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3 은밀한 포식자들과 플라잉 몽키
⑤여행에서 돌아왔다#26》0730 AI 수정 및 협업 삶의 변곡점입니다.
by관찰작가의 여유시간
Jul 30. 2026
댓글을 통한 작은 소통은 단단히 잠겨 있던 내 뇌를 조금씩 일깨우는 촉매가 되었다. 나는 점차 짧은 답글을 넘어 현장 노하우와 장비 메커니즘을 상세히 다룬 글을 게시판에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뇌 회복을 위한 나만의 훈련이자, 모르는 이들에게 순수한 배려로 건네는 정보 공유였다.
그러나 그 순수한 호의가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자 탐나는 먹잇감이 된다는 사실을, 당시의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몸이 아픈 후로 세상과 인간에 대한 공부를 따로 해본 적이 없었다. 머릿속 깊은 곳까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의심하는 능력은 아직 둔화되어 있었고, 그저 내 몸에 배어 있는 대로 타인을 배려하고 진심으로 대하면 되는 줄만 알았다. 생존을 위한 기본 방어 기제조차 작동하지 않는, 지극히 무방비한 상태였다.
카페라는 밀폐된 공간의 그늘 속에는 생각보다 훨씬 어두운 욕망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곳에는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하며 은밀히 세력을 형성하려는 나르시시스트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쓴 글과 이전의 답글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내 정보와 성향을 샅샅이 수집하기 시작했다.
나는 게시판에 이렇게 적었다.
"처음 악보 보고 연주하여 곡을 몇 번 소리로 들으면 그걸 건반에서 찾기 위해 악보를 덮고 건반 소리를 먼저 익혀야 합니다. 악보를 보지 말고 소리를 찾아 한 마디씩 연주하다 보면, 눈이 아니라 머리가 기억하고 손이 기억합니다."
며칠 뒤,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이 떠돌고 있었다. "악보를 보지 말라고 했다"는 한 줄만 잘라내어, 초보자에게 악보 없이 연주하라고 가르치는 무책임한 사람으로 나를 몰아가는 프레임이었다. 앞뒤 맥락도, 건반 소리를 익히는 과정도 통째로 사라진 문장이었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내가 하지도 않은 행동, 쓰지도 않은 마음을 들먹이며 공작을 벌이는 자들을 보며, 그저 거짓임을 알기에 크게 개의치 않으려 했다.
하지만 진짜 공포는 그다지 머지않은 곳에서 시작되었다.
거짓이라는 것이 너무나 명백했음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터무니없는 비방을 그대로 믿고 따라오는 회원들이 점차 늘어났다. 나르시시스트가 던진 거짓 떡밥에 낚여 가해자 편에 서서 대신 돌을 던지고, 선동당해 집단 폭력에 동조하는 무리들. 훗날 인간의 어두운 본성과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독학으로 공부하며 알게 된 개념, 바로 '플라잉 몽키(Flying Monkeys)'였다.
이 플라잉 몽키의 무리는 단순한 몇몇 회원에 그치지 않았다. 카페의 질서를 잡아야 할 운영진까지 포함하여, 전체 구성원의 무려 30%가량이 이 가스라이팅과 선동의 그물망에 얽혀 있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겨우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민 나에게 돌아온 것은 배려의 결실이 아닌 혹독한 철퇴였다. 배려를 약점으로 잡고, 정보를 무기화하며, 대중을 선동해 사람 하나를 고립시키는 포식자들의 잔혹극.
그 무자비한 집단 가스라이팅의 한복판에, 방어 기제가 모두 무너진 채 홀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