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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장
제 9 장 사울
(대 지)
一. 사울이 교회를 핍박함(1-2)
二. 하나님이 사울을 특별히 부르심(3-19)
三. 사울이 즉시로 복음을 전함(20-31)
四. 베드로의 전도(32-43)
(본문 강해)
一. 사울이 교회를 핍박함(1-2)
. 9:1-2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죽일 때에 사울이 증인들의 옷을 지켜 죽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했다. 사울은 이방 도시 다메섹에까지 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결박하여 잡아오려고 하였다. 대제사장은 산헤드린 공회의 회장이었다. 이 산헤드린 공회는 사람을 죽이는 권리는 없었으나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사람을 체포하거나 감금할 권리가 있었다.
二. 하나님이 사울을 특별히 부르심(3-19)
. 9: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사울이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정오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햇빛보다 밝은 빛이 비치었다. 너무 강한 빛이 갑자기 비치는 바람에 사울이 땅에 엎드러졌다. 그런데 하늘에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하는 말씀이 들려왔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울을 특별히 사랑하여 부른 것이다. 하늘로부터 오는 빛이 육신의 눈에 보였고 하늘로부터 주의 음성이 육신의 귀에 들리게 사울을 굴복시켰다. 사울이 마귀의 종이 되어 교회를 핍박하며 주의 제자들을 결박하려고 악한 길을 걸어가므로 하나님이 갑자기 빛을 비추어 사울을 거꾸러지게 만들었다. 하나님은 빛이시며 성도들을 영의 빛으로 인도해 주신다.
요일1:5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언제나 빛으로 역사하시고 마귀는 언제나 어두움의 권세를 가지고 미혹한다. 사울이 흑암 속에 빠져 마귀의 종노릇을 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이 큰 빛을 비추어서 마귀와 흑암의 권세에서 사울을 건져내신 것이다. 사울에게는 육신의 눈으로도 볼 수 있도록 빛을 비추어 주셨다. 사도행전22:9에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고 하였다.
. 9:4-7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마귀의 종이 된 사울을 하나님이 "사울아 사울아"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의 이름을 다 아시고 불러 주신다.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실 때에도 그 이름을 다 아셨다. 주님이 부활한 다음에 마리아를 향하여 "마리아야"하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주셨다. 주님은 지금도 예수 믿는 사람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시고 불러 주신다. 빌립보4:3에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고 하였다. 택한 백성은 어린 아이 하나까지라도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해 놓고 그 이름을 불러 주신다. 요한10:3에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고 하였다. 예수님이 우리 이름을 불러서 하나님을 믿도록 인도해 주시고 여러 가지 시험 속에서도 우리 이름을 불러 건져내시고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주신다. 그뿐만 아니라 주님은 우리 이름을 손바닥에 새기고 늘 들여다보고 있다고 했다(사49:15-16참조).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참으로 감사하다.
식사 때가 되어 자녀들이 자리에 없으면 그의 부모가 자녀들의 이름을 불러 찾는다. 자녀 중에 약하고 어리석고 변변치 못한 자녀에게는 더욱 마음을 쓰고 불러서 밥을 먹인다. 하나님께서도 모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마음에 두시고 불러 주시되 부족한 사람을 더욱 기억해 주시고 불러 주신다. 예수님께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병난 자의 위로와 약한 자의 강함이 되어 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의 처지와 형편을 다 아시고 불러내어 인도해 주신다.
사울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나 마귀의 종이 되어 교회를 핍박하므로 주님이 큰 긍휼을 베풀어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고 불러 주셨다. 사울에게는 특별히 육신의 눈으로 빛을 볼 수 있게 역사했으나 오늘날에는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빛을 나타내거나 육신의 귀에 들리게 불러 주시지 않는다. 지금은 영의 귀(靈耳)에 성령의 감동과 진리로 우리를 불러 인도해 주신다. 사울이 "주여 뉘시오니까" 할 때에 예수님이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하였다. 사울은 예수님이 죽어 없어진 줄 알았으나 그 예수님이 하늘에서 나타나 빛을 비추면서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할 때에 심히 놀랐을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부활하여 살아 계시고, 또 자기 이름을 기억해 주시고 불러 주시는 분인 것을 깨달았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사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였으나 예수님은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고 하셨다. 예수님은 믿는 사람을 자기의 몸으로 여기시기 때문이다. 성도가 핍박을 받으면 예수님은 자신이 핍박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시고 성도가 고통을 당하면 예수님 자신이 고통을 당하시는 것으로 아신다. 성도가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면 예수님은 당신이 친히 고난 당하는 것으로 인정하시고 그 고난을 대신 감당해 주신다(마25:35-40 참조). 그러므로 성도가 주를 위해 고난 당할 때에는 그다지 힘든 줄을 모르게 된다. 그러나 성도가 자기 죄 값으로 고난 당할 때에는 예수님이 도와주시지 않기 때문에 대단히 힘이 든다.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고난 당할 때에는 주님의 위로가 와서 마음이 시원하고, 매를 맞아도 감당할 수 있도록 해주고, 굶어도 기쁘게 해 주신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다가 풀무불 가운데 들어갔을 때에 주님이 찾아 와서 모든 것을 다 감당하게 해 주셨으므로 풀무불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고 머리털 하나 그슬리지 않게 된 것이다.
. 9:8-9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사울이 그리스도를 반대하였기 때문에 눈이 어두워졌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갔다. 사울의 영안이 어두워져서 마귀의 종노릇했던 것을 주님이 깨닫게 하려고 육신의 눈을 어둡게 한 것이다. 사울이 다메섹에 들어가 삼일간 금식 기도하며 자기가 예수님과 교회를 핍박한 죄를 철저히 회개하였다. 그 때에 아나니아가 와서 사울에게 안수를 하니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눈이 밝아졌다. 그러나 사울의 눈이 완전히 밝아진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영향이 어느 정도 남아 있어서 늘 눈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갈6:11, 4:15, 롬16:22 참조). 그러므로 그것이 바울에게 가시가 되었고 바울은 그것을 사탄의 사자라고 했다(고후12:7 참조). 사탄의 사자라고 한 것은 사울이 마귀의 종노릇하다가 얻은 눈병이기 때문이다.
. 9:10-12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이제는 하나님이 사울에게 앞길을 열어 주시려고 아나니아를 보내셨다. 주님이 아나니아에게 환상 중에 나타나 직가라 하는 거리에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고 지시하셨다. 이 아나니아는 사도행전 5장에 나온 아나니아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며 믿음이 독실한 성도였다.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성도를 다 붙잡아 예루살렘으로 끌고 가기 위해 온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아나니아는 그 말을 듣고도 다메섹을 떠나지 아니하고 열심히 기도하였다. 아나니아도 사울에 대한 소식을 다 듣고 있었지만 스데반과 같은 순교의 정신으로 다메섹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에 하나님이 사울에게 보낼 만한 종을 찾다가 환난을 각오하고 충성되이 기도하는 아나니아를 불러서 쓰셨다. 아나니아에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사울이 기도하는 중에 아나니아가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셨다. 아나니아가 할 일을 주님이 보여 주신 것이다.
. 9:13-14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아나니아는 사울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아나니아가 주님께 대답하기를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성도에게 많은 해를 끼쳤고 여기서도 성도들을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에게 받았다고 하였다.
. 9:15-16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사울을 찾아가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사울이 성도를 핍박하고, 잡아죽이는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은 그 사울을 불러 회개시켜 이방인과 임금과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택하셨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이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람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 사람은 다 거짓되되 하나님은 참되시고 떨기나무와 같은 자를 불러 쓰시고 아론의 마른 지팡이에서 싹이 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교회를 핍박하는 사울을 불러 교회를 위하여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게 하셨다.
. 9:17-19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쌔
아나니아가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사울을 찾아가 안수하며 주께서 자기를 보낸 것을 말할 때에 성령이 충만해지고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다. 사울이 성도를 핍박하고 복음을 반대하다가 눈이 어두워졌으나 주님 앞에 회개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종의 인도를 받으므로 눈이 밝아졌다. 누구나 복음을 반대하면 눈이 어두워지게 되고 회개하여 순종하면 눈이 밝아진다. 사울이 음식을 먹고 건강이 회복된 후에 수일간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사귀었다.
三. 사울이 즉시로 복음을 전함(20-31)
. 9:20-22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사울이 회개한 후 즉시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다메섹 각 회당에서 전파하였다. 사울이 예수님을 직접 보았고 음성을 들었고, 그것을 나가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므로 즉시로 나가 순종한 것이다(행26:16-18 참조).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것은 나가서 증인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다메섹에 있는 성도들은 사울이 과거에 성도를 심히 핍박하였고 이번에 다메섹에 온 것도 성도를 붙잡아 예루살렘으로 끌고 가려던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사울이 복음 전파하는 일을 놀라며 이상히 여겼다.
힘을 더 얻어 갈라디아1:16-18에 바울이 회개한 후에 즉시로 아라비아 (3년)로 갔다가 다메섹으로 다시 돌아갔다고 하였다. 바울이 아라비아로 갔던 것을 21절과 22절 사이로 보고 여기 힘을 얻었다는 것은 아라비아에 가서 삼 년간 기도하여 얻은 영력과 진리에 대한 힘으로 본다. 기도하지 않고는 영력을 얻을 수 없다. 그 힘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전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켰다.
. 9:23-25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니라
여러 날이 지나매 이 기간을 바울이 아라비아에 갔던 삼 년간이라고 하는 설도 있으나 확실치 않고 아라비아에 갔던 기간을 21절과 22절 사이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22절 해석 참조). 사울이 비상한 영력과 구약 성경 말씀을 가지고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므로 모든 사람들이 굴복을 당하게 되자 반대파들은 복음이 더 이상 퍼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사울을 죽이려는 계교를 꾸몄다. 이 핍박은 그 지방을 다스리는 아레다왕의 방백과 유대인들이 합세해서 일어난 것이다. 언제나 타락된 종교 지도자들의 교권과 정권이 합세하여 참된 성도를 핍박하곤 하는 것이다. 그 때 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성문까지 지킴으로 사울이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에서 달아 내려 피하게 된 것이다(고후11:32-33 참조). 사울이 이렇게 도망친 것은 생명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다른 곳에 가서 전도를 하기 위한 것이다.
. 9:26-27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예수의 제자를 사귀고자 하였으나 사도들이 그의 제자됨을 믿지 않았다. 사도들은 사울이 처음에 교회를 핍박한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가 다메섹에서 예수님의 책망을 받고 거꾸러졌다는 소문을 들었으나 그 후 삼 년간(아라비아 갔던 기간) 나타나지 않다가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에 바울이 예수님의 제자됨을 믿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인정을 안하고 제자들이 자기를 오해해도 사울은 그것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무도 사울이 제자됨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나중에는 바나바와 같이 인정해 주는 사람이 생겼다. 바나바가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사울이 길에서 어떻게 예수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한 것과 다메섹에서 담대히 주님을 증거한 것을 말해 주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신앙으로 사울을 이해해 준 사람이다. 그리하여 사울을 사도들에게 잘 소개하고 이해시켜 주었다. 쌍방이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받아 주지 않을 때에 바나바와 같이 양편의 참 신앙과 본의를 알아서 화합시켜 주는 사람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예비해 주셔야 되는 것이다.
. 9:28-29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있으면서 더욱 힘써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 그 때에 헬라파 유대인들이 나와서 사울과 변론하였다. 헬라파는 언제나 변론을 좋아하였다. 그들이 변론하다가 자기들이 이기지 못하게 되자 사울을 죽이려고 하였다. 이렇게 주를 위해 적극적으로 일을 하면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러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보호해 주신다.
. 9:30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헬라파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는 것을 형제들이 알고 사울을 가이사랴로 데리고 가서 사울의 고향 다소로 보내었다. 사울이 거기에서 얼마동안 머물면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하였을 것이다.
.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하나님께서 마귀의 세력을 꺾었으므로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들이 평안하고 더욱 든든히 서서 주를 경외함이 더하므로 성령의 위로가 날마다 더하고 교회가 부흥되어 나갔다. 복음을 반대하고 마귀 노릇하던 사람이 돌아서서 전도하게 되면 더욱더 힘있게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든든하게 서 가고 점점 부흥이 된다.
四. 베도로의 전도(32-43)
. 9:32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만 전도한 것이 아니고 사방으로 두루 다니면서 전도한 것이다. 우리도 베드로와 같이 사방으로 다니면서 열심으로 복음을 전해야 하겠다. 룻다 팔레스틴 중앙 고지에 있는 촌이며 욥바 동방 17km 지점에 있다고 한다.
. 9:33-34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가 중풍병으로 상 위에 누운지 팔 년이라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베드로가 룻다에 내려가서 애니아라는 사람이 중풍병으로 팔 년 동안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고 하였다. 그 때에 그가 곧 나아서 일어났다. 이것은 베드로가 병 고치는 것을 원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심령의 병을 고치는 것이 원 목적이었다. 베드로가 사방으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여 심령의 병을 고쳐 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육신의 중풍병을 표적으로 낫게 해 주셨다.
. 9: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
룻다와 사론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병 고치는 이적을 보고 주께로 돌아왔다. 표면적 이적을 보고 주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이적을 보고 따라온 자들과 같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6:26)고 말씀하시고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6:53)고 하실 때 그들이 거의 다 물러갔다(요6:66 참조). 영생의 말씀을 받아 생명으로 삼고 중생한 영혼에 착근(着根)한 신앙이어야 참된 신앙이요 영원히 물러가지 않는다. 사론 팔레스틴 서해안에 가깝고 욥바에서 북으로 넓게 퍼진 비옥한 평원이다.
. 9: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는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하고 믿음이 독실한 신자이었다. 그 여성도의 선행과 구제하는 일은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성도들이 그 신앙을 알아주고 존귀히 여겼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향기요, 신앙의 열매였다. 도르가 다비다는 히브리명이며, 도르가는 헬라명이다.
. 9:37-38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다비다가 병들어 죽으매 제자들이 시체를 씻어 다락 위에 뉘어 놓고 룻다에 두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에게 지체 말고 오도록 간청하였다. 제자들이 베드로를 청한 것은 다시 살리는 이적을 위함이 아니고 중대한 일이 생겼으므로 의논하고 지시를 받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 9:39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베드로가 욥바에 가서 보니 과부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과부들이 울면서 도르가가 살았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내어다가 보여주었다. 그 옷은 도르가가 다른 사람을 구제하려고 지었던 옷이다. 그 과부들은 도르가가 구제하는 일을 도와주던 신앙의 동지이었던 것 같다. 그들이 베드로에게 그 옷을 보이면서 그의 선행을 생각하고 그의 하던 일을 위하여 슬퍼하였다. 성도가 세상을 떠나면 믿는 일 한 것만 남는다. 도르가가 믿는 일 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존경하고 아까워하는 것이다. 세상도 가고 정욕도 가고 돈도 다 없어지지만 그 사람이 믿는 일 한 것과 선한 일 한 것은 영원히 남아 있게 되고 천국에서 큰 상을 받게 된다.
. 9:40-41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베드로가 고요하고 은밀한 기도를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다 내어 보냈다. 베드로가 그 시체 옆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시체를 향하여 다비다야 일어나라 할 때에 다비다가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 앉았다.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이러한 기도를 시켰고 또 성령께서 도르가를 살리도록 역사할 때에 베드로가 순종하여 이렇게 힘있는 기도를 한 것이다. 도르가가 일어나 앉으매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웠다. 이것은 베드로의 산 믿음의 역사요, 도르가의 생명이 산 증거였다. 베드로가 과부들을 불러 들여 도르가의 산 것을 보여 주었다.
. 9: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다비다가 죽었다가 살아난 소문이 그 지방에 퍼지니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 베드로가 전도해서 영혼이 죽은 사람들을 살려내는 표징으로서 죽은 다비다를 살리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 베드로가 죽은 사람마다 다 살린 것이 아니다. 영혼이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역사가 베드로에게 있는 것을 보여 주느라고 하나님께서 죽은 다비다를 살려낸 것이다.
. 9:43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피장의 집에서 유하니라
피장시몬은 성도로서 베드로를 자기 집에 여러날 모셨다. 피장은 가죽공인데 유대인들이 천하고 더럽게 여기는 직업이다. 베드로는 믿음으로 고하귀천을 구별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인종과 민족의 구별이 있을 수 없고 유무식, 빈부귀천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