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치는 [역사와 계급의식]의 몇 가지 문제점에 대해 자아비판을 하지만 이 총체성
개념은 버리지 않았다. 이를 작품의 유기적 구성에 대한 강요 따위와 혼동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유기적 구성의 환상을 열심히 깨고 싶어 했던
브레히트도 사물화에 맞선 루카치의 투쟁에 흔쾌히 동참할 것이다. 총체성 개념에서 어떤 신적 전지전능을 연상하지는 말자. 총체성에 대한 요구는
가능한 한 포괄적인 맥락에서 본질과 비본질의 경중을 따지면서 사태를 이해하자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이다. 인간의 지적 능력에 불가피하게
따르는 일면성에 쉽게 굴복하지 말자는 고무의 말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실천적 위치를 빼먹고 현실에 대해 논하지 말라는 경고로
해석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총체성을 맑스주의의 요체로 부각시킨 루카치도, 그와 대립각을 세우며 그의 리얼리즘론을 넘어서고자 했던 브레히트도 초역사적 총체적
진리를 남겨놓지는 않았다. 그들이 평등사회로 나아가려 고투하며 남긴 인식들은 역사적 조건의 산물들이기도 하다. 그 속에는 과장과 왜곡과 일면적
이해들이 산재해 있다. 그들의 투쟁흔적에서 합리적 핵심을 끄집어내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도 물론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