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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결혼생활
배정규, 김연수 (2013). 잡초인생. 저서의 4장
“행복한 결혼생활은 병이나 장애 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아니라,
부부가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고 아끼는지에 달려있다.”
부부로 산다는 것
1. 잉꼬부부 : 마르티노와 마르티나
정신장애인은 짝이 없이 혼자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부부로 사는 경우도 있다. 당사자끼리 부부인 경우도 있고, 일반인과 결혼한 경우, 외국여자를 데려와 결혼한 경우도 있다. 내 눈에는 혼자 사는 경우보다 부부로 사는 경우가 행복해 보인다. 또한 당사자끼리 사는 경우가 보다 행복해 보인다. 그런데 어떤 형태의 부부인가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부부간에 얼마나 다정한지이다. 부부가 서로를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면 병도 많이 낫고 삶도 행복하다. 부부가 싸우면 증상이 심해지고, 재발해서 입원하고, 삶의 의욕도 꺾이고 우울해진다.
마르티노의 아내는 마르티나다. 둘이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만났다. 결혼한 지 8년 됐다. 동네에 잉꼬부부로 소문났다. 주변사람들이 부러워한다. 늘 둘이 손을 꼭 잡고 다닌다. 9살 어린 신부라 그런가? 남편이 아내를 많이 예뻐한다. 둘이만 살다보니 집에서 밥 해먹는 거나 동네식당에서 밥 사먹는 거나 비슷하게 치인단다. 그래서 외식을 자주한다. 둘 다 기초생활수급자다. 남편이 돈을 관리하며 가끔 아내에게 수급비 중 일부로 용돈을 준다. 어쩌다 용돈을 받으면 아내는 기분이 좋아진다. 자기 용돈으로 내게 종종 밥도 사주고 통닭도 시켜준다. 마르티노 부부는 아이 가질 생각이 없다. ‘임신 기간 중에 약을 끊어서 재발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 ‘애를 낳았다가 자식도 정신장애인 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제일 큰 이유는 돈이다. 지금 형편으로는 애를 키울 수가 없다.
마르티노 주변에는 친구가 많다. 부부가 함께 밖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자기들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하기도 한다. 다솜 부부와는 특히 서로 자주 내왕한다. 다솜 부부는 둘 다 정신장애인이지만 장애등록은 하지 않았다. 다솜은 컴퓨터 수리기사다. 파란마음센터 컴퓨터 설치도 해줬고 우리 집 컴퓨터도 고장 나면 고쳐준다. 일을 시켜봤더니 엄청 꼼꼼하고 친절하다. 다솜 아내는 간호사다. 다솜 내외도 잉꼬부부다. 저녁시간과 주말시간을 늘 함께 보낸다. 마르티노 부부는 비슷한 또래의 목사님 부부와도 자주 내왕한다. 목사님 부부도 둘 다 정신장애인이다. 둘 다 장애등록은 하지 않았다. 목사님은 얼마 전까지 조그만 개인사업과 개척교회를 병행하셨다. 최근에는 개척교회는 포기하고 개인사업에만 주력하고 계신다. 연배가 좀 되신 목사님 부부도 계신다. 목사님은 정신장애인이고 사모님은 비장애인이다. 젊은 날 개척교회를 시작하셔서 지금은 탄탄히 키워 놓으셨다. 얘기를 들어보면 사모님 공이 컸다. 목사님은 정신장애인 대안학교도 운영하고 계신다. 사모님은 정신장애인 공동작업장과 알뜰매장을 운영하신다. 이런저런 어려움을 잘 극복하신 것도 대단하지만 다른 정신장애인들을 위해 애쓰시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마르티노와 마르티나는 심심하다. 눈뜨면 할 일이 없다. 그래서 매일 ‘오늘은 뭘 하면서 재밌게 지내지?’를 생각한다. 시간과 돈은 참 묘하다. 시간이 많으면 돈이 없고 돈이 많으면 시간이 없다. 둘 다 갖기가 힘든가보다. 그게 세상 이치인가? 마르티노는 매일매일 ‘뭘 할지? 누구를 만날지?’를 잘 궁리해낸다. 때로는 아내 마르티나가 제안하기도 한다. 둘은 언제나 함께 다닌다. 양가 부모, 형제들 집을 자주 찾아가고 당사자 친구들 집도 방문하고 서점이나 시내 공원도 자주 간다. 시내 요소요소에 있는 무료급식소, 1,500원짜리 자장면 집, 2,500원짜리 칼국수 집, 차주문 안하고 물만 마시고 나와도 되는 찻집 등을 많이 알고 있다. 큰 돈 안들이고 시내에서 하루 종일 즐기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마르티노는 정을 낼 줄 안다. 누가 입원했다하면 면회 가고 아프다 하면 찾아가고 외롭다 하면 집으로 부른다.
마르티노는 너그럽다. 마음에 여유가 있다.
아내 마르티나가 어떤 말을 해도 다 받아준다. 과거 연애얘기, 첫사랑 얘기, 우연히 봤던 어떤 남자가 자꾸 생각난다는 얘기. 보통 남자들 같으면 질투가 나서 듣기 힘든 얘기를 웃으면서 들어 넘긴다. 변비 땜에 힘들다는 얘기. 환청으로 들은 욕설이나 성행위와 관련된 직설적 표현 등을 해도 웃으며 들어준다. 아내 마르티나와 대화할 땐 자주 당황스럽다. 모든 걸 숨김없이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머리 안 감았죠?”, “이상한 냄새나요.”, “옷이 그게 뭐예요. 별로예요”, “교수님 귀여워요.” 아무튼 누구에게나 느낀 그대로 표현한다. 때로는 남편이 있는 앞에서 “사모님 부러워요. 교수님하고 같이 살고 싶어요.” 한다. 마르티노는 “아내에게 많이 배워요.” 한다. 머리 굴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솔직함이 대단하단다. 하긴 나도 마르티나를 볼 때마다 “솔직해서 좋아. 투명해. 겉과 속이 같아.”라고 느낀다. 그게 강점이다.
마르티나는 그 솔직함 때문에 주변사람들로부터 지적도 많이 받고 혼도 많이 났다. 처음에는 시댁 어른들로부터도 혼이 많이 났다. 지금은 시댁 식구들도 친정 식구들도 남편의 친구들도 모두들 그 솔직함을 받아준다. 남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무례한 표현도 마르티나에게는 허용된다. 겪어본 사람들은 그게 나쁜 뜻이 아니라 느낀 그대로 표현하는 거라는 걸 안다. 그리고 겪어보면 그게 오히려 참 편하다.
마르티나는 지금 엄청 좋아졌다. 다들 깜짝 놀란다. 남편의 공이 크다. 결혼한 지 8년 됐는데, 6년을 남편이 혼자 살림 다 하고 항상 붙어 다녔다. 불안해서 “이렇게 해 달라. 저렇게 해 달라.” 주문사항이 많았다. 그 모든 걸 다 묵묵히 하자는 대로 해줬다. 사람 좋아하는 마르티노가 아내의 불안 때문에 사람들 제대로 못 만나고 산 세월이 6년이다. 아내도 남편의 공을 안다. 엄청 감사해한다. 남편하고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단다. ‘병은 정성으로 낫는다.’ ‘공을 들여야 한다.’ 내가 즐겨 하는 말이다. 마르티노와 마르티나를 보면 정말 그렇다.
2. 집안 살림 : 구체적으로 가르치면 된다.
며칠 전 우리 집에 5~6명의 손님이 왔다. 마르티노 부부도 끼었다. 저녁을 먹고 다 같이 커피를 마시는데 마르티나가 안 보인다. 뭐하나 했더니 안방에서 아내 옆에 앉아 빨래를 개고 있다. 깜짝 놀랐다.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 집에 오면 손 하나 까딱 안했다. “저는 설거지할 줄 몰라요. 못해요.” 했다. 내 아내를 어려워해서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런데 달라졌다.
원래는 자기 집에서도 손 하나 까딱 안했다. 자기 집 설거지를 시작한 게 작년이다. 마르티노에게 집안 살림을 어떻게 가르쳤는지 물어봤다. 처음에는 살림 안한다고 화를 많이 냈단다. 마르티나가 “말도 마세요. 저 살림 안한다고 구박하고 화내서 무서워서 혼났어요. 저를 얼마나 군기잡고 시집살이를 시키려 하는지. 지금도 가끔 무서워요.” 한다. 살림 가르치는데 1년쯤 걸린 줄 알았다. “3년 걸렸어요.” 한다. 깜짝 놀랐다. 그렇게나? “처음엔 몰랐죠. 5년쯤 지나서야 알게 됐어요. 살림을 안 해봐서 몰라서 그렇구나. 낯설어서 겁내고 피하는 거구나. 화내서 될 문제가 아니구나. 생각을 바꿨어요. 가르쳐야겠다. 하나씩 구체적으로 차근차근 가르쳐야겠다. 처음에는 청소부터 시작했어요. 매번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궁리했어요.” 마르티나가 “처음에는 청소 잘 못했어요. 대충했어요. 요즈음 4달쯤 됐나? 깨끗하게 한 게. 지금은 재미있어요.” 한다.
“청소하기 가르치는데 1년쯤? 청소하는 게 웬만큼 익숙해지고 나서 밥하기 가르쳤어요. 3달쯤 걸린 거 같아요. 처음에는 쌀 씻기부터 가르쳤죠. 1달쯤 지나서 물 대중하는 거 가르치고. 물 대중 하는 거 가르치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2달쯤 걸렸나? 매번 밥솥에 물 붓고 손 담가서 물 대중하게 하고 ‘이 정도가 적당해.’ 하고 알려 줬어요. 밥솥도 벽 가까이 두면 벽에 김이 서리니까 ‘이 정도 띄우는 게 좋아.’ 알려줬어요. 밥통 닦는 것도 여러 번 시범보이고 닦게 하고 매번 ‘잘 했어.’ 칭찬했죠. 3달쯤 지나니까 밥할 때 물어보지 않고 혼자서 잘 해요. 그래서 설거지 가르치고. 설거지도 혼자서 하기까지 3달쯤 걸렸죠. 그리고 세탁기 돌리기가 3~4개월 걸렸어요. 아직 세제는 잘 못 맞춰요. 세제 맞추는 건 요즈음에도 제가 도와주죠. 그리고 빨래개기 가르치고. 다시 청소 가르치고.”
대단하다. 마르티노도 처음에는 몰랐다. 5년간 화내고 구박했다. 그러다가 알았다. 생각을 바꿨다. ‘걸레 빨기’처럼 간단한 일도 일주일 이상 계속 시범을 보여줬다. 자신감이 생겨서 스스로 하려 할 때까지 기다렸다. 스스로 하려 하면 한 가지씩 해보도록 조금씩 일감을 넘겨줬다. 아주 단순한 일이라도 하고 나면 칭찬하고 격려했다. 절대 “이게 뭐야?”라고 하지 않았다. “잘 했어. 그렇게 하면 돼. 그런데 이건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아.”라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매번 칭찬하고 끊임없이 격려했다. 조금씩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자신감이 생기면 그 일은 자기가 하려했다. 그렇게 살림을 한 가지씩 자기가 맡아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살림에 재미를 붙였다. 마르티나는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요. 뭐라도 하면 재밌고 시간도 잘 가요. 가만있는 거보다 청소하고 움직이는 게 좋아요.” 한다.
작년부터 자기 집 설거지는 도맡아 했다. 그런데 밖에서는 “설거지 못해요. 안 할래요.” 했다. 꾀부린 게 아니다. 낯설어서 그랬다. 자기 집과 그릇도 다르고 싱크대 위치도 다르니까 낯설고 두려워서 시도할 엄두를 못 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우리 집에서도 설거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설거지할 때 옆에서 지켜만 보도록 했다. 그 다음에는 설거지한 그릇 건네주면 받아서 선반 위에 올려놓는 것만 돕도록 했다. 그 뒤에는 선반에 올려놓기 전에 한 번 더 헹구도록 했다. 역할을 바꿔서 마르티나가 설거지하게 하고 옆에서 남편이 도왔다. 나중에는 혼자서 설거지 다하고 나면 점검해주고 “아주 잘했네.” 칭찬해줬다. 매번 칭찬해줬다. 지금은 잘했는지 점검할 필요도 없다. 파란마음쉼터에서도 자발적으로 설거지와 청소를 한다.
그런데 내 아내 옆에 앉아서 같이 빨래 개는 건 처음이다. 그래서 깜짝 놀랐다. 더 놀란 건 그들이 가고 나서다. 아내가 “가끔 자기 남편이 무서울 때가 있대요.” 한다. 그리고 또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단다. 뜻밖이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 아내를 어려워했다. 가까이 가기 힘들어했다. 그런데 이제는 스스로 옆에 가서 앉고 이런저런 얘기를 먼저 꺼낸다. 엄청 좋아졌다.
이 글을 보더니 마르티나가 “옷 예쁘게 입고 가면 뭐든지 일하고 싶어요.” 한다. “예쁜 옷 많이 사줘야겠네. 옷이 예쁘면 어깨가 으쓱하고 신이 나서 그런가?” 대꾸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남편과 같이 있거나 늘 같이 다니려 한다. 혼자 있으면 불안하단다. “어제는 남편이 안와서 울었어요.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2시간 지나니까 불안하고 무서웠어요.” 한다. 남편이 3시간쯤 볼일 보고 집에 오니 붙들고 울더란다. 많이 무서웠던 모양이다. 내 아내에게 그 얘기를 하니 이해를 못한다. “왜 무섭죠? 왜 울어요?”, “서너 살 된 애들 생각해 봐. 엄마랑 떨어지기 힘들어하잖아. 불안해하고. 한두 시간은 집에서 혼자 잘 놀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혼자 있는 게 무섭고, 엄마 기다려지고, 왜 안 오지? 언제 오지? 하고 엄마만 기다리잖아. 그 심정이겠지.”, “어른인데 그래요?”, “그럴 수 있지.” “남편이 아무 것도 못하겠네.”, “아직은 많이 불안해서 그렇지만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그렇다. 꾸준히 공을 들이면 괜찮아진다. 사랑을 듬뿍 주면 된다. 그러면 애들 자라듯이 자란다. 하루아침에는 안 된다. 충분한 시간을 주고 기다려야 한다. 위로하고 격려하고 칭찬해야 한다. 서로 의논하고 될 때까지 방법을 궁리하는 게 중요하다.
3. 여보야, 사랑해 : 호덕이와 착한바보
호덕이는 자기 아내에게 “여보야, 사랑해”라는 말을 수시로 한다. 호덕이도 잉꼬부부다. 호덕이도 아내와 다닐 때 늘 손을 꼭 잡고 다닌다. 매일 동네 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씩 돌고 같이 산책한다. 아내가 7살 연상이다. 3년 전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만났다. 둘 다 재혼이다. 결혼식도 못 올렸고 혼인신고도 안했으니 법적으로는 동거다. 둘 다 외롭게 살다 만난만큼 서로 잘하려고 노력한다.
호덕이 아내는 환청과 우울이 심하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우울하다. 그래서 잠이 많다. 처음에는 살림을 전혀 안했다. 같이 산지 3년째인데 처음 2년은 호덕이가 밥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다했다. 아내를 가만히 모셔두고 살았다. 호덕이는 늘 “세상에서 제일 큰 도둑은 사람 마음 훔치는 도둑이에요. 저는 아내 마음을 훔칠 거예요.”라고 했다. 그런데 한계가 왔나 보다. 그전에는 늘 “같이 살아줘서 고마워. 자기는 아무 것도 안 해도 돼. 내가 다 할게.” 했는데 얼마 전부터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자가 남편 밥 안차려 준다고 불만, 생활비 안 보탠다고 불만. 그래서 호덕이 아내도 밥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살림을 살기 시작했다. 생활비도 전혀 안 대다가 매월 10만원씩 대기 시작했다. 하긴 그래봐야 둘이 매월 55만원 남짓으로 생활하는 건데 살아가는 게 용하다.
호덕이 아내는 별칭이 ‘착한바보’다. 스스로 그렇게 지었다. 전에 같은 동네 살던 할아버지가 있었단다. 동네 청소하고 폐지 줍는 할아버지다. 하루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데 굳이 자신이 버려주겠다며 음식물 봉지를 달라하셨단다. 그래서 알 게 됐는데 어느 날부터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동네 아줌마들이 너도 나도 “그 할아버지 왜 안 보이지?”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추운 겨울 단칸방에서 혼자 쓸쓸히 돌아가셨단다. 하지만 다행인 건 아프지도 않고 하룻밤 사이에 돌아가셨단다. 복을 많이 쌓으셨던가 보다. 그날 이후로 호덕이 아내는 자신을 착한바보라 부르기 시작했다. 비록 가난했지만 남을 위할 줄 알았던 그 할아버지가 존경스러웠고 그렇게 살고 싶어서 착한바보가 되기로 했단다.
‘착한바보’는 늘 웃는다. 이래도 웃고 저래도 웃는다. 30년 세월 정신병을 앓으면서 도통했다.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다. 남들에게는 언제나 호인이다. 내게도 참 잘한다. 기초생활수급으로 사는 어려운 형편에도 “오늘 집에 놀러가요.” 하면 나를 위해 시장을 봐둔다. 음료수도 사놓고 커피도 사놓고 고기도 구워준다. 그리고 차비하라고 굳이 만 원짜리 한 장을 손에 쥐어준다.
그런데도 남편한테만큼은 그게 안 되나보다. “둘이 싸우지 말고 사세요.” 해도 잘 안 된다. 착한바보는 남편이 재발할까봐 걱정한다. 약 때문에 싸우고, 채팅 많이 하지 말라고 싸우고, “망상이다. 환시다. 인정해라.” 싸운다. 각자 자기 문제만큼은 아직 어쩌지 못하나보다. 아내는 남편이 재발할까 두려워 간섭하고, 남편은 간섭 받으면 자존심 상해한다. 아내의 ‘불안’과 남편의 ‘자존심’ 그게 건드려지면 싸운다. 우리네 보통의 부부들과 똑같다. 불안과 자존심 때문에 싸운다. 있는 그대로 받아주면 되는데 서로가 서로를 바꾸려 한다. 그러면서 아내는 남편에게 “고집 세다.” 하고 남편도 아내에게 “고집 세다.” 한다. 싸우면 아내는 환청이 심해지고 남편은 자살충동이 생긴다. ‘재발’이 두려워서 싸우는데, 그게 오히려 ‘재발’을 부추긴다. 이 간단한 사실을 왜 못 깨달을까?
4. 배우자의 정신장애를 돌보기
당사자끼리 부부이거나, 배우자가 정신장애인일 때, 보통의 부부와는 다르게 한 가지 과업이 추가된다. 배우자의 병을 돌보고, 병이 낫도록 협력하고, 병에도 불구하고 삶을 잘 살아가도록 지지하고 격려하는 일이다. 그런데 상당수 경우에 배우자들이 범하는 실수가 있다. 남편이나 아내가 병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않고, 남들과 똑같이 생활하고 기능하라고 요구하는 경우다. 이들은 배우자의 증상행동을 성격결함으로 생각하여 비난한다. 재발조짐을 보일 때 마음을 안정시켜주지 못하고, 오히려 화를 내고 비난하여 재발을 부추긴다. 반면에 남편이나 아내를 지나치게 환자나 장애인 취급을 하여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다. 배우자의 행동에 일일이 간섭하고, 어린애 다루듯이 하는 경우다. 이들은 가르치려하고 고치려한다. 당사자끼리 부부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증상관리법을 모르는 경우도 있고, 상대를 뜯어고치려고 마음먹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좋은 배우자는 다르다. 좋은 배우자는 상대가 병이 있지만 강점도 많다고 생각한다. 증상행동을 비난하기보다는 이해해주고 눈감아준다. 위로와 지지, 격려의 말을 해준다. 단점을 고치라고 요구하기보다는 장점을 발휘하라고 격려해준다. 배우자가 정신장애인일 때 대화법이 특히 중요하다. 상대의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 일이 대화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편이나 아내가 정신장애인일 때 배우자는 대화법훈련을 받는 게 좋다. 자신의 대화습관을 점검하고 좋은 대화법을 익히려해야 한다. 말 한마디가 병을 악화시키기도 하고 낫게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평소에 부부간에 대화를 많이 하는 게 좋다. 부부간에 불편한 마음이나 갈등이 있다면 방치하지 말고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부부갈등은 병에 나쁜 영향을 준다. 화목한 부부, 화목한 가정은 병을 치료하는 강력한 치료제다. 따라서 늘 부부화목, 가정화목을 생각해야 한다.
또한 재발조짐을 보일 때, 빨리 알아채는 게 중요하다. 무엇이 재발조짐인가? 배우자 입장에서 상대의 말과 행동, 생활습관이 평소와 다르다고 느껴지면 재발조짐일 가능성이 있다. 이때 배우자는 상대방에게 화가 나거나, 걱정이 되거나, 마음이 불안하고 조마조마한 느낌이 든다. 이러한 자신의 느낌을 잘 알아채는 게 중요하다. 또한 이러한 느낌이 들 때, 화를 내거나 비난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게 상대의 병을 알아주고, 인정해주고, 재발조짐 때 상대를 도와주는 방법이다. 병에 대해 모르고, 병을 인정하지 않는 배우자는 이 시기에 재발조짐에 따른 전조증상을 두고 상대를 비난하고 화를 낸다. 병을 인정하고, 상대의 병을 잘 돌보고, 상대가 병에도 불구하고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돕겠다고 결심한 배우자는 상대가 전조증상을 보이면 위기상황임을 알아챈다. 또한 화나거나 걱정되거나 불안해하는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잘 다스리면서, 상대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게끔 돕는다.
5. 이혼 위기
아주 험악한 부부도 있다. 집이 부자여서 정신장애인이면서도 대학, 대학원 다닐 때 자가용 몰고 다니며 친구들 만나면 자기가 밥값이며 술값이며 다 내던 친구가 있다. 대학원 다닐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대학원 마치고 한때 연구원 생활도 1년쯤인가 했다. 당시만 해도 집이 부자라 부모님이 아파트 사주고 한 달에 2백만원쯤인가? 생활비를 대줬다. 내가 그러지 마시라고 말렸다. “제 힘으로 돈 벌어 결혼하게 하셔야 해요.” 말을 안 들으신다. “며느리 저한테 데려오세요. 교육시켜야 해요.” 그래도 말을 안 들으신다.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았다. 백수로 지내며 부모님께 생활비 받아쓰고 주치의에게 매주 한 번에 10만원씩 내는 유료 정신치료를 10년 이상 계속 받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집안 형편이 급격히 나빠졌다. 어머니가 더 이상 생활비를 대줄 수가 없었다. 부부간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별거하고 최근에는 이혼소송 중이다. 부부만이 아니라 집안 간에 서로 원수가 됐다. 아내가 초등학생인 애들을 데리고 살며, 얼굴도 못 보게 해서 힘들어한다. 지금은 어머니와 아들이 전월세로 살고 있다. 어머니가 행상하고 아들도 최근 취업해서 간신히 먹고 살기는 하지만 재산이 전혀 없다. 하지만 아들은 ‘엄마가 아버지 유산 5억을 숨겨놓고 주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며느리도 한 동안 그렇게 믿었다. 아들은 수시로 “돈 내놔라.” 하며 어머니에게 폭언하고 폭행한다. 얼마 전에는 아들이 엄마 목을 졸라서 거의 죽을 뻔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동남아 신부를 데려다 결혼시킨 경우도 있다. 한 때 정신장애인 가족들 사이에 유행이었다. “한국에 잘 적응할 수 있게 공부도 시켜주시고 제게도 데려 오세요. 정신장애에 대해 교육시켜야 해요.” 해도 말씀을 안 들으신다. “밖으로 돌다보면 바람나서 가출하는 경우가 있다.”고 감시감독만 철저히 하신다. 애도 낳고 잘 살고 있다는 얘기까지는 들었다. 수년째 연락을 않고 지내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르겠다.
비장애인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경우는 많다. 한 당사자는 남편 될 사람이 “정신장애 있다는 얘기를 굳이 말할 필요 뭐 있나?”라고 해서, 시댁에는 정신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고 결혼했다. 2년쯤 살다가 애기 가지려고 약을 끊었다가 재발했다. 2개월 동안인가? 입원해 있는 동안 남편이 면회를 오지 않았다. 집에 가보니 술병만 잔뜩 쌓여있고 남편이 ‘어째야 하나?’ 혼자 고민만 하고 있었다. 화가 나서 그 길로 집을 나와 이혼해 버렸다.
이혼 위기에서 마음을 잡고 잘 사는 경우도 있다. 배우자가 헌신적인 경우다. 이들의 공통점은 ‘병에 대해 알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는 점이다. 병에 대해 알아가면서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다. 자신을 스스로 가족협회 연구위원이라 칭하시는 분이 있다. 영어독해 능력이 뛰어나서 정신장애에 대해 영어로 쓰인 단행본과 논문을 많이 읽으셨다. 직장생활하시며 30년 세월 조현증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아끼며 사신다. 또 어떤 분은 자신이 가게해서 돈 벌어 평생을 남편 옷 잘 입히고 용돈 두둑이 줘서 멋지게 살도록 뒷바라지 하신 분도 있다.
최근 가족교육 시간에 어떤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10여 년 전에 이혼위기 때 교수님 책보고 마음을 잡았어요. 교수님 가족교육을 듣고 싶었지만 8회기 교육비 5만원이 없어서 교수님께서 교재로 쓰시던 책만 사갔어요. 그 책 읽고 마음을 다잡고 책에 쓰인 대로 하려고 노력했어요.” 하신다. 마음이 뭉클했다. 「정신분열병과 가족」이라는 책이다. 가족교육을 하며 10년에 걸쳐 고치고 고쳐 쓴 책이다. 손명자·배정규 공저다. 1부 새로운 관점, 2부 정신분열병, 3부 재발방지, 4부 환자와 가족의 생활로 구성되어 있다.
내 눈에는 혼자 사는 것보다는 결혼해서 같이 사는 게 좋아 보인다. 덜 외로워 보인다. 노후에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결혼을 잘 해야 한다. 배우자에게 정신장애에 대한 교육을 시켜야 한다. 부부싸움 않고 화목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하며, 재발위기 때 마음을 잘 안정시켜주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이런 점에서는 같은 당사자끼리 결혼하는 게 유리한 것 같다. 비장애인과 결혼한 경우에는 정신장애에 대해 반드시 교육시켜야 한다. 제대로 된 책을 권하여 읽게 하고, 가족교육 강의를 듣게 해야 한다. 가족협회에도 가입시키고 가족모임에도 나가게 해야 한다. 외래진료 때 주치의에게 데려가서 인사시키고 종종 같이 진료 받으러 다녀야 한다. 결혼 초부터 그렇게 해야 한다. 무조건 예뻐 보이고 잘해주는 건 신혼 때뿐이다. 2~3년만 지나면 늦다. 권태기가 시작된다. 이때부터는 배우자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부부싸움이 잦아진다. 부부싸움을 하면 정신장애는 무조건 악화된다. 싸움을 하고 증상을 보이면 병을 핑계로 이혼 당한다. 또는 당사자가 자신의 화를 참지 못해 이혼해 버리고 만다.
6. 배우자 선택
결혼을 포기한 정신장애인도 있지만, 상당수는 결혼하고 싶어 한다. 여성보다 남성이 더 그렇다. 병동에서나 퇴원해서도 남자들은 여자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여자들은 쉽게 응하지 않는다. 이것저것 생각해보고 따지는 게 많다. 남자와 여자는 이성에 대한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남자는 외모를 보고 반한다. 여자도 외모에 끌리기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능력이다.
정신장애 때문에 외모가 못해지지는 않는다. 약물부작용으로 인한 식욕증가와 운동부족으로 몸무게가 불과 1년 만에 20킬로그램 정도 찌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상당수 당사자가 살빼기를 시도하고 성공한다. 20킬로그램 정도의 체중감량에 성공한 당사자는 매우 많다. 남자도 그렇지만 여자는 특히 더 그렇다. 살빼기에 관한한 일반인보다 정신장애인의 성공률이 훨씬 높은 것 같다. 상당수 당사자가 살빼기 전문가다. 대부분 음식절제와 강도 높은 운동으로 살빼기에 성공한다. 이렇게 볼 때 정신장애인의 의지력이 약하다고만 할 것인가? 당사자들도 필요하다 느끼고 스스로 결심한 일은 실천해낸다. 어떤 점에서는 일반인보다 의지력이 더 강하다.
정신장애는 외모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따라서 여성의 매력은 그다지 감소하지 않는다. 반면에 정신장애는 능력, 특히 경제적 능력을 저하시킨다. 정신장애인은 백수인 경우가 많다. 어쩌다 취업해도 흔히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유지하지 못한다. 따라서 장애가 있는 여성이든 없는 여성이든 정신장애인 남성을 결혼상대자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당사자만 그런 게 아니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남성의 부모에 비해 여성의 부모가 좀 더 완강하다. 여성의 부모는 자기 딸만은 일반인에게 시집보내려 한다. 예외가 있긴 하다. 딸의 증상이 엄청나게 심해서 부모로서 도저히 감당이 안 될 때는 다르다. 또한 딸의 나이가 40이 넘어서면 비로소 당사자끼리의 결혼도 괜찮지 않나? 생각해보는 정도가 된다. 결혼에 대한 태도도 다르다. 정신장애인 남성과 그 부모는 결혼을 쉽게 생각한다. ‘서로 외로운 처지니까 결혼식 올리지 말고 일단 한 번 살아보고, 서로 마음이 맞아서 잘 살면 그때 결혼식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이런 의도를 알아채면 정신장애인 여성과 그 부모는 분개한다.
이런 이유로 당사자끼리의 결혼이 쉽지 않다. 여기에 소위 전문가들이 가세한다. 당사자끼리 결혼하면 위기 때 대처가 잘 안 된다. 재발 가능성이 높아진다. 자녀도 정신장애를 지닐 가능성이 높아진다. 등등. 당사자끼리의 결혼을 폄하하고 일반인과의 결혼을 권장한다. 때로는 결혼 자체를 반대한다. 결혼생활 자체가 스트레스가 많아서 재발 가능성이 높아진다나? 내 생각은 다르다. 당사자든 일반인이든 만나서 싸우며 사는 부부도 있고 행복하게 사는 부부도 있다. 싸우면 서로에게 해가 되고 화목하면 서로에게 득이 된다. 각자의 선택이다. 다만 병만 놓고 생각할 게 아니라 삶을 두고 생각해야 한다. 어떤 삶이 더 행복할까?
부부싸움
1. 불안과 자존심 (1) : “환시다. 아니다.”로 싸우다.
전화가 왔다. “교수님 혹시 집에 들러주실 수 있나요?” 호덕이 아내 목소리다. “왜요?” “호덕씨가 지금 자살한다고 뛰어내리려 하고 난리가 났어요.” “예. 지금 바로는 안 되고 이따가 저녁에 갈게요. 좀 바꿔주세요.” “예. 전데요.” “호덕아 뭐가 속상했나? 저녁에 갈 테니까 그때 얘기하자. 속상한 맘 가라앉히고 일단 한숨자라.” 저녁에 집에 갔더니 베란다 방충망이 찢어져 있다. 뛰어내리겠다고 방충망에 머리를 박았단다.
“그래 왜 죽으려 했는데?” “아내가 제 말을 안 믿어주잖아요.” 호덕이가 채팅을 하다가 급하게 아내를 불렀단다. “여보야 빨리 와봐라. 여기 컴퓨터 화면에 애들이 나타났어. 애들이 철봉도 하고 운동장에서 뛰어놀아. 애들이 엄청 많아.” 아내가 가보니 컴퓨터 화면에 아무 것도 없고 그냥 채팅방 화면만 있었다. 그래서 아내는 환시라 하고 호덕이는 조금 전까지 분명히 있었다하고 둘이 한참을 싸웠단다.
“당장 입원시켜야 할 것 같아요. 요즈음 들어서 자꾸 깜빡깜빡하고 환시도 심하고 엉뚱한 말을 많이 해요. 제가 아니라 하면 엄청 화를 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재발한 것 같아요.” “제 보기에는 입원까지는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혹시 컴퓨터 채팅을 얼마나 했나요?” 밤새도록 했단다. “정신장애인들은 밤에 잠 안자면 다음날 바로 안 좋아요. 제 생각에는 밤에 잠 안자서 상태가 안 좋아진 것 같아요. 일단 오늘 하루 푹 재우고 내일 다시 의논하시죠. 그리고 다음에 또 그러면 환시니까 인정해라 망상이니까 인정해라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그러면 인정 안 해요. 싸움만 되요.” 덧붙여서 “상태가 안 좋네. 뭔가 힘든 모양이네.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안정시켜야겠다. 생각하시고 마음을 안정시켜주는데 주력하세요. 그러면 괜찮아져요.”라고 했다.
호덕이가 “교수님 제 생각에도 입원해야 할 것 같은데요. 자살충동이 자꾸 일어나요.” 한다. “그래? 왜 죽고 싶은데?” “아내가 제 말을 안 믿어주잖아요. 그래서 죽고 싶어요.” “입원하면 좋아질 것 같나?” “잘 모르겠어요. 입원한다고 해결될 것 같진 않아요.” “내 생각에는 아내가 너를 안 예뻐해 주고 네 말을 무시해서 네가 속이 많이 상한 것 같은데, 일단 오늘 하루 푹 자고 내일 의논하면 어떨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저 라면 하나 끓여주세요.” 하니 “내꺼도.” 한다. 같이 라면 먹고 다시 얘기를 나누었다. 두어 시간 지났다. “교수님이 좋아요.” “그래 네가 나 좋아하는 건 내가 잘 알지.” “이제 마음이 편해졌어요. 좋아요.” 그러고는 “여보야. 사랑해. 아까 내가 화 부려서 미안해.” 한다. “실없는 놈. 그럴 걸 죽는다고 난리쳐?” 하니 웃는다.
증상이 있을 땐 마음을 알아주고 달래주는 게 제일이다. 그런데 흔히들 마음은 봐줄 생각을 않고 약만 높이려 하고 입원만 시키려 한다. 호덕이는 아내가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을 때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난다. 화가 나면 증상이 심해진다. 호덕이 아내는 “환시다. 망상이다. 그걸 인정해라.” 한다. 호덕이는 더더욱 화가 난다. 그걸 인정하라 할 필요가 없다. ‘지금 상태가 안 좋구나.’ 생각하면 된다. ‘잠이 부족한가? 몸이 피곤한가? 마음이 불편한가?’ 생각해야 한다. 일단 다독여서 푹 재우고 휴식을 취하게 해야 한다. 심리적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 그러면 대개는 증상이 가라앉는다.
2. 불안과 자존심 (2) : “약 먹었다. 안 먹었다.”로 싸우다.
호덕이가 시무룩하다. 아내가 입원했단다. “왜? 환청이 심해서?” 답이 없다. “둘이 싸웠나?” “그게 아니고요. 저보고 입원하라 하잖아요. 제가 백지를 내놓고 내가 입원해야 되는 이유와 입원 안 해도 되는 이유를 적으라 했는데요.” 말이 길다. “네가 또 아내를 고문했구나.” “그게 고문이라요?” “그래 고문이지. 아내가 왜 입원하라던데?” “제가 약 먹었는데 한 시간 뒤에 또 약 먹으라 하잖아요. 보는 앞에서 두 봉지 먹어버렸어요. 아내가 저보고 정신이 깜빡깜빡하고 온전치 못하다고 입원하라 했어요. 그래서 제가 ‘네가 나만큼 입원해 봤나?’ 하고, 입원에 대해서 설명해주려 했어요. 근데 제 말을 안 들으려 하잖아요.”
또 약이다. 벌써 6개월도 넘었다. 며칠에 한 번씩 약 때문에 싸운다. 호덕이는 “약 먹었다.” 하고 아내는 “안 먹었다.” 한다. 호덕이 아내는 호덕이가 유일한 희망이다. ‘혹시 재발이라도 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한다. 그리고 약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약 빠트리면 재발할 거라 확신한다. 호덕이는 자기가 지금까지 20년 세월 혼자서 약 잘 챙겨먹어 왔고, 치료와 재활, 재기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신에게 배워야 하는데 아내가 자기를 가르치려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약 빠트렸다. 먹어라.” 하면 자존심 상해하고, 심하게 화를 낸다. 하루는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매직 사와라.” 한 달분 약봉지에 매직으로 모두 날짜를 쓰게 했다. 그러고는 한동안 싸움이 없었다. 그런데 싸웠단다.
“약봉지에 날짜 다 써놨잖아. 봉지 보면 알 텐데 왜 싸웠나?” 뭐라 뭐라 하는데 못 알아듣겠다. “그래 병원에는 데려다 줬나?” “자는 척 누웠는데 입원한다 하고 이것저것 챙기데요. 모른 척 했어요. 학교에 전화하더니 보름쯤 쉰다 하데요.” 옆에서 마르티노가 낀다. “형수님 아침에 전화 와서 환청이 심해서 입원한다 하시데요.” 집에 와서 아내에게 말했다. “호덕이 부인 입원했대.” “왜요?” “둘이 싸워서 아내 환청이 심해졌나봐.” “그런다고 입원해요?” “환청이 심하면 괴롭지. 그래 입원한 거지.” “어유 무서워서 부부싸움도 마음대로 못하겠네.”
맞다. 부부싸움도 마음대로 하면 안 된다. 가급적 싸우지 말아야 하고, 싸우더라도 요령껏 싸워야 한다. 싸우면 팔다리가 저리고 호흡이 얕아지고 숨이 멎을 것 같아서 응급실 가는 경우도 있고, 속상하다고 울어서 비염과 천식이 심해져 응급실 가는 경우도 있다. 여기저기 실핏줄이 저절로 터져서 온몸에 멍이 드는 수도 있다. 호덕이 아내처럼 환청이 심해져서 입원하는 경우도 있고, 망상이 심해지는 경우도 있고, 정신이 혼란해지는 경우도 있다. 자살충동이 생기는 경우, 폭력적으로 되는 경우, 술을 왕창 먹는 경우, 바람을 피우는 경우, 돈을 막 써버리는 경우 등 싸움을 감당 못해서 뒤탈이 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따라서 함부로 싸우면 안 된다. 요령껏 싸워야 한다.
호덕이는 아내의 불안한 심정을 알아주면 된다. “약 빠트렸다. 먹어라.”하면 ‘불안해하는군. 내가 잘못될까봐 걱정하는군. 어떻게 하면 불안을 가라앉혀줄 수 있을까?’에 생각이 미쳐야 한다. 그리고 ‘약 때문에 걱정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를 궁리해야 한다. 그런데 자존심 상해하고 화를 낸다. 자존심 세우기에 바빠서 아내의 마음이 보이질 않는다.
호덕이 아내는 남편이 화를 내면 ‘자존심 상했구나.’에 생각이 미쳐야 한다. 그리고 ‘약 빠트리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궁리해야 한다. 사실 오늘 하루 약 안 먹는 건 아무 문제없다. 그렇다고 바로 재발하지는 않는다. 잘 궁리해서 내일부터 안 빠트리게 하면 된다. 그런데 그게 안 된다. 어떻게든 오늘 약을 먹이려 한다. 불안한 마음에 휩싸여 남편의 자존심에 마음이 미치질 못한다.
3. 싸움의 후유증 : 아내 입원으로 힘들어하다.
며칠 후, 아내를 입원시켜 놓고 호덕이가 얼마나 심란해할까 싶어 집에 갔다. 가족이 입원하면 남아 있는 가족은 우울하다. 첫 입원의 경우 가족들은 심한 심리적 충격과 죄책감을 경험한다. 이후 강도는 많이 약해지지만 매번 입원 때마다 가족들은 심리적 충격과 죄책감을 느끼며 우울해한다.
방에 불도 켜지 않고 깜깜하다. 저녁도 안 먹었단다. 엄청 우울하고 힘든 모양이다. 두 사람 있던 집에 혼자 있는 걸 보니 내 느낌도 썰렁하다. “너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 우리 집에 가자.” 억지로 집에 데려왔다. 아내가 고맙게도 밥을 새로 하고 불고기도 구워냈다. 밥 먹이고 같이 마르티노 집에 갔다. 마르티노가 호덕에게 “많이 힘들죠?”하며 자기도 아내가 병원 입원했을 때 엄청 우울했다 한다. 그래서 아는 형이 한 달인가 두 달. 아내가 퇴원할 때까지 자기 집에 와서 생활해 줬단다. 그 형 덕분에 힘든 시기를 견뎠다 한다.
“마르티노는 8년차 부부지? 마르티노도 예전에는 험악하게 싸웠지? 내가 알기로 둘이 싸워서 입원도 많이 한 걸로 아는데.”하니 아내 마르티나가 “말도 마세요. 시댁하고 친정에 다 전화해서 이혼한다 하고 난리 났었어요. 진짜 험악하게 많이 싸웠어요.” 한다. 마르티노가 “5년 6년쯤 됐을 때 정말 많이 싸웠어요. 이젠 안 싸워요.” 한다. 둘이 정말 많이 싸웠다. 그래서 둘이 번갈아가며 입원도 많이 했다. “호덕이는 이제 3년차니 이제부터 싸움 시작이네. 앞으로 많이 싸워야겠네.” 하고 웃으니, “안 싸울 거예요.” 하고 쑥스러워 한다.
마르티노가 묻는다. “형수님 언제쯤 퇴원할까요?” “자의입원이니 언제든 퇴원할 수 있지. 내 생각에는 열흘이나 보름쯤 입원하고 퇴원할 거 같은데. 본인이 입원할 때 학교에 전화해서 그 정도 쉰다고 했고. 증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편하고 싸워서 속상해서 입원한 거니까.” 호덕이가 “저 버릇 고치려고요?” 한다. “그래. 네 화내는 버릇 고치려고. 그러니 집에 있으면서 우울해 하지 말고 둘 중에 하나를 해. 같이 입원하든지. 아니면 아내 없는 동안 집안 대청소하고 이불빨래하고 그릇 다 꺼내서 닦고, 집안을 반짝반짝하게 만들어서 아내가 집에 와서 깜짝 놀라게 만들어.” “두 가지 다 생각해 봤어요. 집안청소 할게요.” “하루에 한 가지씩만 해. 청소도 한 번에 하려 하지 마. 그러면 엄두가 안 나서 못해. 내일은 화장실 청소만 반짝반짝하게 해. 물청소하고 구석구석 닦아. 그리고 모레는 안방. 그런 식으로 해.”
한 마디 덧붙였다. “네가 정신장애 2급 되겠다는 생각을 버려. 그것 때문에 작년보다 네가 엄청 못해졌어. 약에 절어서 힘들어하는 모습만 보이니 네 아내가 희망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거야. 환청도 그래서 심해진 거고.” “그래요? 아내가 학교 다니느라 힘들어서 그런 거 아니고요?” “아내가 보기에 작년까지는 네가 똑똑하고 부지런하고 의욕도 있고 해서 믿음이 갔는데, 2급 되겠다고 약 높이고 벌써 6개월째 네가 빌빌대니 아내가 무슨 희망이 있겠어? 너를 의지하고 살았는데 오히려 너를 챙겨줘야 할 판이 됐는데. 그러니 2급 되려 하지 마. 옛날의 맑은 정신 되찾으면 아내도 희망이 생기잖아.”
호덕이가 “오늘 아내한테서 전화 왔었는데요. 자기가 입원한지 며칠 됐는지 물어요. 2박 3일 됐다 하니, 내가 그만큼이나 잤나? 해요. 주사로 약을 엄청 세게 놨나 봐요.” 한다. 응급입원하면 일단 약을 써서 푹 재운다. 며칠 재우고 나면 상태가 많이 호전된다. 그런데 약을 쓰지 않더라도 마음을 안정시키면 잠을 잘 수 있다. “이번에 퇴원하면 제발 싸우지 말고 잘해라.” “잘할 거예요.” 진작 잘하지. 호덕이는 아내 입원시켜놓고 상태가 안 좋다. 카드며 각종 신분증을 분실하더니, 핸드폰도 분실했다 찾았다. 계속 환시가 보이고 안 좋은 생각이 자꾸 든단다. 많이 우울해한다. 잠도 푹 못자는 것 같다.
일반인도 부부화목 해야 하지만 정신장애인은 특히 더 그래야 한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안정시켜줘야 한다. 그런데 아내의 ‘불안’과 호덕이의 ‘자존심’ 때문에 그게 잘 안 된다. 자주 싸운다. 이때는 좋은 이웃이 있어야 한다. 가족이든 친구든, 편하게 의논하고 필요할 땐 중재를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급하면 전화로라도 의논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호덕이 아내가 입원 전에 나하고 의논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있다. ‘입원 하지 않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방법으로 환청을 가라앉힐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 때문이다. 호덕이와 싸우던 밤에, 그리고 입원을 결심한 다음날 아침에, 나한테 전화할 생각이 나지 않았나 보다. ‘아직까지 내가 어려운가? 내가 남편 편만 든다고 생각하나?’ 서운한 마음도 들고 미안한 마음도 든다.
자녀와의 관계
1. 잘 자란 자녀
내가 선배님으로 모시는 당사자가 있다. 특강 강사로 갔다가 만났는데 서로 얘기를 나누다 군대 얘기가 나와서 전투경찰이었다 하니 자기도 그렇단다. 내가 53기라 하니 자기는 26기란다. 그 말 듣고 바로 “선배님이시네요. 제가 앞으로 깍듯이 모실게요.” 했다. 서울에 사시는데 정신보건 관련 행사장에는 빠짐없이 참석하셨다. 나도 15년 정도 활동을 왕성하게 했기 때문에 많은 행사에 특강 강사로 가기도 하고 그냥 참석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무척 반가워하신다. 쉬는 시간이면 같이 자판기 커피 뽑아 마시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결혼해서 아들 하나 낳고 살다가 부인과 이혼했다. 다행히 아들을 부모님이 맡아서 키워주셨다. 그 아들이 대학 졸업하고 결혼해서 애를 낳았다.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하신다. “얼마 전에 손자 돌잔치 했어요. 아들도 며느리도 나한테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요. 손자도 재롱이 이만저만 아니에요. 요즈음에는 손자 보는 재미로 살아요.” 하신다.
오늘 친하게 지내는 당사자가 차 한 잔 하자며 집에 잠시 들렀다. 어제 아들한테 전화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더니 아들이 “저 공부하느라 바빠요. 아빠는 공부하는 거 도와주시지는 못할망정 전화로 왜 쓸데없는 얘기만 하세요?” 하고 짜증을 냈단다. 그래서 아빠한테 대든다고 나무랐더니 “아빠가 저한테 해주신 게 뭐가 있다고 저를 나무라세요?”라고 대꾸했다며 엄청 속상해 한다. “아들 말이 맞네요. 해주신 게 아무 것도 없잖아요? 속상해 마시고 마음 푸세요.” 했다. 군대 제대하고 복학 미루고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인 아들이다. 아들이 초등학생 때 이혼했다. 아내가 아들을 키웠다. 어디 사는지도 몰랐는데 아들이 대학생이 되어 아빠를 찾아왔다. 그날 이후로 매일 아침저녁으로 아들한테 전화한다. 그게 낙이다.
그런데 얼마 전 고민이 생겼다. 아들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자기 기초생활수급자 지정이 취소된다는 얘기를 들었단다. 그날 이후로 아들에게 전화할 때 공중전화로 한다. 아들보고는 자기한테 절대 전화하지 말라 했다. “아들이 있지만 얼굴 못 본지 오래됐고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 하면 사회복지공무원이 “그러면 지난 1년간 통화내역서 떼 오세요.” 한다나. 우리나라 복지는 이상하다. 자식이 취업하면 기초생활수급을 끊는단다. 자식도 자기 하나 앞가림이 바쁜데 부모 생활비 대줄 여력이 있나? 그런 자식이 몇이나 되나? 부모 자식 간에 통화도 제대로 못하게 한다.
내 고모도 조현증이다. 고모부는 초등학교 교사였고 고모는 살림만 살았다. 1남 4녀를 뒀다. 애들 어릴 때 고모가 발병했다. 따지고 보면 실은 처녀 때부터 문제가 있었다. 고모부가 고모 때문에 망신스러운 일들이 많아 결국 학교 교사를 그만뒀다. 내가 중학생 때 고모부가 2년 정도 우리 집에 와계셨다. 조그만 과일가게를 차렸다가 망했고 결국 어느 날 잠적하셨다. 그때부터 고모가 1년에 두세 번 정도 우리 집에 와서 열흘씩 머무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애들 학비며 생활비가 떨어지면 내 아버지 어머니께 돈 달라고 조르고 돈 만들어 줄 때까지 안가고 버티셨던 거다. 시골에 사시며 땅이 없으니 농사도 못 짓고 생계가 무척 어려우셨다. 텃밭 가꾸고 남의 집 품앗이해서 쌀 조금씩 얻어오는 걸로 생계를 이으셨다. 그렇게 애들을 키웠다.
중학생 때 내 기억에도 고모가 이상했다. 우리 집에 오시면 항상 “내가 방송국에만 가면 가수 된다.” 하시며 방송국에 데려가 달라고 조르셨다. 방바닥에 침을 뱉고 닦으시는 것도 이상했다. 그때는 몰랐다. 대학생이 되어 심리학을 공부하고 비로소 조현증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후에 내가 대구대 교수가 되었을 때 고모는 처음으로 항정신병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정신건강의학과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다. 고종사촌 형님이 결혼하고 형수님이 시어머니의 이상행동을 견디다 못해 치료를 권유한 거다. 1남 4녀가 있었지만 모두 중학교만 졸업하고 가출하다시피 집을 떠났다. 그리고 고학으로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했다. 가난해서도 힘들었고 엄마 때문에도 힘들었다.
고모부는 잠적 후 몇 년 지나서 소식을 보내오셨다. 법적으로는 이혼하지 않은 채 다른 분과 동거 중이셨다. 고모가 이상한 티가 많이 나서 양가 상견례며 결혼식 때 새고모가 엄마 역할을 했다. 고마우신 분이다. 고종사촌 형님과 누나와 여동생들은 내 어머니 아버지를 좋아한다. 어릴 때 자기들 힘들 때 잘해줘서 고마웠단다. 여동생 하나는 어릴 때 내 어머니가 사줬던 옷이 그렇게 예뻐서 참 좋았단다. 당시에 제대로 된 옷 한 벌이 없었다 한다. 그래서 그런가? 그 여동생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양장 기술을 익혀 지금껏 양장점을 하며 애들을 키웠다. 고종사촌 형님과 누나, 여동생들을 지켜보면 참 효자 효녀다. 잠적했던 아빠와 조현증 엄마가 원망스러웠을 텐데 부모덕에 호강하며 자란 보통의 자식들보다 부모님께 훨씬 더 잘한다.
외가 친척 형님도 조현증이다. 내가 초등학생 때 참 이상했다. 친척들이 찾아오면 아버지 어머니께서 잘해 주셨는데 그 분만 오면 집안에 들이지도 않고 냉대하셨다. 그러면 그 분은 하루 종일 우리 집 대문 앞에 쪼그려 앉아 계셨다. 다음날 또 오셔서 앉아 계시고 그렇게 몇날 며칠을 쪼그려 앉아 계셨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턴가는 안 보이셨다. 그렇게 매년 두어 번 그런 일이 반복됐다. 나중에야 알았다. 애들 학비며 생활비가 없으면 그렇게 우리 집에 오셔서 돈 달라고 떼를 쓰셨던 거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할 수 없어 돈을 마련해 주시곤 했다. 외가 형님은 경비원 일을 하시고 형수님은 청소부 일을 하시며 그렇게 3녀 1남을 키워내셨다.
모든 부모는 자녀에게 최선을 다한다. 자녀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정신장애가 있는 부모도 마찬가지다. 모든 부모에게 자녀는 살아야 할 이유고 삶의 희망이다.
2. 자녀를 향한 당사자들의 심정
대학후배가 있다. 어머니가 조현증이다. 아버지는 가출하셔서 연락 두절이고 조현증 어머니가 혼자 힘으로 키워내셨다. 다행히 공부를 잘해 고려대에 합격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말리셨단다. “서울 올라가지 마라. 나하고 같이 살자. 여기 있는 전문대 들어가서 간호사해라.” 통사정을 하셨단다. 고려대 가겠다고 울고불고해도 “서울 가려면 앞으로 내 얼굴 볼 생각마라. 등록금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 대준다.” 하셨단다. 대학졸업하고 사회생활하면서 그때까지도 “엄마가 이해가 안돼요. 고려대 합격했는데 안 보내주고 전문대 가라는 엄마가 어디 있어요? 자랄 때도 엄마 땜에 많이 힘들었는데, 그 일이 지금도 너무 서운해요.” 한다. 10년쯤 전 나눈 대화다. 그 무렵에는 나도 잘 이해가 안됐다. 그런데 지금은 이해가 된다. 내가 애들 키워서 서울로 보내보니 알겠다. 학비며 생활비 보내주기가 버겁다. 그리고 자식을 멀리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 옆에서 같이 살았으면 싶다.
20년 전 처음 가족교육을 할 때 간신히 걷는 아들놈은 걸리고 젖먹이 딸은 업고 와서 교육시간 중에 젖 물려가며 억척스럽게 교육 들었던 새댁이 있다. 남편은 그 몇 년 뒤부터 퇴행이 심해져서 평생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 입원해 있는 남편 뒷바라지하며 억척스럽게 애 둘을 키웠다. 그 애들이 이제는 모두 대학생이다. 애들 덕에 지금까지 살았단다. 애들이 고맙단다. 그때 이혼하지 않았던 게 다행이라며 늘 나한테 고맙다 한다. 나도 정말 존경스럽고 고맙다.
호덕이는 갓난 애기 때 헤어진 딸을 그리워한다. 항상 “내 딸 이젠 대학생이에요. 잘 자랐을 거예요.” 한다. 호덕이 아내 착한바보도 초등학생 때 헤어진 아들과 딸을 그리워한다. 오랜 세월 매월 10만원도 안 되는 돈만 쓰면서 어떻게 생계가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기초생활수급비를 거의 전액 저축하다시피하며 살았다. 애들 만나면 줄 거라고. 애들한테 너무 못해줘서 미안하단다. 애들 초등학생 때 양치질을 못하게 했단다. 양치질하면 이가 상한다고. 홍합껍질 먹으면 몸에 좋다고 애들에게 강제로 홍합껍질을 씹어 먹게 했단다. 병의 증상이다. 그리고 애들이 말 안 들으면 화내고 심하게 때렸다 한다. 밥도 안 해 줬다 한다. 애들이 엄마만 보면 무서워서 벌벌 떨었단다. 환청이 너무 심해서 제발 떨어지게 해달라고 매일 부처님께 3천배를 했다 한다. 그랬더니 병이 낫는 게 아니라 더 심해졌단다.
그때 생각을 하면 애들에게 너무 미안하단다. 호덕이는 “저하고 아내 애하고 다 우리 애들이에요. 아내하고 저하고 항상 세 명 이름 외우며 건강하고 행복하라고 기도해요.” 한다. 애들이 나이가 들면 이해해 줄까? 용서해줄까? 옛날의 무서웠던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혹시라도 연락해올까? 부부는 혹시나 하는 마음을 아직도 실낱같이 잡고 있다.
내 생각에는 자녀가 없는 경우보다 있는 경우가 낫다. 노후에 덜 외롭다. 젊은 시절 결혼해서 이혼했다 할지라도 자녀를 두고 이혼한 경우가 낫다. 설혹 자녀가 성장할 때 어디 사는지 조차 몰랐던 경우에도 자녀가 어른이 되고 철이 들면 부모를 찾아오기도 한다. 자신을 버리고 간 배우자를 탓할 필요가 없다. 자녀를 두게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평생 자녀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에도 자녀를 둔 경우가 낫다. 왜냐하면 “잘 커서 지금쯤 어디선가 행복하게 살고 있겠지.” 하는 생각과 느낌만으로도 심리적으로 큰 위로가 된다. 자신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준다. 이 글을 읽고 이의를 제기하신 분들이 있다. 자녀의 입장과 심정을 생각해 봤느냐고.
3. 잘 자란 자녀의 심정
자녀의 경우 어릴 때는 부모를 원망할 수 있다. 부부싸움, 경제적 빈곤, 엄마나 아빠의 정신장애 증상, 부모의 이혼 등으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는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철이 들면 상당수 자녀가 부모를 용서한다. 잘 자란 자녀는 오히려 부모에게 감사한다. 자신을 낳아주신 것 자체로 감사한다. 자신이 정신장애를 가진 부모 때문에 힘들었지만, 힘든 경험을 극복했기에 그만큼 더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그리고 부모를 이해하고 연민의 정을 느낀다. 부모 뿐 아니라 정신장애로 고통 받는 사람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다.
며칠 전 고종사촌 여동생에게 들렀다. 2년만인가? 나도 참 무심했다. “내가 요즈음 책을 쓰고 있는데, 정신질환 자녀의 심정에 대해 써야해. 뭐든 생각나는 대로 얘기해줄래?” 책 쓴다는 말을 듣고 좋아한다. “지금은 받아들여요. 우리를 힘들게 키웠구나. 정상적인 사람도 이렇게 힘든데 한 군데도 의지할 데 없이 어떻게 살아왔을까? 정신은 그래도, 엄마의 참된 모습을 봤기 때문에. 그걸 배웠어요. 엄마는 강했어요. 어떻게든 살려고 애썼어요. 그래서 우리도 자립심이 강해요. 엄마의 그런 모습을 본받으려 했어요. 그래서 좋은 정신건강을 이어받았을 수도 있어요.”
커피를 타준다. 한 모금 마셨다. “자랄 때 엄마 땜에 많이 힘들었을 텐데, 특히 뭐가 제일 힘들었나?” “행동이 모든 게 느렸죠. 밥도 늦게 해주고. 꼴찌로 해줘서. 아침에 생쌀이라도 얻어먹고 가려면 어떤 날은 먹고 어떤 날은 굶고, 달리기를 엄청 하죠. 학교는 맨 날 꼴찌, 간신히 지각만 면했어요. 지금도 어렸을 때 상처가 엄청 커요. 굶는 걸 밥 먹듯 했죠.” “그랬구나. 밥 먹기조차 힘들었는지는 몰랐네.”
“엄마는 침 뱉고, 남들하고 항상 싸우고. 창피해서 내 자신이 없는 듯 살았어요. 엄마가 딴 사람 같았어요. 학교 친구들이랑 집에 오다가 엄마가 보이면 도망갔어요. 친구들 보기 창피해서. 내 자리가 작았어요. 내가 없었죠. 위축돼 가지고. 기가 많이 죽었어요. 암담한 현실이었죠. 희망이 안보였어요.” 말을 마치고는 입을 다문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잊고 지냈던 아픈 기억을 건드린 것 같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엄마는 조금만 거슬리면 시비 걸고 싸웠어요. 성격이 느긋하지 못하고. 그래서 저도 화가 많이 났어요. 너무 너무 힘들었어요. 옆에서 늘 ‘죄송합니다.’ 해야 되고. 이웃 사람들이 우리 형제들 지나가면 손가락질하고 흉보고 그랬어요.”
목소리가 살짝 떨린다. “엄마도 슬펐을 거예요. 때로는 합세해 줘야 하는데 자식도 피해 버리니까.” 눈빛이 슬프다. “남편도 자식도 다 떠나고. 늘 남에게 무시당하고 자존심 상하고.” 침묵이 흘렀다. “엄마에게는 본받을 점도 많아요. 서른 몇 살에 아버지가 집 나갔거든요. 못 박는 일이며 남자가 하는 모든 일을 다 했어요. 저희도 본받는 게 우리 집이 최고다 하는 거예요. 엄마는 그 자부심이 있어서 견디셨어요. 엄마의 그 모습을 본받아서 저희도 내 남편이 최고다 하고 살아요. 내가 내 자신을 존중하고. 내 집을 존중하고. 엄마한테 배웠어요. 엄마는 가난해도 남한테 숙이지 않았어요. 내 먹을 거 있는데 내꺼 내 먹지, 네가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했어요. 엄마는 반듯했어요. 늘 바른생활을 했죠. 그래서 우리도 한눈 안 팔아요.”
이해가 된다. 참 열심히들 살았다. 이젠 다 자리를 잡았다. 돈도 모으고. 어릴 때 힘들었던 티가 없다. 당당하다. “우리는 더 깊이 생각해요. 친구들은 철딱서니 없이 컸고. 좋은 환경 살면서 느끼지 못하는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다 남편을 잘 만났어요. 내가 대학, 대학원 나왔어도 지금 같은 신랑은 못 만났을 거예요. 남자를 만나고, 남편을 고를 때도 하나부터 열까지 고려하고 점검해요. 그런데 보통 애들은 쉽게 결정하는 것 같았어요. 엄마가 병이 있어서 잃은 것도 있죠. 그런데 얻은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남들을 배려하고 이해하고.”
요즈음 요양병원에 계신다는 얘기를 한다. “형제들끼리 병원에 엄마 찾아가면 서로 엄마 사진 찍어 보내주곤 해요. 딸이니까 더 느껴지는 거 같아요. 엄마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아까운 게 없어요. 뭐라도 더 해주고 싶어요.” 잔잔한 감동이 온다. 한없이 원망스러웠을 텐데 다 털어내고 오히려 엄마를 끔찍이 사랑한다. “계기가 있었을 텐데. 엄마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이해하게 된 게 언제부터야?” “결혼해서부터죠. 내 자리가 있으니까. 내가 안정되고 편안해 지니까. 내가 받으려할게 아니라 오히려 베풀어야 되는구나. 그걸 느꼈죠. 딸이라 더 엄마를 이해하게 된 거 같아요.” 같이 점심을 먹고 돌아서는데 한마디 툭 던진다. “큰 상처가 있음으로써 작은 상처가 모두 덮였다고 할까요? 그런 거예요.”
4. 부모자식의 인연
기형아 출산에 대한 두려움으로 임신을 앞두고 약물복용을 중단하는 경우가 있다. 정신건강의학전문의 권영탁 원장은 걱정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파란마음센터 가족교육 때 그가 말한다.
“내게 치료받던 산모 50명에게서 71명의 아기가 태어났는데 기형아는 1명도 없어요. 원래 일반인의 기형아 출산율이 2%니 1명 정도는 기형아가 태어날 수도 있는데, 기형아는 한 명도 없었어요. 소량의 약은 태아에게 아무 지장 없어요.”
상당수 당사자가 자녀도 정신장애에 걸릴까봐 걱정한다. 그래서 애초에 결혼조차 않는 사람도 있고, 결혼하더라도 임신을 피하는 부부도 있다. 정신장애는 유전경향성이 있기는 하다. 사실 정신장애뿐만 아니라 당뇨병, 고혈압 등 모든 질병이 유전경향성을 지닌다. 자신의 질병이 자녀에게 유전될까 겁낸다면 자녀 출산이 가능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누구나 이런저런 질병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조현증의 경우, 부부 모두 정상일 때 자녀가 조현증일 가능성은 1%다. 부부 중 한쪽이 조현증일 때 자녀가 조현증일 가능성은 10%, 부부 둘 다 조현증일 때 자녀가 조현증일 가능성은 40%다. 조울증은 유전경향성이 조금 더 높다. 부부 모두 정상일 때 자녀가 조울증일 가능성은 0.5%다. 부부 중 한쪽이 조울증일 때 자녀가 조울증일 가능성은 25%, 부부가 둘 다 조울증일 때 자녀가 조울증일 가능성은 50~70%다.
상당수 정신장애인이 기형아 출산이나 병의 유전가능성을 걱정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것보다 더 유의해야 하는 건 자녀의 성장환경이다. 흔히 부부불화, 이혼, 경제적 빈곤 등이 자녀에게 상처를 준다. 우리는 흔히 자라난 환경을 두고 부모를 탓한다. 그런데 세상을 탓하며 살자면 한도 없고 끝도 없다. 종종 어려서는 부모 탓하고, 결혼해서는 남편 또는 아내 탓하고, 늙어서는 자식 탓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 어리석은 일이다.
사례를 통해 봤듯이, 정신장애를 지닌 부모도 보통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자녀가 있기에 의욕을 내고 용기를 내서 삶의 역경에 도전한다. 상당수 자녀 또한 정신장애를 지닌 부모를 이해하고 용서한다. 더욱이 자신을 낳아주신 것 자체로 감사한다. 부모자식의 인연은 내 선택이 아니다. 주어지는 거다. 하늘의 뜻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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