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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제후시대가 열리다(5)
굴돌(掘突)은 정나라 세자였다.
주유왕을 호위하며 탈출하다가 여산 기슭에서 장렬히 전사한 정백 우의 아들이기도 했다.
나이는 23세, 키는 8척 장신이었다.
당시 1척은 23센티 정도이니, 지금으로 치면 180센티가 넘는 키다.
영특하고 굳세고 무예가 뛰어났다.
굴돌(掘突)은 정백 우 대신 정나라 도성을 지키고 있다가 아버지의 죽음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와 어찌 한 하늘 밑에서 살 수 있겠는가!"
하늘을 우러러 복수를 결심하고 병사들을 끌어 모았다.
한창 군사와 병차를 점검하고 있을 때 호경에서 신후의 밀사가 도착했다.
- 속히 달려와 왕실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굴돌(掘突)은 뛸 듯이 기뻐했다.
그는 하얀 전복(戰服)에 하얀 띠를 두르고 병차 3 백승을 몰아 호경을 향해 진군했다.
하얀 전복에 하얀 띠를 두른 것은 아버지를 죽인 융병(戎兵)에 대해 복수하겠다는 그의 강한 의지였다.
그는 호경성 50 리 밖에 이르러 진채를 내리고 적의 동태를 살폈다.
그때 융주(戎主)도 정나라 군사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성밖 30리 밖에 진을 치고 난 뒤였다.
"잘 되었다. 당장 병차를 휘몰아 단숨에 저들을 덮치리라!"
굴돌(掘突)은 원수를 갚고자 하는 마음이 앞섰다.
공격을 개시하려는데 공자(公子) 성(成)이 만류했다.
"우리 군사는 쉴 새 없이 달려왔기 때문에 몹시 피로해 있습니다. 듣자니 신후가 모든 제후들에게 밀서를 보냈다고 합니다."
"조만간에 다른 제후들도 이 곳으로 달려올 것이 분명합니다. 그때를 기다려 합세하여 치는 것이 만전지계(萬全之計)가 아닐까 합니다."
당시는 왕의 아들을 왕자(王子)라 하고 제후의 아들을 공자라고 했다.
이것으로 보아 공자 성(成)은 정백 우의 아들, 즉 굴돌의 동생이 아니었나 여겨진다.
공자 성의 말이 합당했으나 굴돌(掘突)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군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달려온 군사다. 어찌 기다림이 있을 것인가. 더구나 지금 견융은 교만할 대로 교만해 있다. 예기로써 교만한 군대를 치는데 어찌 이기지 못할것인가."
"제후들의 군사가 오기를 기다리면 오히려 우리 군사의 마음이 해이해질 뿐이다."
그는 병차를 몰아 견융(犬戎)의 진채를 향해 쳐들어갔다.
그런데 진채 앞까지 이르렀는데도 견융의 진영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기치도 보이지 않고 북소리도 일지 않았다.
병사 또한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굴돌(掘突)은 비로소 자신이 너무 성급했다고 판단하고 얼른 군사를 돌리려 했다.
그때였다.
오른편 숲 속에서 긴 동라(銅喇) 소리가 울려퍼지더니 한떼의 군마가 벼락같이 쏟아져 나왔다.
융주(戎主)의 매복 군사였다.
혼전이 벌어졌으나 기선은 융병(戎兵)이 잡았다.
정나라 군사들은 황망하여 창을 제대로 휘두를 수가 없었다.
견융(犬戎)의 두 선봉장인 패정과 만야속이 굴돌에게 덤벼들었다.
굴돌(掘突)은 수레를 돌리며 외쳐댔다.
"물러나라!"
결국 정나라 군사는 크게 패하여 30 리 밖으로 퇴각했다.
굴돌(掘突)은 패잔병을 수습한 후 공자 성(成)을 불러 물었다.
"내가 네 말을 듣지 않다가 큰 실수를 저질렀구나.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이 곳에서 위(衛)나라 도성이 그리 멀지 않습니다. 일단 그리로 가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상책일 듯 싶습니다."
"위(衛)나라 제후가 우리를 도와줄까?"
"위나라 제후도 신후의 밀서를 받았기 때문에 호경을 구원할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위후(衛侯)는 나이도 많고 성실하고 경험이 풍부합니다. 반드시 군사를 내어 우리를 도울 것입니다."
공자 성(成)의 말에 굴돌은 용기를 내었다.
군대를 돌려 위나라 도성인 조가(朝歌)를 향해 나갔다.
위(衛)나라는 주무왕의 동생 강숙(康叔)에게 분봉한 나라이다.
영지는 지금의 하북성 남부와 하남성 북부 일대에 걸쳐 있다.
은나라 말기의 수도였던 조가(朝歌)에 도읍을 정하였다.
지금의 하남성 기현(淇縣)이다.
정나라와는 북쪽으로 이웃한 후작(侯爵)의 나라이다.
주나라 왕족의 나라였으므로 자긍심이 높았다.
이 무렵 위나라 제후는 위무후(衛武侯)였다.
위무후 역시 신후로부터 밀서를 받고 결연히 선언했다.
- 왕족의 나라로서 국난을 보고 어찌 가만히 앉아만 있을쏘냐!
금포(錦袍)에 황금띠를 두르고 백발을 휘날리며 도성을 출발했다.
위무후(衛武侯)가 주왕실 직할 영지로 들어설 무렵 한떼의 군마와 마주쳤다.
정나라 세자 굴돌(掘突)이 이끄는 군대였다.
굴돌로부터 그간의 사정을 들은 위무후는 굴돌의 손을 잡았다.
"정(鄭)나라 세자는 안심하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주왕실을 위해 특별히 달려가는 길이외다."
" 또 듣자하니 진(晉)과 진(秦) 두 나라도 견융을 내치기 위해 궐기를 하였다 하오. 네 나라가 힘을 합한다면 오랑캐 따위가 무슨 걱정이리오,"
위무후(衛武侯)의 호언장담에 굴돌(掘突)은 근심이 씻은 듯 사라졌다.
용기백배하여 위무후와 함께 다시 호경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호경 30리 밖에 이르러 진채를 세웠다.
다음날, 견융을 칠 의논을 하는데 척후병이 들어와 새 소식을 전했다.
- 호경 서쪽에 진(秦)나라 군대가 당도했습니다.
- 호경 북편에 진군(晉君)이 도착하여 진채를 세우고 있습니다.
위무후(衛武侯)는 크게 기뻐했다.
"진(秦), 진(晉) 두 나라 군사까지 왔으니 이제 대사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위무후는 사람을 보내어 두 나라 군후를 자신의 진채로 초청했다.
먼저 진(晉)나라 군주인 진문후(晉文侯)가 당도했다.
이어 진(秦)나라 군주 영개가 위무후를 찾아왔다.
정(鄭), 위(衛), 진(晉), 진(秦) - 이렇게 네 나라 제후가 한 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눈 후 계책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작전회의는 가장 연장자인 위무후(衛武侯)가 주도했다.
"내 비록 나이는 많지만 제후의 신분으로 견융(犬戎)의 무례함을 용납할 수 없기에 군사를 일으켜 이 곳에 이르렀소. 이제 우리들은 힘을 합해 오랑캐를 소탕하고 왕실을 반석처럼 튼튼히 해야 할 것이오."
"여러 군후들께서는 적병을 물리칠 묘책이 있으면 말씀해주시기 바라오."
"제게 견융(犬戎)을 몰아낼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진군(秦君) 영개였다.
"말씀하시오."
"견융(犬戎)이 노리는 바는 궁성의 보화와 재물입니다. 오늘밤 우리가 동, 남, 북 삼로(三路)로 나누어 일시에 공격하되, 서문만 남겨두고 그 바깥 숲 속에 정나라 세자를 매복해둡니다."
"그리되면 견융(犬戎)은 싸우기보다는 궁성의 재물을 챙겨 서문으로 달아날 것이오. 그때 정나라 세자 굴돌(掘突)이 급습하면 대승을 거둘 것이 틀림없습니다."
전쟁에 능한 진군(秦君) 영개다운 계책이었다.
"좋은 생각이오."
위무후(衛武侯)를 비롯한 다른 두사람도 찬성했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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