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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어휘 연구] 20. '의문'과 '의문의 율법' | 남대극 교수
안녕하십니까? 에스라 성경 강단 오늘 다시 성경의 어휘 연구를 계속하겠습니다. 성경의 수많은 어휘들 가운데 오늘 우리가 함께 공부하고자 하는 것은 좀 특별한 용어입니다. 여러 차례 어휘를 연구하는 목적을 설명해 드렸으니 오늘은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늘은 20번째 시간으로 '의문과 의문의 율법'이라는 제목으로 공부를 하겠습니다. 아마 '의문'이라는 단어를 생소하게 들으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들어보긴 했지만 무엇인지 확실치 않다는 느낌을 갖고 계시는 분들도 많으실 줄 압니다. 그래서 오늘 그 문제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가 주로 쓰는 개역한글판 성경에는 우리말로 '의문'이라고 하는 단어가 총 11번 나옵니다. 구약 성경에 두 번, 신약 성경에 아홉 번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두 번은 다니엘서 5장에만 나타나고, 신약의 아홉 번은 모두 바울 서신에만 나옵니다. 그런데 구약에 나오는 이 두 번은 우리말로 '의문'이라 읽지만 한자로 쓰면 '의심할 의(疑)' 자에 '물을 문(問)' 자를 쓰는 의문(疑問)입니다. "의문이 있느냐, 질문이 있느냐" 할 때의 그 의문입니다. 반면에 신약 성경에 나오는 '의문'은 전부 '법도 의(儀)' 자에 '글월 문(文)' 자를 쓰는 의문(儀文)입니다. 의식이나 예식, 예의를 뜻할 때의 의자입니다. 이처럼 한자가 엄연히 다릅니다. 구약에 나오는 '의문(疑問)'의 의미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이 확실하게 압니다. 설명 다 해놓고 "의문 있는 사람 질문하라"고 할 때의 그 짧은 의문, 즉 의심이나 질문을 뜻합니다. 그러나 신약의 '의문(儀文)'은 정말로 읽는 이들에게 많은 의문(疑問)을 자아냅니다. 뜻이 확실치 않기 때문입니다.
구약 다니엘서에 나오는 의문(疑問)은 다니엘의 총명과 지혜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의문을 파할 수 있다"라는 표현으로 두 번 나옵니다. 다니엘은 모든 어려운 의문이나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고 설명할 수 있는 탁월한 지혜를 가진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KJV)에서는 이를 '다웃(Doubts, 의심)'으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진짜 문제는 신약 성경에 나오는 의문(儀文)이라는 단어의 참된 의미입니다. 이 단어의 뜻을 바르게 알기 위해서 먼저 이 단어가 사용된 사도 바울의 편지 구절들을 읽어보겠습니다. 먼저 로마서 2장 27절에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의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하지 아니하겠느냐." 할례 받지 않은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오히려 율법의 의문과 할례라는 외적 조건만 자랑하면서 정작 율법을 범하는 유대인 너희를 정죄하고 판단하지 않겠느냐는 뜻입니다. 이때의 의문은 신약 성경의 원어인 헬라어로 '그라마(gramma)'라고 합니다. 우리말 성경이 이를 의문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또한 같은 장 29절인 로마서 2장 29절에는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이것만 가지고는 그 뜻이 무엇인지 굉장히 애매합니다. '의문에 있지 아니하다'라는 표현의 뜻을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늦게 나온 개역개정판 성경에서는 이를 '율법 조문'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할례는 마음에 할 것이지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하다라고 하니, 우리가 이해하기가 훨씬 가까워졌습니다. 여기 사용된 원어 역시 '그라마'인데, 개역한글판은 의문으로, 개역개정판은 율법 조문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똑같이 로마서 7장 6절에도 나옵니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여기서도 의문 대신 '율법 조문' 혹은 '개역개정판의 표현대로 율법 조문의 묵은 것'이라 대입하면 뜻이 명확해집니다. 문자의 조문에만 얽매여 겉모습만 섬기던 옛 방식을 버리고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라는 바울의 논지입니다. 그다음 로마서를 벗어나 고린도후서 3장 6절에 가면 대단히 중요한 선언이 나타납니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개역한글판에는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라고 되어 있습니다. 케케묵은 문자의 법조문(의문)으로 일하지 않고 오직 영(성령과 법의 정신)으로 일한다는 뜻입니다.
"의문(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하신 이 말씀은 굉장히 웅장하고 깊은 선언입니다. 율법의 겉 조문은 인간을 죽이고, 성령과 그 취지는 인간을 살린다는 뜻인데, 이 말씀의 의미를 조금 더 설명해 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7절을 보면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이라고 했습니다. 개역한글판에는 '의문의 직분'이라고 되어 있어 참 어렵습니다. 과거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돌비에 받아 내려오던 모세의 빛나는 얼굴을 백성들이 감히 쳐다보지 못했던 사건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십계명 돌비 자체는 지극히 거룩하고 중요하지만, 법의 조문 그 자체는 죄인인 우리를 정죄하는 기능을 합니다. 법을 지키지 못한 인간은 다 죄인이기 때문에, 율법 조문 앞에 서면 모두 정죄를 받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죄인을 죽게 만드는 율법 조문(의문)의 정죄 기능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또한 에베소서 2장 15절을 보면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이 왜 원수 된 것이라고 표현되었을까요? 십계명 자체가 악한 원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 법 조문은 죄인을 정죄하여 죽게 만들기 때문에 죄인에게 원수 노릇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죽게 만드는 그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당신의 육체로 십자가에서 완전히 성취하심으로써 폐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율법의 요구(정죄)를 다 갚으시고 완성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가 정죄의 법조문에 얽매이지 않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의문'은 앞서 나온 단어인 '그라마'가 아니라, 헬라어로 '도그마(dogma)'라고 합니다. 개역개정판 성경에서는 이를 '법조문'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의문에 속한 계명을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이라 번역한 것입니다. 법의 조문은 규칙을 지키지 못하는 인간을 죄인으로 정죄하지만, 그 법 속에 담긴 율법의 취지와 참된 정신(영)은 우리를 살려냅니다. 법조문 문자에 얽매여 "이거 안 하면 너 죽는다" 하는 정죄에서 벗어나, 법의 참된 사랑의 정신을 살려 하나님과 조화된 삶을 살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는 복음의 원리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14절도 아주 비슷한 말씀입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개역한글판에는 '의문에 쓴 증서'라고 나옵니다. 구약 시대의 율법 조항들을 뜻합니다. 법률 조항에 써서 우리를 옥죄던 정죄의 증서는 우리를 대적하고 거스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라는 것은 안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행하는 허물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법조문은 늘 우리를 대적하여 유죄라고 선언합니다. 주님께서는 그 정죄의 법조문 증서를 십자가에서 당신의 몸으로 다 이루시고 도말하셨습니다. 제하여 버리시고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는 것은, 구약의 법조문들이 요구하는 형벌을 주님이 다 성취하셨다는 뜻이지 그 법 자체가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 역시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습니까? 십자가에서 그 법조문에 명시된 제사 제도와 정죄의 모든 요구를 예수님이 다 이루셨으므로, 이제 우리는 법의 참된 목적이자 정신인 '하나님과 하나 되는 사랑'을 성취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이처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20절을 보면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개역한글판에는 '의문에 순종하느냐'라고 나옵니다. 구약 시대의 율법 조문들을 '초등학문'에 비유했습니다. 초등학문은 아주 기초가 되는 공부입니다. 율법 그 자체가 구원의 최종 목적지가 아닙니다. 율법은 단지 기초이자 초등학교 학문과 같아서, 이를 딛고 우리가 더 성장하여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영적인 높은 이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율법 자체가 우리의 최종 목표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복음의 자유를 얻었으면서, 어찌하여 여전히 옛 법조문과 규례에 얽매여 사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무엇입니까? 단순히 문자의 교리입니까? 교리가 맞기는 하지만 교리 자체에만 머무르지는 않습니다. 교리는 우리를 사랑의 사람, 성령의 사람, 하나님과 하나 되는 자녀로 회복시켜 주는 하나의 도구이자, 갈라디아서의 표현을 빌리면 초등교사(몽학선생)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율법 조문에만 엄격하게 얽매여서 "내가 이거는 행했고 저거는 안 행했으니 의를 이루었다"라고 자랑하는 태도는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형식주의적인 태도인 것입니다.
우리말 개역한글판 성경에서 '의문'으로 똑같이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이처럼 '그라마(gramma)'와 '도그마(dogma)'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어휘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원래 이 단어들의 원어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은 성경 문맥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먼저 '그라마'는 글자, 문자, 철자를 뜻합니다. 영어의 문법을 뜻하는 '그래머(Grammar)'라는 단어가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글자나 문자라는 뜻에서 확대되어 문구, 문서, 조문(條文)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모두 '글과 문자'를 바탕으로 하는 단어입니다. 즉, 문자로 기록된 율법의 조항을 뜻합니다. 반면에 '도그마'는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 쓰였는데, 일차적인 의미는 교리(敎理), 법문, 법규, 규례를 뜻합니다. 영어의 '도그매틱(Dogmatic: 교리적인, 독단적인)'의 어원입니다. 연장된 의미로는 종교적인 교의(敎義)나 교조, 나아가 독단(獨斷)이라는 뉘앙스도 가집니다. "그것은 너무 도그마적이다, 독단적이다"라고 말할 때의 그 도그마입니다.
이처럼 서로 성격이 다른 두 개의 헬라어 단어(그라마, 도그마)를 개역한글판 번역기들이 아무런 구별 없이 똑같이 '의문'이라는 한 단어로 번역해 놓았기 때문에, 단어의 의미가 모호해졌을 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성경을 읽고 이해하기가 대단히 어렵게 되었습니다. '의문'의 본래 뜻을 알기가 힘들어진 것이지요. 성경에 나오는 의문(儀文)이라는 표현은 쉽게 말해 '문서로 만들어 놓은 법조문이자 율법의 체계'를 뜻합니다. 일반 국어사전에는 이 단어가 나오지도 않습니다. 오직 우리 성경 속에서만 사용되는 특수한 종교적 한자어입니다. 성경사전에는 이를 "문서화된 모세의 율법 또는 율법의 여러 가지 규정들을 가리킨다"라고 설명해 놓았습니다. 설명은 어느 정도 잘 되어 있지만, 일반 성도들이 이 뜻을 명확히 기억하고 성경을 읽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 설명만으로는 의문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성경 구절들을 바르게 이해하기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 주석과 어휘 연구가 필요한 것입니다. 로마서나 에베소서를 읽을 때 의문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참 의문(疑問)스럽고 뜻을 알기 어렵지 않았습니까?
다행히 개역개정판 성경에서는 헬라어 '그라마'를 '율법 조문'으로, '도그마'를 '법조문(규례)'으로 바꾸어 번역했습니다. 문자의 조문이라는 뜻을 살려 번역한 것은 참 잘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 단어를 법조문이나 율법 조문이라는 아주 비슷한 단어로 뭉뚱그려 놓아 학술적으로는 조금 아쉬움이 남습니다.
제 개인적인 신학적 이해와 견해로는 '그라마'는 '율법 조문(문자)'으로, '도그마'는 '종교적 규례(법령)'로 구별하여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로마서 2장 27절을 대입해 보겠습니다.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의문과 할례를 가지고..." 대신에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읽으면 훨씬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3장 6절도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대신에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문자)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 읽으면 매끄럽습니다.
이 구절의 신학적 의미를 깊이 파고들어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문장 자체의 뜻은 어느 정도 다가옵니다. 영어 성경들은 이를 모두 '레터(Letter: 글자, 문자)'라고 번역했습니다. 즉, "문자는 죽이고 영은 생명을 준다, 살린다"라는 뜻입니다. 율법의 문자적인 조문은 우리를 죄인으로 정죄하여 죽음으로 이끌지만, 그 율법 속에 담긴 영적 의미와 하나님의 참된 정신은 우리를 살려냅니다. 만약 우리가 기독교 신앙을 율법의 겉 조문과 문자에만 가두고 문자만 따진다면, 그 취지와 참된 정신을 망각하여 사람을 잡는 가장 가혹하고 차가운 종교가 될 수 있습니다. 율법 조항만 들이대며 "너 이거 안 지켰으니 사형이다"라고 정죄하는 법조문은 사람을 죽입니다. 그러나 그 법을 왜 주셨는지 취지를 알고, 하나님의 사랑에 동감하여 마음으로 지키는 자는 생명을 얻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도 문자적인 정죄에 얽매여 "안 지키면 돌로 쳐 죽인다"라고만 가르치면 참된 성경적 신앙이 아닙니다. 왜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지, 그날에 어떤 영적인 회복과 축복이 오는지 그 참된 취지(영)를 알려주어 사람을 살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다가 의문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법조항, 율법의 조문, 문자'라는 뜻이구나 하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 나오는 도그마(의문) 역시 "원수 된 것 곧 법조문(규례)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혹은 "우리를 대적하는 법조문(규례)으로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라고 대입하여 이해하면 뜻이 명확해집니다. 외적인 교리나 문자의 법조문 그 자체는 인간을 영적으로 성숙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그것들은 도리어 죄인인 우리를 거스르고 대적하며 마침내 정죄하여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 정죄의 법조문 요구들을 다 폐지하시고 성취하셨습니다. 십자가는 모든 법조문의 기저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율법을 어겼으니 우리를 쳐서 죽이면 법대로 끝나는 것이지만, 예수님은 "아니다, 그 법을 어긴 형벌을 내가 대신 당하고 너희를 살리겠다"라고 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자원하는 마음으로 법을 더 잘 지키고 선한 사람이 되게 하시는 것이 목적임을 당신의 몸으로 직접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설교나 신학에서 '의문의 율법'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구약 시대에 선지자나 학자들이 율법을 분류할 때 크게 두 가지 기준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율법의 '형식'에 따른 분류이고, 다른 하나는 율법의 '내용'에 따른 분류였습니다.
첫째, 율법의 형식에 따라 나눌 때는 '정언적(定言的) 율법'과 '가언적(조건적) 율법'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정언적 율법'이라는 것은 아주 확정적인 명령조로 "하라, 하지 말라"고 명시된 법을 뜻합니다. 십계명이 대표적인 정언적 율법입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하라, 하지 말라 선포해 놓고 정작 그것을 어겼을 때 현장에서 어떤 형벌을 내린다는 구체적인 벌칙 조항이 뒤에 붙어있지 않은 절대적인 법 형태입니다. 영어로는 '아포딕틱 로(Apodictic Law)'라고 부릅니다. 반면에 '가언적(조건적) 율법'이라는 것은 인간 사회의 구체적인 의심이나 송사를 해결해 주는 법 형태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웃의 소를 훔쳤거든 어떻게 해라, 만약 어떤 사람이 타인에게 상해를 입혔거든 이렇게 이렇게 배상해라" 하는 식입니다. "만약 뭐뭐 하거든 ~하라" 고 하여 조건과 함께 그에 따르는 구체적인 처벌이나 벌칙 조항이 주어지는 법을 조건적 율법, 헬라어 및 신학 연구에서는 '카주이스틱 로(Casuistic Law)'라고 부릅니다. 독일 신학계의 유명한 분류법입니다. 십계명은 순수한 정언적 율법이며 벌칙이 명시되어 있지 않고 당연히 행해야 할 절대 도덕으로 주어졌습니다. 그 외에 구약에 나오는 수많은 세부 율법들이 조건적 율법에 속합니다.
둘째, 율법의 내용에 따라 분류하면 크게 네 가지로 나뉩니다. 도덕법, 위생법, 시민법, 의식법입니다.
도덕법: 윤리적 존재로서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할 절대적인 도덕 규범입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사람을 죽이지 말아야 하는 십계명의 핵심 원칙들입니다.
위생법: 인간의 건강을 보존하기 위해 어떤 음식은 먹고 어떤 것은 먹지 말라며 정해놓은 건강 법칙입니다.
시민법: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와 신정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정해놓은 사회 법규입니다. "장차 가나안에 들어가서 왕을 세우거든 왕은 이렇게 통치하고 백성들은 이렇게 섬기라" 하시는 국가법입니다.
의식법: 성소의 제사 제도와 각종 예식, 절기를 집행하기 위해 세세하게 규정해 놓은 제사법입니다. 구약 성경에 아주 아주 많이 나옵니다.
이 네 가지 내용적 분류 중에서 '의식법(Ritual Law)'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의문의 율법'에 해당합니다. 제사 제도와 절기, 각종 의식을 규정한 법 조문들입니다. 나아가 율법의 참된 영적 취지를 버리고 오직 겉으로 드러나는 법조문의 문자나 형식에만 철저히 집착하고 얽매이는 신앙 태도를 가리켜 '율법주의' 혹은 '의식주의, 형식주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선언을 다시 한번 마음에 대입해 보겠습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대적하는 의문의 율법 증서(의식법)를 도말하시고..." 구약의 모든 의식법과 제사 제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신의 단번의 희생으로 다 이루셨기 때문에 완전히 도말되고 폐지되었습니다. 구약의 제사 제도가 표상하던 실체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복음을 다 성취하셨으므로, 그 조문들은 제하여 버려지고 십자가에 못 박힌 바 되었습니다. 모든 제사 제도의 의식법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온전히 성취되었으므로 더 이상 문자 그대로 도살하여 피를 흘리는 제사는 필요 없게 되었음을 선언하는 대목입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우리가 성경 본문을 올바르고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거기에 사용된 어휘들을 단순히 국어사전이나 단편적인 사전적 의미로만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각 단어에는 그것이 생겨난 원어의 어원(Etymology)이 있고, 문맥 속에서 함축하고 있는 함의(Implication)와 어의가 존재합니다. 또한 그 어휘를 사용한 저자의 신학적 의도와 역사적 배경이 단단히 얽혀있기 때문에, 단어를 사전만 쳐다보고 "이 뜻이다"라고 단정 지으면 큰 오독을 범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한 정확한 해석학과 신학적 주석이 필요하며, 해석을 바르게 하기 위해 성경의 원어와 역사, 문헌을 깊이 연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성경의 어휘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다소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의문'이라는 단어와 '의문의 율법'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명확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앞으로 성경을 읽으실 때, 특별히 개역한글판 번역으로 바울 서신을 읽으시다가 '의문'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정죄하는 율법의 법조항, 문자의 체계'를 말하는구나 하고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 겉 조문과 의식의 자구에만 얽매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성취된 율법의 참된 정신과 사랑의 취지를 살피며 하루하루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살아가는 신실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사도 바울의 편지를 통해 확증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강의를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른 중요한 원어 어휘를 가지고 여러분과 함께 깊이 연구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핵심 요약 정리
'의문'의 두 가지 한자어 및 뜻 구별 (원어 분석): 우리말 성경(개역한글)에 '의문'이라는 단어가 총 11번 나오지만, 구약과 신약의 뜻과 한자가 완전히 다릅니다.
구약의 의문 (疑問 - 다니엘서 2회): '의심이나 질문'을 뜻하며, 다니엘이 모든 어려운 질문과 의문을 명쾌하게 풀어내는 총명한 지혜를 가졌음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영어 KJV의 'Doubts')
신약의 의문 (儀文 - 바울 서신 9회): '문서로 기록된 법조문, 문자의 율법 체계'를 뜻하는 특수한 성경적 용어입니다. 헬라어 원어로는 문자를 뜻하는 '그라마(gramma)'와 교리·법령을 뜻하는 '도그마(dogma)'로 나뉘며, 개역개정판 성경에서는 이를 '율법 조문', '법조문'으로 바로잡아 번역했습니다.
"문자는 죽이고 영은 살린다"의 신학적 의미: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에서 "의문(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라고 선포했을 때의 의문은 문자의 법조항을 뜻합니다.
죄인인 인간이 구체적인 처벌 조항이 있는 차가운 법 조문과 문자 자체에만 집착하여 형식주의(율법주의)에 빠지면 영적으로 정죄를 받아 죽게 되지만, 그 법 속에 담긴 하나님의 참된 취지와 사랑의 정신(영)을 깨달아 성령으로 순종하면 생명을 얻게 된다는 복음의 대원칙입니다.
율법의 구조적 분류와 '의문의 율법':
형식적 분류: 벌칙 없이 "하라, 하지 말라" 명하는 절대 도덕 형태의 '정언적 율법(십계명)'과, "만약 ~하거든 이렇게 처벌하라"며 구체적인 벌칙 조항이 결합된 '조건적(가언적) 율법'으로 나뉩니다.
내용적 분류: 도덕법, 위생법, 시민법, 의식법의 네 가지로 분류됩니다. 이 중 성소의 제사 제도와 각종 절기 예식을 규정해 놓은 '의식법(Ritual Law)'이 성경이 말하는 '의문의 율법'의 핵심입니다.
십자가를 통한 성취: 우리를 대적하고 유죄로 정죄하던 의문의 율법 증서(의식법 제사 조항들)는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당신의 몸으로 단번에 완전하게 이루심으로써 모두 도말되고 제하여졌습니다(십자가에 못 박힘). 그러므로 성도는 구원의 조건으로서 가혹한 법조문 문자의 겉치레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결론: 성경을 자구적으로만 보면 오독하기 쉬우므로 원어의 어원과 함의, 저자의 신학적 배경을 명확히 주석해야 합니다. 성도는 십자가로 완전히 성취된 옛 법조문의 묵은 형식(의문)에서 벗어나, 율법의 본질인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온유함의 취지를 깨달아 날마다 성령의 새로운 은혜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