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의 저주
이용기 / 식품자원경제학과
1776년 아담 스미스(A. Smith)가 불후의 명저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경제학사에는 커다란 획이 하나 그어졌다. 경제학이라는 독립 학문이 존재하지도 않던 당시 그는 세상의 경제질서가 어떻게 움직여 나가는지에 대한 이론체계를 정립해 방대한 책을 통해 설명했다. 이를 계기로 고전학파 경제학이 출현하게 되고, 그는 일약 경제학의 아버지 반열에 올라섰다. 국부론이 발표되던 해는 마침 제임스 와트의 개량된 증기기관이 나오고 영국을 중심으로 산업혁명이 꽃을 피우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그는 우리가 저녁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제빵업자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의 돈을 벌겠다는 개인적 이기심 때문이라고 설파했다. 그리고 각자 이기적 동기에 따라 자유로이 경제행위를 하면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의 작용에 의해 자동으로 공익에도 기여하게 된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그 마법의 손은 곧 시장(가격) 메커니즘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어떤 조정자의 역할이 없어도 시장기구에 의해 자동으로 경제질서가 조화를 이루고 공익 증진에도 기여한다는 것이다. 시장에 내재된 자율적 조절기능에 맡겨놓기만 하면 사익과 공익이 저절로 달성되므로, 그 마법의 손이 잘 작동하려면 정부는 최대한 시장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그는 자유방임주의와 작은 정부를 옹호하고 야경국가론을 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것, 매일 저녁 편안히 원하는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그 마법의 손이 잘 작동했기 때문이다. 만일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그리고 제빵업자들이 개인적 욕심은 없이 자비심이 넘치는 행동으로 일관했다면 쌓여가는 적자로 가게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자신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거른 채 잠자리에 들어야 했을 것이다.
물론 스미스가 말하고자 했던 요지는 이기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전제될 때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자동으로 개인의 이익이 극대화되는 것은 물론 경제적 자원이 최적으로 배분되면서 국가의 부도 증가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가 작동하는 기본원리이다. 오늘날 우리가 전례 없는 풍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도 250년 전 개구리 상의 못생긴 얼굴을 갖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한 천재의 세상을 보는 통찰력 덕분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생기는 것이 세상의 법칙.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각자 이기주의적 행동을 하면 보이지 않는 마법의 손에 의해 자동으로 개인과 사회가 다 풍요롭게 된다고 하니 … . 자신의 이익 추구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무한 경쟁 속에서 이기주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자연히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인류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준 그 마법의 손은 절제되지 않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으로 각종 경제·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 빈부 격차의 심화, 각종 공해 문제와 자원고갈, 자연·환경·생태계의 파괴, 온실가스 과다 배출로 인한 기후위기, … . 부를 늘리고 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외부효과(external effects)로 나타나는 문제들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제대로 작동할수록 경제는 성장하고 국가는 부유해지지만, 동시에 이 같은 보이지 않는 손의 저주도 함께 커진다. 공익에 기여한다는 스미스의 생각과 달리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손실이 생기는 것이다. 경제학은 이런 현상을 시장의 실패(market failure)라고 부른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과정에서 외부효과로 인해 사회적으로 최적의 자원배분 상태에 이르지 못하여 온전한 공익 증진에 실패한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세상이 이기주의적 물질 만능 사회로 변해 가면서 온갖 사회 문제들이 파생돼 나온다. 사람의 생명을 가벼이 여겨 강력 범죄가 증가하고, 가난과 고독으로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인성은 메말라가고 미풍양속으로 여겨졌던 전통적 가족관계마저 퇴색해가는 각자도생의 극단적 개인주의, 이기주의 사회가 돼가고 있다. 도덕과 윤리의식은 약해지고 돈의 가치가 최고인 천박한 세상이 돼가는 것이다.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은 꿈과 야망은 없이 돈 버는 데 급급한 작은 난쟁이들이 돼가고 있다. 슬픈 현실이다. 사람의 생명과 질병을 다루기에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하는 의사들. 우리 사회의 고소득 계층인 그들도 밥그릇이 작아질 듯하니 인간의 가장 취약한 고리를 무기 삼아 환자 내팽개치고 무작정 드러눕는 그런 비뚤어진 집단 이기주의 세상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청년들이 적성이나 소질, 미래에 대한 꿈은 저버리고 연봉 따라 학과 선택하고 직장 찾아다니는 것을 나무랄 수도 없다. 학문의 전당이라고 하는 대학에서도 돈 잘 버는 실용 학문에 치여 정작 인간다운 삶에 중요한 인문학은 설 자리를 점차 잃어가고 있다. 세상의 작동원리는 기본적으로 제로섬 게임이다. 내가 많이 가져가면 타인의 몫은 줄어드는 법이고, 추운 밤 내가 따뜻하게 잠들 수 있는 건 그 시간 누군가 최전방 철책선을 지키고 길거리 순찰로 밤을 지새우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스미스가 지은 원죄(?)가 있다. (이 주장은 논리적 비약일 수 있다.) 오직 자신의 이기적 동기에 따라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자동으로 개인도 사회도 최선의 상태에 도달한다고 주장한 스미스의 원죄이다. 그러니 모두가 개인의 이익, 물질적 풍요와 성장을 위해 무한 질주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아무리 물질적 풍요를 준다 해도 그로 인해 초래되는 사회적 비용과 손실이 이렇다면 그 마법의 손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이다. 보이지 않는 손의 자본주의 시장원리는 오늘날 물질숭배 문화의 원조가 된 것이다.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따끔하게 죽비를 들어주는 어른이 없어진 시대, 잘못 얘기했다가는 꼰대로 비난받고 왕따 당하는 시대이다. 풍요의 시대에 겪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다. 더 풍요해진 건 틀림없지만 더 행복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간의 절제되지 않는 끝없는 욕망과 이기심은 부메랑이 되어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고 부유해진들 자연과 환경, 생태계가 파괴되고, 온실가스의 증가로 기후위기가 닥치고, 빈부격차가 심화하여 각종 사회문제가 증가한다면 우리는 과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물질적 풍요만으로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
더 좋은 인간 세상,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골고루 함께 잘 사는 사회, 나만의 이익이 아니라 나누고 배려하는 사회, 자연·환경·생태 친화적으로 성장하는 사회,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재앙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 . 그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정부의 강한 손이 보여야 가능한 일이다. 개인의 이기심이 국가의 부를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했던 스미스 본인은 박애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국부론 이전에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을 저술하고 인간의 도덕적 행위 문제를 탐구한 철학자이기도 했다. 스미스의 야경국가론은 고전학파와 대척점에 섰던 또 다른 영국의 위대한 경제학자 케인즈(J. M. Keynes)의 등장으로 1929년 세계 대공황이 계기가 되어 자취를 감추었다. 그로부터 근 백 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훨씬 더 복잡해지고 각종 경제·사회 문제들도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 유엔이 지향하고 있듯이 경제적 번영, 사회적 통합, 환경의 지속가능성이 총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지속 가능한 발전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 세상을 위해 미래에는 큰 정부의 보이는 손이 필요한 것이다.
첫댓글 교수님, 고맙습니다. 옥고로 평소 '세상이 답답해'라고 하며 '입으로 뇌는 고민거리'로 만들었던 일들을 크게 묶어서 한마디로 요약하시고 짧은 글로 해결책까지 제시해 주시네요. 『늘푸른나무』에 교수들의 큰 고민을 드러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아담 스미스를 다시 만납니다. '250년 전 개구리 상의 못생긴 얼굴을 갖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한 천재의 세상을 보는 통찰력'은 그동안의 진행되어온 경험적 현상들을 증명과정으로 견주면서 근사한 이야기를 많이 하겠구나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