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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아! 아비들아!
(엡6:1~4)
어버이주일/산본성광교회 박기완목사(2016.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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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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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버이 주일이고 날짜도 어버이 날이라서 특별히 오늘 말씀에 있는 그대로 ‘자녀들아! 아비들아!’ 이런 제목으로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자녀들아!” 하고 자녀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세상에 수많은 자녀들이 있잖습니까? 어떤 자녀들을 말하는 걸까요? 세상의 모든 자녀들을 향해서 부르시는 걸까요? 그렇지 않겠죠?
주님은 진리와 상관도 없는 사람들은 부르시지 않습니다. 택하신 주의 자녀들만 부르시거든요?
과연 그런지 성경 원문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자녀들아!” 로 번역된 테크논(5043 τέκνον)은 틱토(5088 τίκτω)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는데 ‘씨로부터 낳다, 산고를 겪어 생산하다’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즉, 진리의 씨로... 말씀으로 낳은 자녀를 말하는 거예요.
더구나 테크논 앞에 호(3588 ὁ)라는 관사가 붙어서 진리를 의미하는 겁니다. 그러니 더욱 분명하죠?
우리말 성경으로는 “자녀들아” 이렇게 번역이 됐지만 ‘호 테크논’(ὁ τέκνον)이라는 것은 정확히 번역하면 “그 자녀들이여!” 혹은 “자녀들인 너희여!” 그런 뜻입니다.
호(3588 ὁ)라는 관사가 붙으면 진리와 관련된 오직 그 하나... ‘그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수많은 자녀들이 있지만 그런 육신적인 자녀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그 자녀들’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인 겁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는 제일 중요한 단어는 일단 제일 앞에 써 놓고 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분명히 자녀들에게 강조하시는 말씀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 호(3588 ὁ)라는 관사가 붙어 있거든요?
호(3588 ὁ)라는 관사가 붙으면 진리와 관련이 있는 것이고, 오직 ‘그 하나... 그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자녀들아!”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시는 말씀인 겁니다.
‘부모’라는 단어 고뉴스(1118 goneuv")도 그 앞에 호(3588 ὁ)라는 관사가 붙었습니다.
세상에 수많은 부모들이 있지만... 역시 이 단어도 그런 육신적인 부모를 말하는 게 아닌 것이죠.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진리를 전하고 진리를 가르치는 자의 위치에 있는 자들... ‘그 부모들’를 가리키는 겁니다. 복수로 되어 있어요.
성경은 진리를 전해주어 그들이 새생명으로 잉태케 되어 하나님의 아들이 되면... 진리의 씨를 전해주고 낳았다는 의미에서 아버지라 그러고... 진리의 말씀을 계속 가르치고 양육하면 어머니라고 불러요.
그러니까 영적인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바로 부모인 겁니다.
⚫(몬1: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여기 보면,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를 자기가 낳은 아들이라고 소개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있으면서도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중에는 오네시모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에게도 복음을 전하여 그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오네시모라는 사람은 골로새 지방의 가정 교회를 지도하는 빌레몬의 집에 노예로 일하던 사람인데, 주인의 물건을 훔쳐서 도망나온 사람이었습니다.
도둑놈이고, 도망자이고... 그는 노예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바울이 전하는 진리를 듣고 예수를 믿어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의 삶은 변화되어 바울에게 있어서 매우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그의 주인 빌레몬은 바울과 매우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습니다.
그래서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면서 마음을 담아 간곡한 부탁으로 편지를 보내는 겁니다.
만약 오네시모가 빚을 갚지 못하면 내가 대신 그 빚을 갚겠노라고 하면서 오네시모는 ‘갇힌 중에 낳은 내 아들’이라고 소개를 하는 겁니다.
즉, 그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를 믿게 된... 영적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진리로 낳은 아들... ‘갇힌 중에 낳은 내 아들’이라는 것이죠.
⚫(고전4:14~1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편지를 쓰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다” 그래요.
그러니까,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자녀이고... 바울은 그들을 진리로 낳은 아버지요... 계속해서 양육을 하고 있으니... 어머니인 겁니다. 부모님이죠.
그런데, 여기 15절에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지만 아버지는 많지 않다”고 그랬어요. 무슨 뜻일까요?
여기서 스승은 그저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가르치는 사람... 그 중에는 엉뚱한 비진리를 전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런 의미에서 스승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달라요. 아버지는 생명의 진리만 전하고... 그래서 그 생명으로 아들을 낳아요.
우리는 스승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저 가르치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예요.
오직 생명의 진리를 전하여...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새로운 피조물, 새 생명... 아들들이 되어야만... 그것이 바로 낳는 겁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느 시점에서는 점점 성숙하게 되면서... 언젠가는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항상 젖만 먹는 어린아이가 되어서도 안되고, 청년기에 머물러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아비가 되고, 어미가 되어... 누군가의 영적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서 자녀들이나 부모들이나 모두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하는 겁니다. 육신의 부모가 아니라 영적인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를 말씀하는 겁니다.
아직 내가 누군가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지 못한다면... 나는 자녀입니다. 말씀을 더 많이 듣고 자라야 된다는 의미에서 자녀입니다.
우리가 처음에 진리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내 마음에 품으면... 비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겁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여기 ‘영접’이라는 단어는 진리의 말씀을 꽉 붙잡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 말씀이 내게 생명이라는 걸 알아서 그 말씀을 꽉 붙잡고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했는데, 여기 권세(엑수시아 1849 έξουσία)라는 단어가 ‘말씀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영접’이라는 말도, ‘믿는다’는 말도, ‘자녀’가 된다는 말도... 전부 진리가 내 안에 들어 온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진리가 생명인데... 그 생명이 되는 진리의 ‘씨’가 내 안에 있으면... 그래서 영생이 임한 것이고... 그래서 자녀인 것이고, 그래서 아들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아들은 나중에 그 씨를 전해 줄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육신의 자녀나 육신의 부모에 대한 말씀이 아니고... 전부 영적인 면에서 자녀들과 부모와의 관계를 말씀하는 거예요.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자녀들은 육신의 부모님에게 공경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절대 오해를 해선 안됩니다.
나를 낳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에 대해서 당연히 순종하고 공경하는 자세를 가져야죠.
지극히 당연하고 마땅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거죠. 대상이 다릅니다. 대상이...
자, 그렇다면 영적 자녀들은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주는 부모님에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본문 1절에 보면,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자녀들은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그랬습니다.
‘주’라는 단어 퀴리오스(2962 κύριος)는 최고의 권위를 뜻하는 의미로서 ‘통치자’, 존경의 칭호로서 ‘하나님, 주, 주인, 선생님’으로 번역이 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주 안에서” 라는 말은 “하나님 안에서... 생명의 주가 되고... 진리를 가르치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순종하라는 겁니다.
우리는 ‘순종’ 그러면, “순순히 듣고 따르라!” 하는 ‘행함’이 전제된 순종을 생각하는데, 그런 뜻이 아닙니다. 행함이 아니라, 잘 들으라는 의미에서의 순종입니다.
순종이라는 단어 휘파쿠오(ὑπακούω)는 ‘주의 깊게 듣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는 의미입니다. 잘 듣는 것이 순종인 겁니다.
휘파쿠오(ὑπακούω)는 히브리어 솨마(שמע)에서 왔어요.
성경에서 솨마(שמע)가 제일 처음 등장하는 곳이 창세기 3:8절입니다.
⚫(창3: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기서 ‘듣고’ 라는 단어가 솨마(שמע)입니다.
솨마(שמע)의 뜻은 ‘주의 깊게 듣다, 조심스럽게 듣다, 확실히 듣다, 부지런히 듣다, 찬송하다, 동의하다, 선포하다, 울리다, 소리를 내다’ 이런 뜻입니다.
주의 깊게 듣는 겁니다. 조심스럽게 듣고, 확실히 듣고, 부지런히 듣는 겁니다.
‘찬송하다’라는 뜻도 있는데, 잘 듣고 깨닫게 되면 찬송이 터져 나오게 되는 겁니다.
찬송도 ‘잘 들음’에서 발현되는 겁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되면 찬송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동의’하는 것도 그래요. 말씀을 잘 들으면 그 분의 말씀에 순복하고 아멘이 터져나오거든요. 그게 동의하는 겁니다. “맞습니다. 옳습니다. 주님의 그 말씀을 나의 말로 받아들입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게 동의입니다.
‘선포’하는 것도 그래요. 왜 선포하게 되죠?
왜 소리를 ‘울리’고, ‘소리’를 크게 내게 되죠?
그 말씀이 과연 그러하기에... 나는 이룰 수 없는 그것을 주님이 다 이루시기에... 탄성을 지르고, 크게 소리내어 선포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잘 듣는’ 겁니다.
그냥 들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주의 깊게 들어야 되요. 조심스럽게... 확실하게... 부지런히...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에 동의와 찬송이 터져나와야 하는 겁니다.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다 보면, 다 보여요.
저 분이 말씀을 집중해서 잘 듣는지...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보입니다. 눈동자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마음은 다른 데 가 있는 분도 있고, 아주 집중해서 꿀송이처럼 달게 받는 분도 있고 그래요.
솨마(שמע)는 듣는 겁니다. 그냥 대충 들어선 안됩니다. 생명이 여기에 있잖아요.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 앞에 피조물인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듣는 것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어떻게 행해 보려는 것 자체가 불순종이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언약은 전부 하나님 스스로가 이루시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그 약속을 이루어 가시겠다는데 내가 나서면 되겠어요?
그러니... 우리는 그 분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무슨 의미인지...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 1절에서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휘파쿠오(5219 ὑπακούω)라는 말씀은... ‘그 말씀대로 행하고 순종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주의 깊게 듣고 마음에 새기라’는 것입니다.
‘너의 말을 죽이고 나의 말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에... 그 말씀에 자세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 휘파쿠오(ὑπακούω)이고, 그래서 그 말씀을 내 마음에 품는 것이 휘파쿠오(ὑπακούω)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갖는 것이 휘파쿠오(ὑπακούω)이고, 그래서 진정한 찬송이 터져 나오는 것이 휘파쿠오(ὑπακούω) ‘순종’인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이요, 자녀들입니다.
계속해서 본문 1절을 보면,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해야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고 있는데... “이것이 옳으니라” 그랬습니다.
왜 순종해야 되느냐? 이것이 옳기 때문에... 순종하라는 겁니다.
여기서 ‘옳으니라’로 번역된 ‘디카이오스(1342 δίκαιος)’는 ‘본질적으로 옳은 것’을 말하는데, 히브리어 ‘짜다크’(6663 צךק)에서 왔습니다.
⚫(시119:137)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
여기서 ‘의로우시고’라고 번역된 단어가 ‘짜다크’(6663 צךק)에서 왔는데, 그 뜻은 ‘올바르다, 의롭게 하다, 의를 나타나게 하다, 정의를 행하다’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 그 분이 바로 의가 되신다는 겁니다.
우리는 흔히 ‘의롭다’ 그러면, 죄가 하나도 없고 도덕적인 면이나 윤리적인 면에서 완전한 것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의인’이라고 그러고, 가톨릭에서는 ‘성인’이라고 그러는데... 성경은 그런 뜻이 전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그랬습니다(롬3:10).
누구 맘대로 의인이라고 성인이라고 그럽니까? 다 죄인이고... 인간의 의라고 하는 것은 다 더러운 옷과 같다고 그랬습니다.
⚫(사64: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왜 인간의 의를 더러운 옷과 같다고 하시는 줄 아십니까?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서 무화과 잎으로 옷을 해 입었습니다. 지난 주에 배웠습니다만, 무화과는 씨가 없고 생명이 없는 나무를 상징합니다. 본질적으로 생명이 될 수가 없습니다.
“너희들이 만들어 입은 그 옷은 더러운 거야... 생명이 되지 못해!” 그런 말씀입니다.
우리는 속옷과 겉옷을 입어야만 의롭다 칭함을 받을 수 있어요.
율법이라는 속옷과 새 언약이라는 겉옷을 입어야만 된단 말예요.
그건 같은 짝이고 한 쌍이란 말입니다. 진리로 옷 입어야 되는 거예요.
다시 말하자면... 오직 하나님만이 의가 되세요.
즉, 언약의 관계에서 ‘의’(צךק)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의를 행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스스로 언약을 행하시기 위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이고, 그 언약을 십자가에서 이루신 겁니다.
그런데 놀랍고도 감사한 것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는데, 말씀을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하십니다(롬3:24, 28).
짜다크(צךק)라는 단어를 파자하면, ‘잡아서 구분하여 죽이고 살리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도의 ‘의’ (디카이오쉬네 1343 δικαιοσύνη)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 안에서 이뤄진 겁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과 열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처럼 된 ‘나’를 십자가에서 죽이시고 ‘그리스도’로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것입니다(갈2:20).
그래서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에 불과하고 전혀 의와는 거리가 먼 자들을...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시고... 그래서 “너는 이제 죄가 없어!”하시며 의롭다고 칭해 주십니다.
⚫(롬1:28~32)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여기 보면, 타락한 인간 세상에 있게 되는 현상들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28절에서 한 마디로 정리해 놨습니다. 그게 뭡니까?
“그들이 마음이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그랬습니다. 이 말씀이 핵심입니다.
29절부터는 그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현상들입니다.
전부 진리의 말씀에 대해서 마음을 닫아 버리고 진리를 거부하고, 비방하고, 수군 수군하고 능욕하고 무자비합니다.
그 중에서 30절에 ‘부모를 거역하는 자’가 있어요. 진리의 말씀에 거역한다는 것이죠.
거역한다는 말이 휘파쿠오(ὑπακούω)하지 않는 것... 순종하지 않는 걸 말해요.
⚫(딤후3:1-5)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여기 이 말씀도 진리에 대한 말씀을 하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말세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모습을 열거하면서 “너는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그러면서 강하게 권고합니다.
그 중에서 ‘부모를 거역하는 자’가 들어 있습니다.
부모를 거역하는 것은 단순히 말씀을 듣지 않는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진리의 말씀을 거역하고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명이 달린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삶 속에서 반드시 나와야 하는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아 네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디카이오스(1342 δίκαιος)’ 본질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2절을 보겠습니다.
⚫(엡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서는 무슨 의미인지 알았구요. 부모에게 ‘공경하라’ 그랬습니다.
‘공경하라’로 번역된 단어는 ‘티마오(5091 τιμάω)’인데 ‘높이 평가하다, 가치를 두다, 존경하다, 공경하다’ 그런 의미입니다.
한 마디로... 주시는 말씀이 생명이 되는 진리의 말씀이기에 ‘전적인 순종을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그랬습니다.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는 것은 십계명을 의미합니다.
십계명 중에서 다섯 번째 계명을 말씀하는 겁니다.
계속해서 3절을 보면... 이로서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그랬습니다.
⚫(엡6: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자, 부모님을 잘 공경하고 그러면 잘되고 장수하던가요?
하는 사업도 잘되고 오래 오래 살고... 그런 의미일까요?
이 말씀이 어디에서 왔는지 보겠습니다.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십계명 중에서 다섯 번째 계명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 전해 주신 말씀입니다.
본질적으로 ‘부모’라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의미하는 겁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섬기는 것은 불가능해요.
우리가 하나님을 봤습니까? 하나님을 이해하면 얼마나 이해하고,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피조물이 어떻게 창조주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믿을 수 있겠어요?
그래서 성경은 믿으라고 하지 않고 알라고 그랬어요. “힘써 알라!”
⚫(호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그러므로 여호와를 알라는 겁니다.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랬어요.
어떻게 해야 아는 걸까요?
알기 위해서는 잘 들어야 되요. 듣는 겁니다. 그걸 성경은 믿음이라고 그래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롬10:17)
듣는 게 믿음이라구요.
인간이 하나님을 믿는 게 본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산상수훈에서 주님은 1계명부터 5계명은 다루지도 않으세요.
그것과 똑같은 짝, 쌍으로 주신 것이 6계명부터 10계명인데... 그걸 주님은 넷으로 설명해 주셨잖아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그리고 사랑...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셋을 잘 알면... 그걸 사랑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이걸 다 알고 깨달으면... 열로 주신 계명을 다 안 것이고 믿은 것입니다.
즉, 열로 주신 계명을 다섯과 다섯... 둘로 아는 것이고, 그 둘을 하나로 얘기하면 ‘사랑’인 겁니다. 그래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로 비유하신 겁니다.
그래서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그렇게 말씀하신 겁니다(고전13:13).
자, 성경에서 말씀하신 부모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우리는 하나님을 보지도 못했고, 섬길 수도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셨어요. 쉽게 말해서... 그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대리 부모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자라고 그러잖아요? 사자가 뭡니까? 하나님 대신 말씀을 전하는 자를 말하는 거죠.
그가 전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아...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거죠.
그렇다고 말씀을 전하는 자를 하나님 대하듯 하면 안됩니다.
똑같은 인간이지 무슨 하나님입니까?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 섬에서 날 때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을 고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바나바는 제우스라 그러고 바울은 헤르메스라고 그러면서 신을 섬기듯 제사를 드리려고 그럽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옷을 찢으면서 소리를 질러 말합니다.
“여러분! 미쳤습니까? 나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인데... 이런 헛짓을 버리고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보라!”고 외쳤습니다. 그렇게 해서 겨우 제사를 하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행14:13f).
그러나 인간은 말이죠. 신처럼 귀히 여기고 떠받들면 그게 또 좋거든요?
그래서 자기가 진짜 하나님이라도 된 듯이 엉뚱한 길로 빠지는 거죠. 그래서 이단이 생기고 교주가 생기는 겁니다.
자, 사람을 신처럼 떠 받들지 말고... 말씀을 귀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공경’이라는 것은 전적인 순종을 의미한다고 그랬죠? 그러면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주신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그랬습니다.
어디서 장수하게 된다고 그러죠?
거기가 어디죠? 하나님이 주신 땅,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말해요. 이 가나안 땅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생을 얻게 된다는 의미로 말씀하는 겁니다.
그렇게 진리가 된 사람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엡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여기서 아비는 누구죠?
진리를 전해 주는 사람을 말하는 거죠?
진리를 전해 주는 아비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노엽게 하지’로 번역된 단어가 파롤기조(3949 parorgivzw)인데 ‘격노케 하다, 화나다, 노를 유발시키다’ 그런 뜻입니다.
아니, 말씀을 받는 자녀들이... 왜 이렇게 격하게 분노하고 화가 나는 거죠?
왜 노를 유발시키게 된다는 거죠?
말씀을 전하는 아비가 하나님의 순수한 진리를 전하지 않고 비진리를 전한다는 거예요. 비진리를 전한다는 것은 생명이 되지 못하겠죠?
그러면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품어 믿음이 된 자들은 전부 뭐가 되는 거예요?
비진리를 품고 있으니... 생명이 되지 않잖아요. 영생인줄 알았는데 생명이 그들 안에 없어요. 오히려 심판이 임하고 지옥에 가게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 화가 안나게 생겼습니까? 분노하고, 격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되돌릴 수도 없고 말이죠. 얼마나 분노가 일어납니까?
그래서 아비들은 자녀를 그렇게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훈’으로 번역된 파이데이아(3809 paideiva)는 가정교수라는 의미가 있어요.
그래서 ‘교육과 훈련으로 바르게 하다’ 그런 뜻입니다.
‘훈계’로 번역된 누데시아(3559 nouqesiva)는 ‘책망, 경고, 훈계’ 이런 뜻입니다.
때로 말씀을 듣다보면 그 말씀에 찔릴 때가 있어요.
그 말씀이 나를 책망하고 훈계한단 말예요.
그러면 인간적으로 서운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진리를 전하면 그 말씀에 순종해야지... 인간적인 감정으로 들으면 되겠어요?
서운하다고 그러고, 삐지고, 교회에 안나오고... 그러는 사람들이 가끔 있어요.
요새는 그런 분이 없고, 옛날에 그랬어요. 옛날에...
이 교회 개척한 횟수만 이제 17년인데, 그래도 모르면 되겠습니까?
저는 제 자신을 위해서라도 진리만 전할려고 애를 써요.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러니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할 때 잘 받으시기 바랍니다.
양육이라는 단어가 엑트렙호(1625 ejktrevfw)인데, 장성하기 까지 ‘키우다’, 소중히 ‘기르다’, 훈련시키다 그런 뜻입니다.
⚫(골3:2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이 말씀도 같은 의미입니다.
진리를 전하는 아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계명이나 교훈을 삼아 가르치거나 엉뚱한 비진리를 전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이고, 낙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들 가정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녀와의 관계를 통해서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가정에는 부부가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녀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육신의 관계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우리의 진짜 남편은...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는 그 분의 신부이고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우리는 그 분의 자녀들입니다.
이걸 가정을 통하여 진리를 설명해 주십니다.
우리는 진리를 가르치고 양육하는 자에게는 자녀가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진리를 전해주는 아비요, 어미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여러분 모두가 아비가 되고 어미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자녀들은 순종과 공경으로 말씀을 받으며, 아비들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진리의 말씀으로... 교훈하고 훈계로 양육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