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굽어 보며 눈 길을 거닐며 검단, 용마, 남한산을 종주하다
1. 일자: 2014. 12. 20 (토)
2. 장소: 검단산, 용마산, 남한산
3. 행로 및 시간
[월남전참전비(08:15,
검단산 3.6km) -> 검단산(09:55-10:00,
용마산 3.7km) -> 고추봉(10:44)
-> 용마산(11:30) -> (식사
11:40~12:00) -> 낚시터(12:49) -> (도로) -> 은고개(13:04) -> 벌봉(14:50-55) -> 봉성암(15:10) -> (알바) -> 종로(15:50-16:00) -> 수어장대(16:16) -> 서문(16:25~30) -> 마천(17:15)]
< 검용남 종주 산행을 준비하며 >
지난 한
주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장인어른의 갑작스런 입원, 긴박하게
돌아가는 ‘광주센터’업무 속에서 목요일 저녁에야 여유가 생긴다. 밴드에 소위 ‘검마종주’ 참가를
알린다. 아이넷과 둘 만의 산행이 될 것 같다. (당일 아침
까막바위님이 합류했다.)
인터넷을
통해 거리는 20km 정도, 시간은 8시간 정도가 되겠구나 하는 간단한 정보만 머리에 갈무리해 두고 토요일 아침을 맞는다. 먼 길을 나서며 평소답지 않게 별 준비 없이 길을 나선다.
< 월남전 참전비에서 검단산 >,
버스와 전철
다시 버스를 갈아 타고 까막바위님과 아이넷님과 함께 하산 검단산 들머리에 선 시간은 8시 10분 무렵이다. 월남전 참전비 부근 들머리 음식점에서 오뎅 하나
먹고 행장을 준비한다. 시간이 지체된다. 트랭글을 미리 켠
것이 후회되었다.
< 월남전 참전비 / 검단산 가는 길의
눈 풍경 >



잣나무가 호위하는 길게 뻗은 널따란 길을 따라 검단산으로 오른다. 예전
와 본 경험이 있는 곳이나 시간이 많이 흘러서인지 많은 것이 낯설다. 유길준 묘를 지나며 비탈이 시작된다. 새로 산 아이젠은 조금 큰 듯하지만 땅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좋다. 비록 600미터급의 산이지만 고도를 높일수록 눈의 양이 많아진다. 산에서의
적설은 고도가 높을수록 많지만 바람의 방향에 따라 편차가 크다. 정상 능선에 서니 바람이 옮겨다 높은
눈이 발목까지 쌓인다. 간밤에 내린 신설을 밟는 기분이 상쾌하다. 여러
분들이 간밤에 올 눈 걱정을 해 주었는데, 막상 와 보니 풍성한 눈이 있는 풍경이 그만이다. 눈 없이 앙상한 가지가 달린 나무 숲을 흐릿한 날씨 속에서 걷는다면 이런 감흥을 일지 않으리라.
고도 600미터
대로 올라서자 차원이 다른 눈꽃잔치가 펼쳐진다. 참나무 숲 사이로 길이 나 있고, 나무 가지 수분이 얼어 빙화가 만들어지고, 바람에 날리다 나무기둥에
가까스로 달라붙은 눈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이 비로서 제대로 된 겨울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신설과 어우러진
비탈에 선 나무가 있는 풍경은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좌측 밑으로 눈을 살포시 인 남한강의 모습이 보인다. 검단산 정상이 지척이다.
< 검단산 가는 길에
>


검단산, 7년쯤
전 강형과 함께 올랐던 곳이다. 한창 산행에 재미를 붙여 가는 중 먼 곳에 가보자는 생각에 차를 몰고
와서 정상을 찍고 되돌아 갔던 곳이다. 당시 정상에서 길을 되돌리는 게 못내 아쉬워 ‘내 훗날 다시 오리라’ 다짐했던 곳인데, 그날이 오늘이 되었다. 예전 기억이 살아나는 바위 전망대 부근에는
나무 말뚝이 막혀 있고 그 너머로 남한강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
9시 55분
검단산 정상에 섰다. 3.6km의 거리를 1시간 40분만에 왔다. 세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눈 속에서 고도 600미터를 이겨 내는 건 만만치 않았다. 10여명의 산꾼들이 정상에서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개까지 데리고
온 분도 있다. 한강을 굽어본다. 눈 덮인 강가 풍경이 이국적이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 몇 장을 찍는다. 벗이 있는 산행에 익숙해져
간다.
< 검단산 정상에서
>



< 검단산에서 용마산 >
검단산과
용마산은 고도 차가 100미터도 나지 않는다. 거리는 3.7km로 비교적 편한 행로가 되리라는 예측은, 막상 현실에 서니
사실이 아니었다. 지도에 봉과 산 표시가 있다는 건 주위보다 그만큼 높은 곳이라는 증거이고, 그 부근은 낮은 곳이 있다는 말이다. 검단산에서 한참을 내려선다. 옅은 연무로 한강의 풍경은 흐릿하다. 팔당 댐을 경계로 흐르는 물과
고인 물의 색이 다르다. 흐르는 물이 푸르다. 고인 물은
눈에 덮여 있다.
두리봉 일명 고추봉에 도착했다. 몇 년 전 용마산을 지나 이곳까지 왔다가 하산한 기억이 난다. 별
특이한 곳도 아닌데 봉우리에 도착하니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기록의 힘이라 여겨진다. 당시에는 날이 오늘보다 훨씬 춥고 맑았다. 시리도록 맑은 하늘 아래
북한강의 물을 바라보는 기분이 최고였다.
400미터대로 내려섰다 용마산으로 오를 모양이다. 눈이 많아진다. 최근 여러 차례 내린 것들이 켜켜이 쌓여, 내리막에서는 발목까지 잠긴다. 일찌감치 발목에 스패츠를 한 것이
톡톡히 효과를 본다. 하늘이 조금씩 맑아진다. 원경에, 서울 강남 일대가 눈에 들어온다. 제2롯데월드 빌딩이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아직 완공 전인데도 주위를
압도한다. 근경에는 눈에 완전히 덮인 한강이 조망된다. 비로서
기대한 만큼의 ‘한강이 있는 풍경’을 목격한다.
용마산이 멀지 않았다. 집의 1/3이 지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한다. 얼떨결에
나선 검마종주 산행이 비로서 현실로 나가 온다. 근교 피크닉 수준의 산행이 점차 8~9시간의 종주로 발전하는 양상이 최근 내 산행의 특징이다. 버스
타고 멀리 가기 보다는 가까운 산들을 이어 종주를 하는 편이 이 계절엔 더 현명해 보인다.
< 서울 시가지 원경과 한강 근경 >



11시 30분 용마산에 도착했다. 말 없이 걷는 이들의
입에서 비로서 감회가 쏟아져 나온다. 그들에게도 눈 쌓인 한강은 새로운 느낌인가 보다. 강을 배경으로 사진을 돌아가며 찍는다. 찍고 보니 산 뒤로 꿈틀거리는
굴곡진 산 능선도 강 못지 않게 인상적이다.
< 용마산 가는 길과 정상에서 >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고는 길을 내려선다. 마천까지는 갈 길이 아직 멀다.
< 용마산에서 한강을 배경으로 >


< 용마산에서 벌봉 >
배꼽시계가
밥 달라고 아우성이다. 까막바위님이 제안하는 자리를 퇴짜 놓았더니 적당한 곳을 찾기가 여의치 않다. 한참을 더 내려가 바위 밑 양지바른 곳에 터를 잡았다. 음식이래
바야 빵 조각이 전부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맛나게 먹었다.
고도가 급격히 낮아진다. 눈이 조금씩 녹고 낙엽이 아이젠에
달라붙어 걷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광주시 음미리로 내려왔다. 약수터가
보인다. 도로가 이어진다. 신곡IC 부근으로 이곳에서 제1/2 중부고속도로가 나뉘어진다. 긴 지하도로를 지난다. 걸어본 곳 중 가장 길었다. 아이젠을 벗어야 하나 조금만 더 가면 되겠지 하다 때를 놓쳤다. 길가에는
음식점이 많다. 이곳에서 식사를 할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널찍한 국도변, 차가 쌩쌩 달리는 길가를 아이젠을 신고 불편하게
걷는다. 관성을 과감히 벗어 던지지 못해 1km 넘게 발에
족쇄를 달고 걸은 꼴이다. 사거리에 장승이 나타나고 가로수신문 건물 뒤로 은고개가 있었다. 홀로 왔다면 길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도로로 오지 않고
아마도 민가 뒤편으로 등로를 찾다가 낙엽 쌓인 비탈을 헤매고 다녔을 것이다. 일행이 있는 산행이 이래서
좋다.
< 낚시터 설경 / 은고개 사거리 >


은고개 앞에 선다. 앞에 긴 계단이 올려다 보인다. 그 계단을 통해 다시 산 길에 접어들었다. 벌봉까지 4.4km 거리다. 고도 350미터
정도를 치고 올라야 한다. 작은 봉우리들이 있겠지만 대체로 길은 평탄하리라 예상해 본다. 햇살이 강렬하다. 썬블럭을 해야 하나 이 역시 귀찮다. 바람막이 모자를 덮어 쓰고 걷자니 금새 몸에 열기가 전해져 온다. 눈과
낙엽은 여전히 속도를 더디게 한다.
인접이 드물어진다. 오래 반복되는 단순히 걷는 행위는 우리
일행의 입도 다물어지게 한다. 작은 고개에 올라 쉬어 가자 한다. 귤의
과즙이 갈증을 달래 준다. 밥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허기가 느껴진다. 어인 일인지 모르겠다. 시계를 본다. 2시간 막 지난다. 6시간을 내쳐 걸었다. 배 고픔은 당연지사다.
< 벌봉에서 >


특징 없는 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길은 예상대로 초반 오르막을
올라서니 고차가 크지 않게 이어진다. 허물어진 성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외동장대 터란 곳을 지나며 이정표가 헷갈린다. 이리저리 헤매다, 겨우 벌봉에 오른다. 눈에 익다.
그래도 이전에 왔던 곳이 한봉이고 벌봉은 처음이리라 생각했다. 허물어진 성벽 위로 솟은
작은 바위가 있는 풍경은 을씨년스럽다. 두 사람은 바위 위로 기어올라가 사진을 요구해 온다. 난 바위엔 없다.
왔던 길을 돌아 북문으로 향한다. 작은 언덕을 올라서자 눈에
익은 암문이 나타난다. 봉성암문이다. 그렇다면 조금 전 올랐던
곳은 예전에 올랐던 곳이란 말이다. 어이가 없었다. 길 눈이
이리 어두워서야 산꾼이라 하겠는가!!
< 소나무가 있는 풍경과 원경 >


자괴감과 함께 안도감이 밀려온다. 이제부터는 길을 안다. 큰 무리 없이 서문까지 갈 수 있으리라. 봉성암문은 새로 보강된 성문으로 화강암의 색감과 홍예문 형태의 조형미가 뛰어나다, 무지개 문을 배경 삼아 돌아가며 사진을 찍고 본격적으로 남한산성 안으로 들어간다. 길이 넓어지고 잘 생긴 소나무들이 길가에 도열해 있다. 남한산성이
자랑하는 키 큰 소나무가 있는 풍경이 한동안 이어진다. 덩달아 마음이 푸근해진다.
< 봉성암문에서 >


< 벌봉에서 마천 >
아이넷님이
수어장대를 가야 한다고 고집한다. 처음엔 별스럽게 여기지 않았는데 고집이 상당하다. 서문에서 왕복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고, 꼭 보아야 한다면 남문으로
내려가는 것이 순리인데 자기 주장만 편다. 지나치면 모자란 만 못한데 하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북문을 향해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이정표를 만난다. 약간 표식이 헷갈리지만 좌측이겠지 하고 내려오니 현절사라는 절이 나오고 이내 종로 거리로 이어진다. 난감하다. 길을 잘못 든 게다. 검단산, 용마산, 남한산 종주의 목표가 달성되었으니 이쯤에서 산행을 접고
싶었지만 고집불통 아이넷은 거듭 자기 주장만 한다. 할 수 없이 행궁터에서 길을 다시 산으로 잡는다. 말 없이 걷는다. 이럴거라면 남문으로 하산하자 제안해 보지만 들으려
하지 않는다. 병원 방문 시간이 늦을 것 같아 걱정되지만 일단 따르기로 한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수어장대를 올라 서문으로 내려왔다. 서문에서 바로 마천으로 내려 가려 하기에 전망대로 일행을 안내했다. 오후
4시 30분, 서녘에
해가 지고 있다. 눈 앞에는 오늘 최고의 풍경이 펼쳐진다. 최고의
전망대는 그냥 지나치려 하고 기껏해야 덩그런 건물 하나 보자고 장대에 오르려 했으니 말이 나오지 않는다.
< 서문 전망대에서 본 풍경 >







근경에는 골프장이 선명하다. 집에 돌아와 확인해 보니 성남GC, 캐슬렉스GC, 천마산GC 등이다. 원경에는 멀리 좌측부터 광교산, 청계산, 관악산. 북한산, 도봉산이
길게 이어진다. 산정은 각자의 특색 있는 모습이 분명하다. 광교산은
통신탑이, 청계산은 군부 철탑이, 관악산은 기상대 돔이, 북한산은 뚜렷한 삼각형 형상이, 도봉산은 정상 암봉이 특징적이다. 서울 근교에 위치한 모든 산을 이리 선명하게 한 눈에 보기는 처음이다. 오늘
산행의 나머지는 모두 잊는다 해도 지금 이 모습은 보석처럼 마음에 간직되리라 믿는다. 그 만큼 장관이다.
< 서문 전망대에서
>




서문을 뒤로 하고 마천으로 향한다. 어두워진다. 처음 걷는 길, 이런 저런 생각에 부러 천천히 걷는다. 30여분 무리 없는 내리막을 걷자, 도로가 나오고 상가가 이어진다. 서울 변두리의 우중충한 가건물들 중에서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고추장
삼겹살과 동태찌개를 시켜 놓고 행장을 정리한다. 얼었던 얼굴에 온기가 닿자 얼얼하다.
9시간 가까운 산행이 이렇게 끝이 났다.
< 산행 지도 >

< 에필로그 >
음식과 술
한잔에 산행의 피로가 씻은 듯이 물러간다. 허기진 배를 채운다. 지금
이 순간은 따스하고 기름진 음식이 곧 하늘이다. 한 잔 술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병원에도 가야 하니 여기서 더 마시면 안 된다는 생각이 미친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긴 산행을 마치고 전철에 오른다. 여러 가지를 많이 생각하게
하는 산행이었다. 평소 하고 싶었던 검단산, 용마산, 남한산 종주를 마쳤으니 일단 목표는 달성해 좋으나, 여럿이 하는
산행의 아쉬움도 보았다. 그나마 내 고집을 접은 일은 잘한 일이다, 그래도
마음이 개운치 않다. 산에서는 누리려는 마음보다 나누는 마음이 중요한데 말이다.
장인어른 병원 면회시간에 늦겠다. 서두르자!!
< 산행 궤적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