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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브레노스창의영재교육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김경현 BRENOS
1989년 루마니아에서 20여 년 동안 독재정치를 해온 니콜라에 차우셰스쿠(Nicolae Ceauşescu)가 혁명으로 체포되어 사형을 당했다.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루마니아가 드디어 서방세계에 드러나면서, 루마니아 고아원의 비참한 상황도 서구에 공개되었다. 수백 명의 아이들을 겨우 몇 명의 보모들이 키우고 있을 정도로, 고아의 수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이유는 차우셰스쿠의 정책에 있었다. 1965년 정권을 잡은 차우셰스쿠는 인구가 많을수록 국력이 신장된다고 생각하여 1966년부터 피임과 낙태를 금지했고, 가임여성은 무조건 네 명 이상의 아이를 낳도록 강요했다. 만일 아이를 낳지 않으면 ‘금욕세’를 매겼다. 그 결과 출산율 자체는 올라갔으나, 키울 여력이 없던 루마니아 국민들은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거리에 부랑자가 늘어나고, 수천 명의 아이들이 고아원에서 자랐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보모 한 명이 수십 명의 아이를 돌보는 것은 예사였고, 생후 1년 미만의 아기들이 기둥에 매단 우유병으로 우유를 먹는 등 방치되어 있었다.
조사에 따르면 고아원의 3세 아이는 울지도, 말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신체발달이 정상의 3~10퍼센트 수준으로 운동과 정신기능이 많이 지체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사람이 다가가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한두 가지 행동만 반복하고 있었다. 이들은 영구적인 애착장애가 있다고 판단되었는데, 알고 보니 이런 상태로 자라난 아이들 중 일부는 차우셰스쿠 정부의 친위대이자 비밀경찰인 세쿠리타테가 되었다. 그들은 감정을 느끼지 않았고 사이코패스 같은 잔인함을 겸비했으며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했다.
독재자의 만행으로 인한 인위적인 참상으로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경험하는 애착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영국의 정신분석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존 볼비(John Bowlby, 1907~1990)는 초기의 애착형성이 인간 본성의 가장 중요한 기본이 되고, 애착형성이 잘 되지 않으면 아동기뿐 아니라 성인기의 여러 가지 정신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애착이론을 정립했다.
영국 런던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볼비는 그 자신이 주로 유모의 손에서 자랐고, 겨우 7세 때 기숙학교에 입학했다.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컬리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한동안 비행청소년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고, 의과대학에 들어가 의사가 된 후,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에 장교로 복무하면서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였고, 1920년 설립한 런던의 정신병원이자 정신의학 연구기관인 타비스톡 클리닉(Tavistock Clinic)의 부원장이 되었다. 이런 개인적 경험은 전쟁 중 어머니를 잃어 모성경험이 결핍된 아이들에 대해 관심으로 이어졌다. 1950년 세계보건기구로부터 대형 탁아시설이나 고아원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어떤 심리적 영향을 받는지에 대한 연구를 위탁받았다. 「어머니의 보살핌과 정신건강(Maternal Care and Mental Health)」이란 논문에서 그는 아이가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경우 성인이 된 후에도 지적·사회적·정서적 지체를 경험하게 된다고 보고했다.
5년 후 볼비는 2차 연구로 4세 전에 부모와 떨어져 결핵요양소에서 약 5개월에서 2년 정도 지낸 7~12세의 아이들을 분석하고 추적·관찰했다. 이들은 정상적으로 자라난 아이들에 비해서 훨씬 거칠고 주도성이 떨어지거나 과도하게 흥분할 때가 많았다. 이런 관찰 결과를 바탕으로 생애 초기에 어머니의 적절한 돌봄 행동에 의해서 아이가 갖게 되는 안정적 애착(attachment)이 자신과 타인,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내적인 작동모델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된다는 이론을 세웠다. 이때 만들어진 모델이 성인이 된 다음에도 그 사람의 대인관계에 대한 생각, 느낌, 기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개념의 배경에는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Konrad Lorenz, 1903~1989)가 있다. 1935년 로렌츠는 알에서 갓 부화한 오리가 자신을 따라오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공개하면서, 동물에게는 태어나자마자 처음 본 움직이는 물체에 강한 유대감을 느끼는 ‘각인(imprinting)’이라는 현상이 있음을 주장했다. 볼비는 로렌츠의 개념을 인간에게도 적용해서 생물학적으로 아기와 엄마는 서로에게 애착을 형성하려는 본능적 동기가 있다고 보았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아기는 무력한 존재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엄마를 옆에 두려는 본능적 욕구가 있고, 엄마는 그런 존재에게 애착을 느끼도록 세팅되어 있으므로 엄마에게도 돌봄 행동이 본능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본능이 적당히 충족이 되면 안정적 애착이 형성되어 건강한 정신발달을 하지만, 갓 부화한 오리새끼가 그랬듯, 그 본능에는 결정적 시기가 있다. 만 2세 이전이 바로 그 시기인데, 이때 안정적 애착을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상황이 생기면 아이의 발달에 영구적 손상이 생길 위험이 발생한다. 이 손상으로 인한 결핍은 이후에 어떤 보상을 한다고 해도 만회되기 어려워서 성인기에도 성격적 결함이 발생하거나 정신병리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
적절하게 영양을 공급하고 위생을 제공한다고 해서 아이가 제대로 크는 것이 아니라는 볼비의 주장은 당시 유행한 ‘아이를 따로 재워라’, ‘응석을 받아주지 말라’ 등 벤저민 스포크(Benjamin Spock, 1903~1998) 박사의 육아법에 반하는 내용이어서 논란이 되었다.
1959년 해리 할로(Harry Harlow, 1905~1981)가 볼비의 이론을 지지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새끼원숭이를 어미와 격리시켜 철사로 만든 어미원숭이와 함께 있게 한 것이다. 차갑고 딱딱한 모형 철망에 우유병을 걸어놓은 경우와 우유병은 없지만 철망을 헝겊으로 싸놓은 두 가지 경우를 제시하자, 새끼원숭이는 따뜻함을 주는 헝겊원숭이를 선택했다. 이 실험으로 애착에서 정서적인 만족이 중요하다는 점이 입증되었다.
볼비는 아이가 엄마를 향해 애착을 형성하고 싶은 신념이 있는데,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엄마가 적절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경우 ‘부분적 박탈’이나 ‘완전한 박탈’을 경험할 수 있다고 했다. 부분적 박탈의 조짐은 사랑에 대한 과도한 요구, 죄책감이나 우울감이고, 완전한 박탈은 안절부절못하는 초조함이나 어떤 상황에도 반응하지 않는 것 등이다. 청소년기나 성인기로 넘어가면 이런 박탈경험으로 인해 피상적 대인관계, 감각추구, 집중력의 결함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엄마가 적절히 반응해 주지 않는 경우 처음에는 저항(protest)하다가 이어서 절망(despair)하고, 결국 이탈(detachment)하게 되는 과정을 겪는다. 애착형성에 중요한 것은 아이가 돌보는 이에게 얼마나 편하게 도달할 수 있는가와 돌보는 이가 얼마나 일관되게 반응성을 유지하는지가 핵심적이다. 이를 한 마디로 ‘유효성(availability)’이라 한다.
볼비의 애착이론은 이후 그의 제자 메리 에인스워스(Mary Ainsworth, 1913~1999)에 의해 객관적 평가가 가능한 단계로 발전했다. 그녀는 1969년 애착을 평가하는 상황 실험인 ‘낯선 환경 실험’을 고안했다. 먼저 장난감이 있는 실험실에 엄마와 아이가 들어갔다. 뒤이어 낯선 사람이 들어가고, 얼마 있다가 엄마는 그 방을 떠나고 아이가 낯선 사람과 둘만 있게 했다. 15분 정도 지난 후 엄마가 돌아오고 아이의 반응을 관찰한다. 에인스워스는 애착에서 중요한 것은 엄마가 떠날 때가 아니라 엄마가 다시 돌아왔을 때의 반응이라고 판단했다. 이때 아이가 보이는 반응을 안정 애착, 불안정-회피 애착, 불안정-저항 애착의 세 가지로 나눴다. 약 70퍼센트가 안정 애착을 보이는 데 반해, 엄마가 방에 있을 때에도 무관심하고, 돌아와도 별 반응이 없는 불안정-회피 애착이 15퍼센트 정도였다. 엄마와 있어도 낯선 이에게 불안해하고 엄마가 나갔다가 오면 화를 내고 쉽게 감정을 안정시키지 못하는 아이들이 15퍼센트로 이들을 불안정-저항 애착이라고 했다. 에인스워스는 엄마가 적절히 아이의 요구에 반응해 주면 안정 애착을 형성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 불안정 애착을 형성하고 이는 이후에 불안장애나 우울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볼비는 애착이론을 정립하면서 어린 시절의 엄마와 아이 사이의 안정적인 상호관계가 정상적인 심리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입증했고, 이를 이론적으로 정리했다. 엄마는 아이의 ‘정서적 안전기지(secure base)’가 된다. 마치 빌딩을 지을 때 기초공사로 땅을 깊이 파서 철심을 박고 콘크리트를 충분한 양을 부어 넣어야만 높이 올려도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건물이 될 수 있듯이, 애착형성은 엄마가 아이의 마음에 기초공사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정신분석가인 볼비는 아이들을 직접 관찰해서 상당히 체계적으로 연구했고, 또한 당시 생물학과 동물 연구 등의 최신 연구 성과들을 통합해 체계화했다는 점에서 정신의학을 진일보시켰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성인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는 프로이트와 유사하지만, 개념적으로는 프로이트의 관점과 먼 방향으로 발달해 나갔다고 할 수 있다.
애착형성의 결함이 향후 인격발달의 문제, 정서적 결핍이나 우울/불안과 같은 정신병리의 발생에 주요한 원인이 된다는 그의 이론은 이후 많은 연구들을 통해 입증되었다. 이혼이 급증하고, 성인이 된 다음에도 혼자 사는 싱글의 비중이 많아진 현대사회에서 생애 초기의 애착경험은 성인기의 안정적 정서 유지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존 볼비의 애착이론이 현대인의 정신병리를 이해하는 데 유효한 이유다.
첫댓글 애착...
모유...어쩌면 애착의 시작점이 아닌지...또 한가지 분명한것은 유아기 때에 엄마의 품에 꼬옥~안겨 성장한 사람과.. 그렇지 못하고 성장한 사람의 결과(?)을 보면 전혀 다른 정신건강을 가짐을 경험상 뼈저리게 느낍니다...저의 유아기 경우에 엄마의 가슴에 묻혀(?) 있던 시간들이 거의 없었기에..성장해서 보니 정서적으로 늘 어떤 불안감과 염려와 강박 등이 있었던것 같습니다..반면 애착이 있었던 사람들을 보니 대체로 정서적으로 안정되며 모든일에 자신감을 가졌지 않나 생각도 해봅니다...아무튼 이제 아기를 갓낳은 어머니들은 가능하면 아기를 늘 가슴에 포옥~안고 잠자기도하며 등등...애착의 반대는 '상실' 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