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간 고양이
기억과 추억 사이/수필·산문·에세이
2011-10-25 13:57:15
쫒겨났던 어미 고양이가 우리 집 보일러실을 기웃거린다는 사실을 아내로부터 전해 들었다. 바깥을 방황하며 지냈던 근 일주일의 삶이 고달팠던 것일까. 찬비 몰아쳐도 제 집만 한 게 없다고 아무리 누추한 보일러실이지만 고양이에게는 그 곳이 가장 따스한 보금자리였을 것이다. 슬슬 찬바람기가 도는 초겨울이 돌아오자 어미 고양이는 전에 살았던 보금자리가 그리웠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말을 듣는 순간 걱정거리 하나가 떠올랐다. 고양이가 제 가족들을 이끌고 보일러실로 숨어들어 안식처를 꾸릴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고양이와 앙숙이 된 것은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울음소리 때문이었다. 마당을 어슬렁거리며 앙칼지게 우는 소리 때문에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가 보다고 했다. 잠시 저러다 말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울음소리는 더 거칠어졌다. 심야에 그놈들의 울음소리를 듣는다는 건 고역이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도 어둠이 깔리면 고양이들이 어디서 나타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고양이들을 찾는다고 마당 구석구석을 둘러보다 그 놈들의 보금자리를 찾아낸 건 그날 오후였다.
아래채 보일러실을 들여다보고는 깜짝 놀랐다. 하얀 무늬가 박힌 점박이 고양이가 보일러 위에서 수염을 빳빳이 세우고 으르렁거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살기어린 눈에서는 철철 증오가 넘쳐 흘렀다. 잘못하면 고양이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내 얼굴을 할퀴고 도망칠 것 같았다.
두려운 마음에 고개를 돌리려는 데 보일러 밑에서 뭔가 꼼작거리는 것이 보였다. 조막만한 새끼 고양이었다. 새끼 고양이는 잔뜩 겁먹은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급히 몸을 숨겼다.
어미 고양이가 으르렁거리며 증오의 불빛을 뿜었던 것도 새끼 고양이를 위한 보호 본능 때문이었다. 새끼가 위험에 처했을 때 모성애를 발휘하는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언제부터 보일러실이 그 놈들의 안식처가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새끼 고양이의 불안한 걸음걸이를 보면 어미가 남몰래 이곳에서 새끼를 놓고 지낸 것이 얼마 되지 않는 듯했다.
그날 이후로 난 고양이들을 쫒아낼 궁리를 하였다. 잠자리에 들기 전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면 후레쉬를 들고 바깥으로 살며시 나갔다. 그러면 고양이들은 귀신같이 알고는 제각기 흩어졌다. 어미는 날렵하게 높은 담장으로 뛰어올라 빌라로 사라졌고 새끼만 불안한 걸음으로 텃밭의 우거진 작물속을 해매고 다녔다. 대문을 활짝 열어놓아도 소용없었다. 대문을 향해 쫒으면 새끼는 작물속을 요리조리 피해다니다 지하실쪽으로 빨빨거리며 도망을 쳤다.
고양이들이 제 발로 나가지 않는 한 쫒아낸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렇게 고양이와 한바탕 씨름을 하다 방에 들어오면 놈들은 다시 귀신같이 나타나 애절하게 울어댔다. 쉼 없이 울어대는 고양이 때문에 잠을 설치는 일이 많았다. 특히 아랫채 세입자들이 더 걱정이었다. 방 벽 뒤쪽이 보일러실이기 때문에 바로 옆에서 우는 것처럼 크게 들렸다.
난 그 다음날 보일러실을 들여다보았다. 희끄무레한 공간 속에서 어미가 으르렁거리며 급히 몸을 숨겼고 새끼는 겁먹은 표정으로 보일러 안쪽 공간에 머리를 쑤셔 박고 끙끙거렸다. 막대기를 그 공간에 쑤셔놓고 휘저어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막대기의 공격에 새끼가 바깥으로 나올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더욱 더 몸을 움츠리고 꼼짝달싹하지 않았다. 틈만 나면 막대기를 쑤셔대도 소용없었다. 내가 이렇게 고양이들을 쫒아내려고 안달하는 중에도 아내는 끼니때가 되면 보일러실 앞에 밥그릇을 갖다 놓았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건 고양이들을 집안에 붙잡아 두는 거나 다름없었다. 아내가 이렇게 고양에게 지극정성 밥그릇을 갖다 바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
고양이들을 괴롭히면 복수를 한다는 것이었다. 옛날 시골 노인들이 써먹던 말을 아내는 지금도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아무리 고양이가 영물이라지만 이 대명천지에 그런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전설의 고향 한 대목을 듣는 것처럼 우습기 짝이 없었다. 셋방 할머니 역시 나를 보면 당부를 잊지 않았다.
“고양이 쫒아내지 마유, 쫒아낸다고 나갈까유. 새끼가 다 크면 어미가 알아서 새끼를 달고 나간데유, 지금은 새끼가 어려 담을 못 뛰어넘어유, 시끄러워도 참아야지유”
셋방 할머니의 요구에 마음이 잠시 흔들렸지만 그것도 그때뿐,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으면 생각이 달라졌다. 아내와 셋방 할머니의 말에 수긍을 하여 참고 지낸다면 시끄러워 내 명대로 못살 것 같았다. 귀가 어두운 셋방할머니도 그렇고 직장일로 피곤한 아내는 눕자마자 금방 곯아떨어지니 그런 말 쉽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신경이 예민한 나는 달랐다. 비몽사몽간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그런데 며칠동안 집안이 조용해졌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뚝 그친 것이다. 보일러실안에도 적막감만 감돌았다. 고양이들이 외출했다 생각하고 보일러실 입구에 커다란 발 하나를 걸쳐 놓았다. 고양이가 보일러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집이 조용해지자 아내는 넌지시 불만을 쏟아냈다.
‘그렇게 고양이를 괴롭히니 집을 안 나가. 복수하면 어쩌려구. 괜히 마음이 짠해“
“무슨 소리여. 나를 괴롭힌 건 그 놈들이지, 남 집에 쳐들어와서 잠 못 자게 하는 게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고 뭐여”
“며칠만 참으면 고양이가 집을 나갈 텐데, 그것도 못 참아. 새끼가 다 자라면 내 쫒지 않아도 저들이 알아서 나가”
졸지에 나는 아내에게 인정머리 없는 놈으로 낙인찍혔다. 말 못하는 고양이를 보호해 주지 못할망정 몰인정하게 쫒아낸 놈이 되고 말았다. 아내에게 버럭버럭 항변을 하면서도 고양이에게 슬슬 미안해지는 것은 어쩔수 없는 심성탓인가 보다. 그 고양이들이 다시 보일러실을 찾아 들어오면 그냥 침묵하며 지내리라 생각했다. 집 없이 바깥을 해매는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불쌍한 일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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