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에게 있어 고구려는 어떤 존재일까? 고구려는 천년동안 대륙을 호령한 대륙강국으로, 우
리 역사의 자부심 그 자체였다. 우리는 고구려 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무엇이 이토록 우리를 가슴 벅차게 하는 것일까? 그건 바로 중국과 맞서 당당히 싸운 자주국가, 아니 중국이 두려워 한 대제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고구려는 대륙의 주인이었다. 중국이 남북조로 분열되었을 때, 남북조는 고구려의 비위를 거스리지 않기 위해 고구려에 사신을 파견하였고, 고구려는 그런 중원의 상황을 적절히 이용하여 국익을 챙겼다.
고구려는 자신들이 사는 곳을 천하사방 가장 성스러운 곳이라 여겼다. 고구려는 스스로를 천손이라 여겼다. 고구려가 있는 곳은 바로 천하의 중심이었고, 그런 고구려를 다스리는 태왕(太王:烈帝)은 바로 천자, 천손이었다.
천손인 고구려의 태왕 중 가장 뛰어난 이를 꼽으라면 누구나 주저없이 광개토태왕을 꼽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분 역시 광개토태왕 못지 않게 위대한 군주, 진정한 천자라 할 수 있다고 본다. 그 분은 바로 수나라를 멸망시킨 영양태왕이다.
영양태왕은 고구려 26대 태왕으로, 평원태왕의 장자이다. 그의 이름은 원(혹은 대원)으로 그의 일생은 수나라와의 천하를 건 대전쟁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양태왕은 4차례나 걸친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고구려 전쟁의 여파로 수나라는 결국 몰락하였다. 영양태왕은 수나라와의 전쟁을 통해 고구려를 지켜냈고, 수나라를 멸망시킴으로써, 진정한 천하의 주인이 고구려임을 상기시켰다.
우리가 고구려를 자랑스러워하고 가슴 벅차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거대제국 수나라를 붕괴시키고, 고구려를 비롯해 백제, 신라 등 동방천하권을 지켜내 천하의 주인으로서의 위상을 적립시킴에 있다.
고구려와 수나라의 대전쟁은 바로 고구려의 영주 침공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의 발단은 바로 수나라 문제의 노골적인 국서 때문이었다. 남조의 진숙보를 멸망시킨 수나라는 자신감에 넘쳐난 나머지 고구려에 오만한 국서를 보내는데, 이 국서를 받은 고구려 조정은 발칵 뒤집어 졌다. 조선상고사를 보면 이 때 강이식이란 장수가 "이처럼 오만 무례한 글은 붓이 아닌 칼로써 회답하는게 좋을 것입니다"라 건의하였고, 강이식의 건의를 받아들인 영양태왕은 598년 말갈군 1만을 거느려 영주를 공격하였다.
고구려가 영주를 공격한 것은 수 문제의 고구려 침략 의도를 흐리게 할 목적으로, 수의 '고구려 침공'을 고구려의 수나라를 향한 선제공격으로 대체해 넣은 것이다. 또한 이는 수나라의 침략을 앞두고 치루어진 일종의 예방전쟁으로, 적의 강성함과 군사적 운용능력을 사전에 감지하기 위한 적극적 군사활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삼국사기』, 『자치통감』에는 고구려가 별소득 없이 물러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고구려의 공격에 대노한 수문제가 한왕 양량, 왕세적, 주라후 등의 장수에게 30만의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공격하게 했으나 장마와 전염병, 풍랑으로 열에 아홉이 죽었다고 기록한다.
이에 대해 『조선상고사』는 다르게 제시한다. 강이식의 의견을 따른 영양태왕이 강이식을 병마원수로 삼아 고구려군 5만을 거느리고 임유관으로, 말갈군 1만을 요서에 침입하여 수의 군사를 유인하게 하고 거란 군사 수천 명으로 바다를 건너가 지금의 산동을 공격하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수나라에서 고구려의 도발에 대응해 30만 대군을 일으키자 강이식이 수군을 거느리고 주라후의 해군을 깨뜨렸고, 또한 한왕 양량이 거느린 육군 역시 성책을 지키며 적을 지치게 만든 다음 크게 깨뜨렸다고 한다.
고구려에 크게 혼쭐난 수 문제는 고구려를 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아들 양광에게 시해 당함으로써 고구려와 수나라 사이에는 다시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다. 아비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양광, 그가 바로 역사상 가장 유명한 폭군, 수 양제이다.
수 양제는 아비와 형제를 죽이고 황제에 오른 인물인만큼, 천륜을 어겼다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수 양제는 이 콤플렉스를 떨쳐내기 위해 고구려 정벌을 단행한다. 그 사전작업으로 수 양제는 동도(낙양)와 탁군과 양쯔강을 연결하는 대운하를 건설한다. 대운하를 건설한 목적은 남방의 풍부한 물자를 북방으로 손 쉽게 운송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는 북방의 돌궐, 서방의 고창을 굴복시키는 등 고구려로 가기 위한 사전작업을 착실히 쌓아간다.
그리고 612년, 수 양제는 113만이라는 초유의 대군을 움직여 고구려로 향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수 양제는 고구려를 힐난하면서 선전포고를 하는데, 수 양제의 말을 빌리면 고구려는 "공손치 못하고 발해와 갈석 사이에서 무리를 모아 요동, 예맥의 지경을 거듭 잠식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영양태왕이 북방의 천자 답게 수나라에 당당하게 대응하였으며, 발해와 갈석, 즉 지금의 북경 일대를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수 양제는 "지금 화양(華壤 :요동, 현도, 낙랑) 지역을 널리 보면, 모두 이류(異類: 고구려를 말함)가 됐다"고 통탄하였다. 이는 고구려가 영양태왕 대에 들어서 옛 조선의 강역을 되찾아 확보한 상태였음과, 고구려가 화양 일대를 경제권으로 가꾸었음은 물론 군사활동의 기반지역으로 활용하였음을 말해준다.
수 양제는 또한 "도망하고 배반하는 무리를 꾀어 들였고, 변방에 가득한 채로 심심찮게 봉후를 괴롭혔으므로 관문의 방어는 안정되지 않았고, 생민이 그 때문에 생업을 폐했다"고 했다. 이 내용으로 보아 당시 영양태왕이 수나라의 망명자와 기술자를 받아들였음과 아울러 부족한 노동력의 확충과 더불어 장차 수나라와의 대전을 준비한 조치로 평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고구려가 변방에 수시로 진격하여 수의 방어기능을 무력화시켰다는 것에 있다. 수나라 못지 않게 고구려 역시 수나라와의 대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수 양제는 "거란의 무리를 합쳐서 해수(海戍:해상부대)를 강제로 취했고 말갈의 일을 익혀 요서를 들이쳤다"고 했다. 이는 수나라에 맞서 영양태왕이 거란과의 군사연합을 이끌어냈고, 그들과 함께 수나라의 주요 해상부대를 무력화시키거나 고구려군의 편제로 복속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영양태왕은 국익을 위해서 거란과 말갈등과의 정치, 군사적 연합을 추진하였다.
우리는 수나라 최정예병 30만 대군을 몰살시킨 살수대첩의 공로가 을지문덕에 의한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알고 보면 이는 사전에 전쟁을 준비하고 대비한 영양태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수 양제의 침공전 조서 내용을 통해 영양태왕이 동북아시아의 강자로서의 면모를 지니고 수 양제의 제국적 중화패권주의에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 양제의 113만 대군이 출병했다는 소식을 들은 영양태왕은 수의 대군을 맞아 각처의 성곽을 거점으로 하는 전통적인 수성전을 펴는가 하면 적의 행군대열을 깊숙이 끌어들인 후 다시 기만책을 펴며 역공하는 방식을 취했다.
수 양제가 고구려의 요동 방어선에 발이 묶이자 우중문 우문술에게 별동대 30만 대군을 주며 내호아의 수군과 합해 평양을 공격하라 명한다. 이에 고구려는 영양태왕의 동생인 건무가 수군을 이끌고 패수에서 내호아의 수군을 몰살시킨다.(패수대첩) 건무의 승으로 수나라의 수륙병진책을 무력화시켰고, 을지문덕이 적의 별동대를 고구려 강역 깊숙이 끌어들이는데 전환점을 맞이한다.
을지문덕이 이끈 육전부대는 거듭된 거짓 패배로 수나라군을 평양 가까이 유인하여 그들의 보급선을 길게 늘이며 고구려군의 반격시간을 확보하는데 주력하였다. 그러는한편 살수에 고구려군이 하천선을 정비하여 일종의 수공용 물막이보를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영양태왕은 평양성 근처에 밀어닥친 수나라 대군을 맞아 적극적인 수성전을 주도하였다. 영양태왕의 강력한 수성전에 의해 전과를 올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긴 보급선에 따른 배고픔과 사기 저하로 수나라 군은 퇴각한다. 을지문덕은 수나라군을 뒤쫓아 살수에서 도망가는 수나라 군에게 수공(水攻)을 가해 섬멸전을 펼침으로써 30만 5천명의 대군 중 살아돌아간 자가 2천 700 여명에 불과할 정도의 대승을 거두었다.(살수대첩)
살수대첩은 고구려의 견고한 방어선과 기만유인전술과 함께 고구려의 우수한 무기가 이루어낸 대첩이었다. 살수대첩 후 고구려는 일본에 전리품으로 얻은 수나라 무기(노, 포석 등)들을 보낸다. 고구려가 왜에 이 전리품을 보낸 것은 고구려의 막강한 전투역량을 과시함과 아울러, 고구려가 갖추고 있던 군사 기술력을 은근히 드러낸 측면이 있다. 쇠뇌, 투석장비는 고도의 기술력이 있어야 만들 수 있던 그 당시 첨단장비였다. 그 첨단무기를 거리낌없이 왜지에 선물로 보냈다는 것은 고구려가 그 정도 수준 군사기술을 일찌감치 보편화된 기술로서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겠다.
살수대첩의 여파로 수나라는 내정이 어지러워지고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결국 망하고 말았다. 우리는 수나라가 혼란할 때 고구려가 수나라로 쳐들어갔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그런데 『한단고기』「태백일사」를 보면 놀라운 기록이 있다. 고구려가 수나라 내지로 진공작전을 펼쳤다는 내용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
"홍무 23년(612) 수군 130여만이 바다와 산으로 나란히 공격해왔다. 을지문덕은 능히 기이한 계책으로 군대를 이끌고 낭가서 이를 공격하고 추격하여 살수에 이르러 마침내 대파하였다. 수나라 군사는 수륙 양군이 무너져 살아서 요동성까지 살아돌아간 자가 겨우 2700여인이었다. 양광은 사신을 보내 화해를 구걸했으나 문덕은 듣지 않고 영양제 역시 엄명하여 이를 추격케했다. 문덕은 제장과 더불어 승승장구하여 똑바로 몰아부쳐 한쪽은 현도도로부터 태원까지 추격하여 다른 한쪽은 낙랑도로부터 유주에 이르렀다. 그 주군에 쳐들어가 이를 다스리고 백성들을 불러다가 안무하였다"
현재 한단고기가 위서 취급을 받고, 세인으로부터 찬반론을 일으키지만, 삼국사기의 미묘한 의문, 중국사서의 의도적인 곡필을 보면 한단고기 내용을 완전히 무시하기 보다는 일단 관심을 갖고 검토해보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아무튼 위 기록은 대단히 중요하다. 위 기록에 따르면 당시 고구려가 수나라의 정치, 군사적 중심지를 완전히 파탄시킨 것이다. 더욱이 유주지역을 공격했다는 것은 수나라의 동북전진 거점을 붕괴시킨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의 태원지역 원정의 의미는 적진 깊숙이 자리한 후방지휘소를 타격한 것으로 이해된다. 결국 고구려의 유주와 태원을 향한 원정은 수나라의 동방과 후방지휘 거점의 파괴에 초점이 있었던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게다가 동북변지역으로의 분산된 진공작전을 추진함으로써 고구려를 침략한 수나라에 강한 응징을 펼친 셈이다.
수나라를 향한 고구려의 반격은 대단한 분군(分軍) 진공 작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고구려의 서쪽 변지를 크게 확장함으로써 옛 조선의 강토를 다물함과 아울러 서방 말단지역을 유주지역을 위협하는 형세로 구축하여 수나라의 재침을 무력화시키는 군사방어망을 이룸으로써 수나라의 동방 군사거점을 거의 무력화시키고 계획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고구려에는 뛰어난 군주들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영양태왕을 기억해야 한다.
여담이지만, 영양태왕은 조선까지도 나라에서 제사를 지낸 고구려의 제왕이었다. 땅을 넓힌 광개토태왕이나 진흥왕도 조선의 제사를 받지는 못했다.
영양태왕은 수나라에 맞서 먼저 수나라를 공격하고, 수나라 전체 인구의 10분의 1인 300만 대군(정규군과 보급군까지 합해)을 맞아 이들을 격퇴시켰다. 영양태왕이 수나라의 야욕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이를 물리쳤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고수대전이 고구려의 승리로 돌아간 것은 비단 고구려와 수나라뿐만 아니라 당시 동아시아 정세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수가 패전함으로써, 동방지역(고구려, 백제, 신라를 포함한 동쪽지역)을 직접 영유하려던 수의 계획은 좌절되었는데, 이는 동아시아 전체를 하나의 문화권, 수나라 중심의 천하질서로 묶으려던 수나라의 계획이 좌절된 것을 의미한다. 고수대전의 승리로, 고구려는 예전처럼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진 동방의 패자임을 실력으로 입증한 셈이다. 그러므로 고수대전의 승리는 고구려만의 것이 아니라 한민족 전체의 승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고수대전을 승리로 이끈 이가 바로 영양태왕이었다.
수나라에 맞서 먼저 수나라를 공격하고 수의 300만 대군을 격멸시켰으며, 수나라 내지로 깊숙이 진공해 고구려의 기상을 드높인 위대한 전설, 그 전설은 영양태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는 광개토태왕, 장수태왕을 알고 있지만, 또 하나의 대영웅을 기억해야 한다.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거대제국 수나라에 맞서 고구려를 지켜내고 수나라를 멸망시킨 위대한 영웅, 고구려의 기상을 온 천하에 진동시킨 영양태왕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