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말만 들어도 설레는 것이 있다. 부자다. 땅 부자, 돈부자, 친구 부자, 자식 부자, 마음 부자, 부자의 종류도 헤아릴 수 없다.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기를 쓰고 땀을 흘리며 얻고자 하는 것이 돈부자다. 오늘 그 돈 부잣집을 찾았다. 바로 호암 이병철 생가다. 등산 모임에서 정기 산행을 준비했는데 태풍 다나스 때문에 계곡물이 물어 산행을 포기하고 계곡 아래서 단합 행사를 하기로 했다. 시간 여유가 많아 중간에 들린 것이다. 그곳이 경남 의령군 정곡면이다. 지리산이 남으로 줄기를 뻗어 내리다가 갈라지면서 그 맥을 마감하는 곳이다. 양쪽의 산이 노적봉처럼 둘려져 있고 생가 정면 좌측에는 마지막 기를 응축한 바위가 복은 안고 내려앉았다. 그 바위에는 거북이, 고기, 돼지 등 복을 상징하는 것들이 숨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눈을 비비고 보아도 찾지 못했다. 애초에 재물 운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자위라도 하고 싶었다.
지리산 자락에는 남강이 흐르는데 기이하게도 강 한 가운데 솥 바위이란 바위가 하나 있다. 그 바위를 중심으로 20여 리 안에 많은 부자가 태어났다. 삼성 이병철, LG 구인회, 효성 조홍제 회장이다. 어떻게 한 지방에서 많은 부자가 태어났을까?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생가의 가운데에서 몸을 세우고 마음을 잡아 본다. 지리적으로 부자를 탄생시킨 곳은 어떤 곳인가 나름의 궁금증이 더해졌다. 풍수지리에 문외한이지만, 그곳은 병풍 같은 지리산이 바람을 막고 좌우로 마을을 감싸 안은 산줄기, 남향의 따스함이 느껴진다. 아! 이런 곳이 길지이고 부자가 태어났구나. 나는 그런 곳에서 태어나지 못했으니 부자의 언저리를 배회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 재화의 운은 없는 것이 너무도 자명하다. 지금 무엇을 얻으려고 발버둥 칠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해도 안겨 오는 복 또한 없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니 부잣집 마당에서 부러움보다 도리어 마음이 편안해져 온다. 노력해서 될 것이 있고 아무리 애를 써도 되지 않는 것이 있다. 후자가 나의 길인 것임을...
어릴 적 동네에는 몇 손가락 꼽은 부잣집이 있었다. 쌀밥에다 가끔 고기가 곁들어진 밥상이 부럽다 못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우리 집은 입에 넣어 씹을수록 까칠한 촉감만이 감도는 조밥이 주식이었다. 제삿날이 되어야 겨우 쌀밥을 먹었으니 그날이 그렇게 기다려졌는지도 모르겠다. 도시락도 쌀이 간혹 섞인 조밥이 전부였으니 얼마나 굶주린 배를 안고 살았는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아픔 시절이었다. 하지만 하늘은 공평했다. 그때 머슴을 둔 부잣집은 명절날이 되면 여럿이 모여 술을 마시고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 모이면 돈과 재산문제로 싸우지 않을 때가 거의 없었다. 궁핍이 재산이었으니 가난한 우리 집은 싸울 일이 없었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에는 부잣집은 가세가 기울고 자손들도 그 부자의 명맥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그때 부잣집에 머슴살이했던 집은 지금은 그래도 평균 이상이다. 자식들이 객지로 나가 나름의 밥벌이를 하고 명절이면 빠지지 않고 고향으로 찾아든다. 이 어찌 공평한 하늘이 아니랴.
옛말에 부자 3대를 못 간다고 했는데 대한민국의 제일 부잣집은 3대를 이어가고 있다. 옛말이 무색하다. 아니다 세월이 흐르면 옛말이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본다. 대한민국 제일 부자가 태어난 마당에서 하늘을 본다. 태풍 다나스의 끝자락이 지리산에 걸려 안개비를 뿌린다. 나는 잠시 그 비가 하얀 쌀이 되어 쏟아지는 환상에 잠긴다. 하지만 부러움을 잠시 접으니 마음은 더 여유롭고 평온해 온다. 그래 나는 지금껏 저축은 많이 못 해도 채무 없이 하루하루를 걱정 없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땅 부자보다는 하늘 부자, 돈부자보다는 마음 부자가 더 부자가 아닐까? 부잣집 마당에서 환상을 접고 돌아서며 중얼거린다. 이러나저러나 “진정한 부자는 바로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