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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피라미드 주인공, 파라오는 편두를 한 동이족
1.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편두풍속
편두가 발굴되는 지역을 보면 한반도 만주 연해주 시베리아 초원지대, 중국대륙, 인도, 메소포타미아(이라크 지역) 그리고 이집트 와 미주 대륙에서 나타납니다. 세계적으로 분포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편두를 가지고 우리 상고사를 추적하여 책까지 낸 어느 국내 저자는 편두의 기원을 메소포타미아 내지 이집트로 설정하고, 이 풍습이 동아시아와 미주대륙으로 건너 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시 배달국시대 사람으로 알려진 14대 치우천왕인 자오지(치우)나 전욱이라는 사람도 편두를 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고, 중국측 사서에도 편두는 동이족의 풍습이었다고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동이족의 편두 풍습은 적어도 서기전 3천 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렇게 보면 이집트 문명이나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훨씬 앞서는 것입니다.
더구나 아래 자료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집트 왕국의 파라오들은 전형적인 동이계열의 사람들로 밝혀지고 있고, 편두 풍습을 한 이들이 동방에서 이주해 와서 초기 피라미드 형식인 방단형 계단형 피라미드를 건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보면 편두는 동이족(한겨레)이 시작한 것이고, 이 풍습이 시대를 달리하며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한반도 신라에서 발견되는 편두는 수천 년전에 퍼져 나갔던 편두 풍속이 서기 4~5세기에 다시 한반도로 역수입되었거나, 대륙에서 선조들의 편두 풍속을 이어받은 세력이 현재 경상도 지역으로 정착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미주대륙 마야 문명권에서 나타나는 편두 풍습은 서기후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한반도권에서 전해졌다고 보는 것은 당연하겠습니다.
출처; 깨어있는 푸른역사 cafe.daum.net/mookto
[참고] “신라왕 두개골은 새 모양”
한겨레신문/ 임종업 기자 2006년 12월 14일 (목) 18:41
“신라의 왕들은 새 머리 모양의 머리를 지녔다.” 새의 두개골과 흡사하게 인위적으로 길쭉하게 변형됐다는 얘기다. 김인희 중국중남민족대 교수(민속학)는 이런 내용을 16일 동아시아고대학회에서 발표하는 ‘두개 변형과 무의 통천의식’ 논문에서 발표한다.
김 교수가 근거로 삼은 것은 고고학 발굴 유물과 신화 자료. 천마총, 금관총, 서봉총, 황남대총, 금령총 등 신라 왕의 무덤에서 출토된 왕관의 지름은 15.9~20cm. 성인 남자가 아닌 12살 남자 아이의 머리 둘레에 해당한다. 이를 두고 실제 착용하기에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학계에서는 부장용품설이 유력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지증대사 탑비(885)의 비문 “편두는 비단에서 잠을 자는 존귀한 국왕으로, 국왕은 범어의 발음을 익혀 혀를 굴리면 인도의 말이 되었다.”에 나오는 ‘편두’와 더불어 신라왕이 두개골을 변형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유력한 증거라고 봤다. 새 머리 모양을 하고 춤을 추는 형상이 그려진 신라 토우도 이를 뒷받침한다.
김 교수는 건국신화에서도 그 흔적을 찾았다. 고구려 유화와 신라 알영의 설화를 관련된 내용이라고 재해석한 것. ‘고구려의 시조인 고주몽의 어미 유화의 입술이 석자’라든가, ‘박혁거세의 아내가 된 알영의 입이 새의 부리와 같았다’는 것을 두개골의 변형과정에서 입이 돌출하는 현상이 신화화한 것으로 본다. 또 이것은 고주몽이나 김알지가 알에서 탄생하였다는 내용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풀이한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는 “아이가 태어나면 긴 돌로 머리를 눌러두어 평평한 머리를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진한(辰韓) 사람들의 머리는 모두 편두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두개골을 새 머리 형상으로 만든 것은 동이족의 태양조 숭배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본다. 추상적인 사고를 하기 이전의 고대인들은 태양을 새가 싣고 날아가는 형상으로 이해했다는 것. 새의 모습을 닮는다는 것은 신인합일 또는 신과 통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신라왕의 두개골 변형은 제정일치 시대의 유습이었다고 해석된다.
김 교수는 이런 두개골 변형이 동이족 분포지역에서 보편적이었다고 본다. 실제로 싼동, 지앙수, 후베이, 한국, 일본 등지에서 편두로 보이는 두개골이 발굴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경남 김해 예안리에서 10구가 발굴되었다.
또 설화에서도 증거는 채집된다. <산해경> 등 고문헌을 보면 동이족으로 간주되는 치우의 머리가 소수(疏首)였다고 기술돼 있다. 여기서 소수는 두개 변형을 한 머리를 일컫는다고 김 교수는 풀이한다. '산해경'에 보이는 동이족 전욱 역시 <설문>과 <백서>의 해석으로 보면 머리가 기울어져 있다. (주; 이 부분이 사실이라면 한겨레의 편두 풍속은 서기전 3천 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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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피라미드의 원조
피라미드에 대한 생각
Q. 중국 장안유역의 피라미드는 누가 건설한 것인가 ?
단군조선(BC2333)보다 128년 늦게 출발한 중국최초의 나라 ‘하나라’ 이전 중국역사는 없습니다
오직 동이(이족/한국/한웅)의 역사가 있을 뿐입니다
→ 그렇다면 그 피라미드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 만 년전 그땅에 누가 살았는가 ?
Q. 멕시코 마야문명의 피라미드 주인공은 누구인가 ?
→ 히스토리 채널을 보셨는지요?
현지인들의 증언 “피라미드는 서쪽에서 온 엉덩이에 푸른반점있는 사람들이 건설한 것이다.”
Q. 이집트 피라미드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
아래 솔본님 글 중 일부
"고왕국의 피라미드 건설자들은 아시아에서 온 비흑인 침략자"
→ ‘편두’는 동이족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쌍각지/변발과 함께)
결 론
장안 유역의 피라미드는 물론 전세계의 피라미드는 단편적이지만 비슷한 요인이 있으므로 동질성을 연구해볼 필요성이 있다. 그것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지구의 역사와 우리의 상고사를 공부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출처: http://kr.blog.yahoo.com/kimyw60/5056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아래 사진은, 이 왕이 다스린 나라에서 창조신으로 받들어지는 어느 여신의 부조상입니다.
이 여신의 이름 역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오래동안 속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요?
왜 이런 사진은 공개되지 않는 것일까요?
위 미이라의 주인공은 바로 이집트의 파라오 투탕카멘입니다.
그리고 위 여신은 바로 하토르(Hathor)이지요..
이들이 셈족이나 아프리칸으로 보이십니까?
만일 우리와 같은 동아시아인이었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왕조시대 직전 이집트인들은 동방에서 온 새로운 종족에 의해 정복당했다"
- 영국의 이집트 학자, 브라이언 에머리-
"고왕국의 피라미드 건설자들은 아시아에서 온 비흑인 침략자"
- 플린더스 페트리-
(이상 올린 이: 솔본)
<댓글>
-고대사산책 (2005-07-28 06:23:50)
맨 위 남왕은 전형적인 동양인 그것도 동북아...
시골 노인 같은 인상을 주는...
중간 여신은 지금 서울의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얼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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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출처 : ‘솔본’님이 쓴 글 ('우리역사의 비밀' coo2.net. 네티즌 자유게시판)
- 질의응답 : ‘공지사항 필수자료 및 보조자료 모음란’에 ‘솔본’님 항목 참고
이집트 ‘고왕국의 피라미드 건설자들은 아시아에서 온 비흑인 침략자’
위의 사진은 기원전 1300년경 어느 왕의 미이라입니다.
이 왕의 이름을 여러분은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왕이 통치한 나라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이 왕이 통치한 나라가 어디라고 생각되십니까?
선입견을 버리고 추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깊지 않은 눈, 광대뼈, 높지 않은 코, 볼이 빠르고 약간 작은 듯한 입... 전체적인 골격 등등...
세 번째도 얼굴이 두 번째와 비슷...서양인보다는 동양인에 가까운
-신시 (2005-07-28 08:41:13)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투탕카멘을 특집으로 다룬 프로를 보았는데, 흥미롭게도 투탕카멘의 미이라에서 머리 부분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편두" 더군요.
이집트 부조에 나온 투탕카멘의 묘사에서도 "편두"가 보이는데 처음엔 학자들도 그냥 왕이니 특별하게 묘사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미이라를 확인해 보고 진짜 그런 형태였다는 것이 입증되었고 나아가 투탕카멘의 선조들의 머리 모양도 "편두" 였다는 것입니다.
"편두" 문화를 가진 문화권과의 연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는데, 아쉽게도 프로에서는 편두라는 가능성을 배제하고 "단지 유전적인 요인이었을 뿐이다"라는 다소 어이없는 결론을 내리고 끝내더군요.
-홍승희 (2005-07-28 11:49:37)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역사를 부정하는 분위기인데, 남들이 먼저 인정하길 바랄 수는 없지요. 저런 자료들을 부지런히 찾아서 함께 공유해 가면, 진실을 부정하고자 하는 이들 또한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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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현생인류의 출발지와 조상
흥미있는 두 개의 논문
(작성자: 솔본)
하나는 "농업과 언어의 전파"라는 논문이고, 또 하나는 "헬리코 파이로린 박테리아의 유전자로 추적한 인류 이동"이라는 논문입니다. 두 편의 논문은 공교롭게도 지금으로부터 1만2천 년~8천 년 전 사이에 동북아로부터 어떤 집단의 세계적인 확산을 가정하고 있습니다.
도표의 맨위 칸 '코리아와 동아시아' 조상형으로서 한국인이 11개의 고립된 헬리코의 원시유전자를 독립적으로 보유. (아프리카나 유럽형 유전인자가 섞이지 않음)
특히 헬리코 파이로린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통한 인류의 이동추적 논문을 보면 아메리카 인디언을 비롯 수메르 지역의 이라크인들에게는 동아시아에서 고립되어 조상화된 헬리코 피로린의 원시 유전자가 분포되어 있고, 그 동아시아형(EA형)의 고립된 시조는 오로지 한국인에게서만 100% 독립적으로 발견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월리스 버지(E.A. Wallis Budge)가 『애급어(Egyptian Language)』(1910)에서 밝힌 이집트어의 "[동북아] 이주민설" 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 하는 것입니다.
현재는 이 두 편의 논문에 대한 이해를 위해 공부하는 중입니다. 엄청 복잡하고 어렵군요.
-솔본-
[흑룡's comment]
편두 - 머리를 좋게 하기 위해 어릴 적부터 돌베개, 송판 등을 사용하여 뒷머리가 납작하게 하는 동이족의 풍습.
신라 및 가야 등 한민족과 훈족의 풍습이다.
(훈족은 우리 한민족과 같은 동이 9족의 하나)
한가지 예로, 신라 금관은 12세 아이의 머리둘레 정도 크기인데, 신라의 지배계급이 '편두' 풍습이 있었고, 이렇게 작은 금관을 성인 남자(왕)가 쓸 수 있었던 것은 '편두' 였기 때문이다.
고대 마야문명 등 고대 인류문명 이곳저곳에 이러한 '편두'의 흔적이 나타난다.
출처; 삼태극 원문보기 글쓴이: 삼태극
https://cafe.daum.net/gycenter/IkWy/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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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오래 전 솔본님이 coo2.net에 쓴 상고사 관련 글들은 정말 충격적일 정도로 대단했는데,
아쉽게도 그 사이트가 언젠가 없어졌더군요.
진작에 단행본 책으로 나왔어야 하는데 ....
우리 역사 연구에 있어 참으로 안타까운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