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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9편 주 제 :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찬양
(신앙의 몇 가지 관점)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영장은 찬양대 지휘자, 예배에 있어서의 음악 지휘자를 말한다)
※ 개요
시19편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찬양 (Praise of God’s Revelation)으로 다윗이 기록한 시이다. 온 회중이 하나님을 찬양할 때 부를 수 있도록 영장 곧 찬양 인도자에게 맡긴 것 같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목동이 되어 아버지의 양떼를 돌보며 자연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를 교훈한 두 가지의 책이 있다면 자연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었다. 놀랄 정도로 신성한 자연과 창세기를 비롯하여 모세가 기록한 오경은 상충된 것이 아니라 서로 하모니를 이루어 19편 같은 놀랍고 아름다운 시가 탄생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자연적인 계시는 하나님이 지으신 책으로 알고 대한다면 큰 복이 될 것이다.
자연의 책은 하늘과 땅과 바다이다. 영감 있는 성도라면 찬양과 기도로 하나님의 솜씨를 노래하여 영광을 돌릴 것이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은 하신 일을 나타낸다. 8편에서와 같이 그는 하나님의 창조를 찬양했는데 하늘을 우러러 그분을 볼 수 없지만 영광을 볼 수는 있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시8;3-4)
다윗은 율법을 통해서 가르치신 하나님의 섭리를 찬양한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고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금보다도 더 사모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구약에서는 율법을 주신 창조주로 자주 등장한다. 이 시편은 그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고 교훈을 받아 찬양하는 시편중의 대표적인 시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허물을 알고 그 죄과에서 벗어나 마음의 묵상과 입의 모든 말이 주님께 열납되기를 기도하게 하는 아름답고 영감 넘치는 시이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나타났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어떤 분은 자연을 보고도 하나님을 부인한다면 그 눈을 뺄것이다라고 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둔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1;18-23)
※ 내용 분석
1. 1-6 (창조 : 자연 계시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찬양)
2. 7-11 (율법 : 특별 계시에 나타난 언약의 하나님의 섭리를 찬양)
3. 12-14 (경외 :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정결하기를 구하는 기도)
※ 해 설
1. 1-6 (자연 계시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찬양)
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19: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19:3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19:4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19:5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19: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1) 19편은 신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첫째 자연적인 면(일반 계시)과 둘째 계시적인 면(특별 계시) 그리고 인격적인 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적인 하나님의 섭리를 눈으로 볼 수 있게 자연 만물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자연은 심판자 앞에 펼쳐진 책이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스스로 계신 유일하신 창조주이시다. 나와 신앙생활을 함께 하셨던 권사님 한분은 콩잎에 부는 바람을 보고도 하나님의 숨결을 느낀다고 고백하셨던 일이 생각난다.
2) 1-6절 이 노래는 창세기 첫 장에 대한 주석처럼 들린다. 하나님의 영광은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며, 그분의 영광을 들을 수 있다고 했는데 다윗에게 풍부한 시인의 상상력이 있었음을 알게 한다. 소리는 나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희랍인의 ”로고스“에 해당하는 ”이성“과 ”의미“란 뜻을 함축하고 있다. 다윗은 창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성“과 ”의미“를 들을 수 있었다. 하나님은 능력의 말씀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피조물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셨다. 다윗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고 했다. 모든 피조물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장엄함과 광대하심을 나태내고 있다. “날은 날”에게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이는 한 날에나 밤에 못 다한 말은 다음날 “날은 날”에게 “밤은 밤”에게 말씀을 쏟아 붓고 지식을 계시하신다.
3) “언어가 없다” “들리는 소리도 없다” 하나님의 자연적인 계시는 비록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은 하지 않지만 피조물이 전하는 메시지는 온 우주 땅 끝까지 이른다. 자연계의 운행 질서는 언어나 소리가 없어도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고 나타내신 것이다.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그 말씀에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흑암한 곳에서 은밀히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헛되이 찾으라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나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을 고하느니라“(사45;18-19)
4) 5절의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다는 표현은 신방은 첫날밤을 보내는 신혼의 방을 말한다. 해(태양)는 하늘에서 지배적인 존재다. 그런데 이시에서 다윗의 눈에는 해는 창조주 하나님을 알리는 대사와 같았다. 오래 전에 “그랜드 켄욘”에 여행을 갔었는데 경이적인 하나님의 솜씨를 보고 나는 찬송을 불렀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5) 경이로운 하나님의 섭리 앞에 모든 인간은 무릎을 꿇어야 한다. 창조의 구분으로 하나님께서는 낮과 밤을 지으셨다. 낮만 계속된다면 모든 피조물은 피곤할 것이다.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1;5)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창1;16)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시42;8)
6) 사람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는 존재다. 하나님이 주시는 온기에 피할 자는 없다. 아담의 범죄로 인간은 하나님을 떠난 존재가 되었다. 한 평생을 살아도 수고와 슬픔뿐이다.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가야한다. 육신은 죽어 땅에 묻히지만 영혼은 하나님께로 가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받아야 한다.
자연적인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알게 하지만 그렇다고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은 특별 계시를 주셨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하셨다 (요5;39)
솔로몬 왕은 많은 것을 소유하고 지혜도 특별했지만 허무하고 피곤한 인생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했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전1;5-8)
2. 7-11 (특별 계시에 나타난 언약의 하나님의 섭리를 찬양)
19: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19: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19: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19:10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19:11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1) 7-11절, 다윗은 율법을 통해서 가르치신 하나님의 섭리를 찬양한다.
1-6절에서는 자연적 계시(일반적 계시)로 창조의 섭리를 말씀했고
7-11절에서는 특별 계시에 나타난 하나님의 언약과 구원의 말씀이다.
다윗은 “율법”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 즉 구원의 말씀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철학자 “칸트”는 “우리 위에는 하늘이 우리 마음에는 도덕률이 동일한 하나님을 증거한다”고 했는데 다윗의 이 노래를 상기시키는 말이다.
2) 인간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자연 계시(일반 계시)보다는 특별 계시가 필요하다. 자연 계시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광대하심을 찬양 할 수 있어도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비밀을 여러 세대를 걸쳐서 당신의 종 “모세”나 “선지자”들을 통해서 사람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죄 사함 받고 하나님께 가는지 계시 즉 나타내 주셨다.
이제 마지막으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 주심으로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셨다.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지막 계시이다. 다른 계시를 받은 자들이 있다면 이는 이단으로 정죄 받아야 한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1;1-3) 3)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율법을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 율법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출 애급 한 후 광야에서 시내 산 언약을 맺으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갈 지침서로 주셨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율법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4) 율법은 인간의 기준이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 기준이다. 율법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며 모든 인간이 죄인임을 드러내고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으로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다. 또한 율법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여 죄 사함 받게 하는 몽학선생이다. (갈3;24) 율법의 시효는 침례 요한의 때까지다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갈3;19)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눅16;16)
5) 인간 중에서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였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는 존재다 누가 감히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다.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하는 자가 된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약2;10-11)
6) 율법을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롬3;20) 죄를 깨달은 사람은 그때부터 마음에 갈등이 일어나고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참된 회개가 마음에 일어난다. 성령의 은혜로운 역사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셔서 그 피로 내 죄가 사해 진 사실을 깨닫게 되어 구원받고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1-22)
7)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신 말씀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증거는 만남의 장소인 “시은소”로 일컫는 언약궤 즉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보면 죄인 된 우리를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은 사랑하셨고 죄인이었던 우리는 그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구원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선물이다. 오! 감사할 진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2;8-9)
8) 여호와의 “정직한 교훈”과 “순결한 계명”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영혼의 눈을 밝게 한다. 거듭난 성도라면 정직한 교훈과 순결한 계명을 가까이 하여 주님과 교제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고명한 일을 도모하여 수준 높은 도덕적이며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다.
“고명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나니 그는 항상 고명한 일에 서리라“ (사32;8)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잠16;6)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다고 했는데 경외란 두려움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징벌을 받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고 하나님을 지극한 마음으로 섬기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욥은 많은 시련과 고난을 당했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언제나 변함이 없었고 마음 중심을 잃지 않고 똑바로 나갔다 이것을 가리켜 그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마음이 온전하다고 했다.
잠언에서는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함이라고 했다. 사람이 일평생 얻는 것이 있다면 그 것이 새로워야 하고 영원해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 이 생명을 얻었을 때 거듭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10)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삼아서 가르침을 받았고 나또한 그렇게 가르쳤는데 이 말씀에서 생명을 얻고 난이후로는 성경은 나에게 생명의 말씀이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다 암송하고 싶을 정도로 금보다도 더 귀한 말씀이었다. 성경을 열어 생명의 말씀을 전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듣고 깨달아 구원 얻는 것을 보고 나는 말씀의 권위와 말씀을 통한 성령의 역사에 놀랐고 감사했다. 그 후로는 성경은 나에게 꿀 송이 같은 말씀이었다.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 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잠24;13)
“너는 꿀을 만나거든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식하므로 토할까 두려우니라“ (잠25;16)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 (잠27;7)
3. 12-14 (경외 :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정결하기를 구하는 기도)
19: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19:13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19: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1) 12-14절에서 다윗은 자연과 율법 (말씀)의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사죄의 은총을 입은 자로써 이제 높은 도덕적인 수준의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을 알고 하나님께 간구한다.
인간은 간사스러워서 죄를 짓고도 뻔뻔하다 다윗도 마찬 가지였다. 우리아의 아내였던 밧세바를 범한 죄를 숨기려다가 살인죄까지 범했던 다윗은 나단 선지자으 책망을 듣고 자신이 얼마나 사악한 죄인인가를 눈물로 참회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시51;1-4)
2) 다윗이 정직하게 고백했을 때 그는 허물의 사함을 얻었고 평생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자로 살았다. 거듭난 성도 역시 얼마든지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성령께서 즉시 그 죄를 깨닫게 하신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 죄를 자백하면 용서를 받는다.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성도가 죄를 짓는 것은 두 가지이다 “부지중에 짓는 죄” (숨은 허물)와 고의적으로 짓는 죄(고범죄)이다.
3) “숨은 허물”은 그 죄 지은 것을 깨달을 때 즉시 주님이 흘리신 피로 용서를 받고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하지만 “고범죄”는 악질적인 죄다. 반드시 징계를 받는다. 고범죄를 지었는데도 징계가 없다면 처음부터 구원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이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요일1;8-10)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 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이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히12;6-8)
4) 다윗은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해 주실 것과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해 달라고 간구했다. 정직하여 죄과에서 벗어나서 살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사랑의 품에 거하고 싶어서였다. 당신이 참으로 구원받은 거룩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숨은 허물”과 “고범죄”을 범하지 말고 주님과 동행하는 아름답고 거룩한 헌신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5) 14절,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바위” “나의 구원자”로 부르면서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께 흡족하게 되기를 소원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한 마음의 소원이 있어야 한다.
입의 말 한마디는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만이 주님의 친구가 될 수 있다. 자연과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은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거룩하고 복된 우리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시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잠18;20-21)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잠2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