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스위스 한 달 살기 끝이 보인다.
취리히 공항을 나선 후, 다시 되돌아 온 취리히에서 한 달을 마무리한다.
여행 도중 흐르는 시간은 굉음을 내며 쏟아지는 폭포수같다.
누군가는 여행의 끝자락이 보일 때면 집이 그립다는데 그리움은 커녕 가기 싫다는 아쉬움만 잔뜩이다.
아무래도 역마살 기질이 다분한 것인지..
취리히 시내를 돌며 여유자적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우선, 벼룩 시장
집 안에 꽁꽁 묵혀 둔 골동품을 꺼내온 이들도 보이고, 아껴 둔 귀중품을 손질해 온 정성스런 손길들도 보이고, 싸구려 시장에서 사왔을 법한 후즐그레한 옷가지들도 보이고, 잡동사니 같은 장난감, 악세서리, 갖가지 모양의 그릇들....
오만 가지 물건들이 광장을 꽉 채우고 있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인터라켄에서 겨우 2프랑에 샀던 머플러가 제일 득템 항목이다.
취리히 호수로 건너 가 백조들을 만난다.
사람들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져 고개 쭉 내밀며 정신없이 달려드는 모습이 씁쓸하다.
제 스스로 먹이를 찾는 고니는 의연하고 멋있어 보이지만 호숫가로 모여 드는 고니는 왠지 측은해 보인다.
그렇지만 어쩌랴
힘들게 고생하며 얻는 먹이보다 가까이에 있는 먹이가 더 편하고 달콤하다 느낄 건 뻔한 일.
오동통 살진 모습들이 그다지 반갑질 않다.
취리히 시내 이곳 저곳을 다닌다.
길거리 벽화에서 사진도 찍고
골목 길 거닐다 멋스런 가게 앞에서 포즈도 잡고
날리는 비눗방울 잡기도 하고.
갤러리가 보여 불쑥 들어 간다.
흔쾌히 작품 감상을 허락하는 쥔장
작품 수준이 장난 아니다.
눈이 휘둥그레해지는 가격의 작품들.
아이디어가 무척이나 창의적이다.
사진을 찍어도 된다니 그저 한 컷 찍는 것으로 만족한다.
고풍스런 건물 중정에 마련된 평점좋은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으흠~ 맛좋은 카페라떼
한가로운 시간들이 흐른다.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즐기기로 한다.
한국에선 그닥 풍성한 식단이라 할 수 없지만 예사롭지 않은 가격을 톡톡히 치뤄야 하는 성찬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준비해 온 양념들로 워낙 배불리 먹어서인지 사악한 가성비의 식단이 썩 만족스럽진 않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이 넓은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틈새가 생기고 아주 사소한 것들이 툭하고 걸리곤 한다.
여행하는 자세의 차이, 주변을 느끼는 시선의 차이, 대화하는 방법의 차이, 사물에 대한 사고의 차이
그야말로 사소한 먹을 거리의 차이, 요리 방법의 차이, 뒷정리의 차이 등 등
다름의 인정은 살아감의 기본이지만 부대끼며 스물 네시간을 살아야 할 사람에겐 커다란 숙제가 된다.
결국 함께하려면 아주 사소한 작은 것들의 차이도 받아들이고 삭여내야 할 마음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스위스 한 달 살이
명퇴 후 갖는 두 번째 버킷이었고
예순의 나이를 맞이하는 남편과 그의 친구 두 사람의 인생 쉼표 찍기였다.
네 사람의 불가능할 것 같은 시간들이 맞춰지고 과감히 진행 된 스위스 한 달 살기
간혹 불퉁거린 순간들이 있었지만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설레임과 즐거움을 챙길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쉽지 않았던 한 달을 현명하게 엮어낸 고마운 사람들
스위스의 한 달은 아름다운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되리라.
첫댓글 산과 호수 자연을 즐기다가 옹기종기 사람 사는 세상으로 돌아오니 생기가 드는 느낌이네요.
작가와 예순의 남편 그리고 그의 친구 모두 이 겨울 따뜻한 나날이 되시기를 바래요.
제 글에 어김없이 댓글을 달아주시는 고마운 다니님!!
많이 많이 감사했고 힘이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소소한 이야기들로 찾아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