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점 4.2점
단상 : 읽는 즐거움보다는 읽어내는 괴로움이 컸던 책이다. 예전에 한 번 읽어서 쉽게 읽을 줄 알았는데, '밀도가 높은 책'이라 읽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는 19세기 전반 프랑스의 소설가로 사실주의의 선구자였다고 한다. 나폴레옹의 숭배자였고, 작중인물의 재등장수법을 쓰는 작가였다. 원래의 성은 Balssa였는데, 아버지 때부터 귀족처럼 드 발자크라고 스스로 칭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파리의 상인 집안 출신이었고, 아버지는 농민 출신이었는데, 프랑스혁명시대의 혼란기를 틈타 관리로 출세하였고, 발자크가 태어난 투르가 아버지의 근무지였다고 한다. 법학을 공부했지만 문학에 뜻이 있었던 그는 20여세 연상의 헌신적인 애인 베르니 부인의 격려 속에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글을 썼다. 1830년 7월 혁명으로 변한 세상을 낭만주의 시인들과 달리 찬양하고 사랑하였으며, 이를 문학 속에 아름답게 표현했다. 그래서 그를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라고 한다. - 네이버 백과사전참조-
* 하숙집 <보케르 집>에 거주하는 사람들
- 보케르부인 : 하숙집 주인, 쉰 쯤 되어 보이는 '산전수전 다 겪은 여자들'과 닮은 여자
- 쿠튀르 부인 : 빅토린 타유페르 어머니의 먼 친척, 빅토린의 보호자, 프랑스공화국 육군 출납 지불관의 미망인, 하숙집의 가장 좋은 방 중 하나에 거주, 빅토린의 아버지가 빅토린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하려고 노력하고 후에 타의로 이를 해낸다.
- 빅토린 타유페르 : 창백하고 연약한 아가씨, 아버지가 부자이지만 그녀를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아서 가난하게 산다.
- 푸아레 노인 : '기계같은 인간'(p.19), '불행과 더러움에 의해 돌아가는 이 사회에서 굴대같은 존재'(p.20)
- 보트랭 : 전직 도매상인, 검은가발을 쓰고 구레나룻을 염색, 20년형을 선고받은 도형수로 탈옥, 일명 불사신
- 미쇼노 : 늙은 처녀 '어떤 산성 물질이 이 늙은 처녀의 여자다운 모습을 벗겨가 버렸을까?'(p.19)
- 고리오영감 : 전직 제면업자, 하숙집 사람들은 고리오영감을 무시한다. 많은 지참금을 가지고 결혼한 딸들이 금전적으로 어려울 때마다 자신의 것을 최소한으로 줄이며 딸들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지만 딸들에게 버림받는다. '인간들은 악덕은 용서하면서도 어떤 인간의 우스꽝스럽고 이상한 짓은 용서하지 않는 법이다.(p.26)
- 으젠 드 라스티냐크 : 법학도, 앙굴렘에서 파리로 옴,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공부
- 크리스토프 : 심부름하는 아이
- 실비 - 뚱뚱한 식모
* 그 외 중요인물
- 아나스타지 레스토부인 : 고리오영감의 큰 딸, 레스토백작과 결혼, 애인 막심 드 트라유 백작에 의해 금전적으로 큰 손해를 본다. 아버지에게 금전적인 요구는 하지만 아버지를 부끄러워 한다.
- 델핀 뉘싱겐 부인 : 고리오영감의 작은 딸, 신성로마제국의 남작이 되는 독일 태생의 은행가 뉘싱겐과 결혼, 으젠의 연인이 된다.
- 보세앙자작부인 : 으젠의 사촌누나, 으젠이 사교계에 나갈 수 있게 도와준다. 애인인 다주다 핀토후작(포르투갈의 부호 영주)의 결혼으로 파리를 떠난다.
- 비양숑 : 의대생, 으젠과 달리 '시골에서 아버지 뒤를 이어 고직식하고 보잘것없는 생활을 하게 될 터'이지만 그걸로 '만족'(p.187)할 줄 아는 사람. 미쇼노와 푸아레가 경찰끄나풀과 만나는 걸 보고 조사해보려고 한다(p.188) 보트랭을 신고한 것이 미쇼노인 줄 알게 되자 그녀가 하숙집을 나갈 것을 요구한다 (p.280)
* 뱔췌와 소회
- '이 가구들이 얼마나 낡아터졌고 썩었는지, 흔들거리며 벌레 먹었는지, 한쪽 다리가 병신이고 쓸모없어 거의 빈사 상태에 빠져 있는지를 설명하려면 상세한 묘사가 필요하다. 그러자면 이야기 줄거리가 너무 늦게 나타나서 성질 급한 독자들은 작가를 용서하지 않을 터이다. (중략) 끝으로, 그곳에는 시적인 데라곤 전혀 없는 가난이 있다. 더 이를 데 없이 궁핍하고 넝마 같은 가난이 도사리고 있다. 그 가난은 진흙이 묻지 않았다 해도 얼룩이 지고, 구멍이나 누더기가 없더라도 곧 썩어 넘어질 지경이다.' (p.14) (가난에 대한 묘사를 사실적으로 했다.)
- '더구나 하숙인들 중의 누구도, 한 사람이 떠들어대는 불행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검증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각자의 처지에서 비롯한 불신 섞인 무관심을 서로 품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고통을 덜어주기에는 자신들이 무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 25쪽 (그래서 고리오영감의 임종을 지키는 으젠과 비앙숑이 더 대단해 보인 것일 수도 있다.)
- '갑자기 레스토 부인 댁에 있었던 값비싼 것들이 그의 두 눈 앞에서 번쩍거렸다. (중략) 이런 황홀한 인상은 보세앙 부인의 웅장한 저택을 보고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의 상상력은 파리 사교계라는 고지에 몰두해 있어서 그의 마음에 수많은 그릇된 생각들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이성과 양심은 느슨해졌다. 그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았다. 부자들에게는 법이나 도덕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출세만이 <이 세상에서 최후의 수단>임을 발견했다. "보트랭 말이 옳구나. 출세만이 미덕이야." 그가 혼자서 중얼거렸다.'113쪽 (으젠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변하기 시작한다.)
- '네 어머니는 패물을 찌그러뜨렸다. 네 백모님은 유품 몇 가지를 팔면서 틀림없이 눈물ㅇ을 흘리셨다! 너는 무슨 자격으로 아나스타지를 욕했느냐? 그 여인이 자기 애인을 위해서 한 노릇을 나는 장래에 대한 이기심 때문에 흉내낸 것이다! 너와 그 여인 중에서 누가 더 훌륭하나?" 그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129쪽 (사교계에 입문하기 위해서 어머니와 여동생들에게 돈을 요구한 으젠)
- '뉘싱겐 부인이 내게 관심 있다면, 나는 그녀에게 남편을 조종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어야지. 그녀 남편은 금융 사업을 하고 있으니까 단번에 재산을 모을 수 있도록 날 도와줄 수 있겠지.' 그는 이 점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했다. 그는 아직도 사태를 계산하고 평가하고 예측할 만큼 정치적이지 못했다. 따라서 그의 생각들은 다만 가벼운 구름 모양으로 지평선에서 또돌아 다닌다. 그의 생각들이 보트랭처럼 가혹하지는 않더라도, 양심의 도가니 속에 넣어 분석해 보았더라면 순수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177쪽 (양심과 점점 멀어지는 으젠, 그런데... 헛.다.리..)
- "당신은 우리 같은 놈들보다 더 훌륭합니까? 타락한 사회에서 무기력한 부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더러운 치욕이 우리 어깨에는 덜 있어요. 당신들 중에 가장 훌륭한 인간이라도 나의 이 얘기에 반대하지는 못할 것이오."p.276 (청산유수, 미쇼노의 신고로 체포되면서 한 말, 부자들의 치욕을 말하면서 자신의 죄는 그들보다 약하다고 말한다. 동일시를 통한 면죄의식)
- '명백한 죄는 가정 환경에서 비롯한 성격 차이와 다양한 이해 관계 및 처지 때문에 모습을 수없이 바꾸면서 용서받게 마련이다. 하지만 형식상 요지부동한 사회 규범은 흔히 이런 경우에 유죄를 선언하는 법이다. 으젠은 자신을 기만하고 싶었다. 그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자기 양심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이틀 전부터 그의 생활에서 모든 게 변해 버렸다. 그녀는 그의 생활에 혼란을 던졌고 가정에 대한 생각을 퇴색시켰으며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모든 것을 손아귀에 넣었다.'351쪽 (금전적인 구속이 주는 사람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
- '그때 딸년의 시선을 보고, 나는 내 몸의 혈관들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네.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싶었네. 하지만 내가 안 것은 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잉여 인간이라는 사실이었어.'370쪽 (임종을 앞둔 고리오영감이 털어놓는 진심이 아닐까?)
- 복습교사가 말했다. '밥맛 떨어지겠소. 한 시간 전부터 영감에 대해서 온갖 얘기를 다하지 않았소? 파리라는 좋은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의 하나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태어나서 살다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이오. 그러니 이러한 문명의 혜택을 누립시다. 오늘도 죽은 사람이 육십 명이나 되는데, 파리에서 죽은 그 많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애도의 뜻을 표하겠다는 말이오? 고리오 영감이 뻗었다면, 본인으로서는 차라리 다행한 일이지! 영감을 좋아한다면 가서 보살피시지.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조용히 식사나 하게 해 주시오.'(중략) 열다섯명의 하숙인들은 보통 때처럼 잡담을 시작했다. 으젠과 비앙숑이 식사를 끝냈을 때 포크와 숟가락 소리, 대화하다가 웃는 소리, 무관심하고 식충이들인 이들 얼굴에 나타난 가지가지 표정들이 너무나 혐오스러워 두 사람은 소름이 끼쳤다. 391쪽
(세파에 시달린 파리의 하층민과 아직은 인정과 양심을 가진 두 젊은이의 대조)
* 작품 여러 곳에서 고리오영감의 딸들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딸들은 자신을 사랑하지만 사위들이 못돼서 자신과 함께하지 못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임종이 다가왔을 때 그는 무의식 속에서 자신의 딸들이 자신을 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다만 의식을 붙잡고 있을 때는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지나친 사랑은 독이다.
* 비양송을 보면서 문득 박완서의 <자전거도둑>의 순남이가 떠올랐다. 작품에서 가장 양심적인 인물이 아닐까 싶다.
* 작품에서 가장 큰 변화를 보이는 인물은 으젠일것이다.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p.396)라고 말하며 뉘싱겐 부인 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는 마지막 장면이 으젠의 완벽한(?) 변화를 궁금케한다.
* 발자크가 궁금한 사람이나 인간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은 사람, 19세기 프랑스 사회가 궁금한 사람에게 추천한다.