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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사마리아 전도의 시작과 사울의 회심
사도행전 8장–9장
1. 사울의 등장과 사도행전의 전환점
사도행전 7장 58절과 8장 1절에서 사도행전의 두 번째 주인공인 사울이 드디어 언급됩니다.
사도행전 7장 58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이 구절은 당시 청년 사울이 스데반을 핍박하는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어서 사도행전 8장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울은 그가 죽임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이 짧은 구절을 통해 우리는 사울이라는 사람의 신분과 사상, 정신과 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사도행전 7장 58절에서 사울이 등장하는 장면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심지어 사울의 등장 이전과 이후를 구분할 만큼 그의 역할을 중요하게 평가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시대와 바울 시대를 구분하면서, 바울이 예수의 가르침을 자신의 신학적 체계로 발전시켜 기독교를 형성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기독교의 창시자는 예수가 아니라 바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만큼 사울, 곧 바울이라는 인물의 역할과 영향력이 크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런 학문적 이론을 깊이 연구하려는 시간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사도행전을 읽을 때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람은 사울 자신이 아닙니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가 사도행전도 기록했습니다. 누가복음 1장 1~4절을 살펴보면, 누가는 자료를 자세히 살피고 확인하여 사건을 순서대로 기록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에서 사울이 등장하는 장면은 사울이 자신을 드러내는 기록이 아니라, 누가가 복음의 관점에서 사울을 소개하는 기록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면서 사도행전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2. 핍박을 통해 시작된 사마리아 전도
사도행전 8장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사울을 소개한 다음, 2절과 3절에서는 교회를 향한 사울의 태도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사울은 교회를 잔멸하려 했고,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겼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행전 8장 1절의 중요한 표현들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
큰 박해
사도 외에는
유대와 사마리아
흩어짐
이 단어들이 왜 중요할까요?
사도행전 1장 8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서론에서 말씀드렸듯이, 이 구절은 사도행전 전체의 내용을 지역적으로 요약해 주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는 복음이 확산되는 지역적 순서가 나타납니다.
첫째, 예루살렘과 온 유대입니다. 예루살렘은 유대 지역 안에 있었으며, 예수님의 지상 사역이 이루어진 중심 지역이었습니다.
둘째, 사마리아입니다. 사마리아는 유대인들과 역사적·종교적 갈등을 겪었던 지역으로, 유대인들이 이방화되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습니다.
셋째, 땅끝까지입니다. 복음이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 온 세상으로 확산되는 단계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도행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7장: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복음 전파
사도행전 8~12장: 유대와 사마리아를 비롯한 주변 지역으로의 복음 확산
사도행전 13장 이후: 이방 세계를 향한 선교의 본격적인 확장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사도행전 1~7장의 사건들은 주로 예루살렘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마리아 전도는 어떻게 시작될까요?
놀랍게도 그 시작은 핍박이었습니다.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약속된 메시아로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실제로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승천하신 뒤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복음을 믿는 사람들에게 핍박이 닥치기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에 핍박이 임하자 성도들은 그곳에만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고, 바로 그 흩어짐을 통해 복음이 사마리아로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8장 1절을 보겠습니다.
“그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이 말씀은 사마리아 전도가 시작되는 장면입니다.
2절에는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크게 울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어서 3절은 사울이 교회를 잔멸하며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겼다고 설명합니다.
‘잔멸하다’라는 말은 산산이 부수어 완전히 무너뜨린다는 뜻입니다. 사울은 교회를 뿌리째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없애려는 핍박이 오히려 복음 확산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8장 4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성도들은 핍박을 피해 흩어졌지만, 신앙을 포기하거나 복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핍박이 복음 전파의 새로운 기회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8장 1절은 사도들을 제외한 사람들이 흩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때 복음을 전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사도들이 아닌 일반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전도는 사도들만의 사역으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성도들과 집사들의 사역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3. 집사 빌립과 사마리아 선교
사도행전 8장 5절에는 사마리아 전도의 대표적인 인물인 빌립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빌립은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인 빌립이 아니라, 사도행전 6장에서 일곱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택된 집사 빌립입니다.
이름의 유래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빌립이라는 이름은 헬라어로 ‘필립포스’이며, 말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당시 헬라 문화권에서 사용되던 이름입니다.
사도행전의 흐름을 다시 살펴보십시오. 사도행전 6장에서 일곱 사람이 세워졌고, 7장에서는 그 가운데 스데반이 말씀을 증거하다 순교했습니다. 이제 8장에서는 또 다른 집사인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교회의 사역이 새로운 지역으로 확장되면서, 집사들의 활동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8장 5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여러분, 이제부터는 사도행전의 지역적 변화에 주목하면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1~7장은 사도들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에서 복음이 전파되는 내용입니다. 8장에서는 집사 빌립을 비롯한 성도들이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사도행전의 무대가 확 달라지는 것입니다.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전파했습니다. 무리는 빌립의 말을 듣고 그가 행하는 표적도 보면서 한마음으로 그의 말을 따랐습니다.
이어서 누가는 빌립의 전도를 통해 변화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4. 마술사 시몬과 참된 믿음
사도행전 8장 9절을 보겠습니다.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어느 공동체에나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시 사마리아 성에서는 시몬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10절은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시몬을 따르며, 그를 가리켜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했다고 기록합니다.
시몬은 마술을 통해 대중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능력을 놀라워했고, 심지어 신성한 능력처럼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빌립이 복음을 전하자 시몬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11절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의 마술에 놀랐기 때문에 그를 따랐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12절에 이르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침례를 받으니.”
사람들은 빌립이 전하는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13절은 시몬에 관해 이렇게 기록합니다.
“시몬도 믿고 침례를 받은 후에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일부 한글 번역에서는 이 구절에 ‘전심으로’라는 표현을 넣고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에는 ‘전심으로’에 해당하는 별도의 부사가 없습니다.
물론 시몬이 빌립을 따라다녔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가 어떤 마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였는지는 이후에 나타나는 행동을 통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은 시몬이 빌립을 따라다니며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랐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곧이어 그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었는지가 드러납니다.
14절을 보겠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은 사마리아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그곳으로 보냅니다.
빌립의 전도를 통해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생겼고, 사도들은 그 소식을 듣고 사마리아로 향했습니다.
15~17절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들이 내려가 사마리아 사람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했습니다. 당시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만 받았고, 아직 성령이 임하신 경험은 없었습니다. 이에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성령은 집사가 아니라 사도가 안수해야만 임하신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반드시 안수라는 절차를 거쳐야만 성령께서 임하신다고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사도행전 10장 44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여기서는 베드로가 말씀을 전하는 도중에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에서도 성령께서는 많은 사람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임재는 사도들의 안수라는 한 가지 방식에만 제한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8장에서는 그러한 일이 특별한 상황 속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몬은 사도들이 안수하여 성령이 임하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18~19절을 보겠습니다.
시몬은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돈을 가져와 말했습니다.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시몬은 무엇을 원했을까요?
그는 자신도 사도들처럼 안수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할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그 능력을 얻기 위해 돈을 주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태도를 통해 우리는 시몬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복음의 본질과 하나님의 은혜보다 능력 자체에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베드로는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20절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함께 망할지어다.”
이어서 베드로는 시몬에게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수 없으며, 그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그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앞서 시몬이 믿고 침례를 받았다는 말씀과 이후의 행동 사이에 긴장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가 침례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그의 마음이 온전히 변화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행동을 통해 믿음의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더 살펴보아야 합니다.
시몬은 빌립을 따라다녔지만, 사도들이 안수하여 성령이 임하는 모습을 보자 자신도 그러한 능력을 갖고 싶어 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시작되면서 나타날 수 있는 위험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역사하실 때, 그 능력을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거나 개인적인 목적을 이루는 데 이용하려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자신의 능력이나 소유물처럼 취급하려는 태도입니다.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은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고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사역을 통해 자신의 지위나 영향력을 높이려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교회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려 하지는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교회 생활을 하면서 시몬과 같은 모습이 떠오르는 경우를 경험했습니다.
젊었을 때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분들이 제게 기도를 부탁한 적이 있었습니다. 큰 기업의 계열사에서 일하던 분들이었는데, 제가 젊고 순수해 보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저는 어리고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 부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분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정리하고 직접 기도하시라고 말씀드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렇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다른 사람의 기도를 특별한 능력처럼 여기거나, 특정한 사람의 기도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는 태도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어떤 사람의 능력을 빌리는 수단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회개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시몬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베드로의 권면을 들은 시몬은 24절에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베드로는 시몬에게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몬은 스스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기보다 베드로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시몬이 여전히 자신에게 닥칠 결과를 피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의 관심은 자신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일보다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데 머물러 있는 듯합니다.
참된 회개는 단지 벌을 피하려는 마음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마음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5. 복음은 계속해서 전파된다
시몬의 이야기는 사도행전 8장 24절에서 마무리됩니다.
25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베드로와 요한은 사마리아에서 말씀을 증언한 뒤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복음 전파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이 떠난 뒤에도 사마리아 여러 마을에서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핍박 때문에 흩어졌던 성도들이 있었고, 빌립도 계속해서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복음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을 통해서도 일하시지만, 집사와 일반 성도들을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교회가 핍박을 받는다고 해서 복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상황을 통해 복음이 새로운 지역으로 확산되게 하실 수 있습니다.
6. 에디오피아 내시와 빌립의 만남
사도행전 8장 26절부터는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에디오피아의 고위 관리였습니다.
26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주의 사자는 빌립에게 광야 길로 가라고 지시했습니다. 빌립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빌립은 에디오피아 사람 한 명을 만납니다.
27절을 보겠습니다.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이 사람은 에디오피아 여왕의 모든 국고를 맡은 고위 관리였습니다. 오늘날의 직책으로 비유한다면 국가 재정을 책임지는 재무부 장관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수레에 앉아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국가의 재정을 책임지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길을 가면서 성경을 읽고 있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28~30절의 장면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수레에 앉아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는 빌립에게 그 수레로 가까이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은 달려가서 그가 이사야의 글을 읽는 것을 듣고 물었습니다.
“읽는 것을 깨닫느냐?”
이 질문은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한 장면입니다. 누군가 성경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면 반갑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성경의 의미를 알고 싶어 한다면 더욱 반가울 것입니다.
저도 어느 날 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녁에 집사람을 데리러 역에 갔는데, 평소에 보던 한 택시 운전기사분이 앉아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얼굴에 상처도 있고 인상도 강해 보이는 분이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그분을 알고 있었지만, 그분이 성경을 읽고 있는 모습은 조금 뜻밖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김 선생님, 성경 읽으시네요. 어디 읽으세요?”
그분은 이사야서를 읽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이사야서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책인데 어떠시냐고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성경을 좀 가르쳐 달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반가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때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저는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의 만남이 얼마나 의미 있는 장면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8장 31절에서 내시는 빌립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그는 성경을 읽고 있었지만, 그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도록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가 읽고 있던 말씀은 이사야 53장의 유명한 구절이었습니다.
32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도살자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 말씀은 고난받는 종에 관한 예언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이사야 53장의 고난받는 종의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가리킨다고 이해합니다.
그런데 에디오피아 내시는 이 말씀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34절에서 그는 빌립에게 묻습니다.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 자신이냐 타인이냐.”
그는 선지자가 자기 자신에 관해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 관해 말하는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35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빌립은 이사야 53장의 말씀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빌립은 단순히 성경의 문장이나 교훈만 설명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예언한 고난받는 종이 누구인지,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설명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7. 역사적 예수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여기서 ‘예수’라는 호칭과 ‘그리스도’라는 호칭의 의미를 구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는 역사 속에서 실제로 태어나고 살아가신 분의 이름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 곧 기름 부음 받은 구원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는 것은 역사 속에서 실제로 사셨던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이심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은 단순히 훌륭한 가르침이나 윤리적 교훈을 따르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이 땅에 오셨고, 인간의 몸을 입고 사셨으며, 사람들과 함께 걸으시고, 함께 식사하시고, 말씀을 나누셨다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원자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유교에서는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중요한 신앙적·윤리적 전통이 될 수 있고, 불교에서는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단순히 예수님의 교훈을 따르는 데 있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역사 속에 실제로 오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그분을 생명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성육신하셨고, 우리와 함께 사셨으며,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빌립은 바로 이 사실을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가르쳤습니다. 이사야 53장에서 예언한 고난받는 종이 누구인지,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설명한 것입니다.
성경을 가르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닙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을 소개하고, 사람들이 그분을 구주로 믿도록 돕는 일입니다.
8. 에디오피아 내시의 침례
빌립의 가르침을 들은 내시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36절을 보겠습니다.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내시는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듣고 침례를 받기를 원했습니다.
이 장면에서도 침례의 방식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내시는 물이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침례를 받기를 원했습니다.
38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침례를 베풀고.”
이어서 두 사람이 물에서 올라왔다고 기록합니다.
본문은 빌립과 내시가 함께 물로 내려갔다가 침례를 베푼 뒤 물에서 올라왔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침례가 물과 관련된 의식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침례교회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등에서는 이 본문을 침례의 성경적 방식이 물에 잠기는 것임을 뒷받침하는 구절로 이해합니다.
내시는 침례를 받은 후 기쁨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가셨기 때문에 내시는 빌립을 다시 보지 못했습니다.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빌립의 선교 사역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셨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시는 빌립과 헤어졌지만,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기쁨을 간직한 채 길을 떠났습니다.
9. 빌립의 선교는 계속된다
사도행전 8장 40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했고, 주의 사자의 인도하심을 받아 가사로 내려가는 길에서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났습니다. 그 후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읍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고, 마침내 가이사랴에 이르렀습니다.
빌립의 선교는 한 장소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러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8장은 교회가 핍박을 받았지만 오히려 복음이 넓게 확산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은 사마리아로 전해졌고, 한 개인의 삶에도 깊이 들어갔습니다.
사도들의 활동뿐 아니라 빌립과 같은 집사의 사역을 통해서도 복음은 계속 확장되었습니다.
이제 사도행전 9장으로 넘어가면, 사도행전의 두 번째 주인공인 사울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됩니다.
10. 사울의 회심과 다메섹 사건의 질문
사도행전 9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우리말 성경의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라는 표현은 당시 사울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줍니다. 사울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협하고 핍박하는 데 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사울의 삶을 완전히 바꾸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은 이 사건과 관련된 질문을 하나 드리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사울과 함께 가던 사람들은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들었을까요?
사도행전 9장 7절을 보겠습니다.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이 구절에 따르면 사울과 함께 가던 사람들은 소리를 들었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바울은 사도행전 22장에서 이 사건을 다시 설명합니다.
사도행전 22장 9절입니다.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여기서는 함께 있던 사람들이 빛은 보았지만, 바울에게 말씀하시는 분의 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사도행전 9장 7절에서는 함께 가던 사람들이 소리를 듣고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했는데, 사도행전 22장 9절에서는 빛을 보았지만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하는데 왜 표현이 이렇게 달라 보일까요?
사도행전 22장은 바울 자신이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그렇다면 두 기록은 서로 모순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표현의 차이 속에 우리가 이해해야 할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이 질문은 다음 시간에 살펴보겠습니다. 다음 강의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하여 사울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루겠습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7장과 8장을 통해 스데반의 순교 이후 교회에 닥친 핍박, 사마리아 전도의 시작, 집사 빌립의 선교, 에디오피아 내시의 회심, 그리고 사울의 등장까지 살펴보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러분을 다시 만나 함께 말씀을 연구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한국 시간으로 월요일 저녁, 이곳에서 말씀을 함께 나눌 수 있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제 라스베이거스에 계시는 김 원장님께 마치는 기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11. 마치는 기도
은혜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2천 년 전 초대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이 전 세계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사도들과 성도들이 어떻게 헌신했는지, 그리고 그 복음이 어떻게 우리에게까지 전해졌는지 감동적인 역사를 배우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오늘 배운 말씀을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눌 수 있도록 능력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사랑과 구원의 소식을 전함으로 많은 사람이 주님을 깨닫고 주님께 나아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사람이 함께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 안에서 구원에 이르는 은혜를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말씀을 함께 연구하고 배우는 모든 분에게 주님의 은혜를 허락하시고, 깨달은 말씀을 삶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멘.
아멘.
핵심 요약 정리
1. 사울의 등장과 사도행전의 전환점
사도행전 7장 58절과 8장 1절에서 사울이 등장한다. 그는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히 여기고 교회를 핍박했지만, 훗날 복음 전파의 중요한 인물이 된다.
2. 핍박이 복음 확산의 계기가 되다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나 성도들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3. 집사 빌립을 통한 사마리아 전도
사마리아 전도는 사도들뿐 아니라 집사 빌립과 일반 성도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사람을 사용하여 복음을 확장하신다.
4. 마술사 시몬의 사례가 주는 교훈
시몬은 침례를 받았지만, 성령의 능력을 돈으로 얻으려 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자신의 지위나 영향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참된 회개는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돌이키는 것이다.
5. 성령의 역사는 한 가지 방식에 제한되지 않는다
사도행전 8장에서는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이 임했지만, 사도행전 10장 44절에서는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이 임하셨다. 성령의 역사를 특정한 절차에만 제한해서는 안 된다.
6.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의 만남
내시는 성경을 읽고 있었지만 그 의미를 이해하도록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빌립은 이사야 53장의 고난받는 종에 관한 예언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했다.
7.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이다
기독교 신앙은 단순히 예수님의 교훈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이 땅에 오셔서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아, 우리의 구주로 믿는 것이다.
8. 침례와 복음의 기쁨
에디오피아 내시는 복음을 듣고 침례를 받은 뒤 기쁨으로 길을 떠났다. 복음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는 경험은 삶에 기쁨과 변화를 가져온다.
9. 복음 전파는 계속된다
빌립은 사마리아와 가사로 내려가는 길, 아소도와 여러 성읍에서 복음을 전했다.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 전파된다.
10. 다음 강의의 핵심 질문
사도행전 9장 7절과 22장 9절은 다메섹 사건에서 동행자들이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서로 다르게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음 시간에는 이 차이를 살펴보며 사울의 회심 사건을 더 깊이 연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