 했다. 그래, right, ‘변하지 않는 나’, 이것이 인생과 역사와 우주의 영원한 진실이고 답이다. 방탄소년단의 노래도 합일의 체험을 한 후에 현실의 ‘나’로 돌아온다.
방탄소년단의 노래 ‘영혼의 지도’는 도산의 ‘나’철학을 밝히 드러내는 노래다. 도산이 오늘 살아서 말씀하고 싶은 것을 방탄소년단이 대신 말해주는 것 같다. 모든 것은 내가 하는 것이고 모든 일은 결국 내게 돌아오는 것이다. ‘나’에서 시작하여 ‘나’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내가 없으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이고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며 내가 애쓰고 힘쓰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영혼의 세계에서는 내가 시작이고 끝이며 중심이고 목적이다. 내가 없으면 영혼은 죽은 것이고 없는 것이다. 영혼의 세계에서 나는 “변하지 않는 그 어떤 나”다. 저 밑바닥의 낮은 단계에서나 저 꼭대기 가장 높은 단계에서 나는 언제나 나로서 있다. 저 밑바닥의 어두운 나도 나이고 저 꼭대기서 화려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나도 나다. 나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것은 생명과 정신, 인생과 역사에서 깨달아야 할 가장 첫째 진리이면서 가장 중요하고 궁극적인 마지막 진리다. 이것은 방탄소년단이 ‘영혼의 지도’에서 노래한 진실이면서 도산이 애기애타의 철학을 통해서 가르쳐 준 진리다.
셋째 애기애타는 서로 살리고 서로 키워주는 쌍방향 지도력의 원리다. 도산의 애기애타는 엘리트 지식인의 권위주의적 계몽주의를 극복하고 청산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부터 서구 근현대의 계몽주의 지식인 철학자들은 민중의 몽매함을 일깨우려 했다. 민중의 무지에 대한 불신과 멸시가 전제되었다. 한국의 계몽주의 지식인 서재필, 윤치호, 이승만은 무지몽매한 민중 민족을 꾸짖고 혼내는 권위주의 지식인들이었다. 간디조차도 홀로 생각하고 결정하면서 일방적으로 민중을 이끌었다. 그러나 도산은 민중에게 겸허히 호소하는 지도자였다. 그는 민중 속으로 들어가 민중과 함께 일어서는 공립정신을 확립하고, 서로 주체가 되어 협력하고 협동하여 민주 공화의 나라를 열었다. 애기애타는 서로 살리고 키워주는 민주적 지도력의 원리이며 민주공화의 세계를 여는 실천원리다. 애기애타의 지도력을 확립한 사람만이 민주사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
도산에 의해서 서로 살리고 서로 키워주는 애기애타의 쌍방향 지도력이 확립되었다. 그 전에는 “나를 따르라!”고 주장하는 지도자를 민중이 뒤따라갔다. 그러나 도산은 민중을 깨워 일으켜 민중이 스스로 앞장서게 하였다. 도산은 민중이 깨어 일어나 앞장서도록 호소하는 겸허한 지도자였다. 3·1독립운동은 지식인 지도자들이 민중이 스스로 일어나 앞장서도록 민중에게 호소한 첫 번째 운동이다. 촛불혁명도 민중이 스스로 깨어 일어나 앞장선 운동이다. 3·1혁명과 촛불혁명은 서로 살리고 서로 키워주는 도산의 애기애타 지도력이 구현된 것이다.
넷째 애기애타는 나와 세상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나와 세상을 스스로 구원하고 해방하는 자기 구원의 진리다. 나와 남의 주체를 살리고 키우는 애기애타는 과학적 합리적으로 진실하고 정직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무실역행의 진리이면서 자신과 세상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구원하는 도덕적이고 영적인 진리다. 민주혁명과 과학혁명을 이룩한 근현대사회에서 민주공화의 세계를 열려면 낡은 신화와 교리, 온갖 운명론과 결정론을 쓸어버려야 한다.
한국 근현대 정신사에서 도산 이후에는 비과학적 운명론과 결정론이 깨끗이 청산되었다. 도산의 정신과 사상을 계승한 이승훈 유영모 함석헌의 정신과 사상에는 비과학적 운명론과 결정론이 말끔히 사라졌다. 음양오행론, 풍수지리설이나 도참설과 같은 비과학적 운명론도 예수가 구름 타고 와서 구원한다는 기독교의 신화적 교리도 육체의 영생을 말하고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사이비 종교집단도 굿을 하는 무당이나 점을 치는 일도 도산의 정신세계에서는 발붙일 수 없도록 깨끗이 지워졌다. 미신적 운명론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기계적 결정론이나 물질적 결정론도 거부되어야 한다. 미신적 운명론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기계적 결정론이나 물질적 결정론도 인간의 생명과 정신, 얼과 혼에 대한 모독이다. 도산은 어떤 의미의 결정론도 거부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구원해가는 존재다.
애기애타는 나와 세상을 스스로 구원해가는 자기 구원의 진리다. 나의 밖에서 누가 또는 어떤 것이 나를 결정하고 강제하고 구원해 준다는 것은 미신이고 환상이며 거짓이다. 나의 삶을 결정하고 구원하는 것은 나밖에 없다. 그것이 생명의 진리다. 생명은 스스로 하는 것이지 결코 누가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생명진화와 인류역사에서 생명과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형성하고 진화 발전시켜왔다. 생명과 인간은 자신의 창조자이면서 피조물이다. 내가 하면 하는 것이고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않는 것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일은 나의 나, 너의 나, 그의 나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도 진리도 영원한 생명도 모두 내 속에 나와 함께 있는 것이다. 도산은 고난과 시련 속에서 남이 구원해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돕고 구원해야 한다고 했다. 도산은 환난상구(患難相救), 환난상제(患難相濟)를 말하고 실천했다. 애기애타는 서로 사랑함으로써 나와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늘(하나님)이 우리 속으로 들어오시고 우리는 어둠과 절망을 이기고 새 세상을 열어갈 수 있다. 애기애타는 나와 세상을 스스로 구원해가는 실천원리다.
다섯째 애기애타는 나와 다른 타인들을 배제하고 배척하는 당파주의, 진영논리를 확실하게 극복한 대통합의 실천원리다.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온 인류가 하나로 이어지고 소통하는 지구화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배타적인 당파주의와 진영논리를 극복해야 한다. 애기애타는 욕망과 감정과 주장의 다름, 차이를 넘어서 그 다름과 차이 속에서 서로 주체로서 존중하고 사랑하는 협동과 통합의 길을 여는 실천원리다.
오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욕망과 감정과 주장에 함몰되어 있다.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분노와 미움을 쏟아낸다. 자기의 주장과 다르면 혹독하게 비판하고 제거한다. 남에 대한 나의 주장과 판단은 얇고 낮은 것이다. 지식과 계산을 바탕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다. 지식과 정보, 논리와 계산은 돈과 기계의 진리다. 생명과 정신의 진리는 주체와 전체, 창조와 혁신의 진리다. 계산적 논리와 정보는 생명과 정신의 진리를 드러낼 수 없다. 계산적인 논리와 개념, 정보와 데이터를 가지고 남을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은 인간의 생명과 정신, 얼과 혼에 대한 무례하고 무지한 행위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미움과 분노의 감정을 마구 쏟아내고 다른 사람을 그처럼 쉽게 비난하고 배척하는 것은 돈과 기계의 종이 되어서 영혼을 잃었기 때문이다. 정보와 데이터를 가지고 기계적 계산을 하는 컴퓨터와 인공지능은 쉽게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지만, 컴퓨터와 인공지능에게는 친구와 동지가 없다. 사나운 욕망과 감정, 기계적 계산과 자기주장만 난무하는 사회는 친구와 동지를 가질 수 없고 민주 공화의 세계를 이룰 수 없다.
도산은 큰일이나 작은 일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했지만, 언제나 동지들을 인정하고 존중했을 뿐 쉽게 비난하고 판단하지 않았다. 자신을 비난하고 음해하는 이승만조차도 존중하고 품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상해 임시정부 초기에 독립운동지도자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던 여운형을 도산만은 신뢰하고 존중했다. 도산은 한때 존경하는 선배였으나 친일협력의 길로 나아갔던 윤치호에 대해서도 함부로 비판하고 정죄하지 않았다. 윤치호의 영문일기에 보면 윤치호는 도산을 민족지도자로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했다. 심지어 도산은 자기를 취조했던 미와 경부조차도 존중했으므로 미와 경부 부부는 충심으로 도산을 존경하고 사랑하였다. 도산처럼 뜻과 목적이 분명하고 치열하게 산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도산은 동지들과 친구들을 함부로 비난하지 않았다. 자기반성과 비판은 철저하고 치열하게 했으나 남에 대해서는 끝까지 존중하고 사랑하는 맘과 자세를 잃지 않았다. 도산은 말하였다. “동지끼리는 속더라도 믿자!” 속임을 당하더라도 동지끼리는 믿자는 말씀은 얼마나 절절하고 사무친 말씀인가! 한없이 믿고 기다리는 자세가 애기애타의 원리요 자세다.
도산은 20세기의 성현이다. 고대의 신분제 사회에 갇혔던 공자보다 일방적으로 민중을 이끌었던 간디보다도 민중 속으로 들어가서 민중과 함께 일어섰던 도산, 서로 살리고 서로 길러주는 길을 열어갔던 도산이 더 위대하다. 간디는 인도와 세계에서 성인으로 높이 추앙을 받았으나 인도 사회의 민주화는 크게 진전되지 않았다. 도산은 간디처럼 높이 평가되지 못했으나 도산이 이끌었던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산업화는 크게 진전되었다. 애기애타는 나와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구원하고 해방하는 실천원리다. 도산이 말한 대로 나와 세상을 변화시키고 구원하려면 먼저 힘없고 부족한 나를 혁신하여 힘 있는 나가 되어야 한다. 나와 세상을 구원하는 힘 있는 나가 되려면 날마다 하늘을 체험하여 덕력과 체력과 지력을 길러야 한다. 잘못된 버릇과 습관을 고치고 무실역행 충의·용감의 정신을 길러야 한다. 그래서 협동하고 협력하여 서로 살리고 서로 크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애기애타의 길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보여도 도산이 이미 닦아놓은 길이다. 도산은 이미 애기애타의 아름답고 위대한 모범을 보였다. 누구나 도산을 따라서 애기애타의 길로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