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흐름 /초고
증조부님께서는 3형제분을 두셨으며 조부님께서 맏이셨다. 증조부모님의 기제사를 조부님 이후로 종형님께서 맡아서 하시었다. 백부님께서 조부님 생전 일제강점기 시대 때 징용으로 행방불명되시어 호적상 제적이 된 상태이시다. 3년 전 종형님께서 종질과 같이 생활하기 위하여 대전으로 이사를 하였고 이사하기 전에 증조부모님 기제일 모시는 것을 그만두자고 하신다. 우리 삼 형제도 동의를 하여 그 후로는 모시지 않는다. 종형님의 연세가 여든이 다되어 가시고 기력도 많이 쇠약하시어 혹 4대 봉사 우려를 하신 것 같다.
당 숙부님 형제분으로 부산에 세분 서울에 한분 4분이 계시었다. 종형님께서 증조부모님 기제사 모신 기간이 45년 이상이 된다. 큰 당 숙부님께서 30년 전에는 한두 번 참석하였지만 연로하고 몸이 불편하여 참석이 어려우시고 셋째 당 숙부님도 생전에 두세 번 참석하시었지만 고인이시고, 서울 둘째 당 숙부님께서는 어쩌다 한 번씩 오시다가 몇 년 전에 유명을 달리하시었다. 막내 당 숙부님은 한 번도 참석하시지 않으셨다. 여기 4분 모두 합하여 기제사에 참석하신 횟수가 아니라 인원수로 하여도 10분이 안 된다. 우리 형제들도 일이 있으면 한 번씩 참석 하지 못 할 때도 있었지만 항상 한 사람 이상은 꼭 참석하였다.
제사를 거론 하게 됨이 고리타분하다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제사로 인해 집안 대소사 등을 의논할 수도 있고 타지로 멀리 생활하시는 분들을 이런 기회에 만나서 오랜만에 대화의 장이 되고 정을 나눌 좋은 기회로 만들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는 변하였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참 박정한 분이시다 라고 해 본다. 특히 막내 당숙은 생활도 유하시고 건강도 쟁쟁하시어 산행을 다니실 만큼 좋으시다. 연세는 종형님보다 두 해 아래 시다. 벌초 시기 때는 종조부 산소에서 뵙기도 하곤 하였다. 조부님의 제사이신데 아랫대인 조카가 모시고 있는 것 알고 있으면서 오지 않으신 것은 이해 불가이다. 자제들이라도 보내어서 참석하여 주면 하는 바람은 제일 때마다 느낀다. 부산이라 인동까지 오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제일 때마다 손자도 있는데 증손자들만이 모시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 안타까움이다.
자제들에게는 못 해주는 게 없을 정도로 애지중지 키우고 베풀고 하여 지금은 의료인이다 자랑을 하시면서 조부 제사를 도외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제사의 기본은 조상에 대한 효가 바탕이고 삶 대에서 서로 우애가 기본인데 참 안타까운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조부에 대한 부정이라고 보아야 하는지 씁쓸하다. 그래도 부친이신 종조부님 산소는 챙기시니 뭐라고 해야 할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여야 하나 효라고 하여야 하나 업이다. 라고 해야 하나?
증조부제사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믿게 된 것은 몇 년 전 일이다. 종조부 모신 산소 영신을 파서 화장하여 그 산에다 뿌려 버리셨다. 부의 끈마저 놓아 버린 것이다. 당숙형제분들께서 의논하고 고민 속에서 결정 하셨겠지만 그것을 보고 증조부 제일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믿게 된 것이다. 제사를 모시지 않는 종교를 신봉하는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산소를 지금까지 챙겨 오심에 연계하여 보면 맞지도 않은 일이다.
참 안타깝고 어지럽다. 이제 같이 할 수 있는 그런 연마저 사라졌다. 그리고 자식들에게는 사후에 뭐라고 하시려나하는 불만이 일어난다. 지금 삶의 세대에서 사촌도 멀리 느껴지는 시대인데 뭐 그리 걱정이야 하면서도 고개를 흔든다. 실제로 6촌이라는 재종형제로서 서울에 있는 재종형제 말고는 얼굴도 모른다. 그런 현실의 시대인대 하면서 합리화로 치부하려 한다.
이제는 그 제일마저 모시지 않는다. 4대 봉사라는 관습에 잡히면 어쩌나 하신 마음으로 놓아 버린 증조부모님의 기제일이다. 시대의 흐름으로 돌리면서 친척의 거리가 점점 멀어 지고 있음을 보고 있다. 어릴 때 기제사는 6촌 8촌 이상의 친지 분들도 참석하시었는데 지금은 사촌 간에도 참석이 뜸하여 지고 있다. 명절 제사도 마찬가지다. 이게 현실로 굳어 가는데 뭘 고리타분하게 그냥 편하게 하지하면서 말 머리 돌린다.
사람은 각자의 바람과 즐거움으로 자신의 길을 간다. 정하여진 정답은 없다. 나 또한 이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선택을 하고 결정을 하여 쓴 것이다. 그분들 의사와는 상관이 없다. 마음이 안타까워서 한 것뿐이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옳고 그름의 기준도 각자의 입장이며 선택이다.
우리 고유의 정이라는 아름다운 얼이 사장됨이 안타깝다. 인존 바탕에서 인간의 참이 무엇인가를 새겨 봐야 되지 않을까. 그 중심에 효가 있다고 본다. 모든 일은 자신이 정하고 그 중심에 삶이 있다. 자신을 위하여 가까이 있는 인연을 효와 더불어 만들어 갈수 있다면 하고 다시 금 생각 해 본다.
2017. 8.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