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에 아우가 충남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입학하였다. 이는 우리 집안의
큰 경사였다.
당시로서는 시골에서 대학생이 배출된다는 것 자체가 동네의 뉴스 거리였다.
더구나, 우리 동네는 시골 부락 중에서도 불과 4, 50호의 작은 마을이었으니
소문이 바로 퍼져 나갔다.
대학등록금을 준비해서 등록을 마치고 나니 내 마음도 가벼웠다.
당시에 등록금 전체 금액이 4만 5천여원 정도로 기억된다. 요즘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 하겠다.
등록을 마치고 고향 집으로 와서 아버님께 결과를 말씀드렸다. 아버님께서는
아우의 등록 관련 영수증과 기타 증빙 서류들을 살펴 보시고는, 이내 가벼운
한숨을 지으신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여쭈어 보았다.
'아니 좋은 날에 왜 한숨을 지으세요?'
나의 물음에 아버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막내가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니, 난들
어찌 기쁘지 않겠느냐' 하시더니 이어서 말씀을 하신다.
'공부 좋아하고 공부를 잘 하던 네가 공부를 해야 할텐데....' 라고 하시며 말끝을
흐리신다. 비로소 아버님의 의중을 짐작한 나는 밝은 표정으로 말씀을 드렸다.
"아버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좀 늦기는 했지만 제가 알아서 대학과정 공부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우는 때를 놓치지 않고 대학에서 공부하게 해야 합니다.
제 염려는 하지 마십시요" 라면서 진지하게 말씀을 드렸다.
내 걱정을 하시는 아버님을 위로해 드리고, 또한 나 자신에게 스스로 다짐하는
자리였다. 이 일이 있은 후, 5년 후에 아버님께서 별세하셨다.
아버님께서 별세하시기 전에, 나는 한국방송통신대학 전문과정에서 행정학과를
1976년 2월 말에 졸업하였다. 내가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아버님께서 조금은 지켜
보신 셈이다.
그 후에 나는 한국방송통신대학 행정학과 학사과정을 마치고, 1992년 8월 22일에
충북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오랜 향학의 뜻을 품고서
지내 온 것이 그리 만만한 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버님께 드린 약속을 지킨 셈
이라고 생각한다.
아버님께 좋은 아들은 못되었지만, 나의 자그만 성취를 아버님께서 얼마나 반가워
하실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한 말씀을 해 주실 것이다. "그래, 애썼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