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호 원고 / 김성문

[김성문]

야간 통금

김성문

   대구 간송미술관 개관 전시회에서 신윤복의 그림인 야금모행夜禁冒行을 만났다. 야금모행이란 통행이 금지된 야밤에 돌아다닌다는 뜻이 있다.

   그림은 어떤 양반이 여인과 함께 한껏 멋을 부리면서 야밤중에 집으로 가는 장면을 그렸다. 하늘에는 새벽녘에 보이는 그믐달이 있고, 모두가 두꺼운 옷을 입고 있어 추운 겨울밤으로 보였다.

   남녀 옆에 붉은색 도포를 입은 순라군巡邏軍은 관모冠帽인 노란색 초립 아래 방한용 두건인 풍차風遮를 쓰고, 도포 속에는 분홍빛 옷을 더 입었다. 오른손에는 자그마한 막대를 쥐고 단속하는 느낌이다. 중앙의 양반은 오른손으로 갓의 테를 잡고 순라군에게 미안한 눈짓을 보내고 있다. 무엇인가 잘못이 있으니, 용서를 비는 자세를 취하는 모습은 현대 사람들의 본성과 다를 바 없이 표현했다.

   앞에서 길을 안내하는 동자는 풍차를 오른쪽 겨드랑이에 끼고 두 손으로 초롱을 들고 있다. 동자가 양반과 여인이 따라오는지를 돌아보는데 긴장감이 있어 보였다. 신윤복은 동자를 관조觀照하는 모습으로 작게 그렸다. 혹시나 자신을 투영한 것은 아닐지. 야금모행으로 보아 그 당시도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야간에 통행금지를 실시했던 것 같았다.

   야간 통금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광복 직후에 서울과 인천에서 시행되었다. 저녁 8시부터 이튿날 새벽 5시까지로 실시하다가 오후 10시에서 이튿날 새벽 4시까지로 변경해 치안을 바로 잡았다. 그런 까닭에 금지 시간이 가까워지면 대중교통이 북새통을 이루었다.

    나 역시 친구들과의 만남이 늦어 집으로 가는 대중교통을 놓치고만 일이 있었다. 방범대원을 피해 가면서 골목길로 한 시간 가까이 걸어서 집에 도착하려는 순간 방범대원의 호루라기 소리에 붙잡히고 말았다. 파출소로 연행되어 온갖 심문에 대답하느라 진땀을 뺐다. 경찰은 “왜 늦었냐?”로 시작하여 하루 동안 무엇을 했는지? 시간대별 조서를 꾸미는 데 30분가량 소요되었다. 감금실에서 눈을 붙인 후 통금 시간이 해제되자, 앞으로는 절대로 위반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범칙금 없이 풀려났었다.

   어느 가을날 모처럼 만난 고교 동기생과 시내 번화가 주점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잔 한 잔 기울이다가 자정을 넘기고 말았다. 주점에서 계속 시간을 보내다가 통금이 해제된 후에야 집으로 출발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 도착해서 출입문 벨을 눌렀으나 인기척이 없었다. 몇 번을 누르다가 문에 기대어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으나 아파트 문이 열리고 인기척에 사람을 쳐다보니 낯선 남자였다. 웬 남자가 우리 집에서 나오나 싶은 생각에 온갖 의심이 머리를 스쳤다. 그런데 “아저씨! 아래층에 사시는 분 아니세요?”라는 말에 깜짝 놀라서 “죄송합니다.”로 해결은 되었지만, 통금 때문에 생긴 난처한 풍경이었다.

  야간 통금은 국가 안보와 치안유지를 위해 불가피한 제도였지만, 일상에서 제약이 따르는 불합리한 점이 있었다. 통금 시간이 가까워지면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에 따라 빨리빨리 문화, 새치기, 속전속결주의 등의 습관이 형성된 것은 아닐지. 그 습관 때문인지 나는 오늘도 천천히 해도 될 일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성문

『한국수필』 등단. 한국문인협회/한국수필가협회/한국공무원문인협회/국제펜한국본부대구지역위원회/대구문인협회 이사/대구수필가협회 이사. 한국문학시선작가협회 명예회장, 윤동주 문학상 대상 수상. 수필집 『가야국 산책』, 『기억 저편』.

[위형윤]

고맙습니다

[김성문]

회장님!
연락 감사드립니다!

[이옥진(연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