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筆>
견공(犬公)과 개새끼
<엑스코에서 생긴 일 그 두 번째 이야기>
어릴 적 시골에서는 혼인잔칫날 신랑을 매달아놓고 북어(때로는 빨래방망이나 장작개비)로 발바닥을 패면서 장모(丈母)로부터 술도 우려내고 고기안주도 우려내던 풍습이 있었다.
육이오 전쟁 뒤에 우리나라에 주둔한 미군이 시골마을을 지나가다가 그 장면을 보았다. 그리고 신랑을 가리키며 뭐라고 묻는데 궁벽한 시골에 미군들과 말 섞을만한 사람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마을마다 오지랖 넓은 이가 하나쯤은 꼭 있어 사고를 친다. 아는 영어라고는 ‘기브미 쵸콜렛, 오케이, 땡큐!’가 전부인대 통역관을 자처하고 나선다.
“이사람 나쁜 사람인가?”
“오케이.”
“죽여 버릴까?”
“오케이.”
미군은 어깨에 울러 멘 총으로 신랑을 쏴 죽여 버렸다. ‘오지랖’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급하게 부르짖었다.
“땡큐! 땡큐!”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동네 형들에게서 들었던 ‘오지랖 사건’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사실로 믿었고 그 때만해도 우리 시골마을 에서도 가끔 볼 수 있었던 총을 멘 미군들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중학생이 되고 처음으로 영어를 접했다. 요즘은 영어 조기교육열풍으로 유치원 때도 늦다고 하는 모양인데 그 시절에 영어는 중학교에 가야만 배울 수가 있었다. 초등학교에서는 선생님도 영어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을 뿐 더러 학생들도 배우려고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아무튼 어린 시절 미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영어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재된 탓인지 아직까지 나의영어는 ‘오지랖’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멍.멍’ 이라고 하는데 그놈들(미국인들)은 개 짖는 소리가 ‘바우. 와우’로 들리는 모양이지?”
TV에서 세계테마여행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 외국 산간오지의 개들이 짖는 장면을 가끔 보게 되는데 그 때마다 나는 중학교 때 영어선생님의 말씀을 생각한다. 그리고 ‘바우. 와우’를 ‘멍.멍’에 가깝도록 소리 내어 보려고 애쓰던 기억을 떠 올리곤 한다. 아무리 애를 써 봐도 바우 와우는 멍멍하고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놈들’의 표현이 순 엉터리 이거나 미국의개는 정말로 바우 와우하며 짖는다고 제법 오랜 기간을 그렇게 생각 하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우리 사람들만 세계 각국의 언어가 달라 외국어도 배우고 통역도 두고 야단법석을 떤다는 것이다. 막상 사람들이 데리고 다니는 개는 그 국적이 미국이든, 중국이든, 우리토종 똥개이든 짖는 소리가 꼭 같다. 유식한 주인은 말이 달라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데 글자도 모르는 무식한 종놈은 만국 공통어를 쓰고 있는 것이다. 개뿐만이 아니다. 지구촌 어느 곳에서든 돼지는 ‘꿀꿀’거리고 닭은 ‘꼬끼오’하듯이 모든 짐승들은 만국 공통어를 쓰고 있다. 짐승들의 입장에서 보면 말이 통하지 않아 쩔쩔매고 있는 인간들이 참 무식해 보일 것만 같다.
‘개 팔자가 상팔자(上八字)’라더니 전생에 나라구한 영웅 이었던가. 팔자도 참 좋다. 머리 중앙과 양쪽 귀 끝을 화사하게 염색을 하고 앙증맞은 옷을 입고 유모차에 의젓이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며 다니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신발을 신고 있는 놈, 주인의 품안에서 주인과 입을 쪽쪽 맞추는 놈, 송아지만한 놈, 주먹만 한 놈. 벼라 별놈들이 다 있다. 컹컹, 깨갱깨갱, 왈왈, 멍멍. 짖는 소리도 각양각색이고 똥 싸는 놈, 오줌 싸는 놈. 하는 짓도 가지가지이다.
해마다 대구 엑스코(전시컨벤션 센터)에서 열리는‘애완동물 전(팻쇼 pet Show)’은 개천지다. 로비가 들썩거리게 짖어대고 개비린네가 진동을 하고 개털이 춤을 추고 다닌다. ‘완전개판’이다.
아무리 팔자가 좋기로 나라구한 영웅이 개로 환생(還生)했을 리는 만무일 터이고 주인구한 명견(名犬)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분명 사람으로 환생했을 것이고 보면 도대체 저놈들의 전생은 무엇일까. 적당히 도둑질도 좀하고 적당히 뇌물도 좀 받아먹고 적당히 백성들의 등골도 좀 빼먹고 온 인간들을 염라대왕이 적당히 고생 좀하라고 개로 환생시켰더니 저렇게 적당히 호강하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이제 ‘개 새끼’나 ‘개 같은 놈’은 욕도 아니게 생겼다.
주인구한 개는 변변한 이름도 없다. 그저 털 색깔에 따라 누렁이(黃狗황구)나 흰둥이(白狗백구)로 불린다.
‘자식은 어머니가 못생겼다고 해서 싫어하지 않고(兒不嫌母醜아불혐모추), 개는 주인이 가난하다고해서 싫어하지 않는다(犬不嫌主貧견불혐주빈)고’ 한다. 황구나 백구는 한뎃잠을 자고 험한 밥을 얻어먹더라도 주인을 위해 충성과 의리를 다한다.
주인이 술이 취해 산길을 가다가 쓰러져 잠이 들었는데 산불이 났다. 누렁이는 계곡으로 달려가 온몸에 물을 흠뻑 적셔오기를 수십 번 수백번하면서 주인에게로 번져오는 불길을 막았다. 주인이 깨어보니 누렁이는 털이 다 그을린 채로 죽어있었다.
전라남도 진도(珍島)에서 다섯 살 난 백구 한 마리가 대전(大田)으로 팔려갔다. 백구는 7개월 후 초라한 몰골로 옛집을 찾아왔다. 할머니가 차려주던 가난한 밥상을 잊지 못하여 산 넘고 바다건너 수백리길을 그렇게 주인을 찾아온 것이었다. 길안내 간판도 읽을 줄 모르는 까막눈이 단 한번 갔던 길을 찾아온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이다. 이렇게 충성과 의리를 다한 개는 죽어서 비로소 시호(諡號)를 받듯이 ‘견공(犬公)’이라는 호칭을 얻게 된다.
특별영양식이 있고 샴푸를 비롯해 전용목욕세제가 있다. 전용미용실은 물론 주인이 해외여행이라도 간다면 전용호텔에서 묵는다. 어느 한다는 가문의 귀공자가 이런 호사를 누릴까. 방과 후 수업에 영어 학원, 미술학원, 피아노학원으로 내몰리지 않아도 되고 그저 잘 놀아주고 재롱만 잘 피우면 된다. 어찌 상팔자가 아니겠는가. 산불이 났을 때 주인을 위해 목숨을 내놓지 않아도 되고 버스 두서너 정류장만 지나도 제집 못 찾을게 번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주인이 절대로 혼자 길을 잃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니까. 그 사랑이 식지 않는 한.
‘탁구 아지매’는 엑스코 미화원인데 젊은 시절 경대 북문(慶北大學校北門)에서 탁구장을 운영했다고 탁구 아지매로 통한다. 동료들은 그냥 ‘탁구’라고 부른다. 애완동물전도 그냥 ‘개 박람회’ 라고 한다. 물 반 고기반이라더니 사람 반 개 반이다. 어쩌다 아기를 안고 가는 사람도 개를 안고 가는 것으로 보인다. 한껏 예쁘게 치장을 한 개가 똥을 싼다. 이름도 고상하게 ‘뽀미’나 ‘쫑’이나 ‘예삐’등으로 불릴 텐데 이럴 때에는 어쩔 수없이 ‘개새끼’가된다. 주인이 배변봉투를 꺼내어 능숙하게 처리를 한다.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들의 의식수준도 많이 높아졌다. 그런데 탁구 아지매의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다. 아침에 출근할 때 골목길을 배회하던 유기견(遺棄犬)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저렇게 애지중지 하면서 버릴 때는 무슨 마음일꼬?”
“즈그 엄마 아부지도 버리는 세상인데 개새끼 하나 버리는 게 뭔 큰 일이겠노.”
묻는 탁구 아지매나 대답하는 동료의 마음이 씁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위(衛)나라 영공(靈公)은 미자하(彌子瑕)라는 미소년을 총애 하였다. 하루는 미자하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임금의 수레를 훔쳐 타고 어머니를 병문안하고 왔다. 위나라 국법에 임금의 수레를 허락 없이 타면 발뒤꿈치를 자르게 되어 있었다. 영공은 발뒤꿈치를 잘릴 줄 알면서도 어머니에게 달려간 그 효심이 갸륵하다고 오히려 칭찬을 하였다. 그리고 또 하루는 과일밭에서 복숭아를 먹다가 그 맛이 하도 좋아서 먹던 복숭아를 가져다 영공에게 바쳤다. 영공은 맛을 가려서 임금을 섬길 줄 안다고 흡족해 하였다.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미색이 사라지자 영공의 총애도 다하였다. 영공은 마침내 어떤 일을 계기로 미자하를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이놈은 나의 수레를 훔쳐 타기도 하였고 먹던 복숭아를 나에게 먹인 방자한 놈이다. 죽여 버려라!’
위나라 영공과 같은 주인과 미자하 같은 개가 어디 한둘일까. 주인을 위기에서 구할 능력도 없고 집을 찾아갈 지혜도 없어 ‘견공’, ‘명견’의 반열에 오르지도 못하고 ‘개새끼’가 되어 유리걸식(遊離乞食)을 하는 개가 탁구 아지매 동네에만 있을까. 오늘은 유모차에 폼 나게 앉아있는 견공이 내일은 거리를 배회하는 개새끼의 운명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수많은 개들이 다투어 짖는다. 아무리 들어봐도 ‘바우 와우’라고 짖는 놈은 없다. ‘그 놈들’의 표현력이 참 한심하다. 그 한심한 글을 배우지 못해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안달복달하는 우리네 처지가 더 한심한지도 모르겠다.*
2015. 10. 27.
*작가소개*
이종걸(李鍾杰) ; 雅號 연강(然江) 경북 영천출생.
영천중학교, 포항고등학교, 영남대학교 법학과졸업.
한국화장품(주) 본사 영업부장, 지점장 역임.
문학예술 지에수필부문(아듀라미), 소설부문(倂殺打)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문학예술가협회 대구 경북지회 理事. 달성 시니어 문학회 회원.
첫댓글 아침에 개를 데리고 공원에서 조깅을 하고 있는데 벤치에 앉아 신문을 보며 잡담을 하고 있던 사람들의 입에서 ‘개 같은 놈’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두 바퀴째는 개를 앞세우고 뛰었더니 ‘개보다 못 한 놈’ 하기에 세 바퀴째는 내가 개보다 앞서 뛰었더니 ‘개보다 더 한 놈’이라고 하여 더는 참을 수 없어 따지려고 돌아와 벤치로 가보니 사람들은 간곳없고 신문일면에 국회의원들의 비리가 톱기사로 나와 있었다.
적절한 때에 적절하게 구사 하시는 琴川 선생님의 재치와 해학에 감탄할 뿐입니다.
장마라고 일기예보 해놓고 비가오지 않으니 마른장마 라고 둘러 데더니 오늘은 그래도 비같은게 비답게 내립니다. 그래서 한 꼽부 생각나게 합니다. 장마가 끝나기전에 한번 뵙고 싶습니다.
늘 건강 하시기를 빕니다. <然 江 拜上.>
소생은 하루 전에만 연락주시면 언제, 어디든지 갈수 있으니 이 선생님의 사정이 허락 되는대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시간과 편의성을 고려해 고산골도 좋습니다.
琴川 선생님.
날 잡아 하루전에 연락 드리겠습니다.
무덥고 습한 날씨입니다. 건강 하십시요. <然 江 拜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