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포 이규현(竹圃 李圭鉉, 1848~1935)-항일 의병운동가
이규현(李圭鉉)선생은 고려조의 명신 국당 문효공 휘 천(菊堂 文孝公 諱 蒨)의 후손으로, 자는 인집(仁執), 호는 죽포(竹圃)이다, 그는 1905년 일제가 조선의 대신들을 총칼로 협박해 을사늑약을 맺자, 면암 최익현(崔益鉉,1833.12.5~1907.1.1) 선생과 함께 항일의병전쟁을 일으켰다. 면암 선생이 남긴 무장 항일운동 동지들의 이름을 적은 동맹록(同盟錄=의병에 참여한 지사들의 명단)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규현(李圭鉉). 자는 인집(仁執), 호는 죽포(竹圃), 본은 경주이고 벼슬은 참의이며 무신(1848) 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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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현 선생은 의병전쟁 당시 병조참의로 ‘지리산 호랑이’로 불리던 석상용의 무장 항일투쟁을 돕기 위해 가족을 동원해 총포를 쌀 뒤주에 숨겨 전달했고, 이를 알게 된 일제는 노구의 이공 대신 장남 이종순을 죽이려 했다.
이에 셋째아들 이종식이 나서서 일본군대를 꾸짖으며 장남대신 자기가 죽기로 하자. 일본군은 이종식을 처형하기 위해 남원 실상사(南原 實相寺)로 끌고 갔다.
그 곳에는 다른 사형수 네 명이 더 있었고, 모두 심한 고문으로 병색이 완연했다. 일본군은 실상사 마당에 잘 차려진 점심 밥상을 놓고, 총으로 겨누며 "이승에서 마지막 밥이니. 귀신도 배가 불러야 길을 떠나지. 서러워말고 많이 먹어라"면서 조롱했다.
그러나 이들 부자의 의(義)를 아는 마을사람들의 지혜로운 도움으로 죽음 앞에서 이종식은 사형 직전에 구사일생 목숨을 구했다. 장남 대신 죽으려했던 셋째아들 이종식은 그 후 일본군 감시를 피해 지리산 금계에 은둔해 살았으며,나이 50세에 첫 아들을 낳았으니, 호(號)가 적선(謫仙)인 이윤우(李尹雨)공이다.
그리고 이윤우공 또한 조부의 유언대로 김제 원평으로 이거해 터를 잡고 살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 막내아들을 두었는데, 그가 바로 이스타항공 회장으로서 전북 전주시 완산 을구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제19대. 제21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상직의원이다. 즉 이상직 의원은 죽포 이규현선생의 증손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