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와 누정과 사람의 삶"
" 솔 향 강 릉 경 포 호(鏡 浦 湖) 주변 나들이..,"
(경포호, 경포대, 허난설헌 기념공원, 강문 진또배기:솟대 등..,)
"대관령길은 늘상 긴장과 설렘으로 남습니다.
해발865m의 고도에서 깎아지른 듯한 계곡을따라 강릉으로 이어지는 굽이굽이
산길은 가벼운 두려움과 함께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며,바다의 대명사 *동해*를
대면하기 직전의 기쁨을 맛보게 합니다.대관령에서 내려다보는 강릉땅의 모습은
실로 장관입니다.멀리 높지막하게 선을 긋고 있는 동해의 수평선과 긴 해안선을
따라 수굿이 앉아있는 호수들이 보이며,강릉시가가 요란하지 않게 펼쳐집니다.
강릉시 북쪽의 경포호는 바다와 호수와 소나무숲,그리고 비교적 너른
들판 등 갖가지 자연 환경이 잘 어우러져 관동 제일경을 자랑합니다."
(일출과 함께하는 새벽길)

"어딘가로 떠난다는 건 분명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떠나야 만날 수 있는 풍경들이 있습니다.
떠난야만 부딪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마다 추구하고 꿈꾸는 삶은 다를 수 있지만,
자연 속에 섞이고 싶어 오늘도 길을 떠납니다."
(강릉 들어가는 입구)

(경포호 : 鏡浦湖 가는 안내판) *경호 : 鏡湖*

"경포대 바로 아래 펼쳐진 경포호는 호수면이
거울처러 맑다고하여 경호(鏡號)라고도 합니다."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

"경포호를 들어서면 바로 호수 옆에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규모의 축음기박물관으로 에디슨이 만든 최초의 축음기,
뮤직박스,오디오 등 소리기기 4500여 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경 포 호 : 鏡 浦 湖 풍 경)

"뱃노리 즐기고서 경포대에 다시 올라보니
호수의 모습이 다른 모습으로 닥아오네
항악루와 악양루의 글씨 누가 보았던가.
이백 두보 있었다면 알려지지 않았으리."

"만고의 세월 풍정 경포대를 포호하고
끝없이 넓은 호수는 눈 아래 펼쳐지네
해가 지자 바다어귀 뭇새들은 돌아 가고
밝은 달 밤 호수에는 백구만이 날고 있네."

"거울처럼 맑다" 고 해서 이름이 붙혀진 경포호(鏡浦湖)에는
달이 네개가 뜬다는 풍류가 있었습니다.하늘에 뜬 달이 하나요,
바다에 하나, 호수에 하나, 그리고 술잔에 똑 같은 달이
하나 뜬다는 것입니다."
(경포대로 가는 아름다운 호수길)

"참소리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오면 넓은 경포호가 펼쳐집니다.
조망대를 따라 경포호를 바라보며 걷다보면
경포대 입구에 닿게 됩니다."

(노송 숲에 푹~묻힌 경포대)

(노송 : 老松과 어우러진 언덕 위의 경 포 대 : 鏡 浦 臺)

"아름드리 소나무와 벗나무에 둘러싸여 있어
마처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삼척 죽서루와 함께 정말 멋있는 누정(樓亭)입니다."
(경포대 오르는 소나무 숲길)

(경포대 : 鏡浦臺 표지석)

"경포대는 관동팔경(關東八景) 중 한 곳으로 꼽힙니다.
*관동팔경이란 ?*
관동팔경이란 대관령 동쪽,즉 관동 지방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여덟 곳을 말합니다.경포대를 비롯하여 삼척 죽서루,양양 낙산사,고성 청간정,
울진 망양정,월송정, 지금은 북한 땅에 속한 고성 삼일포와 통천 총석정이 팔경에 속합니다."

(경포대로 들어가는 입구의 숲길)

"노송이 우거져 있는 정말 풍광 좋은 숲길을 걸어 오르면
경포대 누정에 도달하게 됩니다. 길 양편에는 경포대를 찬양하는
시(詩)들이 석물에 새겨져 줄지어 서 있습니다.
"제일 관동팔경이라 불리는 경포대.
팔작지붕에 정면 6칸 측면 5칸의 당당한 규모이며,
봄이면 누대 주위로 벚꽃이 화사하게 핍니다."

"경포대(鏡浦帶)라는 현판은 전서체로 쓴 것과 해서체로 쓴 것 두개가 있습니다.
전서체는 조선 후기의 서예가 유한지가 쓴 것이고,해서체는 조선 순조 때
승지를 지낸 명필 이익희가 쓴 것입니다."
"제일강산(第一江山)이라는 큰 현판은 암묵적으로 경포대의 명성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며
편액의 글씨는 명나라 사신 주지번 또는 조선전기 4대 서예가의 한 사람인
양사언이 썼다고 하는데 확실치 않다고 합니다."

(경포대 누각 내에 걸려있는 많은 시문 ; 詩文들)

"경포대는 바다와 호수를 한아름 안고 있는 빼어난 경치 때문에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아 들었으며 그들이 지은 좋은 시(詩)들이
누각 내부에 많이 걸려 있습니다."
(경포호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누대 :樓臺)

(경포대에서 바라본 경포호)

"연기 안개 푸른데 호수 빛 넘실거려
가을 꽃 밟고서 죽방으로 들어 가네
머리 희고 팔 년 만에 다시 와 보니
그림배에 홍장 싣고 갈 뜻이 없구나."
(교산 허 균 : 蛟山 許 均)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 안내판)

"경포대에서 경포호를 끼고 호수와 함께 어우러진
풍경을 따라 가다 보면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에 도착합니다.
경포호 옆,울창한 송림이 기념관을 안고 있습니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 전경)

(기념공원 입구)

(죽지사 : 竹枝詞)...,난설헌 허 초 희
"나의 집은 강릉 땅 돌 싸인 갯가로
문 앞의 강물에 비단 옷을 빨았어요
아침이면 한가롭게 목란배 매어 놓고
짝지어 나는 원앙새만 부럽게 보았어요."

"아름답게 빛나는 경포호 길 끝에 초희(楚嬉)가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난설헌(蘭雪軒)이라고 부른 여자,허난설헌(1563ㅡ1589)입니다.
세상 남정네들로부터 받은 질시와 투기,두 아이를 일찍 잃은 한을 품고 산 여자입니다.
먹먹한가슴을 안고 떠난 길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난설헌은 경포대 옆 강릉 초당마을이 고향입니다.
아버지 허협,두 오빠 성과봉,동생 균 그리고 초희 이 다섯을
허씨 5문장이라 합니다.

"자유분망한 가풍 속에서 난설헌은 어릴적부터 글을 배웠습니다.
여덟 살 때 쓴 글 한 편에 세상이 놀랐고,이후 난설헌은 신동이라 불립니다.
하지만 남자 세상에서 천재 여인의 삶은 기구하게 흘러갑니다."

"나이 열다섯에 혼인한 생활도 평탄하지 못했고,
어렵게 가진 두 아이를 일년 간격으로 전염병으로 잃었습니다.
그사이에 친정은 조금씩 쇠락해 가고 뱃속에 있던 아이마저 유산을 합니다.
스물세 살이었습니다."

"4년뒤 봄날, 초희는 *부용꽃이 서리에 맞아 붉게 되었다*고
목욕재계를 한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나이로 스물일 곱살이었습니다."

"혁명을 꿈꾸던 허씨 집안은 멸문지화를 당해 세상에 잊혀젖고,
그녀를 잊기에는 그 생(生)이 슬프기에, 훗날 사람들은 이 솔숲 어딘가에서
그녀가 태어났다고 짐작하고 기념관과 공원을 세웠습니다."

"어엿한 기와집 안에는 그녀를 기리는 여러 징표들이 보입니다.
그녀 시를 적은 족자,위패,그리고 그녀의 초상화. *가인(佳人 : 용모가
아름다웠다.)* 으로 남정네들이 묘사했던 그녀의 기품이 느껴집니다. 마당에는
작약들이 바야흐로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초의(허난설헌)와 작별하고 강문 진또배기마을로 발길을 돌립니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에서 20 여분을 가다보면 솟대들이 솟아 있는
마을에 도착 하게 됩니다. 진또배기(솟대) 마을.,강문마을입니다."
(강문 진또배기마을 : 솟대공원 표지석)

"진또배기는 영동지역에서 흔히 짐대서낭,진대로 부르는 솟대의 일종인데
진또배기라고 사용하는 곳은 강문동 뿐입니다.즉 강문동의 *서낭굿*을 이렇게
부르게 되었습니다."

"솟대는 대게 장대와 새로 이루어졌으며 솟대의 새는
기러기,갈매기, 따오기 등이 있지만 대개는 *신령과 인간의 의사소통을
매개하는 전달자*라는 오리입니다.

"경포호와 동해안 해안선 사이에 낀 강문이라는 포구마을,
약 5m의 짐대 위에 세 갈래로 갈라진 나뭇가지가 가로로 얹혀 있고
각 갈래마다 정교하게 만든 나무 오리가 올라 앉아 있습니다."

"목을 길게 빼고 멀리 경포 호수 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곧 푸드득 날아오를 새처럼 생동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여러 솟대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조형성이 뛰어나다는 평판이 자자합니다."
"강문마을에서는 솟대를 진또배기라 부릅니다."




(경포호 옆의 초당 순두부마을)

"초당마을에서 순두부로 요기를 합니다.
초당은 난설헌의 아버지 허엽의 호(呼)입니다.
도시에서 맛보는 매운 두부 대신,담백한 전골,담백한 순두부,
담백한 구이로 속을 채웁니다. 그리고 사천진으로 갑니다.
허균(許均)의 흔적이 그곳에 있습니다."

(초당마을 쪽에서 바라본 경포호)

"호수 가운데는 각종 철새가 찾아와 논다 하여 이름이 붙혀진
새바위가 있습니다.그위에 작은 정자가 서 있고 *조암(鳥岩)*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어 운치를 더 해 줍니다."

(허균의 시비가 있는 사천진항으로 가는 해송 숲길)

"경포호에서 허균의 흔적을 찾아 가는 길은
경포해변에 방풍림으로 서 있는 무수한 해송(海松) 숲길을
정말 기분 좋게 달렸습니다."
"경포대에서 북쪽으로 30분을 가면 나오는 교산(蛟山)끝자락입니다.
교산(蛟山), *이무기의 산* 은 허균의 호입니다.이무기의 승천을 꿈꿨던
혁명가 허균은 역적으로 몰려 능지처참을 당했습니다"

"산이 끝나는 바닷가는 사천진 해변입니다.
큼직한 바위들이 있습니다.교문암(蛟門岩)이라 새겨저 있습니다.
비범한두 오누이의 삶을 끌어안고 바위들은 파도를 맞습니다."
(교산 허균 시비 : 蛟山 許均 詩碑)

"차를 반 항아리 달이고
향 한 심지를 피웠네
와딴 집에 누워
건곤고금(乾坤古今)을 가늠하노니
사람들은 누추한 집이라하여
살지 못하려니 하건만
나에게는
신선의 세계인저."
"교산(蛟山)의 언덕 위에 허균(許均)을 기념하는 *교산시비(蛟山詩碑)*가 있습니다.
고향을 사랑한 허균은 자신의 호마저 고향산천의 지명을 따라 교산 이라 지었습니다.
시비의 뒤에는 짤막하니 그의 생애가 적혀 있습니다."
".......그의 누이 허난설헌 초의와 다 문장으로 이름나다.
교산은 벼슬은 하였으나 자유분망한 성품 때문에 자주 부침하고 좌찬성에 이르렀으나
광해군 10년(1618)역모를 꾸몄다 하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은
바로 작자 본인 교산의 분신인 듯 싶다, 라고 시비 뒷면에 적혀 있습니다."
(경포해변의 해송 : 海松 숲)

(소나무의 미소)
"솔밭을 거닐어 봅니다. 햇살이 따듯합니다.
머리에 얹쳐있는 푸른 솔잎이 빈 하늘과 함께 보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마치 소나무의 미소처럼 닥아옵니다.
높은 곳의 파란 잎을 보는 순간 소나무의 미소를 만난 것입니다.
소나무의 미소를 처음 본 것입니다.
소나무의 미소를 보며 바람의 미소도 보았습니다."
"청 풍 명 월~~경포호(鏡浦湖) 주변 나들이....................................,끝 !"
첫댓글 회장님 한참 보구 갑니다
어쩜 사진두 멋지구~
멋진 글두 잘 일겄습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