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제28차 문산 산행후기 - 달빛 산행 시낭송 음악회

[니캉내캉]

‘고것도 등산이가.’

28차 산행을 앞두고 동행을 권하는 내게 사정없이 바람 빼는 소리를 하는 이가 있었다. 딴엔 그렇다. 산악회라는 명칭을 걸고 오르는 산 치고는 고작 400여 미터 높이의 황령산은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황씨 가(家)의 문중산이라며 통행세라도 받을 듯 대단한 자긍심을 가지고 계시는 황사무국장님이 들으면 서운하실지 모르나.

그런들 문산이 그냥 문산이던가. 산이 부족하면 사람으로 채우고 그마저 성에 차지 않는다면 분위기와 정으로, 그리고 끝내는 화룡점정이듯 한 편 작품으로 정상에 서는 이들이 문산이 아닌가. 매달, 정한 날에 수순을 밟듯 치르는 달거리 행사지만 단 한번 의례적인 적이 없었으니 박달수회장님의 고심 덕분이요, 풍류가객을 꿈꾸는 사무국장님의 완벽한 뒷바라지 또한 문산을 여느 산악회와 차별화시키는데 큰 몫을 했을 터. 세상에는 더러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하는 그 무엇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문산의 날들 또한 늘 그러해왔으니 그 일원으로 하루를 부대껴 보지 않았으면 말씀을 하지 마시라. 어느 작고한 희극인의 유행어처럼 ‘일단, 한번 와보시라니까요.’

‘달빛 산정 시낭송 음악회’

일 년이면 열두 개의 컨셉으로 길을 나서는 문산이다. 하여, 벗길수록 새로운 속살이 드러나는 양파처럼 늘 예기치 못한 주제가 선물처럼 준비되곤 한다. 이번 산행은 계절을 감안, 야간을 택해주시는 탁월한 센스가 또 한 번 빛을 발한다. 이건 뭐, 미끼도 보통 미끼가 아니다. 그럴듯하게 눈속임만하는 루어(Lure)가 아니요, 오감을 제대로 갖춘 사람이라면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벌렁거릴 단어 ‘달빛’에다 시와 음악과 사람이 자아낼 흥취라니. 이러니저러니 토를 달기에 앞서 던져진 미끼를 일단 덥석 물고 보지 않으면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날 성 싶지 않은가. 게다가 황령산은 우리 집 뒷산인지라 언제고 마음만 먹으면 오르곤 했다. 오랜 경험상 터득한 비밀 하나를 큰 맘 먹고 공개하자면, 진탕 땀을 쏟은 뒤 정상에 올라앉은 심정이란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은 명장 이순신의 감회와 다르지 않으니 때맞춰 쿨렁쿨렁 목구멍을 넘어가는 막걸리 한 사발의 맛이란, 단언하건데 아는 사람만 안다.

늦은 7시, 지하철 금련산 역사는 후덥지근했다. 지난달의 지각을 만회하려 서둘렀더니 일등이다. 날씨는 덥지요, 심신이 축축 늘어지는 해거름이지요, 시장끼와 더불어 ‘내 쉴 곳은 작은 내 집뿐’이라는 귀소본능마저 마구잡이로 발동을 하는 무렵이니 여간해서는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할 지경이라 싶다. 이 모든 악재를 뚫고 과연 몇 분이나 오실까. 왠지 모를 불안감을 홀로 떠 안아야하는 것이 일등의 비애인줄을 비로소 깨닫는다. 2번 타자로 도착하신 시조 분과 이상훈 선생님과 안부를 나누기도 잠시. 노파심을 비웃듯 한 분, 두 분 연달아 출석 도장을 찍으신다. 아, 의연한 걸음걸음에 부디 축복 있으라.

모두들 밤일 나갈 채비가 거하다. 울긋불긋 꽃단장에 화사한 표정까지. 한 떨기 야화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치, 짧지만 길기도 할 밤으로의 여정을 함께 할 동지들이 아름답다. 눈 감고도 오를 코스니 슬그머니 앞장을 서 본다. 조근 조근, 도심 속의 산, 산속의 밤, 밤 속의 사람을 읽어 볼 야무진 작정으로.

그러나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 하던가. 덜컥 복병을 만난 것이다. 제 흥에 도취해서 어둠이 복병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계산하지 못했다. 이 순간, 내게 태클을 걸었던 지인을 불러올 수 있다면 분명히 말하리. ‘고것은 분명 등산 맞노라’고. 산이란 그저 듬직하고 변함없는 존재인 줄 알았더니 태양 아래에서 하는 말과 달빛 아래서 하는 말이 같지 않다. 사방 먹지를 두르고 안면을 몰수해버린 산은 낮으로 보아오던 산이 아니다. 보이는 것에 연연해 시건방을 떨어 대는 인간들이여, 그대들이 침을 튀겨 가며 진리라 떠벌리던 것들을 보이지 않는 속에서도 한번 그럴듯하게 읽어내 보라는 식이다. 난감하다. 초입을 벗어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쉬어 가자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나마 중간 중간 멈추어 서서 내려다보는 광안대교와 도심의 화려한 야경만이 의기소침해진 우리를 응원한다. ‘넘어지고 깨어지고라도 한 조각 심장만 남거들랑 부둥켜안고 가야만 하는’ 우리는 문산인이 아니냐고. 짙어지는 어둠이 한사코 숨겨버리는 길을 꾸역꾸역 들추어내며 악으로 깡으로 험준고령, 황령산을 오르는 우리는 이미 승패의 갈림길에 선 전사의 모습이다. 더러는 선두를 지키고, 더러는 뒤처지며, 또 더러는 네 바퀴에 얹혀서 드디어 도착한 팔각정.

휘영청, 산자락에 달이 걸렸다. 훤한 이마를 당당히 드러내는 ‘저 달을 내가 모시고 왔노라.’며 달을 두고 서로 생색을 내는 것으로 우리들의 잔치는 시작된다. 숲과 달과 사람이 버무려내는 고즈넉한 밤풍경에 무너지지 못하고 혹시라도 살아 꼿꼿한 정신이 있다면 그녀에게 보내리. 거금과 거금보다 더 값비싼 그녀의 땀으로 문산을 위해 푸짐한 부침개에다 막걸리까지 총알처럼 장전해 주신 정정희산행대장. 그녀가 새색시처럼 다소곳이 낭송하는 자작시 한 편으로 우리는 일시에 고단했던 노정을 까마득히 잊은 채 문(文)이 이끄는 문(門) 안으로 따라 들어간다. 뒤질세라 조선영, 김덕침, 송소현시인께서 즉석에서 애송시 한 편을 낭랑하게 읊으신다. 언제 어디서나 주체할 수 없는 문인들의 끼라니.

낭송이 애피타이저라면 이제 본격적인 성찬이 차려질 순서다. 갸름한 얼굴의 전형적인 미인이신 정인경시조시인께서 조신한 자태로 풀어내는 시조창을 앞두고 숨이 멎을 듯 했다. 한 소절, 한 소절 듣는 이의 가슴에 문신처럼 새겨질 절창을 들으며 까닭 없이도 내 안의 습한 기운들이 소름처럼 돋아나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한 위태한 순간. 서늘하게 가슴을 베고 간 그 깊디깊은 소릿길에 여기 치명상을 입은 누군가가 있으니 시인께서는 책임지시라. 누추한 필력으로 어설피 그녀를, 그리고 그녀의 소리를 그려낸다는 것은 무례가 될지니 이쯤에서 상상에 맡긴다.

박지현아동문학가의 시조낭송 이호우의 ‘달밤’은 필부필부인 우리들로 하여금 풍류와 멋을 즐기는 한량이라도 된 듯 우쭐하게 만들었고 여전히 심금을 울리던 풀피리 음악. 그 중 흐느끼는 듯,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하는 애절한 '아리랑'은 산중에서 듣기에 더더욱 좋았어라. 영원한 로맨티스트 이남기시인의 하모니카 연주는 또 어떤가. 그가 앞장 서는 선율을 무작정 따르다 보면 나도 몰래 길을 잃어버리기 일쑤니 이따금 세상으로 나가는 길을 그만 잊고 싶은 우리의 속내를 어찌 그리 알아채셨는지. 가만히 눈을 감고 물나울중창단의 고운 음길을 동행하는 일도 호사 중의 호사였음을 글로 고백한다.

어느 나들이든 마지막 피날레로는 이만한 것이 없지 싶다. 장정애시인의 기타 반주로 부르던 포크송 몇 곡. 잠시 음치임을 망각하고 목청껏 따라 부른다. 엇박자인들, 속칭 삑사리가난들 용서가 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 원 없이 목청을 돋운다. 제 흥에 겨워 멱따는 소리를 질렀어도 눈치 채는 이가 없었기를, 설사 청각이 괴로우셨더라도 분위기에 죄를 묻고 너그러이 덮어 주시기를. 게스트이신 카페 ‘산향기 고운 숲길’ 회원님들이 부르는 ‘만남’ 또한 이 어울림의 마지막으로 선곡의 묘미가 돋보인다. 무려 네 개 구(區)가 합심하여 밀어 올린 황령산이 아름다운 도심의 허파 노릇을 한다면 시, 시조, 수필, 소설, 평론, 아동문학 등 여러 장르의 문인들이 허물없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문산 또한 문인들의 심장부임에 틀림없노라 자화자찬을 하며 앉은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선다.

감사드린다. 이 모든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신 회장님 이하 집행진의 노고에. 일일이 거명하고 인사를 올리지는 못하지만 분주하신 와중에서 참석해주신 여러 선배 문인들과 문우들께도 말로 다 못한 반가움을 전한다.

8월에 예정된 일박이일의 합천 세미나는 또 어떤 감동의 도가니로 우리를 몰아갈 것인지. 기다림만으로도 벅차다. 많은 분들이 참석하시어 멋진 하루를 함께 누릴 수 있기를 고대하며 이만 총총. (2010.7)

[캐슬]

수고 하셨습니다^^

[미루]

깔끔하네요. 산행후기. 베리 굿입니다. ^^

[꿈 너머 꿈]

빛처럼 은은한 문 선생님
빛 산행 시낭송 음악회의 후기
멋집니다`
오
빛처럼 은은한 감동
지금도 문 선생님의 곱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듯 합니다.

[박희선]

참참참,몇번이나 읽고 또 읽고....음미하고 간도보고 ...직장에 다니고 아내노릇도 하고....언제 이렇게 재미나게 빚었어유. 여류문협 송순임선생님 처음으로 문산다녀오신 후 토욜오전 8시반,해운대교육청 영재반어쩌구저쩌구 하면서 신도중학교에서 만났습니다.저보고 이럽디다."어젯밤,황령산에서 행사가 있던데그런거 알아요.박달수 선생님이 하두 와봐라고 해서 갔는데 다음에 한번 가보세요." "그런모임도 있습디까. 정정희 대장은 뭐하고 황원준 국장은 술 마이 안묵던가몰라." "그분들 알아요." "잘 모르지요." "모르실거예요.저도 잘 모르겠던데..그런데 술많이 마시는것 어디서 보셨나봐요.." ㅋㅋ 잘보고 갑니다. 편히 주무셔요.

[하얀맘]

완젼 쌩 갔네요 보고싶었는데요ㅡ.ㅡ;;

[니캉내캉]

댓글, 감사합니다...^^...박희선선생님, 안오셔서 서운했습니다...더운데 잘 지내시지요....ㅎ

[하얀맘]

문샘 몇 번이고 꼽씹어 읽어도 재밋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