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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녕문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현우
창녕 출신 임재도 소설가가
2012년 <창원문학>(23집)에
단편소설 <모자이크 환상>을
발표하였다.
단편소설
모자이크 환상
임재도
성게
구속이다나를바라보는누군가의시선하나라도있다면
그시선하나마저도철저히배격하는처절한자유의고독
1
완전한 자유를 갈망하는 한 사나이가 있었다. 그 사나이에게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구속이었다. 국가도, 사회도, 직장도, 가정도, 일도, 심지어 사랑조차 구속이었다. 사나이는 이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 갈매기가 되고 싶었다. 갈매기처럼 자유롭게 날면서 바람처럼 살고 싶었다.
2
그런 사나이가 섬 하나를 발견했다. 그 섬에는 아무도 없어 남을 의식하거나 다툴 필요도 없었고, 온갖 곡물과 과일이 풍성하게 자라고 있어 생존을 위해 일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 섬에는 그를 간섭하고 구속하는 그 어떠한 것도 없었다. 이 지상에서 낙원이 있다면 그 섬이 바로 낙원이었다. 사나이는 그 섬에 가서 살기로 작정했다. 사나이는 가족 몰래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배 한 척을 샀다. 그리고 혼자 그 섬으로 갔다. 섬의 해안에 도착하자마자 사나이는 타고 온 배를 태워버렸다. 낙원인 그곳에서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필요도 없었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다.
3
일주일이 지났다. 사나이는 그토록 갈망하던 완전한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숲과 해변의 모래톱을 스치는 상큼한 바람이 허파 속으로 감미롭게 스며들고, 먼 바다에서 소리 없이 다가와 해안의 바위 귀에 속삭이는 파도 소리가 짓눌려 있던 심장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밤이면 무수한 별빛이 축복처럼 쏟아져 그의 온몸을 정성 어린 손길로 애무해주었다. 사나이는 온몸을 적시는 자유와 해방감에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을 흘렸다.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사나이는 여전히 꿈꾸는 갈매기가 되어 낙원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이런 낙원을 발견한 것은 그에게만 내려진 창조주의 위대한 은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나이는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했다. 가족조차 버리고 왔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4
한 달이 지났다. 여전히 자유로웠지만 사나이는 문득 가슴 한쪽이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시 왔던 곳으로 되돌아갈 생각은 나지 않았다. 돌아갈 수도 없었다. 이미 타고 온 배를 태워버렸기 때문에. 다시 한 달이 지났다. 허전하여 바람과 얘기를 했다. 바람과의 얘기도 이내 시들해졌다. 또 다시 한 달이 지났다. 파도 소리와 대화를 했다. 그러나 그 대화가 사나이의 허전함을 달래 줄 수는 없었다. 다시 한 달이 지났다. 하늘을 나는 갈매기를 향하여 손짓을 하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나이의 가슴속 구멍은 더욱 크게 자랐다.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사나이는 섬에 있는 모든 사물과 대상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해변의 조약돌, 바닷가에 우뚝 선 바위, 울창한 나무와 숲, 싱그러운 풀, 푸르게 빛나는 달빛, 팔 벌려 흔들기만 하면 우수수 쏟아질 것 같은 무수한 별…… 등등. 그러나 아무 의미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5
일 년이 지났다. 이제 사나이의 가슴에는 동굴 같은 큰 구멍이 나 있었다. 노을이 붉게 물든 어느 날 저녁, 사나이는 해변의 물결선을 따라 모래사장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모래사장의 반쯤을 걸어왔을 때, 사나이는 문득 뒤를 돌아다보았다. 발자국이 줄을 이어 따라오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그를 만나기 위해 따라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도 반가웠다. 그는 따라오고 있는 누군가를 보기 위해 뒷걸음질을 치면서 남은 모래사장의 반을 걸었다. 모래사장이 끝나는 해변에 우뚝 솟은 바위 하나가 있었다. 그는 그 바위 위에 올라 먼 시선으로 모래사장에 찍힌 발자국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내딛은 발자국과 뒷걸음질을 친 발자국이 모래사장의 중간에서 만나고 있었다. 그때 노을에 물든 나무 그림자 두 개가 그곳에서 겹쳐졌다. 그 형상은 마치 누군가와 누군가가 만나 포옹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파도가 밀려와 발자국을 지워 버렸다. 노을이 비켜나며 그림자도 사라져버렸다. 다음 날 노을이 질 무렵, 사나이는 다시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찍어가기 시작했다. 반은 앞으로, 반은 뒷걸음질로. 사나이가 새긴 발자국을 물결이 지우고, 노을이 물들고, 나무 그림자 두 개가 포옹을 하고, 노을이 지고, 그림자가 스러지고, 그러나 사나이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 흔적 없는 발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6
그곳에 낙원이 있었다. 그 낙원에서 한 사나이가 노을 속에서 모래사장을 걷고 있었다. 바람도, 그 바람에 칭얼대는 파도 소리도, 그 파도 소리를 달래듯이 얼싸안는 바위도, 그 바위 뒤의 숲도, 그 숲속의 나무도, 풀도, 꽃도, 그 숲에서 알을 낳고 지저귀는 새도, 하늘도, 그 하늘에서 피고 지는 노을도, 그 노을 커튼 뒤에 수줍게 숨어 있는 별도, 섬에 있는 모든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사나이는 점차 변해갔다. 얼굴에는 성긴 파래 같은 주름이 지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하얗게 변했다. 이빨도 듬성듬성 빠졌다. 그러나 사나이는 여전히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찍어가고 있었다. 흔적 없는 사나이의 발자국처럼 시간도 아무 흔적 없이 흘러갔다. 이제 노인이 된 사나이가 지팡이를 짚고 힘든 걸음으로 모래사장을 걷고 있었다. 유난히도 붉게 물든 노을이 바람에 실려 비스듬하게 북쪽 하늘가로 스며들고 있었다. 두 개의 긴 나무 그림자가 모래사장에 드리웠다. 사나이는 긴 노을 그림자처럼 조용히 모래사장에 스러졌다. 파도가 일렁이며 다가와 몸을 흔들었지만 사나이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7
다음 날 아침, 숲에서 깨어난 새들과 해변의 바위에서 이른 새벽을 맞은 갈매기들이 날아와 서로 싸우며 사나이의 동공을 부리로 파내고 몸을 쪼고 찢었다. 바위와 돌과 모래 틈새에서 게들이 무리를 지어 기어 나와 사나이의 뼈에 붙은 살을 날카로운 집게로 오려내었다. 넘나드는 물결이 사나이의 뼈에 묻은 피를 씻어 내렸다. 시간의 푸른 물결이 쉼 없이 모래사장을 넘나들고, 사나이의 전신 해골이 태양의 흑점이 토해 낸 투명한 햇빛을 받아 하얗게 드러났다. 파도가 밀려와 사나이의 작은 뼈를 실어갔다. 바람이 큰 뼈를 모래사장에 묻었다. 이제 모래사장 위에는 사나이의 해골 하나만 덩그렇게 남아 있었다. 동공이 사라진 동굴 같은 사나이의 해골 눈구멍으로 검은 이슬을 머금은 바람이 스며들었다. 해골의 입에서 울음소리가 배어나왔다. 비가 내렸다. 비에 젖은 해골에서 새싹처럼 머리카락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사나이가 새겨간 흔적 없는 발자국처럼 울음소리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 울음이 바람에 실려 낙원의 하늘에 퍼지고, 비가 내리고, 그때마다 해골에서는 점점 더 많은 머리카락이 돋아나 자라기 시작했다.
8
시간의 물결은 계속 이어지고 울음소리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 동안 해골에서 자란 머리카락은 모두 빳빳하게 서서 날카롭고 뾰족한 가시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 갈매기가 멋모르고 해골을 채어보려다가 가시에 찔려 화들짝 놀라 날아갔다. 갈매기의 발에 채인 가시가 무수한 작대기 다리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골이 가시발로 모래사장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해골은 사나이가 그랬던 것처럼 모래사장에 흔적 없는 가시 발자국을 남기고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해골은 수면 아래 바닷길을 작대기 다리 가시발로 걷고 또 걸어 드디어 섬을 벗어났다. 훗날 사람들은 그 낙원의 섬에서 건너온, 가시가 자라난 해골을 성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해파리
1
키 작은 풀과 키 큰 나무 하나가 사는 작은 파란 별에 두 마리의 새가 날아왔다. 그중 암컷 하나가 네 개의 알을 낳고, 그중 세 개의 알에서 암컷이 부화하여 다시 각자 다섯 개의 알을 낳고, 또 각자 네 개의 알이 암컷으로 부화하고, 그 암컷들이 또 각자 여섯 개의 알을 낳고, 그중 각자 다섯 개의 알이 또 암컷으로 부화하고, 또 낳고, 또 부화하고……, 각자 열 개의 알을 또 낳았을 때 새들의 날개에 덮인 키 작은 풀과 키 큰 나무가 뿌리로 빛을 토하면서 죽었다. 별도 새들의 날갯짓에 어두운 빛으로 조각조각 흩어졌다. 앉을 곳을 잃은 새들은 새로운 별을 찾아 까만 진공을 날았다. 별은 보이지 않았다. 새들의 날개가 지쳐갈 무렵 멀리 파란 별 하나가 보였다. 별이 빠르게 다가왔다. 새들의 눈에 파란빛이 스쳤다. 새들은 별의 중력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지친 날개로 별의 중력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새들은 모두 바다에 떨어졌다. 새들이 떨어진 바다에 물방울은 튀지 않았다. 무수한 해파리들만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2
나는 지금 간유리처럼 뿌연 해파리 렌즈 망원경으로 파란 별 하나를 바라본다.
3
별에는 키 작은 풀들 사이에 여섯 개의 다리를 가진 곤충들이 살고 있고 키 큰 나무들 사이에 네 개의 다리를 가진 동물들이 살고 있다. 키 큰 나무의 우듬지 위에는 두 개의 발과 두 개의 날개를 가진 새들이 날고 있다. 이 새들의 날개는 포근한 깃털로 덮여 있다. 그리고 두 개의 다리와 깃털이 모두 뽑혀 버린 두 개의 퇴화된 날개를 가진 짐승들이 직립으로 걷고 있다. 퇴화된 날개의 끝은 다섯 개의 가지로 뻗어 있다. 짐승들은 키 큰 나무의 우듬지보다 더 높게 솟은 차가운 수정 궁궐에 살고 있다. 수정 궁궐의 지붕은 첨탑처럼 날카롭고 성벽은 별의 껍질을 투명하게 벗겨 쌓은 것이다. 그러나 모든 유리창은 말린 해파리 피부처럼 탁하다. 짐승들이 별의 투명한 퇴적층 피부를 뚫고 혈관에 꽂은 대롱에서 별의 체액이 솟아오른다. 어두운 밤에 수정 궁궐 해파리 유리창에서 해가 뜬다. 검은 도로에 짐승들이 네 개의 둥근 기형奇形의 다리를 가진 괴물을 타고 빠르게 달린다. 괴물은 별의 림프액을 마시면서 달린다. 짐승들은 모두 작은 대롱을 우산처럼 들고 다닌다. 괴물의 등에는 큰 깔때기가 실려 있다. 작은 대롱과 큰 깔때기에서 기침소리가 나고 구멍에서 붉은 노을이 흘러내린다. 키 작은 풀과 키 큰 나무들이 석양에 젖어 잠이 든다. 다른 모든 곤충과 동물과 새들은 기침소리에 놀라 땅 밑으로 숨는다. 땅 밑에서 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노을은 기침소리를 내며 강물로 흐른다. 강물은 짐승들의 정관을 타고 흘러 정낭 속에 고여 바다가 된다. 바다에서 태초의 아메바처럼 짐승들의 정충이 태어난다. 정충들은 정낭의 바다에서 무리지어 헤엄치다가 다른 무리들과 부딪혀 서로 싸운다. 멍으로 화장을 하고 태어난 무수한 짐승들의 어깨에 날개가 돋아난다. 새로 태어난 짐승들의 가지 달린 퇴화된 날개가 아우성을 친다. 수정 궁궐에 싸락눈이 내리고 별이 마지막 오줌방울을 흘리고 바스라진다. 별똥별 조각에 길고 무거운 새들이 내려앉는다. 짐승들이 새들의 가슴과 배 안으로 줄달음친다. 새들이 파란 마그마를 뿜으며 날아오른다. 이륙하는 새들의 항문에서 별의 마지막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진공의 하늘은 맑고 투명하다. 멀리 파란별 하나가 빠르게 다가와 새들의 망막 위에 내려앉는다. 새들의 동공에 파란빛이 부딪힌다. 새들이 날개로 빛을 털다가 별의 바다에 추락한다. 바다에 물방울은 튀지 않는다. 무수한 해파리들만 둥둥 떠다닐 뿐이다.
4
나는 해파리 렌즈 망원경을 거꾸로 바라본다.
5
해파리의 등에 푸른 말미잘이 올라탄다. 파란 별의 땅과 바다에 투명한 비가 내린다. 키 작은 풀과 키 큰 나무 하나가 잠에서 깨어나 비를 맞고 있다. 내 해파리 망원경의 렌즈가 빗방울에 녹아내린다.
따개비
1
시인의 언어가 비가 되어 내렸다. 바람 속에 깃든 눈물이 새들의 눈동자에 묻혀 왔다. 낮은 풀들이 일어나 걷기 시작하고 나무 잎사귀들이 목향木香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풀들의 이마 위에서 나비가 젖은 날개로 날았다. 나비의 날갯짓에 반사된 투명한 빛은 푸르게 대지를 감싸 안았다. 대지의 입김이 바다의 혈관으로 흘렀다. 해일로 밀려오는 파도 속에서 사자와 얼룩말이 교미를 하며 뒹굴고 상어가 하늘에 떠서 하얀 배를 드러내고 웃었다. 모든 생물들이 웃고, 노래하고, 춤추기 시작했다.
2
태초부터 그 바닷가에 바위 하나가 있었다. 시인의 언어비는 그 바위에도 내렸다. 그러나 바위는 말이 없었다.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바위의 혈관에는 무심無心의 검은 이끼가 자라 혈전血栓을 이루고, 혈관과 심장 사이에는 드라이아이스보다 더 차갑고 단단한 자폐自閉의 벽이 버티고 서 있었다.
시인의 문장文章은 바위의 혈전을 녹이지 못했다.
시인은 슬펐다.
시인은 길을 떠났다.
바위의 동맥에 띄울 문자文字의 배를 찾아서,
바위의 혈전을 녹일 문장의 용해제를 찾아서,
바위의 자폐벽을 깨뜨릴 언어의 종소리를 찾아서.
3
시인은 벌거벗은 채 바다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작은 물고기들이 발가락 조약돌이 되고 큰 물고기들이 발바닥 징검다리가 되었다. 수평선에 무지개가 나타났다. 고래의 하얀 입김에 무지개다리가 걸려 있었다. 시인은 무지개 사다리를 타고 고래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난파한 문자의 배 한 척이 있었다.
시인은 발가락뼈를 잘라 못을 만들어 배를 수리했다.
시인은 그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다.
4
사막, 낙타도 오아시스도 보이지 않았다. 태양을 향해 쏘아올린 전갈의 독화살을 맞은 한낮의 별들이 밤의 유성으로 떨어지고 전갈의 푸른 독에 젖은 푸른 달빛 이 물기 하나 없는 사막에 푸른 안개 를 뿌리고 있었다. 푸른 달빛 안개에 잠긴 푸른 모래 언덕, 그 언덕 아래 동굴에서 푸른 밤의 전갈들이 기어 나왔다. 전갈 세 마리가 시인의 코와 귀와 입속으로 바람처럼 스며들었다. 시인의 코와 귀와 혀가 전갈의 푸른 독에 녹아내리고 시인의 혈관에 푸른 독 이 흘렀다. 이제 그 푸른 독 은 시인의 심장에 고여 바위의 혈전을 녹일 용해제가 될 것이었다. 시인은 푸른 우수憂愁 가 흐르는 달빛 강물에 누워 눈을 감았다. 별이 죽어간 여명의 사막에 투명한 금속 화살이 무차별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인은 눈을 떴다. 시인은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무릎으로 팔꿈치로 기고 또 기어갔다. 시인은, 드디어 사막을 건넜다.
5
열대의 숲, 코끼리와 하마가 물구나무로 서서 악어의 턱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악어의 잇새마다 조각조각 깨어진 언어의 종鐘의 파편들이 끼어 있고 악어가 부채숨을 쉴 때마다 그 잇새에서 양철 꽹과리 소리가 울렸다. 시인은 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 그 잇새에 박힌 종의 파편들을 빼내어 맞추고 손가락뼈와 갈비뼈를 녹여 만든 아교로 틈새를 이어 붙여 종을 복원했다. 시인은 그 종을 악어의 앞니에 매달았다. 악어가 긴 하품을 하자 저녁노을처럼 맥놀이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인은 그 소리를 영혼의 수첩에 음표로 새겨 넣었다.
6
시인은 돌아와 다시 바위 앞에 섰다. 바위는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눈길조차 주지 않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시인은 손가락이 없는 손바닥과 발가락이 없는 발바닥으로 바위를 끌어안았다. 거꾸로 돌아가는 시간의 파도바퀴가 시인의 등짝 위로 구르고, 구르고, 또 구르고, 시간과 바람이 잠시 회전을 멈춘 날에는 새들이 날아와 똥을 누며 시인의 동공을 쪼았다. 시인은 동공이 없는 눈으로 바위의 체취를 느끼고, 문드러진 귀로 바위의 얼굴을 쓰다듬고, 뭉개져버린 코로 바위의 숨결을 더듬었다. 녹아버린 혀로 바위의 심장박동을 들었다. 파도와 바람과 새의 부리에 깎이고 닳고 쪼인 시인의 몸이 점점 작아졌다. 납작하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시인은 바위를 놓지 않았다.
숨조차 쉬지 않고 바위에 달라붙어 있었다.
시간의 푸른 광선이 처음 왔던 곳으로 빨려 들어가고,
그 빛의 마지막 향기가
갈빗대 없는 시인의 허파 속으로 스며들 때,
시인은,
따개비가 되었다.
7
오늘도 따개비는 여전히 바위를 끌어안고 있다.
임재도
․창녕 길곡 출생
․장편소설 《퍼펙트크라임-빛은 저울로 달 수 없다》(전 3권)
(소설이 실린 창원문학 23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