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 쇄빙선 / 김완수
나는 극지 끝에 있었다
꽁꽁 언 바다는 어둠의 영토
한가로이 노니는 열대어는 되기 싫어
유비처럼 떠도는 이름도 되기 싫어
동향 같은 얼음장을 깨뜨려 왔다
나는 실존으로 가는 쇄빙선
새들의 젖은 소리는 암초로 여기며
혁명가의 목소리같이 한밤을 헤쳐 왔다
어제의 바다는 어둠의 유허
부표도 등대도 없는 항해지만
바람따라 돛을 올리지 않았다
볕 드는 데 닻을 내리지도 않았다
어둠이 한구석으로 쓸리는 백야에
쉬어가는 뭍머리를 찾지 않았고
기척처럼 불이 켜지는 오로라에도
집으로 뱃머리를 돌리지 않았다
나는 얼음보다 단단한 결정이기에
스스로 녹아내리는 살얼음이 마뜩지 않다
해빙을 꿈꾸는 것이 머리의 일이라면
숫눈길 같은 얼음판에 길을 내는 것은 가슴의 일
눈보라가 흰곰들의 울음같이 쏟아질 땐
너머의 바다를 푸른 신대륙이라 하자
나는 지금 고독의 알을 깨고 있다
불면의 파도가 껍데기를 쪼아 주는 북극해에서
[출처] 제13회 정읍사문학상 / 조영진, 김완수|작성자 ksujin1977
첫댓글 김완수 선생님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