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준비교육(Death education)
죽음준비교육이 왜 필요한가?
죽음준비교육의 대상자는 누구인가?
죽음준비교육이 왜 필요한가?
우리나라의 정서상 예부터 성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문화가 아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재수 없다’, ‘나 죽으면 끝인데’라고 대부분 터부시하곤 했다.
그래서 초등학교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 까지 죽음에 대하여 진지하게 토론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이런 이야기를 하기 힘들고 죽음과 관련한 학습 할 기회마저 없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경찰청 발표에 의하면 OECD 국가 중 과거10년간 자살율이 1위이다. 인구 10만명당 28.1명이다. 청소년의 자살과 더불어 노인층의 자살율이 증가 추세에 있다. ‘죽으면 끝이다’는 사상이 우리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고 삶과 죽음을 자살을 하면 단절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한 이러한 문제는 계속 지속될 듯하다.
우리가 이야기는 하는 죽음준비교육은
죽음을 각오하라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는 죽음을 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다. 그렇다면 임종시 죽음에 대하여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는 마음에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건강한 죽음(Good death)을 맞기란 기대하기가 어렵다.
또한, 죽음준비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암 또는 질병으로 투병 중에 임종을 맞을 때 더 이상의 치료를 거부한다든지, 유언을 남긴다든지, 사랑하는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편지를 쓰고, 애장품을 누구에게 선물 할 것인지 죽은 뒤 화장을 할 것인지 납골당으로 갈지 아니면 산골을 할 지, 매장은 어디에다 준비 할 것인지 등을 본인의 죽음과 관련하여 자손들이나 유가족에게 의사전달을 할 수 없다면 떳떳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 일찍부터 죽음과 관련한 본인의 분명한 의사를 가족들이 알 수 있게 해야만 한다. 또한 죽음에 대하여 미리 준비하는 사람은 자기 인생을 보다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분노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죽음준비교육은 자신의 삶에 대한 애정과 사랑하는 가족을 위하여 성실하고 타인의 본보기가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생의 공간과 시간을 헛되어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죽음준비교육의 대상자는 누구인가?
죽음준비교육에 대하여 이해했으리라 믿고 그 대상자는 누구일까? 죽음을 곧 앞두고 있는 자 일까? 아니면 인생의 긴 여정에서 마지막 부분에 있는 노인들일까?
아니다. 죽음준비교육은 초등학생부터 시작하는 것이 올 바르다.
초등학생이면 사물을 관찰할 수 있으며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화초를 대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집에서 기르고 있는 애완동물이 죽었을 때의 감정과 느낌을 서로 공유 할 수도 있다.
우리사회는 TV, 영화 그리고 게임에서 너무나 쉽게 죽음과 폭력을 접할 수 있으며 초등생들이 어떻게 받아드리고 어떤 행동을 따라 할런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친척의 죽음 또는 학급생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드리고 어떤 방법으로 위로와 격려를 해야 어떠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적절한 상담과 교육이 이루어 져야 한다.
중고등학생들에게는 이미 생명을 잉태 할 수 있는 능력과 죽음에 대한 사고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된다. ‘자살은 나쁜 것이다.’라는 단순하고 이론적으로만 설명되어서는 아니 되며 주변에 그런 상황이 발생될 때에 제지와 만류할 수 있는 능력을 함량하고 수양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과 관련해 매장을 할지 화장을 할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야 하고 혼수상태가 지속되어 회복가능성이 없을 때에 계속해서 치료를 받을 것이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할지 또는 그나마 건강한 신체의 일부를 장기기증 할 것 인지 등에 대하여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방안을 찾을 수 있다.
대학생들에게는 중고등학생과 마찬가지의 교육과 더불어 붓다, 예수, 소크라테스 등의 순교를 어떻게 이해 할 것인가 우리의 생명과 관련된 수질개선, 교통, 환경, 도로건설 등 정부정책과 세금을 잘 사용하고 있는지 정책입안자와 국회의원에 대한 투표권자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는지 우리의 세금을 감옥에 있는 살인을 저지런 죄수들에게 어떻게 쓰여 지는지에 대하여 다양한 토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노인들에게는 죽음에 관한 교육은 평생교육의 일환으로 대학생들에게 제공된 것들과 더불어 충분한 토의 할 수 있을 것이며 재산을 어떻게 나누어 줄 것인가에 대하여도 관심이 많을 것이다. 또 장례식과 장례절차에 대한 궁금한 점을 해결해 주고 어떻게 호스피스를 선택할 것인가 배우자나 자식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 드리고 행동해야 하는지 등에 대하여 관심이 많다.
프리니드(Pre-need)
죽음준비교육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본인과 주변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할 것이라면 프리니드는 죽음이라는 구체적인 사실에 대하여 물질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라는 실천적인 측면이 서로 비교된다.
프리니드의 정의는 인생주기(Life cycle)에서 자기 자신이나 사랑하는 가족의 가장 위급한 상황, 즉 죽음(need)을 대비하여 사전(Pre)에 준비하는 제반행위나 제도를 총칭하는 개념이다.
프리니드는 개인적으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아 겪게 되는 경제적 위험을 분산시켜주고, 정신적인 충격을 완화시켜준다. 첫째로 임종을 맞이하는 입장에서 원하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누구나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으며 어떠한 방법의 장례식을 선택할 수 있으며 자신의 죽음을 설계가능하다. 둘째는 미리 본인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 놓았기 때문에 죽음을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가족들이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결정을 하느라 우왕좌왕 할 필요가 없다. 셋째는 경제적인 위험을 분산시키고 초과지출을 없앨 수 있다. 평균 매장장례비용이 1650만원, 납골당의 경우 1200만원의 목돈이 필요하다. 상주나 유가족들의 당황스런 상황에서 불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과다하게 구매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셋째로는 죽음을 보다 건강하고 편안하게 죽을 수 있다. 자신의 죽음을 미리 준비해 놓으면 죽음이 다가옴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또 유가족들에게 부담을 줄여주기 위하여 미리 물품을 준비(Pre-arrangment)하거나 장례에 필요한 경비(Pre-financing)를 사전에 준비해 줄 수 있다. 요즘 프리니즈 산업의 한 분야인 장례서비스업이 있는데 업체들이 상품과 서비스를 경쟁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공신력이 있는 회사와 미래에 장례서비스를 이용할 때 계약된 내용과 같은 품질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회사인지를 현명하게 구별 할 줄 알아야겠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가족이 붕괴 된지가 오래이다. 그리고 점정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핵가족과 배우자가 없는 가정의 증가와 이미 2000년에 노인의 인구가 7%가 넘었으며 또한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상해나 사고고 갑작스럽게 죽는 경우보다는 건강하고 장수하면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결론은 우리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프리니드산업 또한 급속히 변화에 대응 할 수 있는 기능과 수행 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이제껏 고인에게 위로하는 방법은 장례식장에 참여하는 것 이었으나 사고의 변화와 새로운 문화를 받아 드리는 자세와 죽음에 대한 교육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문화를 요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