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온보(溫補)하는 의안(按)과 원칙(則)
남경(:留都)의 정중한(鄭中翰)이 한여름(:仲夏)에 발배(發背)를 앓았으니, 이미 보름(:半月)이 되었다. 창두(瘡頭)가 10여 개(:枚)였는데 모두 속(粟)의 크기 정도이고 만종(漫腫) 견경(堅硬)하며 근(筋)이 대반(大盤) 크기이고 배(背)가 중(重)하여 석(石)을 짊어진 듯 하였다.
곧 격산구(隔蒜灸) 50여 장(壯)으로 하였더니, 그 배(背)가 갑자기 경(輕)하게 되었다. 그가 경(輕)하게 나으므로 금기(禁忌)를 지키지 않았더니, 3일 후에 다시 대작(大作)하여 창(瘡)이 기발(起發)하지도 않고 단지 작통(作痛)하므로 고(苦)하였다. 활명음(活命飮) 4제(劑)로 하니 세(勢)가 조금 퇴(退)하였고 향사육군자탕(香砂六君子湯) 4제(劑)로 하니 음식(飮食)을 조금 진(進)하였다. 그가 의(醫)를 안다고 믿고 스스로 패독(敗毒)하는 약(藥) 2제(劑)를 쓰니, 음식(飮食)이 더 적게 되었고 구(口)에 연말(涎沫)이 유(流)하여도 스스로 알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는 비허(脾虛)가 심(甚)한 것이었다. 이에 매번 탁리(托裏)하는 약(藥)에 인삼(人蔘) 황기(黃芪) 각 3전(錢)을 가한 것으로 하였는데, 그가 스스로 2/3(:大半)을 몰래 가려내었다(:揀去). 그 후에 비록 대보(大補)하는 약(藥)에 건강(乾薑) 육계(肉桂)를 가한 것으로 하여도 응(應)하지 않았다.
결국 그 아들에게 인삼(人蔘) 황기(黃芪) 각 1근(斤) 당귀(當歸) 백출(白朮) 각 반근(半斤) 건강(乾薑) 육계(肉桂) 부자(附子) 각 1량(兩)을 달여서 고(膏)를 1통(:罐) 만들고 3일에 모두 음(飮)하도록 하였더니, 연(涎)이 갑자기 지(止)하고 부(腐)가 갑자기 궤(潰)하며 식(食)을 갑자기 진(進)하였다. 다시 탁리(托裏) 건비(健脾)하는 약(藥)으로 하였더니 부육(腐肉)이 저절로 탈(脫)하면서 나았느니라.
(이하까지 모두 설안(薛按)에 나온다.)
장 시어(張 侍御)가 배창(背瘡) 3매(枚)를 환(患)하였으니, 모두 그 크기가 속(粟)만 하였다.
다른 사람이 소독(小毒)으로 여기고 청열(淸熱) 화담(化痰)하는 약(藥)을 복용하게 하고 외(外)로 양약(凉藥)을 부첩(敷貼)하였더니, 수일(數日)에도 불기(不起)하고 색암(色黯)하고 흔(焮)하지 않으며 흉중(胸中)의 기(氣)가 출입(出入)하지 못하니 세(勢)가 심(甚)하여 외(畏)할만 하였다. 연(連)하여 활명음(活命飮) 2제(劑)를 쓰니, 기(氣)는 비록 이(利)하나 농(膿)이 청희(淸稀)하고 창(瘡)은 불기(不起)하였다. 보제(補劑)를 쓰려고 하였으나 그가 평소 담화(痰火)가 있어 인삼(人蔘) 백출(白朮)의 보(補)를 받지 않았다는 것에 집착(:泥)하였다. 그 고집(固執)으로 인하여 결국 겉으로는 패독(敗毒)의 제(劑)를 보여주고 몰래 인삼(人蔘) 황기(黃芪) 당귀(當歸) 백출(白朮) 각 5전(錢) 건강(乾薑) 육계(肉桂) 각 2전(錢)으로 하여 2제(劑)를 복용하게 하니 배(背)에 열(熱)을 느끼면서 부육(腐肉)이 궤(潰)하게 되었다. 비로소 나의 말을 믿고서 떳떳하게 대보(大補)하는 약(藥)을 썼더니, 나았느니라.
남도(南都)의 섭씨(聶氏)가 음력 6월(月)의 시(時)에 발배(發背)를 환(患)하였으니, 부육(腐肉)이 이미 거(去)하였고 창구(瘡口)가 1척(尺) 정도였으며, 색적(色赤) 흔종(焮腫)하고 발열(發熱) 불식(不食) 욕구(欲嘔) 불구(不嘔)하였다. 십선산(十宣散) 등의 약(藥)을 복용하였어도 불기(不起)하므로 나에게 해결(:決)해달라고 청(請)하였다.
그 맥(脈)을 경(輕)하게 진(診)하니 부(浮)하면서 삭(數)하였고 중(重)하게 진(診)하니 약(弱)하면서 삽(澁)하였는데, 이는 궤(潰)한 후의 정맥(正脈)이었다. 그런데 창구(瘡口)는 개장(開張)하였으니 혈기(血氣)가 허(虛)한 것이었고, 욕구(欲嘔) 불구(不嘔)하였으니 비위(脾胃)의 허(虛)이었으며, 색적(色赤) 흔종(焮腫)하였으니 허화(虛火)의 상(象)이었으므로 아직은 치(治)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에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에 주초(酒炒)한 황백(黃栢)과 지모(知母) 오미자(五味子) 맥문동(麥門冬)을 가한 것을 주고 동편(童便)을 음(飮)하게 하였더니, 음식(飮食)을 갑자기 진(進)하고 기육(肌肉)이 갑자기 생(生)하였다. 8제(劑)를 복용하니, 창구(瘡口)가 수(收)하여 크기가 속(粟)의 정도이었다.
또 '여독(餘毒)이 미진(未盡)한 것이다.'는 다른 사람의 말에 혹(惑)하여서 소독(消毒)하는 약(藥)을 2제(劑)를 복용하였더니, 다시 발열(發熱) 혼궤(昏憒)하였다.
이에 급히 앞의 약(藥)을 진(進)하였으니, 20여 제(劑)에 나았느니라.
2개월 후 좋은 일(:善事)이 작(作)하므로 인하여 주야(晝夜)를 수(睡)하지 않더니 노권(勞倦) 발열(發熱)하고는 수(睡)하는 듯 수(睡)하지 못하였다. 앞의 탕(湯) 2제(劑)를 주었더니, 다시 발열(發熱)하고 음식(飮食)이 부진(不進)하였다.
오직 열(熱)한 탕(湯)만 음(飮)하게 하고 그 후에 앞의 약(藥)에 부자(附子) 1전(錢)을 가한 것으로 2제(劑)를 하였더니, 다시 나았느니라.
추관(秋官: 형조의 다른 이름) 고정보(高貞甫)가 맹추(孟秋)에 발배(發背)하였으니, 색(色)이 암(黯)하면서 경(硬)하고 불통(不痛) 불기(不起)하며 맥(脈)이 침(沈)하면서 세(細)하고 사지(四肢)가 역냉(逆冷)하였다.
급히 대애(大艾)로 격산구(隔蒜灸)를 30여 장(壯)하여도 불통(不痛)하였다. 이어 속(粟) 크기의 애(艾)로 육(肉)에 붙여 구(灸)하기를 7장(壯)하니 비로소 통(痛)을 느낄 정도가 되었다. 육군자탕(六君子湯) 2제(劑)에 매 제(劑)당 부자(附子) 2전(錢)을 넣은 것으로 하여도 불응(不應)하였다. 그 후에 제(劑)에 또 육계(肉桂) 2전(錢)을 가한 것으로 하였더니, 비로소 응(應)하면서 나았느니라.
어떤 남자(男子)가 협종(脇腫) 일괴(一塊)가 오래되어도 불궤(不潰)하고 안(按)하여도 미통(微痛)하며 맥(脈)이 미(微)하면서 삽(澁)하였으니, 이는 형증(形證)이 모두 허(虛)한 것이었다.
경(經)에 이르기를 "형기(形氣)가 부족(不足)하고 병기(病氣)가 부족(不足)하면 당연히 보(補)하여야 하니, 사(瀉)하면 부당(不當)하다." 하였다. 이에 내가 인삼양영탕(人蔘養營湯)으로 치(治)하려 하였지만, 그가 믿지 않고 유기음(流氣飮)을 복용하였으니, 허증(虛證)이 모두 지(至)하였다.
비로소 앞의 탕(湯)을 복용하고 1개월 정도가 되니 조금 나았느니라. 단지 종(腫)한 처(處)가 경(硬)하였으므로 애엽(艾葉)을 초열(炒熱)하여 환처(患處)에 위(熨)하였더니, 10여 일(日)에 이르러 농(膿)이 되었고, 이에 화침(火針)으로 자(刺)하였다. 다시 구(灸)를 두시병(豆豉餅)으로 하였고, 또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 100제(劑)를 복용하였더니 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