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0장: 우상숭배와 창조주 하나님
1) 이방의 풍습을 따르지 말라
예레미야 10장 1절부터 5절까지는 또 다른 죄를 지적합니다.
그것은 우상숭배입니다.
1~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집에 말씀하십니다.
“여러 나라의 길을 배우지 말라.”
이방 사람들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3절부터는 여러 나라의 풍습이 어떤 것인지 설명합니다.
숲에서 나무를 베고 장인의 손으로 그것을 다듬어 신상을 만듭니다. 은과 금으로 장식하고 못과 망치로 고정하여 흔들리지 않게 합니다.
그렇게 만든 우상은 사람처럼 말하지 못하고 걸어 다니지도 못합니다. 누군가가 들어 옮겨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두려워하고 섬깁니다.
우상은 사람에게 화를 주거나 복을 줄 수 없습니다. 생명도 없고, 스스로 움직일 능력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것을 신으로 섬깁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 들어왔지만, 주변 민족들의 풍습을 받아들여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지적하시는 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의 가치관과 풍습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면 신앙의 중심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의 모든 것을 무조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거절해야 하는지 분별해야 합니다.
2)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다
6절부터는 우상과 대조되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나타납니다.
6절에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주와 같은 이 없나이다 주는 크시니 주의 이름이 그 권능으로 말미암아 크시니이다.”
7절에는 매우 독특한 표현이 나옵니다.
“이방 사람들의 왕이시여.”
하나님은 유다와 예루살렘만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이방 민족들도 그분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주권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통치자이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의 왕이십니다.
그리고 10절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하나님께서는 참 하나님이시며, 살아 계시며, 영원히 통치하시는 왕이십니다.
세상의 우상들은 사람이 만든 것이지만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분이 아닙니다. 우상은 생명이 없지만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우상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3) 창조주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다
11절은 우상과 참 하나님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에서 망하리라.”
왜 우리는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섬깁니까?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신 분입니다. 하늘과 땅,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생명은 그분의 창조로 존재합니다.
12~13절은 창조주의 권능을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능력으로 땅을 지으시고, 지혜로 세계를 세우시며, 명철로 하늘을 펴셨습니다.
반면 14~15절에서는 우상의 무능함을 드러냅니다.
사람이 만든 신상은 생명이 없는 거짓된 것입니다. 그 안에는 생기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헛것이며, 심판의 날에 사라질 것입니다.
이처럼 예레미야 10장은 우상숭배의 죄를 지적하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참 하나님이신 이유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창조주를 버리고 피조물을 섬긴다는 것은 참으로 모순된 일입니다.
창조주께서 주신 생명을 누리면서 생명을 주지 못하는 우상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상은 반드시 나무나 돌로 만든 형상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하며 삶의 중심에 두는 것이 있다면 그것 역시 우상숭배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돈과 권력, 명예와 성공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가장 신뢰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4) 다가오는 심판과 예레미야의 고통
17절부터 22절까지는 임박한 심판을 경고합니다.
17절에서는 포위된 가운데 있는 자에게 짐 꾸러미를 챙기라고 합니다. 바벨론의 침공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1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땅에 사는 자들을 내던지시고 괴롭게 하여 깨닫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백성이 당할 심판을 보여 줍니다.
19절에서 예레미야는 이렇게 탄식합니다.
“슬프다 내 상처여 내가 중상을 당하였도다.”
예레미야는 백성의 죄와 다가오는 재앙을 보며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예언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전하는 기별 때문에 백성이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을 알았고, 그들의 완고함과 다가올 파괴를 바라보며 아파했습니다.
22절에서는 북방에서 큰 소리가 들려오며 유다 성읍들이 황폐해지고 승냥이의 거처가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바벨론의 침공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5) 사람의 길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23절부터 25절까지는 예레미야의 기도와 호소가 나옵니다.
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사람은 자기 인생을 스스로 완전히 통제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길을 계획할 수는 있지만, 모든 일을 마음대로 이루어 갈 수는 없습니다.
시편 37편 23~24절도 비슷한 진리를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예레미야는 백성이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24절에서는 자신을 징계하시되 진노로 하지 마시고 너그럽게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이 기도에는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백성을 바라보는 선지자의 안타까움이 담겨 있습니다.
25절에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민족들에게도 하나님의 분노를 부어 달라고 호소합니다. 그들이 야곱을 삼키고 그 거처를 황폐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의 기도에는 복잡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백성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백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이방 민족들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번영하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예레미야는 백성의 죄와 심판,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 사이에서 깊이 고뇌합니다.
예레미야서에는 이러한 선지자의 고통이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죄를 지적하는 말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을 선언하는 말씀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모든 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눈물과 기도도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